서민영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팀장
[D.MZ 칼럼] 청년 활동가들은 이렇게 연결된다

선배 활동가들을 보면 부러웠다. 연륜과 경험, 빠른 정세 분석, 마이크를 잡기만 하면 청산유수로 흘러나오는 발언, 필요하면 뚝딱 써내는 성명서와 논평….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부러웠던 건 선배들의 끈끈한 연대였다.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하고, 서로 돕고, 당연하게 의지하고, 든든하게 일을 나누는 연대. 선배들의 연대는 업무적인 연대를 넘어서서 정서적인 지지가 되기도 했다. 평일에는 업무 연대로 만나고, 주말에는 취미를 함께 즐기는 모습을 보며 ‘동료’가 무엇인지 생각했다. 나는 너무 부러웠다. 나에게도 그런 동료가 필요했다. 힘들 때 손을 내밀 수 있고, 당연하게 그 손을 잡는 끈끈한 연대가 필요했다. 청년 활동가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를 찾았다. 처음에는 그런 자리의 존재조차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직접 기회를 만들어 봤다. 그렇게 시작된 ‘청년기록단’의 ‘요즘 것들 이야기’는 총 11명의 청년 활동가를 만나 인터뷰하는 프로젝트였다. 활동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가장 좋은 기억은 무엇인지, 어떤 것들이 어렵고 힘든지, 그런데도 활동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지, 지속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두 시간은 기본이고, 네 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비슷한 경로로 활동을 시작했고, 비슷한 어려움을 겪으며, 비슷한 것들을 활동의 원동력으로 꼽고 있었다.  청년 활동가들은 세월호 참사, 강남역 살인사건 등을 경험하며 거리로 나와 행동했고, 그 행동의 경험이 현재의 활동까지 이어지게 했다고 말했다. 활동하면서는 조직 내에서 느끼는 소통의 문제와 가족·지인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한다는 외로움, 열악한 노동환경과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 등의

최한빛 마이오렌지 콘텐츠에디터
[D.MZ 칼럼] 생태계의 일원이라는 감각

‘소셜섹터’나 ‘임팩트 생태계’라는 말을 자주 쓰지만, 정작 내가 생태계의 일원이라는 걸 실감하지 못할 때가 많다. 업무 특성상 소셜섹터 내 여러 소식에 자연스럽게 노출되고 또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기도 하지만, 때로는 붕 떠 있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만드는 임팩트가 선명하지 않다고 생각되거나 업무 중 느끼는 혼란한 마음이 잘 정리되지 않을 때면 비슷한 고민을 하는, 어쩌면 그 시기를 이미 통과해 낸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문제에 대한 뾰족한 해결책보다 그저 지금 나의 복잡한 생각과 감정을 다른 사람 앞에 있는 그대로 꺼내어 보고 수용 받는 경험이 필요했다. 그런 시기에 소셜섹터 활동가들의 네트워킹 모임 ‘D.MZ’에 참여하게 됐다. 직장 밖 동료를 만드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도 또래들과 편안한 대화 그 자체로 기대됐다. ‘D.MZ’는 첫 모임부터 ‘익명성이 보장되는 안전한 공간’이라는 점이 여러 차례 강조됐다. 본명을 사용하지 않고 원하는 닉네임으로 참여할 수 있었고, 원치 않으면 굳이 소속을 밝히지 않아도 됐다. 모임 중간중간 우리를 안심시키는 운영진에게서 이곳이 허심탄회한 대화의 장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느껴졌다. 덕분에 경계를 허문 채로 모임에 참여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는 뭘 굳이 잘 하지 않아도, 슬쩍 약한 모습을 내비쳐도 괜찮을 것 같았다. 모임은 3주간 매주 수요일 퇴근 후 저녁 시간에 진행됐다. 지금까지도 각 회차가 제법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특히 다 같이 빙 둘러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나눈 첫 모임이 인상적이었다. 말을 꺼낼 때마다 일제히 나를 향하던 시선들,

김현숙 서울YWCA 간사
[D.MZ 칼럼] ‘안 될 것 같은 일’을 지속하는 힘은?

모 홍보대행사 재직 시절, 주변 동료들은 늘 점심을 컵라면으로 때우며 야속하게 흘러가는 시간과 다투며 일했다. 특히 어느 기업 오너의 부정기사라도 나는 날이면 컵라면도 반납하고 연신 키보드를 두들겨야 했다. ‘아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출퇴근 때마다 다짐했고 결심했다. 이렇게 살지 않기로. 사장님이 아닌 세상을 위해 조금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선한 마음으로, 그리고 매출 목표가 아닌 조금 더 숨통이 트이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다소 불순한 의도로 비영리 단체에 문을 두드렸다. 사실 비영리에 엄청난 사전 지식이 있는 상태로 입사한 게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세상과 다르게 돌아가는 이곳 시스템에 많은 문화충격을 받기도 했다. 돈 얘기에서 자유로운 줄 알았는데 늘 재정 걱정에 시달렸고, 대의를 내세우며 당장의 물질적 이득을 내칠 때는 우둔해 보이기까지 했다. 내가 일하고 있는 이곳은 무려 100년도 더 전에 기독 여성들이 의기투합하며 만들어졌다. ‘여성’과 ‘기독교’라는 특수성이 공존한다. 이 때문인지 가끔 이유 없는 질타와 욕을 먹기도 하는데, ‘제로웨이스트’나 ‘기후위기대응’ 캠페인을 할 때면 이유 없이 관심과 지지를 받기도 하기에 너무 섭섭해하지 말자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우리가 눈떠서 생활하며 아무 의식 없이 지나쳐 온 모든 시스템, 법적 규제, 사회적 합의 등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특히 한국은 전쟁과 분단을 경험하며 많은 선배들이 사회적 아젠다를 던지고 싸워 결과를 이뤄왔다. 그렇다 보니 50여 년 넘게 우리 단체를 지켜봐 온 선배들과 2023년을 살고

김정빈 수퍼빈 대표
[쓰레기공장 이야기] 잊어버릴 권리, 기억해야 할 의무

오랜 인연을 이어온 미국의 한 대학교 영화과 교수가 올 여름에 한국에 다큐를 찍으러 왔습니다. 오래간만에 재회한 자리에서 그는 지난 7년 간 필자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폐기물과 쓰레기 이야기를 읽고 다큐멘터리를 구상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목을 ‘잊어버릴 권리, 기억해야 할 의무(Right to Forget, Duty to Remember)’로 정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사용하고 나서 더 이상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면 그 대상물을 버립니다. 버리는 행위는 그 대상물을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권리를 행사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버린 쓰레기와 폐기물의 흔적을 남기게 되고, 다음 세대는 이 흔적으로 우리를 기억하게 됩니다. 폐기물이 남긴 흔적에 우리의 책임이 있습니다.   멀리 바다나 산 속에 버린 쓰레기로 고통받는 거북이나 고래, 코끼리 등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거대한 소각장과 매립장 그리고 다양한 폐기물 처리장 등은 이미 사회의 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흔적들은 불편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우리가 편리하고 풍요롭기 위해 소비한 이후의 모습들입니다. 실제로 재활용선별장으로 들어오는 수많은 재활용품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어떻게 생활하며 살아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질문을 바꾸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쓰레기를 줄일 수 있을까?” 혹은 “어떻게 하면 분리배출을 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 후손들에게 보여지고 싶은가?”로 바꿔야 합니다. 우리 후손들에게 더럽고 못난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다면 재활용이 어려운 제품이나 포장재, 일회용품을 사지 않고 사용하지 않으면 됩니다.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
[모금하는 사람들] 모금에도 ‘넛지 전략’이 필요한 이유

모금이란 무엇인가. 모금은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일(목적사업)을 다양한 대상에게 다양한 소통방식으로 알리고, 공감을 형성하고 그 일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여러 공익단체가 겉으론 비슷해 보여도 각자의 목적과 방식으로 일하기 때문에 각기 다른 맥락과 정보와 자원을 가지고 서로 다른 환경에서 일한다. 이런 이유로 어떤 단체가 성공적인 모금을 하려면 과연 단체에 맞게 ‘적절한 준비를 했는가’를 묻게 된다. 적절한 목적인지, 적절한 대상인지, 적절한 매체인지, 적절한 내용인지, 적절한 금액인지, 적절한 타이밍인지. 모금의 성공 공식은 정해진 게 아니라는 뜻도 된다.  누군가로부터 크든 작든 돈을 받으려면 가장 먼저 ‘누가 줄 수 있는지’를 찾게 된다. 보통은 정부, 기업, 기부자 등을 떠올리지만, 재정확보의 확장적인 개념으로 사업을 통한 수익 창출까지 고려한다면 구매자까지도 포함될 수 있다. 실제로 재정이 확보되려면 돈을 줄 가능성이 높은 곳을 중심으로 먼저 탐색하고 기회를 엿봐야 한다. 자금을 제공하는 주체별로 특이점이 있긴 하나 모두 돈 받을 자격과 가치를 따진다는 측면에서 보면 다 비슷하다. 이렇게 보면 모금은 일종의 투자 유치 활동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다양한 제공자로부터 재정을 어떤 방식으로 확충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즉, 받는 게 있다면 무언가를 대가로 줘야 한다. 받고자 한다면 무엇을 줄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런데 기부 측면에서 보면 돈에 상응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대가로 줘서는 안 된다. 기부는 반대급부 없이 무상으로 받는 것이다. 돈에 상응하지 않는 대가는 돈으로는 따질 수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간절함이 있는가

얼마 전 어느 단체가 주관하는 ESG 포럼의 발제자로 참여해달라고 요청 받았다. 공공기관에 재직하다 보니 일정이 자유롭지 못한 부분도 있고, 행정감사와 내년 예산심의도 앞두고 있어 정중히 양해를 구하고 거절했다. 연말이면 조직마다 한 해 사업을 정리하고, 성과를 대중에게 공유하는 자리를 갖는다. 하루가 멀다하고 다양한 주제로 세미나와 포럼, 컨퍼런스가 줄을 잇는다. 이러한 행사의 단골 주제 중 하나로 여전히 ESG가 주목받는다. 환경과 에너지, 다양성과 포용성 등도 인기가 있다. 수년 전 우리 사회에 광풍을 일으킨 ESG 이슈만 보더라도 이 정도의 관심과 지지, 교육과 지원이 있었으면 지금쯤 가시적인 성과가 몇 개씩은 나올 법도 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은 친숙한 단어인 ‘콜렉티브 임팩트(Collective Impact)’가 스탠포드사회혁신리뷰(SSIR)에 소개된 건 2011년이다. 마크 크레이머(Mark Kramer)와 존 카니아(John Kania)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서 다양한 분야의 조직이 참여해야 사회적가치의 파급력이 강해진다며 콜렉티브 임팩트를 제안했다. 이를 위한 다섯 가지 협력 방법은 ▲공통의 주제 ▲측정체계 공유 ▲상호강화 활동 ▲지속적인 의사소통 ▲핵심운영조직 등이다. 그러면 전 세계가 관심을 갖고 있는 유엔지속가능발전목표(UN SDGs)나 기업의 ESG 이슈 또한 콜렉티브 임팩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는 민간기업뿐 아니라 공공과 시민단체까지도 구호처럼 외치는 ESG 이슈도 콜렉티브 임팩트 방식을 적용한다면 더 큰 사회적가치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많은 사람이 콜렉티브 임팩트의 다섯 가지 방식을 이야기하지만, 더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바로 선행조건(Pre-conditions)이다. 진정한 협력을 통해 사회적가치를 확대하기 위해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생물계절 변화와 식량의 미래

11월에 맞는 여름 날씨에 다들 화들짝 놀랐다. 살아온 인생이 길든 짧든 낯선 경험일 수밖에 없었다. 극한기상이 주는 당황스러움은 일회성이 아니라 앞으로 자주 겪게 될 기후 변덕의 일부에 불과하다. 4월 초에 갑자기 찾아온 무더위를 지날 때만 해도 약간의 희망을 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제는 공포영화처럼 어디서 기후 괴물이 뛰쳐나와도 이상하지 않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마음을 놓지는 말자. 이제 겨우 도입부가 시작되었을 뿐이다. 너무 이른 더위와 너무 늦은 더위는 선진국 시민들에게 냉방기 덮개를 다시 벗겨야 하는 번거로움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대부분 생물에게 이런 변화가 날벼락에 가깝다. 예민한 생물시계를 가진 과수와 부지런한 꿀벌은 계절 변동 범위를 벗어난 무더위와 연이은 냉해의 습격을 고스란히 받았다. 생물계절의 이상은 농업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과일의 생산량을 많게는 40%까지 떨어뜨렸고 쌀 생산량마저 줄어들 전망이다. 육상 식물종의 약 40%는 희귀종으로 분류되는데, 기후변화는 이 분류군의 식물종을 멸종 위기로 내몰고 있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적합한 기후대로 서식지를 옮겨야만 하는데, 식물종은 10년마다 고도는 11.0m, 북으로는 16.9km를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작물은 더 빠르게 이동한다. 생존 한계보다 품질하락과 생산성 감소로 인한 경제성 한계에 먼저 도달하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커피 산지가 점점 더 고지대로 옮겨가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제주에서 재배되던 아열대 작물이 남해안을 지나 남부지방으로 북상하고 있다. 기후변화와 극한 기상이 농산물 수확량을 크게 줄이기는 하겠지만 버틸 수는 있다. 하지만 과학기술 투자로 인해 증가한 농업 생산성은 기후변화로 상쇄되어 투입비용 증가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은 정체될

정유미 포포포 대표
[기차에서 일합니다] 인어도 환영하는 화장실

항공사 예매 창의 Gender 선택 카테고리에서 스크롤을 내리다 주춤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뉴욕으로 넘어가는 비행기를 예매하는 중이었다. F-Female, M-Male, X-Unspecified(명시(지정)되지 않은), U-Undisclosed(밝혀지지 않은, 비밀에 부쳐진). 낯선 질문으로부터 변화의 기류가 피부에 와닿았다. 현지에서 “May I pronoun?”이라는 질문을 받았을 땐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인칭 대명사(Personal Pronoun)를 “어떻게 불러 드릴까요?”라는 의미였다. 처음엔 알아듣지 못했고 이후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점에서 팔던 She/Them, He/They 같은 서로 다른 인칭 대명사가 공존하는 배지의 뜻을 그제야 이해했다. 무심코 지나쳤던 SNS 프로필의 인칭 대명사를 유심히 보게 됐다. 생물학적 상태와는 별개로 불리기를 원하는 지칭 명사를 물어보는 게 에티켓이 됐다. 레스토랑, 학교를 비롯한 미국의 공공장소에서 성중립 화장실을 심심찮게 발견했다. All gender restroom, Gender neutral restroom 등 여러 이름으로 표기되고 있었다. 심지어 구글에서는 남성, 여성, 임산부, 해적, 인어, 배트맨, 외계인, 운영 체제인 안드로이드 등 여러 아이콘을 더해 공간의 특성을 드러냈다. 인간의 가장 주요한 또 내밀한 영역인 동시에 역사에서 성별과 인종을 기준으로 가장 오래 차별받아 온 공간. 화장실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여러 생각이 머리를 헤집었다. 이도 저도 아닌 모호한 상태일까 아니면 이도 저도 모두 ‘나’라는 여러 정체성이 혼재된 결정체일까. 혹은 그 무엇도 차별의 대상이 되거나 타인에 의해 규정될 수 없다는 메시지일 수도. 모두에게 평등하다는 건 소외된 자를 포용할 수 있는 사회적 책임에 관한 담론으로 연결된다. LA타임스에 따르면 2026년부터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기업과 사회] 연간 5조원 기업 기부가 사회를 바꾸지 못하는 이유

한국의 기업 기부금은 2018년에 5조원을 돌파했다. 지난 10년의 총액은 48조 이상이다. 삼성전자는 10년 동안 3조원에 이르는 돈을 기부했다. 2022년 100억원 이상을 기부한 기업은 37개나 된다. 이렇게 많은 기부금은 어떤 임팩트를 주고 있을까?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있을까? 자선적 기부 vs. 임팩트 기부 어느 기업이 10억원으로 결식아동에게 도시락을 나눠 주었다. 많은 아이가 수혜를 받았다. 하지만 한계가 뚜렷하다. 지원이 끊어지면 아이는 다시 굶게 된다. 허기를 채울 수는 있지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다른 기업은 같은 금액으로 취약 아동의 문제를 다루는 비영리단체와 소셜벤처를 지원했다. 부모가 감옥에 가게 된 수용자 자녀 단체, 이주배경 아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주 부모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조직 등이다. 한국 기업은 주로 자선적 기부를 한다. 생색도 나고 홍보하기도 좋다. 그런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아닐까? 물고기를 주는 것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거나 어장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임팩트기부’가 필요하다. “기부자들은 노숙자 쉼터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노숙자 문제를 끝내기를 원한다.” 지난 2017년 9월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실린 글 중 일부다. 글로벌 기업과 재단들은 진짜로 사회를 바꿀 기부를 시도하고 있다. 2016년 ‘구글 임팩트 챌린지 코리아’는 한국의 소셜 섹터를 들썩거리게 했다. 세상을 바꿀 혁신적 아이디어를 공모받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챌린지는 기존의 기부와는 달랐다. ‘사회문제 해결’을 정면으로 내세웠다. 수혜자 지원이 아니라 ‘비영리단체의 성장’을 목적으로 했다. 기부 시장에서 소외된 ‘작은 단체’들이 선정됐다. ‘성과 측정’은 까다롭지만

김정태 엠와이소셜컴퍼니 대표
[혁신의 목격자] 당신의 두려움은 무엇입니까?

올해 가을, 나는 새로운 서사를 만났다. 철학자 한병철은 저서 ‘서사의 위기’에서 “문제 풀기에만 몰두하는 사람에게 미래는 없다. 서사만이 비로소 우리로 하여금 희망하게 함으로써 미래를 열어준다”고 말한다. 이야기는 앞으로의 방향을 알려줌과 동시에 이야기에는 새 시작의 힘이 있기에 삶의 여정마다 경험하는 서사는 이전과 이후를 다르게 만드는 독특한 분수령이자 갈림길이 되곤 한다. 이번에 경험한 서사는 지난 9월 싱가포르에서 만난 제러미 린(Jeremy Lin)과의 만남에서 시작됐다. 하버드대학교 졸업 후 최초의 대만계 미국인 NBA 선수로 활동하며 전세계에 ‘Linsanity'(미친 린)라는 돌풍을 일으킨 제러미. 주목받지 못한 벤치 플레이어던 그가 타임지 표지 인물과 ’21세기 최고 농구 이야기 중 하나'(자세한 이야기는 ‘38 앳 더 가든’이라는 다큐멘터리 참고)의 주인공이 되기까지 그가 걸어온 여정은 사실 고난과 인종차별 등으로 가득했다. 임팩트투자를 시작한 그가 초대한 자리에서 린은 자신의 미래 비전이나 현재 영향력이 아닌 과거 자신의 두려움을 먼저 이야기했다. ‘이번 경기에서 별로면 오늘이 NBA에서 마지막 게임이 될 거야.’ 에이전트는 매 게임에 앞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경기장 건물에 들어설 때 경비원들이 검지 손가락을 흔들며 입장을 막는다. 동양인이 NBA 선수일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매번 이러한 ‘경기 전 불안감’(pre game anxiety)에 괴로워하던 그는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더 노력하거나 회피하는 방식으로는 해결되지 못함을 깨닫는다.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게임이 잘되든 안되든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에 집중할 때라고 담담히 말했다. 그에게 정체성은 바로 ‘사랑(love)’. 놀랍게도 두려움의 반대말은 ‘두렵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바로 ‘사랑’이었다.

신수정 KT엔터프라이즈 부문장
[완벽한 리더 삽니다] 리더의 그릇은 조직 규모와 비례하지 않는다

한 분이 이런 질문을 하셨다. “자신의 그릇 크기만큼 구성원들을 리딩할수 있는 것 아닌가요? 제 그릇은 작은 것 같은데 어느 정도 인원까지 리딩할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나는 이런 답을 했다. “리더 산하 인원의 규모가 그 리더 개인의 그릇 크기와 관련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얼마전 한 창업자를 만났다. 몇 차례 창업을 한 분이었다. 그분은 내게 이런말을 했다. “후회되는게 있습니다. 젊은 시절 창업을 했을때, 다른 창업자들과 투자규모, 매출, 직원수 비교에 빠졌던 적이 있습니다. 물론, 이로인해 서로 자극도 되긴 했지만, 회사가 단단해지고 이익도 차근히 창출할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교 때문에 규모에만 신경썼습니다. 규모가 커야 유명해지고 폼잡을 수 있었으니까요. 이후 실패를 겪었습니다. 이제는 규모 집착보다는 단단한 뜻과 성장 구조를 만들고, 그 뜻에 맞는 직원들과 일하는 회사를 추구합니다.” 사실 어느 모임에를 가도 대개 규모 순서 대로 자리가 배치된다. 더 큰 규모, 더 높은 직위, 더 많은 클릭수가 추앙받는 시대다. 이에 규모를 개개인의 인격이나 역량과 동일시 하기도 한다.  나도 사회생활을 하며 적지않은 사업가와 경영자를 보았지만 그분들이 이끄는 조직의 규모와 그들의 역량과 인격의 그릇이 비례하는 것이 아니었다. 인격도 리더십도 부족한 분들이 큰 조직이나 큰 기업을 이끄는 경우도 있었고, 성품도 능력도 좋지만 작은 조직이나  작은 기업을 이끄는 경우도 많았다.  또한, 큰 조직을 이끈다고 세상에 더 크고 훌륭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도 아니다. 성경의 예수는 고작 12명을 이끌었지만 세상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테레사 수녀나 루터킹도 그리 큰

양경준 크립톤 대표
[로컬 패러다임] 라이콘을 말한다

“유니콘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됐지만, 라이콘은 대한민국에서 시작해 세계로 가게 하겠다.” 지난 10월 6일 열린 ‘라이콘 육성 파이널 피칭대회’에서 중소벤처기업부 이영 장관이 한 말이다. 라이콘(LICORN)은 이번 정부가 만들어낸 용어로 라이프스타일(Lifestyle)·로컬(Local)과 유니콘(Unicorn)의 합성어다. 유니콘은 1조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비상장 스타트업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라이프스타일과 로컬 영역에서도 큰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기업을 배출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정부의 이 선언에는 몇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지금까지 이 분야에서는 큰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기업이 없었다는 뜻이다. 적어도 국내에서는 말이다. 왜 없었을까. 이 분야 창업은 꾸준히 있어왔는데 말이다. 큰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려면 성장성과 수익성이 담보돼야 한다. 여기서 성장성은 시간과 속도의 함수다. 더 짧은 시간에 더 가파르게 성장할 수 있어야 더 큰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리고 자본은 절대적으로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움직인다. 쉽게 말하면, 투자금의 총액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짧은 시간에, 상대적으로 더 가파르게 성장할 수 있어야 더 큰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21세기는 IT가 성장을 주도하는 시대다. 소규모의 IT 엘리트들이 노트북 앞에 앉아서 단기간에 앱을 개발하고 단기간에 수십만, 수백만명의 사용자를 모은다. 제품과 서비스를 한 땀 한 땀 만들어내야 하는 라이프스타일·로컬 창업이 그들과 성장을 겨뤄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기업가치를 키우는 것은 난제다.   둘째, 하지만 가능하다는 뜻이다. 분명한 증거가 있다. 전세계 60개 이상의 국가에서 2만300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스타벅스는 커피를 좋아하던 영어교사 제리 볼드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