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우연히 본 포스터의 한 문장이 마음에 들어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다. 극장엔 나를 포함해 몇 사람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흥행에는 실패한 영화였지만, 나는 그 문장을 오래 마음에 담았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저마다 특별한 능력을 지녔지만, 처음엔 각자 혼자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서로를 경계하고, 힘을 합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이들은 깨닫는다. ‘혼자서는 세상을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2017년 개봉한 영화 ‘저스티스 리그’ 이야기다.
“협력의 어려움은 정답이 하나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고 ‘협력의 역설’ 저자 애덤 카헤인은 말한다. 정답을 확신할수록 타인의 답은 불필요하게 느껴지고, 함께 일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영화 속 영웅들이 협력을 주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각자 정답을 알고 있다고 믿었기에 협력은 불필요하거나, 심지어 비효율적으로 여겨졌다.
협력은 원래 난이도가 높은 일이다. 협력의 기본값은 ‘협력이 쉽지 않다’는 인정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우리는 협력을 종종 ‘분업’과 혼동한다. ‘외부에서 이런 협력 제안이 왔는데요?’라는 말에 조직 내부의 분위기가 미적지근해진 경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일을 나누고, 어려움을 줄이며, 에너지를 아끼려는 협력은 사실 분업에 가깝다. 분업의 반복은 협력에 대한 기대를 낮추고, 우리는 다시 각자의 영역으로 돌아간다.
진짜 협력은 서로가 잘하는 것만 연결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 협력은 한두 번 가능할 수 있지만 지속되기 어렵다. 공동 목표를 위해 컨소시엄을 형성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강점만을 기반으로 한 협력은 결과와 상관없이 다음에 다시 성사될 확률이 낮다. 더 나은 강점이 있는 파트너를 찾아 나서기 때문이다. 강점을 중심으로 협력하면, 내 방식이 정답이라는 확신이 생기고 그 방식을 바꾸기 어려워진다.
반대로, 내가 잘 모르는 것을 기반으로 협력하면 상대와의 조율과 협의가 필수가 된다. 이때 협력은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협력은 내가 익숙하지 않은 일, 확신이 없는 영역, 때로는 ‘이렇게 해도 될까?’ 싶은 상황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지난 18일, 사단법인 사회혁신기업가네트워크(SIEN)에서 전국의 사회혁신가 200여 명이 모여 ‘사회혁신을 위한 협력적 거버넌스’를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패널로 참여한 나는 “협력을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라는 질문에 세 가지를 말했다.
첫째, 서로가 서로에게 ‘밑지는 느낌’이 들수록 협력은 견고해진다. 책임을 공평하게 나누거나, 내가 더 많은 유익을 기대할 때 협력은 분업으로 흘러간다. 상대방이 먼저 유익을 얻게 할 때 협력의 선순환이 시작된다. 둘째, 서로가 서로에게 ‘애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수록 협력은 오래간다. 깔끔한 역할 분담을 고집하다 보면 혼자 하는 게 더 나아 보인다. 매번 더 애쓰는 마음을 가질 때 협력의 에너지는 충전된다. 셋째, 상대에 대한 통제력을 내려놓을 때 협력은 성공한다. 내가 정답을 안다는 확신을 내려놓고, 협력의 방식과 결과에 상대가 충분히 개입할 수 있을 때 협력은 비로소 세상을 바꾸는 힘을 갖는다.
협력은 세계적인 경영사상가 사이먼 시넥이 말한 ‘무한게임(Infinite Game)’과 닮았다. 유한게임이 승패를 가르는 게임이라면, 무한게임은 지속 그 자체가 목적이다. 협력도 마찬가지다. 협력에서 중요한 것은 당장의 성과가 아니라 상대가 기꺼이 계속 협력하고 싶어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협력의 무한게임을 감당하려면, 역설적으로 나의 역할과 책임에 더욱 치열해야 한다. 내가 맡은 일에서 충분한 유익을 만들어야 다른 곳과의 협력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감당할 수 있다. 또한, 나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타인을 신뢰하고, 내가 모르는 영역에 대한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
영화관을 나오며 포스터 속 그 문장을 마음에 고이 담았다. ‘혼자서는 세상을 구할 수 없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하고 정답이 존재하는 상황이라면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우리가 마주한 대부분의 사회와 환경 문제는 정답이 없거나, 그 정답조차 모호하다. 이런 문제 앞에서 협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우리, 진짜 협력으로 나아가보자.
김정태 엠와이소셜컴퍼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