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복지와 예방 치료 위해 발상부터 바꿨죠”

동아시아 최초 아쇼카 펠로 선정된 가타야마 마스에씨· 가와조 타카시씨 가타야마 마스에씨···방치된 기업 사택 활용해 노인 주거 단지로 제안 가와조 다카시씨···병 쉽게 예방할 수 있도록 이동식 혈액검사기 개발 지난 5일, 현대해상화재보험 광화문 본사에서 열린 ㈔아쇼카 한국 공식 출범식에 특별한 손님이 함께했다. 동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아쇼카 펠로’로 선발된 가타야마 마스에(71·신코복지회 부이사장)씨와 가와조 다카시(30·CarePro Inc.대표)씨가 그 주인공이다. ‘시니어 펠로’인 가타야마 마스에씨는 25년 동안 노인 간병 분야에서 활동해온 노인복지 전문가다. 그런 마스에씨를 사회 혁신가로 바꾼 것은 “생애 마지막만큼은 혼자 방을 쓰면서 편하게 지내고 싶다”던 친구의 한마디였다. 그 친구는 일본의 노인복지시설인 ‘노인홈’ 6인실에 살고 있었다. 한국보다 앞서 고령화 위기를 맞은 일본의 노인 주거는 심각한 사회 문제였다. 정부의 지원은 열악했고, 노인홈 같은 민간 시설은 입주비가 너무 비쌌다. “일본에는 고도성장 당시 세워졌다가 지금은 버려지다시피 한 기업 사택들이 많아요. 남아도는 기업의 임직원 사택을 고품질의 노인 전용 주거단지로 사용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보급했어요. 그런 유휴공간들이 복지를 위해 효과적으로 쓰여야 한다는 법을 만드는 데도 일조했죠.” 마스에씨는 기업의 사택 15개를 헐값에 사들여 노인 전용 사택으로 전환시켰다. 2000년에는 이 사택을 ‘베네스코퍼레이션(Benesse Corporation)’이라는 노인복지 전문그룹에 매각하여 좀 더 체계적인 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현재 베네스코퍼레이션은 사택의 수를 190개까지 확장시킨 상태다. 마스에씨의 아이디어는 일본 노인들에게 편안한 집을 주고, 일본 버블 경제의 후유증까지 해결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마스에씨는 노인 환자에게 정서적인 도움과 안정을 주는 간병사업까지 실시했다. 여기에

“교육·의료·일자리… 한국을 바꿀 수 있는 사회적 혁신가들 배출”

아쇼카 3개국 리더 대담 글로벌 리더 양성하는 아쇼카 한국 공식 출범 사회혁신가 ‘아쇼카 펠로’ 올해 말까지 3~4명 선발 3년간 교육·생활비 지원 비전 세우고 진화하는 사회적기업가 정신 요구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빈민을 위한 소액대출은행)의 창립자이자 노벨평화상에 빛나는 무함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 미국 인문대생들에게 ‘취업하고 싶은 직장’ 1위로 뽑힌 비영리단체 티치 포 아메리카(Teach For America)를 만든 웬디 콥(Wendy Sue Kopp). 이들은 모두 아쇼카(Ashoka)가 선정한 ‘아쇼카 펠로(fellow)’다. 아쇼카는 지난 33년간 70여개국 3000명에 이르는 사회혁신가들을 아쇼카 펠로라는 이름으로 발굴하고 지원해왔다. 이제 곧 한국에서도 아쇼카 펠로를 만날 수 있다. 지난 5일, ㈔아쇼카 한국이 공식 출범식을 갖고 ‘세상을 바꿀 혁신가’ 찾기에 나섰다. 베벌리 슈월츠(Beverly Schwartz) 아쇼카 글로벌 본부 부회장, 와타나베 나나 ㈔아쇼카 일본 대표, 이혜영 ㈔아쇼카 한국 대표 등 한·미·일 3개국 리더는 ‘더나은미래’와 대담을 통해 아쇼카 한국 출범의 의미와 역할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편집자 주 사회=아쇼카 한국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크다.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들을 하게 되나. 이혜영 대표(이하 이혜영)=아쇼카의 비전은 ‘모든 사람이 체인지메이커(Change Maker)가 되는 세상’이다.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CSR(기업의 사회적책임), 사회적기업 등이 많아졌지만, 정작 ‘사회적기업가 정신’은 얘기되지 않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만 해결하는 게 아니라, 아예 그 문제의 뿌리(원인)부터 제거하자는 게 사회적기업가 정신이다. 아쇼카 한국은 앞으로 전 세계의 아쇼카 펠로들을 한국에 소개하고, 국내의 아쇼카 펠로를 찾아 나설 것이다. 우선 올해 말까지 3~4명의 아쇼카 펠로를 뽑고, 향후

“자녀를 학대한 부모들은 항상 훈육했다고 우기더라”

김정미 경기도 아동보호전문기관장 15년 동안 아동 학대 관련 전문 상담가로 활동한 김정미 경기도 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아동 학대는 부모가 적절한 자녀 양육 방법을 잘 모르는 데서 출발한다”면서 “부모의 생각, 생활 습관부터 차근차근 바꿔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동 학대’에 대한 국민 인식의 변화가 궁금하다. “2000년을 기점으로 아동 학대에 관한 인식 전환이 일어났다. 아동복지법에 ‘아동 학대’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부터다. 심각한 신체 손상만을 아동 학대로 인정하던 분위기에서 아동을 방치하거나 정서적으로 상처를 주는 것도 학대로 인식하게 됐다. 실제로 2000년까지는 신체 학대 신고율이 가장 높았지만 2001년부터는 방임(35.2%)이, 2009년부터는 정서 학대(36.2%)가 가장 많이 발견되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아동 학대의 유형이 변화했다기보다는, 국민이 아동 학대를 인식하는 범주가 신체 학대에서 정서 학대까지 넓어졌다고 볼 수 있다.” ―정서 학대의 유형이 궁금하다. 정서 학대는 자녀에게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 “좁은 공간에 자녀를 혼자 가두어 두거나, 벌거벗겨 내쫓는 행위, 잠을 재우지 않거나, 아동의 나이에 적절치 않은 과도한 일을 시키는 것도 정서 학대다. 실제로 어릴 적부터 부모의 싸움을 보면서 자란 초등학생이 심각한 원형 탈모와 학교생활 부적응을 호소한 예가 많다. 지속적인 정서 학대는 우울증, 낮은 학업 성취, 도벽, 거짓말, 타인에 대한 공격성 등 아동의 정상적인 발달을 해친다. 특히 세 살 이전에 경험한 정서 학대는 치명적인 후유증을 낳는다.” ―’훈육’과 ‘학대’를 혼동하는 부모가 많다. 자녀를 올바르게 훈육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담하다 보면 부모는 ‘아이가 도통 얘기를 하지

“거리의 청소년 꿈 이루도록… ‘요리사관학교’ 10월 엽니다”

베트남 직업교육 사회적기업 ‘코토’ 한국지부 만드는 오진권씨 4평짜리 가게로 시작해 음식 체인으로 성공하자 오랜 꿈 이루기로 결심 베트남 ‘코토’ 기사 본 뒤 지미 팸 대표 만나 계획 거리 청년 등 20명 채용 ‘코토 인 서울’ 문 열기로 지난 13년 동안 가난한 청소년 700명을 일류 요리사와 웨이터 등으로 성장시킨 베트남 최초의 직업교육 전문 사회적기업 ‘코토(KOTO)’의 한국 지부가 만들어진다. 코토 한국 지부를 세우는 인물은 ‘요식업계 미다스의 손’이라고 하는 ㈜이야기가있는외식공간 오진권(63) 대표다. 오 대표는 ‘놀부 보쌈·부대찌개’ 창업자이자, 현재는 해산물 뷔페 레스토랑 ‘마리스꼬’를 포함, ‘사월에보리밥’, ‘오리와꽃게’, ‘노랑저고리’ 등 9개 음식 체인점과 20개 직영점을 운영하고 있다. 연 매출 약 270억원에 정직원만 500명이 넘는다. 지난 3일 코토 지미팸 대표를 한국으로 초대한 오진권 대표는 특별한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오 대표는 “지미 대표와 협력해 한국에 ‘코토 인 서울(KOTO in Seoul, 이하 S코토)’을 세우기로 결정했다”면서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을 이제야 이룰 수 있게 됐다”고 활짝 웃었다. 성공한 CEO인 그가 베트남에서 시작된 사회적기업의 한국 지부를 설립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해 ‘코토’ 이야기가 소개된 기사 <2012년 12월 11일자 더나은미래 E4면>을 보게 됐어요. 알고 보니 ‘코토’가 거리의 청소년들이 꿈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하고 요리사가 되도록 지원하는 곳이더군요. 저 역시 어릴 때 ‘거리의 소년’이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저 혼자 거리에서 노숙 생활을 했습니다. 구두닦이, 껌팔이, 좀약 장사 등 안 해본 일이

[Cover Story] [더나은미래·굿네이버스 공동 캠페인 | 우리 아이들을 지켜주세요] ① “날 때린 가족, 원망도 했지만… 세상의 응원에 힘을 냈어요”

[캠페인|우리 아이들을 지켜주세요] (1) 학대의 상처 벗고 웃음 되찾은 나현양 이모의 욕설·폭행에 가출… ‘나 같은 건 죽어야지…’ 문제아로 방황했던 아이 전문상담원 도움으로 정서·진로 치료 받고 미술 치료하던 교수가 재능 발견해 적극 지원 아티스트 컨설턴트 목표… 하루 20시간 그림 그려 예고 진학하고 미대 준비 이모와도 만나서 화해 아동 학대로 한 아이가 죽으면, 선진국에선 사회 전체가 들썩입니다.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아동복지 시스템을 전면 재검토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부모에게 맞아 아이가 숨져도, 사건은 금방 잊힙니다. 개발도상국의 아이들은 더합니다. 배고파서, 아파서, 공사장에서 일하다가, 전쟁이 나서…. 각종 이유로 아이들은 다치고 죽습니다. 아동 문제에 대한 인식, 그것은 문맹국과 비문맹국을 가르는 잣대입니다. 이에 더나은미래는 굿네이버스와 함께 ‘우리 아이들을 지켜주세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보호받지 못하는 국내외 아이들의 현실을 짚어보고, 지구촌 아이들의 행복을 지켜줄 방법을 찾아볼 것입니다. 편집자 주   지난달, 전라도의 한 그룹홈에서 만난 김나현(가명·17)양은 큼지막한 빨간색 가방을 메고 있었다. “미술 학원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다음 날 새벽 1시까지 그림을 그린단다. 이날도 나현양은 하얀 캔버스 앞에 앉았다. 팔레트에서 초록색 물감을 찾아 슥슥 붓을 움직였다. 이파리가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배추가 완성됐다. 나현양은 지난해 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미술을 본격적으로 공부한 지 1년밖에 안 됐지만, 실기 점수는 항상 상위권이다. 나현양은 불과 2년 전만 해도 ‘문제아’였다. “그땐 정말 세상이 미웠어요. 제 자신을 망가뜨리고 싶었어요. 날 버리고, 때리고, 욕했던 가족들에게 복수하고 싶었어요.” 나현양은

[희망 허브] 혼자선 포기할 뻔했던 꿈… 함께 준비하니 더 커졌어요”

인재들 희망 키우는 꿈의 사다리 프로젝트 강상수·이운혁씨 시각·지체장애 있지만 …’두드림 스타’ 지원으로 버클리 음대 입학하고 아주대 약학대 진학 진로 고민하던 함소이양 드림스쿨 프로젝트 참가…멘토 조언·체험 활동으로…선생님이라는 목표 생겨 뮤지컬 데뷔 안정윤양 해피뮤지컬 스쿨로 1년간 연기·노래 배워…정식 공연 작품 출연 1급 시각장애인 강상수(24)씨는 내년 11월에 버클리 음대로 유학을 떠난다. 전남 나주에서 자란 강씨의 어린 시절 유일한 친구는 음악이었다. 선천성 시각장애로 빛을 잃어가는 아이에게 엄마는 온종일 음악을 들려줬다. 강씨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실명했다. 다섯 살 때부터 쳤던 피아노가 ‘꿈’이 된 건 중학교 3학년 때다. 한 선교단체에서 찬양단 활동을 하면서,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자는 꿈을 품었다. 2011년 1월, 강씨는 졸업을 앞두고 서울로 올라왔다. 돈을 모아 ‘서울재즈아카데미’에 가기 위해서다. 서울재즈아카데미는 버클리 음대의 학점 연계기관으로, 이곳의 수업을 들으면 버클리의 체류기관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 학기당 320만원의 학비는 큰 부담이었다. 아르바이트과 연주연습, 유학준비를 병행하려고 하니, 아무것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강씨의 꿈이 주저앉을 위기를 맞았다. 강씨에게 ‘꿈의 사다리’를 놓아준 것은 ‘두드림 스타’ 프로젝트다. 지난 7개월 동안 500만원 학비를 지원받은 강씨는 서울재즈아카데미를 다니며, 음악공부와 유학준비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작년 10월 말 서울재즈아카데미에서 진행된 버클리 음대의 ‘2012 입학 오디션’을 통해 ‘재즈피아노학과’ 입학이 확정됐다. 강씨는 “인터넷을 통해 사회복지 공부도 시작했다”며 “앞으로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이지 않고도 큰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음악을 연구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장애인재활협회의 ‘두드림 스타’, 장애가정의 꿈에 투자하다

모두 ‘짝’ 찾으러 갔을 때 우린 ‘이웃’을 돌보러 갔습니다

나눔대첩 기획자 송주현씨 노숙인 체험해보니 자립기반 마련 시급해 자비로 월세방 얻어주고 직업 갖도록 약속 받아 대학 졸업 후 활동 나서 노인·아이 30여명 돌봐 ‘나눔대첩’ 입소문 타며 지난 연말 500여명 모여 방한용품 등 선물 전달 “각자가 주위 사람을 돌보는 것”이 내 꿈 “12월 24일, 솔로는 모두 여의도공원으로 모입니다.” 지난해 연말, 대규모 단체 미팅 행사였던 ‘솔로대첩’은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당초 ‘솔로대첩’은 서울을 포함, 전국 14곳에서 3만5000여명의 참가자를 예상했지만 2860명 정도만 참여하면서 싱겁게 끝이 났다. 한편, 페이스북에서는 소외된 이웃과 함께 성탄절을 보내자는 취지의 ‘나눔대첩’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었다. 전국 21개 지역에서 500여명이 자발적으로 모였고, 이들은 김밥, 방한용품 등 선물을 준비해 노숙인들에게 전달했다. 영등포·수원·대전·부산 등 몇몇 지역에서는 ‘나눔소(小)첩’을 열어 나눔의 손길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6일 토요일 저녁, ‘나눔소첩’ 현장을 찾았다. 영등포역 카페 한쪽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였다. 한 손에는 유성매직과 액체화이트를, 한 손에는 귤을 들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그림을 그리는 이들. 작년 ‘나눔대첩’ 이후 매주 토요일마다 영등포역·쪽방촌 노숙인들에게 재밌는 그림이 그려진 귤을 나눠주는 ‘나눔 커뮤니티’ 자원봉사자들이다. 한상대(29) 팀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부산의 한 젊은 청년이 ‘나눔대첩’ 행사를 기획하고, 그가 3년째 노숙인들과 독거노인을 돕는다는 사실에 자극을 받아 봉사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나눔대첩’ 아이디어의 주인공은 작년에 신학대를 졸업하고,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종교 강사를 하는 송주현(25)씨. 송씨는 수업이나 강연이 없는 시간에는 쪽방촌의 독거노인을 뵙거나, 부산역 등지의 노숙인을 찾아간다. 한 달

[날아라 희망아] 출생신고 안 된 줄피아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아픈 사람 돕고 싶어요

출생 신고 하려면 거주 등록 필요하지만 가난으로 집 못 구해 가축 창고에서 생활… 학교도 못보내 한숨만 타지키스탄의 수도 두샨베에서 한 시간 떨어진 샤이낙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황량한 거리 위로 싸늘한 모래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회색 담벼락을 지날 무렵, 어디선가 후다닥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렸습니다. 온몸에 흙먼지를 가득 묻힌 여덟 살 줄피아이양이었습니다. 영하 15도까지 내려가는 한겨울 날씨, 줄피아이는 하얀색 반팔 티셔츠만 걸치고 있었습니다. 줄피아이가 가진 유일한 옷입니다. “춥지 않으냐”고 묻자, 아이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수줍은 미소를 보입니다. 줄피아이는 2년 전, 샤이낙 마을로 이사 왔습니다. 예전 마을에서 몇 달치 방세를 내지 못해 쫓겨났기 때문입니다. 당시 식용유 공장에서 일하던 줄피아이의 아빠는 한 달 월급으로 6만원을 벌었습니다. 네 식구가 하루 두 끼로 버텼지만, 매달 방세 4만원을 내는 건 무리였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적장애를 가진 줄피아이의 아빠가 공장에서 해고를 당했습니다. 네 식구는 머물 곳 없이 몇 달 동안 일거리를 찾아 헤맸습니다. 다행히 이들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 지인의 소개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샤이낙 마을의 한 목장에서 소를 80마리 돌보는 일이었습니다. 줄피아이의 아빠는 목장을 청소하고, 엄마는 소젖을 짭니다. 그렇게 매달 10만원을 받습니다. 엄마 자밀라씨는 두 아이에게 “항상 미안하다”고 합니다. 옷 한 벌, 신발 한 켤레 사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특히 벌써 2년째 학교에 못 가고 있는 줄피아이에게 더 미안하다고 합니다. 줄피아이는 출생신고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출생신고를 하려면 거주 등록을 해야

“한 사람의 인생을 일으켜 세상을 바꾸는 일… 그게 사회복지죠”

엔젤스헤이븐 조규환 회장 보육원에서 시작해 장애인·노인 시설 갖춘 종합 사회시설로 성장 “이달 말 오픈 준비중인 사회복지 전시관 통해 복지 발전사 보여줄 것” “1961년에 보육원에 있는 한 아이가 아파서 인천기독병원에 입원시켰던 일이 있었어요. 나오는 길에 어떤 아줌마가 길에서 거적때기를 깔고 애를 낳고 있는 것을 본 거예요. 급한 마음에 호주머니에 있던 돈을 전부 털어서 아줌마에게 쥐어줬죠. 나는 정작 차비가 없어 서울역에서 천사원까지 걸어왔어요. 2시간 이상 걸었는데, 하나도 피곤하지 않더라고요. 좋은 일을 하면 맘이 편하고 힘든 것도 몰라요. 그게 제가 지금껏 천사원에서 일했던 이유입니다.” 오는 3월이면 조규환 엔젤스헤이븐 회장이 사회복지기관에 발을 디딘 지 54년이 된다. 천막을 아무렇게나 쳐놓고 시작했던 작은 보육원은 그 사이 5개의 생활시설, 6개의 이용시설, 4개의 부속시설, 5개의 위탁시설을 갖춘 대단위 종합사회복지시설이 됐다. 한 해 예산은 300억원을 훌쩍 넘는다. 엔젤스헤이븐은 1959년 3월에 문을 열었다. 전국에 부랑인과 전쟁고아가 넘쳐나던 때였다. 조 회장은 “당시 서울에 떠도는 고아들만 해도 10여만명이 넘었는데, 이들이 깡통을 차고 다니면서 밥을 얻어먹었다”며 “기독교세계봉사회(CWS), 케어(CARE), 한국선명회(World Vision) 등 한국에 들어와 활동을 하던 단체가 120개가 넘었다”고 한다. 엔젤스헤이븐도 그중 하나였다. 5명의 고아를 천막에서 보호하며 역사가 시작됐다. 조 회장은 당시 미국대사관에서 근무했는데, 설립자인 고(故) 윤성렬 목사의 아들 부탁으로 보육원 봉사에 참여하게 됐다. 처음에는 자원봉사였지만, 총무, 부원장을 거쳐 5년 만에 원장까지 맡았다. 당시 나이 스물여섯 살 때였다. 1970년대 해외입양 붐이 일면서, 당시 150~200명

“한국에 되돌려 줄 것 있다”… 자선 콘서트로 봉사하는 女기자

‘클래쉬 5.0’ 공연 여는 엠마씨 “아이들을 돌보면서 가장 많이 했던 한국말이 ‘하지 마’, ‘하지 마’였어요. 애들이니 영어도 못하고, 저도 초보적인 수준이어서 처음엔 얼마나 진땀이 났는지 몰라요.” 2007년, 한국에 온 엠마 칼카(Emma Kalka·29)씨는 영어 교사, 아리랑TV 편집자를 거쳐 지금은 한 영어 신문에서 문화 및 연예 관련 기자로 일한다. 그녀는 “한국 사회에 되돌려줘야 할 것들이 있다”며 2년 전부터 한국미혼모가족협회(KUMFA)를 찾아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한부모 가정의 경험이 있던 개인적인 연결고리도 있었다. 이어 “한국에선 특히 미혼모에 대해 차별이 많은 것을 보고 도움이 더 필요한 이들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알음알음 봉사하던 엠마씨는 지난해 초, 친구 한나(Hannah)씨와 함께 ‘일’을 벌였다. 한국미혼모가족협회를 위한 자선 콘서트를 연 것이다. ‘힙합’을 좋아하는 한나씨와 ‘록’을 좋아하는 엠마씨는 둘을 모두 즐길 수 있는 ‘클래쉬(Clash·충돌)’라는 공연 콘셉트를 만들어냈다. 지인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오디션을 통해 외국인 및 한국인 인디뮤지션을 선발했다. 지난해 3월 10일, 첫 ‘클래쉬’에 200명이 넘는 관객이 참여했고, 입장권 판매수익과 경품 수익금 200여만원을 협회에 기부했다. “외국인과 한국인이 함께 준비하고, 같이 즐기는 자선 콘서트를 만드는 것이 목표지요. 이름을 ‘클래쉬’라고 만든 이유도 그 때문이지요. 서로 다른 이들이 만나서 ‘충돌’을 일으키면서도 또 다른 재미있는 일들이 일어날 것을 기대했거든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 자선활동(charity)도 할 수 있다는 것도 알려주고 싶어요.” 이후 엠마씨는 공연전문회사 대표인 제레미 론델(Jeremy Rondell)씨를 주축으로 ‘클래쉬’ 시리즈 공연을 준비했다. 한국인 아티스트로는 힙합 가수 스콜(SCOLL), TV 오디션

“타인 배려·공동체 책임… 자원 봉사도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세계자원봉사협의회 이강현 회장 미국은 재난 발생하면 인적·물적 피해 고려해 5년 이상 봉사계획 수립 사회문제 해결하는 봉사 한국선 확인증 받으려 해 각계 지도자가 나서면 기업·단체들도 따라와… 자원봉사 문화 성장 가능 글로벌 기업, 컨설팅할 때 1명당 100달러 지불 관례, 국내 기업은 찾기 어려워 자기가 일하는 분야에 애정을 가진 사람은 눈빛부터 다르다. 하나를 물으면 다섯 이상의 답변이 돌아온다. 정해진 인터뷰 시간을 넘어도 초조해하지 않는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을 아쉬워할 뿐이다. 이강현(68) 세계자원봉사협회(IAVE) 회장이 그랬다. 저녁식사 무렵 시작된 인터뷰가 밤 9시까지 이어졌다. 이미 3시간에 걸친 심층 토론을 끝낸 뒤였는데도, 이 회장은 지칠 줄 몰랐다. “식사는 나중에 하면 된다”며 국내 자원봉사의 문제점과 대안을 쉼없이 풀어냈다. 이강현 회장은 한국의 자원봉사와 역사를 함께 한 인물이다. 1991년 한국자원봉사연합회 창립을 시작으로 민간 자원봉사단체인 볼런티어 21(현 한국자원봉사문화)과 ‘한국자원봉사단체협의회’를 설립, 무보수로 일했다. 쉽고 재미있는 자원봉사를 일컫는 ‘볼런테인먼트(Voluntainment)’ 개념을 만들었고, ‘자원봉사관리자(코디네이터)’ 육성을 시작했다. 2008년, 아시아인 최초로 세계자원봉사협의회 회장으로 선출된 그는 지난 2012년 재선됐다. 세계자원봉사협의회는 전 세계 70개국을 회원으로 두고 있는 자원봉사 부문의 세계적인 민간 네트워크다. 지난달 이 회장을 만나 자원봉사의 세계적인 흐름과 한국 자원봉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자원봉사와 관련해 떠오르는 화두는 무엇인가. “UN 새천년개발목표(MDGs)가 종료되는 2015년, 국제 개발협력 비전을 설정하는 ‘포스트(Post) MDGs’가 나온다. 지난해 브라질에서 ‘리우+20회의(지구환경정상회의 20주년)’가 열렸는데, 포스트 MDGs 목표에 자원봉사가 중요한 요소로

[비영리에서 영리로] 기업과 복지현장 잇는 다리가 되겠습니다

◇기업 상황과 복지시설 수요양쪽 다 만족시키려고 노력 유승권 SPC그룹 사회공헌팀장 유승권 SPC그룹 사회공헌팀장(겸 SPC 행복한재단 사무국장)은 비영리에서 출발해, 영리 기업에 몸담고 있는 케이스다. 1999년 ㈔들꽃청소년세상 그룹홈의 생활 교사로 활동하다, 아동·청소년을 위한 CSR을 기획 중이던 이랜드그룹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이랜드그룹 사회공헌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한미글로벌 사회공헌팀 등을 거쳤다. 유 사무국장은 건설회사인 한미글로벌에서 일할 당시, 소규모 복지시설들은 수리, 보수 등에 매우 취약하다는 현장 목소리를 접하고, 시설 수리 및 리모델링 사업을 제안하기도 했다. 유 사무국장은 기업의 용어·의사결정을 이해하기 위해 경영대학원에 다녔고, 식품전문기업인 SPC에서는 퇴근 후 제빵학원에 다니며 제빵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그는 “현장에서 필요한 사업과 기업이 하고 싶은 사업 사이의 교집합을 찾아 양쪽을 만족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영리 단체 현장 경험이기업 사회공헌 밑거름 돼 정은주 SK이노베이션 사회공헌팀 대리 정은주 SK이노베이션 사회공헌팀 대리는 대학 졸업 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사회연대은행, 영등포복지관 근무 등 5년여 동안 현장을 누볐다. 지난 2009년 SK텔레콤 CSR팀에 사회복지사로 채용된 정 대리는 적응이 쉽지만은 않았다. “‘R&R’, ‘R&C’같이 일상적으로 쓰이는 용어가 생소해 수첩에 적어놓고 외웠습니다. 이메일을 자주 사용하는 기업의 소통방식에 어색함도 느꼈고요.” 그녀는 기업에 녹아들기 위해 기업 사회공헌과 관련된 세미나, 포럼 등을 찾아다녔다. 회사의 수익 분야, 관련 정부 부처의 소식, 복지 이슈 등도 꼼꼼히 챙겼다. 현대, 삼성, 포스코, 엘지, SK 등의 사회공헌 관계자들이 모이는 ‘5대 기업 교류회’에도 참여했다. 지난해 SK이노베이션 사회공헌팀으로 자리를 옮긴 정 대리는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