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희망아] 출생신고 안 된 줄피아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아픈 사람 돕고 싶어요

출생 신고 하려면 거주 등록 필요하지만 가난으로 집 못 구해 가축 창고에서 생활… 학교도 못보내 한숨만 타지키스탄의 수도 두샨베에서 한 시간 떨어진 샤이낙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황량한 거리 위로 싸늘한 모래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회색 담벼락을 지날 무렵, 어디선가 후다닥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렸습니다. 온몸에 흙먼지를 가득 묻힌 여덟 살 줄피아이양이었습니다. 영하 15도까지 내려가는 한겨울 날씨, 줄피아이는 하얀색 반팔 티셔츠만 걸치고 있었습니다. 줄피아이가 가진 유일한 옷입니다. “춥지 않으냐”고 묻자, 아이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수줍은 미소를 보입니다. 줄피아이는 2년 전, 샤이낙 마을로 이사 왔습니다. 예전 마을에서 몇 달치 방세를 내지 못해 쫓겨났기 때문입니다. 당시 식용유 공장에서 일하던 줄피아이의 아빠는 한 달 월급으로 6만원을 벌었습니다. 네 식구가 하루 두 끼로 버텼지만, 매달 방세 4만원을 내는 건 무리였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적장애를 가진 줄피아이의 아빠가 공장에서 해고를 당했습니다. 네 식구는 머물 곳 없이 몇 달 동안 일거리를 찾아 헤맸습니다. 다행히 이들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 지인의 소개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샤이낙 마을의 한 목장에서 소를 80마리 돌보는 일이었습니다. 줄피아이의 아빠는 목장을 청소하고, 엄마는 소젖을 짭니다. 그렇게 매달 10만원을 받습니다. 엄마 자밀라씨는 두 아이에게 “항상 미안하다”고 합니다. 옷 한 벌, 신발 한 켤레 사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특히 벌써 2년째 학교에 못 가고 있는 줄피아이에게 더 미안하다고 합니다. 줄피아이는 출생신고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출생신고를 하려면 거주 등록을 해야

“한 사람의 인생을 일으켜 세상을 바꾸는 일… 그게 사회복지죠”

엔젤스헤이븐 조규환 회장 보육원에서 시작해 장애인·노인 시설 갖춘 종합 사회시설로 성장 “이달 말 오픈 준비중인 사회복지 전시관 통해 복지 발전사 보여줄 것” “1961년에 보육원에 있는 한 아이가 아파서 인천기독병원에 입원시켰던 일이 있었어요. 나오는 길에 어떤 아줌마가 길에서 거적때기를 깔고 애를 낳고 있는 것을 본 거예요. 급한 마음에 호주머니에 있던 돈을 전부 털어서 아줌마에게 쥐어줬죠. 나는 정작 차비가 없어 서울역에서 천사원까지 걸어왔어요. 2시간 이상 걸었는데, 하나도 피곤하지 않더라고요. 좋은 일을 하면 맘이 편하고 힘든 것도 몰라요. 그게 제가 지금껏 천사원에서 일했던 이유입니다.” 오는 3월이면 조규환 엔젤스헤이븐 회장이 사회복지기관에 발을 디딘 지 54년이 된다. 천막을 아무렇게나 쳐놓고 시작했던 작은 보육원은 그 사이 5개의 생활시설, 6개의 이용시설, 4개의 부속시설, 5개의 위탁시설을 갖춘 대단위 종합사회복지시설이 됐다. 한 해 예산은 300억원을 훌쩍 넘는다. 엔젤스헤이븐은 1959년 3월에 문을 열었다. 전국에 부랑인과 전쟁고아가 넘쳐나던 때였다. 조 회장은 “당시 서울에 떠도는 고아들만 해도 10여만명이 넘었는데, 이들이 깡통을 차고 다니면서 밥을 얻어먹었다”며 “기독교세계봉사회(CWS), 케어(CARE), 한국선명회(World Vision) 등 한국에 들어와 활동을 하던 단체가 120개가 넘었다”고 한다. 엔젤스헤이븐도 그중 하나였다. 5명의 고아를 천막에서 보호하며 역사가 시작됐다. 조 회장은 당시 미국대사관에서 근무했는데, 설립자인 고(故) 윤성렬 목사의 아들 부탁으로 보육원 봉사에 참여하게 됐다. 처음에는 자원봉사였지만, 총무, 부원장을 거쳐 5년 만에 원장까지 맡았다. 당시 나이 스물여섯 살 때였다. 1970년대 해외입양 붐이 일면서, 당시 150~200명

“한국에 되돌려 줄 것 있다”… 자선 콘서트로 봉사하는 女기자

‘클래쉬 5.0’ 공연 여는 엠마씨 “아이들을 돌보면서 가장 많이 했던 한국말이 ‘하지 마’, ‘하지 마’였어요. 애들이니 영어도 못하고, 저도 초보적인 수준이어서 처음엔 얼마나 진땀이 났는지 몰라요.” 2007년, 한국에 온 엠마 칼카(Emma Kalka·29)씨는 영어 교사, 아리랑TV 편집자를 거쳐 지금은 한 영어 신문에서 문화 및 연예 관련 기자로 일한다. 그녀는 “한국 사회에 되돌려줘야 할 것들이 있다”며 2년 전부터 한국미혼모가족협회(KUMFA)를 찾아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한부모 가정의 경험이 있던 개인적인 연결고리도 있었다. 이어 “한국에선 특히 미혼모에 대해 차별이 많은 것을 보고 도움이 더 필요한 이들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알음알음 봉사하던 엠마씨는 지난해 초, 친구 한나(Hannah)씨와 함께 ‘일’을 벌였다. 한국미혼모가족협회를 위한 자선 콘서트를 연 것이다. ‘힙합’을 좋아하는 한나씨와 ‘록’을 좋아하는 엠마씨는 둘을 모두 즐길 수 있는 ‘클래쉬(Clash·충돌)’라는 공연 콘셉트를 만들어냈다. 지인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오디션을 통해 외국인 및 한국인 인디뮤지션을 선발했다. 지난해 3월 10일, 첫 ‘클래쉬’에 200명이 넘는 관객이 참여했고, 입장권 판매수익과 경품 수익금 200여만원을 협회에 기부했다. “외국인과 한국인이 함께 준비하고, 같이 즐기는 자선 콘서트를 만드는 것이 목표지요. 이름을 ‘클래쉬’라고 만든 이유도 그 때문이지요. 서로 다른 이들이 만나서 ‘충돌’을 일으키면서도 또 다른 재미있는 일들이 일어날 것을 기대했거든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 자선활동(charity)도 할 수 있다는 것도 알려주고 싶어요.” 이후 엠마씨는 공연전문회사 대표인 제레미 론델(Jeremy Rondell)씨를 주축으로 ‘클래쉬’ 시리즈 공연을 준비했다. 한국인 아티스트로는 힙합 가수 스콜(SCOLL), TV 오디션

“타인 배려·공동체 책임… 자원 봉사도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세계자원봉사협의회 이강현 회장 미국은 재난 발생하면 인적·물적 피해 고려해 5년 이상 봉사계획 수립 사회문제 해결하는 봉사 한국선 확인증 받으려 해 각계 지도자가 나서면 기업·단체들도 따라와… 자원봉사 문화 성장 가능 글로벌 기업, 컨설팅할 때 1명당 100달러 지불 관례, 국내 기업은 찾기 어려워 자기가 일하는 분야에 애정을 가진 사람은 눈빛부터 다르다. 하나를 물으면 다섯 이상의 답변이 돌아온다. 정해진 인터뷰 시간을 넘어도 초조해하지 않는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을 아쉬워할 뿐이다. 이강현(68) 세계자원봉사협회(IAVE) 회장이 그랬다. 저녁식사 무렵 시작된 인터뷰가 밤 9시까지 이어졌다. 이미 3시간에 걸친 심층 토론을 끝낸 뒤였는데도, 이 회장은 지칠 줄 몰랐다. “식사는 나중에 하면 된다”며 국내 자원봉사의 문제점과 대안을 쉼없이 풀어냈다. 이강현 회장은 한국의 자원봉사와 역사를 함께 한 인물이다. 1991년 한국자원봉사연합회 창립을 시작으로 민간 자원봉사단체인 볼런티어 21(현 한국자원봉사문화)과 ‘한국자원봉사단체협의회’를 설립, 무보수로 일했다. 쉽고 재미있는 자원봉사를 일컫는 ‘볼런테인먼트(Voluntainment)’ 개념을 만들었고, ‘자원봉사관리자(코디네이터)’ 육성을 시작했다. 2008년, 아시아인 최초로 세계자원봉사협의회 회장으로 선출된 그는 지난 2012년 재선됐다. 세계자원봉사협의회는 전 세계 70개국을 회원으로 두고 있는 자원봉사 부문의 세계적인 민간 네트워크다. 지난달 이 회장을 만나 자원봉사의 세계적인 흐름과 한국 자원봉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자원봉사와 관련해 떠오르는 화두는 무엇인가. “UN 새천년개발목표(MDGs)가 종료되는 2015년, 국제 개발협력 비전을 설정하는 ‘포스트(Post) MDGs’가 나온다. 지난해 브라질에서 ‘리우+20회의(지구환경정상회의 20주년)’가 열렸는데, 포스트 MDGs 목표에 자원봉사가 중요한 요소로

[비영리에서 영리로] 기업과 복지현장 잇는 다리가 되겠습니다

◇기업 상황과 복지시설 수요양쪽 다 만족시키려고 노력 유승권 SPC그룹 사회공헌팀장 유승권 SPC그룹 사회공헌팀장(겸 SPC 행복한재단 사무국장)은 비영리에서 출발해, 영리 기업에 몸담고 있는 케이스다. 1999년 ㈔들꽃청소년세상 그룹홈의 생활 교사로 활동하다, 아동·청소년을 위한 CSR을 기획 중이던 이랜드그룹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이랜드그룹 사회공헌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한미글로벌 사회공헌팀 등을 거쳤다. 유 사무국장은 건설회사인 한미글로벌에서 일할 당시, 소규모 복지시설들은 수리, 보수 등에 매우 취약하다는 현장 목소리를 접하고, 시설 수리 및 리모델링 사업을 제안하기도 했다. 유 사무국장은 기업의 용어·의사결정을 이해하기 위해 경영대학원에 다녔고, 식품전문기업인 SPC에서는 퇴근 후 제빵학원에 다니며 제빵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그는 “현장에서 필요한 사업과 기업이 하고 싶은 사업 사이의 교집합을 찾아 양쪽을 만족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영리 단체 현장 경험이기업 사회공헌 밑거름 돼 정은주 SK이노베이션 사회공헌팀 대리 정은주 SK이노베이션 사회공헌팀 대리는 대학 졸업 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사회연대은행, 영등포복지관 근무 등 5년여 동안 현장을 누볐다. 지난 2009년 SK텔레콤 CSR팀에 사회복지사로 채용된 정 대리는 적응이 쉽지만은 않았다. “‘R&R’, ‘R&C’같이 일상적으로 쓰이는 용어가 생소해 수첩에 적어놓고 외웠습니다. 이메일을 자주 사용하는 기업의 소통방식에 어색함도 느꼈고요.” 그녀는 기업에 녹아들기 위해 기업 사회공헌과 관련된 세미나, 포럼 등을 찾아다녔다. 회사의 수익 분야, 관련 정부 부처의 소식, 복지 이슈 등도 꼼꼼히 챙겼다. 현대, 삼성, 포스코, 엘지, SK 등의 사회공헌 관계자들이 모이는 ‘5대 기업 교류회’에도 참여했다. 지난해 SK이노베이션 사회공헌팀으로 자리를 옮긴 정 대리는 현재

[영리에서 비영리로] 기업과 복지현장 잇는 다리가 되겠습니다

전통적으로 국가는 제1섹터, 영리기업은 제2섹터, 비영리는 제3섹터라고 불린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영리기업과 비영리단체 사이에 존재했던 ‘보이지 않는 장벽’이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다. 영리에서 비영리로, 비영리에서 영리로, 두 영역 간의 직업 이동이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기업은 비영리단체의 ‘문제해결형’ 현장 노하우를 배우고, 비영리단체는 기업의 ‘목표달성형’ 역량을 배운다. ‘영리-비영리 크로스오버 시대’가 국내에도 확산되는 추세다. 편집자 주   ◇ 브랜드 마케팅 강화로비영리 위상 높이겠다. 김미셸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 신임 사무총장 “저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에요. 항상 ’50대부터는 아동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꿈꿨었거든요. 그 소원을 이루게 돼서 벌써 행복합니다.” 국제아동보호기구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의 신임 사무총장이 된 김미셸(51)씨는 미국을 대표하는 보석브랜드 ‘티파니앤컴퍼니’ 아태지역 부사장 출신이다. 16세에 미국 시애틀로 이민을 갔고, 워싱턴대학을 거쳐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재료공학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티파니 아시아태평양 지역 담당 코디네이터, 한국 지사장, 아시아 지역 총괄 부사장까지 단숨에 오르며 20년간 전문 경영인으로 활약하던 그녀는 지인으로부터 ‘세이브더칠드런에 지원해보라’는 제안을 받고, 망설임 없이 지원했다. 김 총장은 “한 달 동안 세이브더칠드런의 국내 사업장 30곳을 둘러봤는데, 24시간 대기하면서 아동보호 현장을 누비는 직원들을 보고 놀랐다”며 “영리기업 CEO들은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원을 투자하고 고민함에도 불구하고 회사와 직원들 사이에는 절대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하는데, 세이브더칠드런에선 모두 확고한 비전과 열정을 갖고 일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앞으로 해야 할 일도 많다. 김 총장은 “사람들이 ‘모자 뜨기 캠페인’은 알아도, ‘세이브더칠드런’은 잘 모르더라”면서 “세이브더칠드런에 대한 소개보다 당장의 캠페인

[날아라 희망아] 가난한 소년 알하지… 공부가 하고 싶어 매일 학교 앞을 서성입니다

아픈 외할머니 도우며 학업의 꿈 키우는 아이 “어려운 사람 도와주는 NGO 직원 되고 싶어” 알하지(9)군이 흙먼지가 뒤덮인 가방을 열어 보입니다. 젓가락 길이의 나뭇가지가 한가득입니다. “숫자 공부를 하기 위해 직접 자른 것”이라고 합니다. 조그만 공책도 한 권 들어 있습니다. “글씨연습을 했다”는 페이지에는 알파벳이 빼곡히 들어차 있습니다. 알하지는 이 흙투성이 가방을 항상 메고 다닙니다. 마을에 있는 움막 학교에서 공부하지만 매일 갈 수는 없습니다. 정식 등록을 하려면 1만2000세파(약 2만4000원)를 내야 하는데, 아직 500세파밖에 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가방을 메고 마을을 서성이다가 가끔 움막이 한가할 때 들어가 앉습니다. 알하지의 등에서 가방이 떠나지 않는 이유입니다. 알하지는 아빠와 함께 차드 북쪽의 ‘니제르(Nizer)’ 국경지역에서 지냈습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아빠는 돈을 벌기 위해 엄마랑 떨어져 살았는데, 6남매 중 셋째인 알하지만 데리고 갔습니다. 2년 전 갑작스러운 폐병으로 아빠가 죽자, 알하지는 엄마에게 돌아와야 했습니다. 차드 은자메나시 왈리아 지역에서 농사일을 하던 엄마는 아이를 다시 알리가르가 지역에 사는 외할머니께로 보냈습니다. “키울 여력이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외할머니 마리암(60)씨의 사정도 녹록지는 않습니다. 집 근처 밭에서 피망, 토마토, 양상추 등을 재배하며, 한 달에 1만세파(약 2만원) 정도를 벌었던 마리암씨는 최근 농사일에서 아예 손을 뗐습니다. 가슴 통증과 다리 저림이 심해 거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최근 2주 동안 수입도 뚝 끊겼습니다. 마리암씨가 힘겹게 손을 들어 집 앞 텃밭을 가리켰습니다. 풀이 아무렇게나 쓰러지고, 땅은 메말라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이를 잘 돌봐야

[서울대 이상묵 교수] “한국은 장애인 IT 접근성 후진국… 그만큼 좋아질 가능성 커”

장애인 IT 접근성 보장법 미국서 올해 10월 시행 韓 대기업들 수출 비상 스마트폰 등 IT기기에서 장애인의 접근성을 보장하는 법안이 오는 10월 미국에서 시행된다. 지난 2010년 제정·공표된 ’21세기 통신 및 비디오 접근성법(The 21st Century Communication&Video Accessibility Act)’이 36개월의 유예기간을 끝내고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 법안이 가져올 영향에 대해 아직 아무도 모른다. 지난 4일, 자택에서 만난 이상묵(51)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스마트폰이나 IP TV 등을 미국에 수출하는 삼성·LG 등 국내 대기업이 이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 지난 2010년부터 서울대 QoLT(Quality of Life Technology) 산업기술기반지원센터장으로 재직, IT 분야 등 이공계 진출을 위한 장애인 인력양성프로그램 및 보조공학기기 산업 활성화 연구를 하고 있다. ―’21세기 통신 및 비디오 접근성법’이 시행되는 이유는 뭔가. “미국을 장애인의 천국으로 만든 혁명적인 법안은 1990년 부시 대통령이 서명한 ‘미국 장애인차별금지법(America’s with Disability Act)’이다. 일명 ADA법안이다. ADA법안은 건물, 교통, 고용, 의료, 교육 등에 대한 장애인 접근권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이나 정보통신 분야는 활발하지 않아 이 부분이 법안에 담기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서 모바일기기도 생기고, 무선랜, 클라우드, SNS도 나오면서 IT 혁명이 일어났다. 하지만 장애인들이 정보통신 서비스에서 차별받는다는 문제가 제기돼 이 법안이 만들어졌다.” ―미국에 수출하는 국내 스마트폰 제조사들에겐 미칠 영향이 크다고 보는가. “ADA법도 이렇게 시작했다. ‘상식적 적용(Resonable accomodation)’이라는 게, 무서운 법안이다. ADA법안 시행 당시 정부는 예산 없이, 규제권만 있었다. 장애인이 기업을 상대로 차별받았다고 소송을 하면,

임상시험 앱 개발·에코백 제작… 사회변화 이끄는 직장인들

국제 네트워킹 넷임팩트 기업 지속가능성 위해 소셜 임팩트 추구하는 네트워크 단체 각자의 분야에서 건강한 사회발전 고민 지난달 24일 저녁, 서울 홍익대 근처 카페에는 유통·금융·제약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을 비롯, 사회적기업, 비영리단체 직원 등 30여명이 모였다. 모임 이름은 ‘넷임팩트’ 한국지부다. ‘넷임팩트’는 1993년 미국 아이비리그 MBA 학생들에 의해 만들어져 현재 120개 도시 1만5000명 이상의 회원이 있는 국제 네트워킹 조직이다. 목적은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직장인들이 조직 내·외부에서 소셜 임팩트를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넷임팩트’가 만들어진 것은 지난 2005년. 현재 회원은 40여명 정도다. 지난 2007년에는 사회책임투자 컨설팅회사인 서스틴베스트 류영재 대표를 비롯해 애널리스트, 회계사 등 멤버들이 러셀 스팍스의 ‘사회책임투자:세계적 혁명'(홍성사)을 번역했다. 이들은 한국 소셜 벤처 대회(Social Venture Competition Korea: SVCK)에 참가하는 등 영리기업, 사회적기업, 비영리단체 등 각자의 분야에서 공익적 프로젝트 등의 활동을 하며 우리 사회의 작은 변화를 이끌고 있다. ◇제약회사 근무하는 김완주씨, 임상시험 정보 공유 앱 서비스 만들어 “회사에서 췌장암 신약을 들여오기로 계약을 했는데, 언론 보도가 나가자 환자분들이 전화가 오는 거예요. 약이 언제 출시되는지, 임상시험에 참여가 가능한지 물으시더라고요. 췌장암 같은 경우 걸리면 6개월 안에 대부분 사망하거든요. 임상시험이 치료방법은 아니지만, 그런 분들에게는 아주 작은 가능성이라도 될 수 있겠다 싶은 거죠.” 제약회사에 근무하는 김완주(35)씨는 1년째 임상시험 정보를 공유하는 ‘드러그인사이드(drug inside:약속)’ 아이폰 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매년 400여건의 임상시험이 진행되지만 대상자를 모집하는 정보는 폐쇄적으로 유통되고 있다. 김씨는 “만약 정보를 알아도 어려운

“좋은 회사 만들고 싶다면 자신만의 투자 원칙 중요”

공유 경제 투자자 ‘크레이그 사피로’ 지난 11일, 미국의 공유 경제 투자기업 ‘콜래보레이티브 펀드’의 크레이그 사피로(36·사진) 대표가 경험 공유 플랫폼인 위즈돔을 통해 10여명의 한국 공유 경제 관련 종사자들을 만났다. 2010년 설립된 ‘콜래보레이티브 펀드’는 킥스타터(Kickstarter), 태스크래빗(Taskrabbit), 스킬셰어(Skillshare) 등 협력적 소비와 공유 경제 분야에서 전 세계적으로 성공한 회사들에 투자한 펀드로 유명하다. 창립 4년째인 킥스타터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나 프로젝트를 지닌 창작가와 이에 투자하고 싶어하는 일반 대중을 연결하는 크라우드 펀딩 서비스다. 선댄스 영화제에 출품되는 작품 중 10%가 킥스타터를 활용해 모금 활동을 한다. 지난 한 해 동안 1만8109개의 프로젝트를 성사시켰고 매출액은 3억달러(약 3200억원)에 달한다. 태스크래빗은 가구 제작 등 일상 속의 재능을 평균 30달러 내외의 비용으로 거래할 수 있는 서비스로 월 사용 건수가 평균 3000건 정도다. ‘콜래보레이티브 펀드’는 이 같은 공유 경제 기업들에 초기 자본금(시드머니)을 투자하는 등 최대 1000만달러(한화 120억원)를 투자하고 있다. 사피로 대표는 “투자한 기업들이 큰 수익을 내고 있고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공유 경제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은 멋지다(Cool)는 식의 의식 전환이 생기는 등 성과가 보인다”고 말했다. 2006년 미국 실리콘밸리에 2개밖에 없던 공유 경제 관련 기업이 현재 50여개로 늘어났다. 사피로 대표는 이날 ‘콜래보레이티브 펀드’의 실질적인 투자 원칙도 나눴다. 그는 “투자를 한 회사 대표들에게 한 달에 한 번 보고서를 꼭 제출하도록 한다”며 “자신을 아침에 벌떡 일어나게 만드는 3가지, 밤에 잠 못 이루게 하는 3가지를 쓰도록 한다”고 했다. 이를 통해

라이벌? 우린 협력하는 선의의 경쟁자

NPO 회장 신년 대담 양호승 월드비전 회장 – 변화 없인 성장 불가능… 끊임없는 혁신 필요해 투명성 강조되는 시대… 관련 기관 자료 통합해 표준화된 기준 마련해야 이일하 굿네이버스 회장 – NPO 성장 주요인은 방송모금·세제혜택 등 사회에 조성된 기부 문화… 규모 다른 단체 간에도 멘토 두고 결연 필요해 지난 5년 동안 국내 NPO는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경제 위기와 NPO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앞으로도 이 성장세는 계속될 수 있을까. 한국NPO공동회의 이사장인 이일하 굿네이버스 회장과 공동대표인 양호승 월드비전 회장의 신년 대담을 통해 ‘한국 개발복지 NPO, 향후 5년의 과제’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사회=올해는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로 국내 대표그룹 회장들이 공통으로 ‘위기’를 강조하는 신년사를 했다. 신년사에서 어떤 점을 강조하셨는지 궁금하다. 이일하 회장(이하 이일하)=투명성을 강조했다. ‘도가니법’으로 불리는 법이 통과되면서 사회복지법인 이사의 3분의 1 이상은 사회복지위원회 또는 지역사회복지협의체에서 추천해 선임토록 바뀌는 등 법인 운영의 투명성이 강화됐다. 시민의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NPO는 국가보조금으로 운영되는 사회복지법인과는 다르지만, 곧 사단법인도 사회복지법인과 같은 사회감시망이 더 넓어질 것이다. 이를 대비해야 한다. 양호승 회장(이하 양호승)=지난 5년 동안 1년에 20~30%씩 성장해온 것은 대단한 일이다. 이제 중대한 변화 없이는 성장률이 감소하거나 둔화할 것으로 보인다. 직원들에게 ‘위기’와 ‘혁신’을 강조했다. NPO 단체가 늘어 모금이나 사업방법도 비슷해지고 있다.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차별화된 사업과 성과를 창출하도록 주문했다. 투명하고 전문성 있는 사업을 통해 가장 신뢰받는 기관이 될 것, 월드비전의 60년 노하우를

[날아라 희망아] 상처가 덧나 아파하는 아이다… 치료를 도와주세요

피부병에 고통받지만 부모 월급 석달치 모아야 진료 겨우 한 번 받아 붉은 벌판 위에 세워진 움막은 금방이라도 스러질 것 같았습니다. 대나무로 얼기설기 엮은 지붕 사이로 빗방울이 떨어졌습니다. 아이다(6)가 물기를 가득 머금은 축축한 바닥에 누워, 옅은 숨을 내쉬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자, 소녀는 몸을 잔뜩 움츠렸습니다. 잔뜩 경계하는 눈빛을 보이더니, 엄마 뒤로 몸을 숨깁니다. 손을 내밀며 인사를 건네자, 가늘게 떨리던 아이다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습니다. “아픈 부위를 만질까 봐 무서워서 그런 거예요.” 크리시(41)씨가 딸을 살며시 안으며 말했습니다. 아이다는 지난해 5월, 피부병에 걸렸습니다. 왼쪽 턱에 작은 상처가 났는데, 날이 갈수록 쓰라리고 욱신거렸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충치 때문이라며 왼쪽 어금니를 뽑았답니다. 하지만 상처는 낫질 않았고, 고통은 심해졌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상처에서 피가 나더니 살점이 떨어져 나갔습니다.아이다의 왼쪽 볼은 움푹 패, 하얀 이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습니다. 말라위의 의료 환경은 열악합니다. WHO는 말라위가 전 세계에서 전문의가 가장 부족한 나라라고 발표했습니다. 말라위 전체 인구가 1500만명인데, 전문의 수가 260명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의사 한 명당 돌봐야 할 환자가 약 5만8000명에 달합니다(한국은 전문의 한 명당 환자 수 500명). 문제는 전문의들조차 수술할 역량이 부족해, 약을 나눠주는 수준에 그친다는 점입니다. 아이다 역시 그랬습니다. 어렵게 교통비를 마련해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병원 세 곳 모두 약만 나눠줄 뿐, 제대로 된 치료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지난 9개월간, 약을 먹어도 아이다의 상처는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아이다의 병이 낫질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