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6일(화)

[책임있는 기업, 존경받는 리더] ③ “일자리 창출·나눔 실천하려면 기업부터 잘 돌아가야죠”

[책임 있는 기업, 존경받는 리더] <3> 최신원 SKC 회장

10년 동안 20억원 기부…
이웃 돕던 가족들 보며 어릴 적부터 나눔 배웠죠
사업장서 바비큐 파티 때 모금함 마련해 놓고
직원들 격려·소통하면서 기부 공감대 만들었어요

“사진만 찍는 봉사? 받는 사람들 얼굴 보면
대충대충 할 수 없어요”

미상_사진_책임있는기업존경받는리더_최신원SKC회장_2013
SKC 최신원(61) 회장을 만난 3일, 신문에는 ‘경제 민주화 법안 대거 통과’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1000억원 기부’ 소식이 나란히 실렸다. 민감한 질문 대신 “차 한잔 마시자”던 최 회장은 두 가지 소식을 묻자,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정몽구 회장이 사회적으로 기부한 건 높이 평가해줘야 해. 약속을 지켰고…. 잘한 것에 대해 손뼉을 쳐야지. (가나의 빵 공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있으니까 주는 거 아냐. 없으면 이렇게 나눠줄 수 있겠어? 기업이 잘 돌아가야 일자리도 만들어져. 일자리 창출이 바로 나눔이야. 여유를 가져야 해. 해외에선 다 우리나라 기업의 성공 비결 배우러 오는데….” 최 회장은 “인터뷰 서두르지 말고 이거나 먹고 하자”며 보라색 비비빅 아이스크림을 꺼내왔다. 밖은 30도가 넘는 무더위였다. 함께 비비빅을 먹으니, 우습기도 하고 마음이 편해졌다. 인터뷰는 자연스레 ‘나눔’ 이야기로 시작됐다.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 등과 달리, 우리나라 대기업 오너들은 기업 돈으로 기부하지 개인 차원의 기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단골로 지적된다. 10년 동안 20억원가까운 돈을, 매년 1억원이 넘는 개인 돈을 기부한 이유는 뭔가.

 

“경기도 수원 화성이 내 고향인데, 어릴 적 할아버지는 300가마를 농사짓던 부자였다. 가뭄이 들어 물이 귀할 때 이웃에게 모내기를 할 수 있도록 물을 나눠줬고, 할머니는 일꾼들이 돌아갈 때 가마솥 누룽지를 안겨줬다. 아버지(SK 창업자 故 최종건 회장)는 전쟁 폐허 속에서 기업을 일으켰다. 끼니 때우기도 힘든 시절, 공장에 찾아와 ‘취직시켜 달라’는 마을 사람 일거리 만들어준 게 결국 나눔 아닌가. 어머니는 쌀을 씻을 때 일정량을 따로 모아뒀다가 어려운 주민들에게 조용히 나눴다. 어릴 때 가족으로부터 나눔 교육을 자연스럽게 배우면서 자랐다.”

―우리나라에선 부자들의 기부에 대해 “가진 게 많으니까 당연하다”며 칭찬에 인색한 반면, ‘철가방 우수씨’ 사례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기부는 칭송한다. 대기업 오너, 전문직 등 고액 자산가들이 드러내놓고 개인 기부하는 문화가 만들어지기 위해 어떤 환경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부자들의 개인 기부가 적은 건 너무 짧은 시간 동안 비약적인 산업 발전을 해오면서 성과주의에 편향됐기 때문이라고 본다. 하지만 한국 사회도 나눔을 지향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2000년대 초반에 ‘을지로 최신원’이라고 익명 기부하다, ‘아너소사이어티'(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개인 고액 기부자 모임으로, 1억원 이상 기부해야 회원 가입)에 가입도 하고 경기모금회 회장직을 맡은 것도 기부 문화 확산을 위한 ‘마중물’ 역할을 위해서다. 기업인으로서 자선 기관의 대표가 되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다. 나눔 활동은 경영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 나눔 활동을 제대로 하는 사람은 겸손하다. 얼마 전 빌 게이츠가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접견한 자리에서 주머니에 한 손을 넣고 악수하는 걸 보고, 엄청난 실망을 했다. 기부를 아무리 많이 해도 겸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부나 나눔 활동이 경영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SKC는 매출액 대비 기부금(15억원)이 0.175%인데, 기부에 대한 기업 내부의 공감대가 이뤄져 있는가.

“임직원들과 함께 작년부터 바비큐 행사를 해오고 있다. SKC, SK텔레시스, SKC솔믹스 등 7개 전 사업장을 돌며 직접 현장에서 고기를 구우며 직원들을 격려하고 소통한다. 모든 바비큐 행사 때마다 사랑의열매 모금함을 비치해놓고 직원들이 쉽게 기부하도록 한다. (탁자 위에 놓인 파일함에서 ‘2013 SKC 노사결의문’을 꺼내 보여주며) 올해 SKC 노조는 위기 극복에 동참키 위해 임금 인상 없이 사측에 일임했다. 2000년 내가 SKC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래 최초의 일이다. 감격했다. 틈날 때마다 노조위원장들에게 밥을 사주며 ‘회사가 있기 때문에 내가 있고, 내가 있어서 회사가 있는 것 아니냐. 내 주식을 내놓아 노조를 위한 기금을 만들 의향도 있으니, 회사를 믿어달라’고 했다. 대신, 벌면 나눠준다. 한때 울산 공장은 900%, 수원 공장은 750%의 보너스를 주기도 했다. 회사가 약속을 지킨다는 신뢰가 있으니 가능한 것 아니겠는가. 최고 책임자일수록 많이 듣고, 얘기하고, 같이 밥 먹으며 베푸는 게 중요하다.”

SK 행복나눔바자회에 참여해 물품을 판매하고 있는 최신원 회장.
SK 행복나눔바자회에 참여해 물품을 판매하고 있는 최신원 회장.

―SKC는 1995년 선경도서관을 수원시에 기증했고, 2006년엔 수원시 권선구에 해비타트 SK행복마을을 건립, 2009년에는 SK청솔노인복지관을 건립하는 등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있다. 많은 대기업에서 사회공헌을 강조하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면 ‘사진 찍기용’이나 ‘홍보용’으로 사회공헌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어 실망스러울 때도 있다.

“(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함께 활짝 웃는 사진을 꺼내 보여주면서) 사진 찍기용? 그건 받는 사람들이 더 잘 안다. 연탄 배달 해보면 고마움이 가득한 얼굴로 ‘이쪽에 좀 놓아주세요’라고 한다. 옛날에도 그랬듯이, 연탄이 많으면 마음이 든든하지 않은가. 매년 5000포기씩 김장하는데, 나는 임직원들과 같이 시작해서 끝까지 같이 한다. 우리 직원들도 대충 못 한다(웃음). 노사가 같이 군부대 위문 바자도 하고, 연탄 배달도 하다 보면 가족 같은 분위기가 생긴다. 기업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해주는 사회적 책임 활동은 당연한 것이다.”

―최근에는 사회공헌을 넘어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여기에 더해 CSV(공유 가치 창출)까지 고민하는 기업이 많다. 일부 기업에선 “CSR을 해야 할지, CSV를 해야 할지 헷갈린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너무 빨리 가도 문제다. 도무지 (트렌드를) 따라갈 수가 없다. 전자제품만 해도 제품 하나 나온 지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손에 익숙해질 만하면 새로운 게 나온다. (사회공헌부터) 차근차근 밟아서 가야 한다.” 최신원 회장은 최근 세계공동모금회(UWW·United Way Worldwide) 산하 리더십위원회 아시아대표 위원이 되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UWW 회의에서 ‘나의 나눔 이야기’란 주제로 A4 4장짜리 연설을 했다. “나눔을 계속해온 동력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에 “감사한 마음”이라며 인터뷰 내내 “여태까지 잘 살아온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했다. ‘기부가 중요한가, 봉사가 중요한가’라는 질문에는 단호하게 “봉사”라고 했다. 봉사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매주 KBS ‘사랑의 리퀘스트’를 보며 ARS 전화번호를 누르는 최 회장은, “자녀에게 가장 중요하게 가르친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정직. 거짓 없이 사는 삶”이라고 했다. 요즘엔 ‘통일을 대비해 북한 어린이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했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