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모기의 역습

“상어가 나타났다!” 우리 앞바다에도 이제 매년 상어가 나타난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상어에게 물리면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인지 모든 이목이 쏠린다. 그러나 상어가 지난 100년간 전 세계에서 죽인 사람 수(약 1000명)보다 더 많은 생명을 매일 앗아가는 동물이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 모기의 이야기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기는 전 세계적으로 생각보다 많은 질병을 옮긴다. 말라리아와 일본뇌염은 물론,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뎅기열과 황열병도 모기가 옮기는 대표적인 질병이다. 실제로 말라리아만으로도 매년 60만 명이 사망하며 그중 대부분이 5세 미만의 아동이다. 쉽게 말해, 한국 군인 전체 수보다 더 많은 아이가 매년 모기로 인해 목숨을 잃고 있는 셈이다. 이 비극의 대부분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발생한다. 모기가 인류의 건강을 위협한 것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도 말라리아로 추정되는 모기 전파 질병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으며, 유럽의 아프리카 식민지 확장 시절에도 많은 사람이 아프리카에서 말라리아와 황열병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모기와의 싸움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기후 변화와 백신이 있다. ◇ 기후변화와 모기 기후변화로 뜨거워진 지구는 모기들이 질병을 퍼뜨리기에 더 좋은 환경이 되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말라리아를 퍼뜨리는 모기들이 매년 평균 6.5미터씩 더 높은 고도로 이동하며, 적도에서 4.7킬로미터씩 확장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말라리아에 대한 준비가 부족한 지역들도 위험에 처하고 있으며 더 많은 사람이

[Who Cares Wins] ESG 20주년, 기업은 무엇을 배려해야 하는가?

올해는 글로벌 콤팩트가 기업 지속가능성 제고를 위해 ‘Who Cares Wins(배려하는 자가 승리한다)’ 보고서를 통해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개념을 세상에 발표한지 20주년이 된 해다. 2004년은 글로벌 콤팩트가 창립된 지 4년 남짓한 시기였고, 인권, 노동, 환경 원칙에 이어 반부패에 관한 10번째 원칙이 완성된 직후였으며, 유엔 기구로서의 위상도 확립하기 전이었다. 2000년 유엔에서는 전 세계 정상들이 모여 ‘새천년개발목표(Millennium Development Goals)’라는 개발 의제를 채택하고, 전 지구적 지속가능성 여정에 대한 본격적인 닻을 올렸다. 이 야심 차고 원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참여가 필수적이었다. 기업이 사람과 지구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긍정적 영향을 극대화함으로써, 비즈니스가 지속가능한 발전 달성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국제사회에 형성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유엔에서는 기업뿐만 아니라, 학계, 노동계, 시민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지속가능성에 관한 기업 이니셔티브인 ‘글로벌 콤팩트’를 만들었다. 몇 해 뒤에는 기업들의 책임있는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이 개념을 ‘금융 시장’과 연결해야 한다는 합의에 이르렀다. 이렇게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의 제안으로 골드만삭스, BNP 파리바, HSBC, IFC, 모건 스탠리, 웨스트팩, 세계은행그룹 등 전 세계 20여 개의 선도 금융기업 및 기관들이 모여 공동 작업의 산물로 ‘Who Cares Wins’ 보고서가 작성됐다. 이 보고서는 ‘재무 분석, 자산 관리 및 주식 거래에 ESG 이슈를 더욱 효과적으로 잘 통합하기 위한 금융업계의 권고사항’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보고서의 목표는 ESG 이슈를 정의하고, 지속가능성에 대한 폭넓은 논의를 촉발하고, 창의적이고 사려 깊은 금융 접근방식을

[조직문화 pH6.5] ‘번아웃’이라는 신호탄

‘번아웃’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든다. ‘또 번아웃 이야기야?’ 하며 인상이 찌푸려지는 한편 ‘그래서 어떻다는 건데?’ 하며 귀가 쫑긋 세워진다. 정확한 형체도 알 수 없는 번아웃이 이곳저곳에서 무분별하게 언급돼 들려오는 것이 피곤하다가도, 언젠가는 이 전염병이 나를 찾아올 수 있으니 증상을 잘 알아둬야만 할 것 같다. 임팩트 생태계에서 일하며 얻는 가장 큰 수혜는 ‘동료’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을 일하면서 사귈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옆집, 앞집, 옆 동네 동료들이 ‘번아웃’으로 퇴사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누구보다도 몰입했던, 조직에 헌신했던, 성과가 보이던 사람들이기에 그 결정이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그 역병에 걸리기 전까지 말이다. 입사한 이래 모든 해가 쉽진 않았지만, 특히 작년은 보릿고개를 넘는 것만 같았다. 임팩트 생태계에 들어오는 자원들은 점점 축소돼 가고, 동료들은 떠나고, 함께 일하던 조직들이 하나둘씩 사라져갔다. 마치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에 탄 것처럼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의 각오로 버텼다. ‘살아남아야만 한다’는 생존의 두려움은 가연성 높은 연료이기에 내면에서 활활 불이 잘 붙었다. 업무 엔진은 가열차게 돌아갔으며, 일의 결과들은 나쁘지 않았다. 몰입은 좋은 것이고, 나는 좋은 일을 하고 있기에 이 상태의 건강성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았다. 책 <번아웃의 종말>에서는 ‘번아웃’의 원인이 조직 사회의 현실과 우리의 이상 사이의 모순에서 발생한다고 말한다. 바로 여기에 임팩트 생태계 실무자들이 겪는 번아웃의 맹점이 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일한다는 이상은 우리가 이 일을 하는 동력이자, 우리의 존재 이유이다.

[공익이 이끄는 데이터 과학] 잔반통을 확인하는 정부가 좋은 정부다

외식 경영 전문가 백종원은 식당을 잘 경영하기 위해서는 잔반통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고객이 주문한 음식을 남겼는데, 식당 사장이 왜 남겼는지 확인하지 않으면 고객이 주문한 내용 중에서 어떤 부분이 만족스럽지 않았는지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이 고객을 불편하게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면 재방문을 이끌기도 어렵다. 백종원은 이런 평소 신념에 따라 최근 장안의 화제가 된 <흑백요리사>에서도 어김없이 잔반통을 확인했다. 잔반통을 확인해야 하는 이유는 통계로 설명할 수 있다. 에이브러햄 월드는 20세기 초중반 유럽과 미국에서 활동했던 통계학자다. 그는 ‘데이터 과학’이라는 말이 존재하기도 전에 데이터로 현실의 문제를 풀어냈던 데이터 과학의 선구자다. 월드가 풀었던 대표적 문제 중 하나는 2차대전 당시 미국 정부를 도와 전투기, 폭격기의 생존율을 높인 것이다. 전투기, 폭격기는 전투의 양상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전략적 무기다. 그러나 전투기와 폭격기 제조, 그리고 조종사와 같은 관련 인력 육성과 훈련 모두 높은 비용이 든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전투기와 폭격기의 생존율을 높이는 방법을 찾는 데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 전투에서 살아 돌아온 비행기는 날개와 꼬리에 총격을 받은 경우가 잦았다. 이 제한된 표본을 보고 기체의 어느 부분을 더 견고하게 해야 전투기와 폭격기의 생존율을 높여진다고 묻는다면 보통 날개와 꼬리를 보강해야 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런 사고가 단순하지만, 직관적이기 때문이다. 월드는 달랐다. 그의 사고는 깊었다. 그는 잔반통을 생각했다. 살아 돌아온 비행기뿐 아니라 격추당한 비행기를 생각했다. 그리고 격추당한 비행기들이 총격을 받았을 위치를 생각했다. 격추당한

사람들의 ‘기적적인 연대’는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올해 초, 별생각 없이 켠 유튜브에서 뉴스 영상 하나가 시선을 끌었다. 제목은 <“정말 충격적인 사람입니다”…방송 일주일도 안 돼 벌어진 일>, 섬네일은 <역시 참지 않는 한국인들 방송 일주일도 안 돼 ‘발칵’>. 자극적인 글귀는 무심코 영상을 눌러보게 한다. ‘도대체 뭐가 충격이라는 거지?’, ‘한국인들이 무엇을 참지 않았을까?’ 영상은 3일 간격의 두 뉴스 보도가 합쳐진 것이었다. 첫 번째 보도는 시민단체를 홀로 이끌어온 한 인물에 대한 것이다. 그는 16년간 무료 상담으로 수천 명의 사채 피해자들을 살려왔지만, 후원금이 끊겨 더 이상 피해자들을 돕지 못하고 해산 절차를 앞두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두 번째 보도는 첫 보도 이후 기적처럼 쏟아진 후원금에 해산 결정은 기적처럼 취소됐다는 소식이었다. 자극적인 제목과 썸네일 그대로 ‘충격적인 사람’과 ‘참지 않는 한국인들’의 이야기였다. 업로드된지 7개월이 된 해당 영상의 조회수는 현재 270만회를 훌쩍 넘는다. ◇ 기적적인 연대가 가능했던 이유는 의미와 ‘재미’ 어떻게 이런 기적적인 연대가 가능했을까?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어서일까? 뉴스에 보도된 인물은 십수 년간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을 도우며 누가 봐도 의미 있는 일을 해왔다. 하지만 세상에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많다. 다만 그 이야기가 대중들에게 닿지 않고 있을 뿐. 그럼 어떻게 그의 이야기는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아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닿게 되었을까? 우리는 여기서 ‘재미’의 역할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재미를 논하기 전 재미의 사전적 의미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어사전의 뜻은 어쩐지 와닿는 의미가

[사회혁신발언대] 정년 퇴임 후 소셜섹터에서 새 길을 찾다

2024년 6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의 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 정년 퇴임하며 오랜 경력의 한 장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한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는 말처럼, 나의 여정은 새롭게 시작됐다. 나는 임팩트 주류화를 목표로 하는 액셀러레이터 MYSC(엠와이소셜컴퍼니)에 합류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첫걸음을 내딛고 있다. 이 여정은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나의 지속적인 열망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고, MYSC는 그러한 열정을 펼칠 수 있는 최적의 무대다. ◇ 새로운 업무 문화에 적응하다 MYSC와의 인연은 상상우리에서 진행한 퇴직자 재취업 교육을 통해 시작됐다. 그곳에서 나는 시니어 채용을 추진하는 MYSC를 알게 되었고, 입사 과정을 거치며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한 나의 경험이 MYSC의 비전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고민할 수 있었다. 입사 후, MYSC의 독특한 문화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입사 첫날부터 나는 수평적인 조직 문화에 놀랐다. 대표와 직원 모두가 닉네임을 사용하며, 이 방식은 세대 간의 벽을 허물고 자유로운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 처음엔 다소 낯설었지만, 이내 젊은 세대와의 거리감을 좁히는 중요한 요소임을 깨달았다. 행사 중 하나였던 스타트업 데모데이 준비에 작은 도움을 주면서 자연스럽게 팀의 일원으로 녹아들었고, 서로의 기여를 진심으로 축하하는 문화 속에서 소셜섹터의 본질을 체감했다. 나에게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차이점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접근할 때 젊은 동료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포용적인 사고방식은 나의 업무 스타일과 협업 방식에도 큰 변화를 불러왔다. ◇ 멘토로서의 보람 MYSC에서의 업무 중

[지역의 미래] 지역을 살리는 브랜드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지난해 순천만 정원박람회를 찾은 사람은 980만 명이었다. 이로 인한 생산유발효과는 1조 5900억 원이 넘고 2만 5000여 명의 일자리 창출 효과도 있다고 한다. 순천의 인구도 정원을 조성한 2013년부터 최근까지 꾸준히 증가해 왔다. 지난 6월 한국고용정보원이 발간한 ‘지역산업과 고용’ 여름호에 따르면 전라남도 지자제 22개 중 순천시와 광양시만 지방소멸 위험지역에서 제외됐다. 감귤도 지역을 대표하는 브랜드이다. 지난해 제주 감귤의 조수입(경영비를 포함한 수입)은 1조 3000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며 약 3만 호의 농가에 소득을 제공했다. 안동 간고등어, 보성 녹차, 담양 대나무숲, 양양 서핑도 지역을 대표하는 브랜드다. 이런 브랜드를 모든 지자체는 갖고 싶어 하지만 모든 지역 브랜드가 지역을 살리는 브랜드가 되는 건 아니다. ◇ 고유자원의 희소성 순천시는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타이틀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지자체의 생태보전 스펙으로는 역대급이다. 기후변화로 감귤 재배지역이 북상 중이지만, 제주의 자연과 감귤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연평균 기온 13.4℃, 연평균 강수량이 1400mm인 보성은 바다와 강이 인접해 있어 안개일수가 많아 차(茶)나무 생육에 최적의 입지다. 이러한 고유자원의 희소성이 지역을 살리는 브랜드의 첫째 조건이다. 고유자원이라도 희소가치가 없으면 브랜드가 힘을 갖지 못한다. 희소성은 시장의 수요는 크지만 공급이 충분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적멸보궁은 5개 지역밖에 없지만, 적멸보궁 때문에 해당 지역을 찾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반면 유네스코 3관왕의 생태환경, 달콤새콤한 과일을 원하는 사람은 많지만 이는 순천과 제주의 고유자원이기에 지역을 살리는 브랜드가 될

청년들이 ‘정치적 효능감’을 못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청년들의 ‘정치적 효능감’은 사회 발전과 민주주의의 미래에 있어 중요한 요소다. ‘정치적 효능감’은 개인이 정치에 참여해 자신의 의견이 실제로 반영될 수 있다는 믿음을 의미한다. 이는 특히 청년들에게 강력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청년들이 자신의 목소리가 정치 과정에서 중요하게 여겨진다고 느낄 때, 더 활발하게 정치에 참여하고 사회 변화를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청년은 전체 인구의 25% 이상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정치적 효능감을 느끼지 못해 갈수록 참여율이 저조해지고 있다. 청년층은 일반적으로 기성세대보다 정치에 대한 불신이 깊은 경향이 있다. 그들은 정치가 자신의 삶과 직결된 문제를 다루지 않거나, 정치 시스템이 자신들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실제로 부동산 문제, 고용 불안, 학자금 대출 등 청년들의 삶을 크게 좌우하는 정책들은 종종 정치적 의제에서 소외되거나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은 청년들의 외적 정치적 효능감을 약화하고 정치에 대한 관심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 복잡한 정치 시스템과 전문적인 용어 또한 청년들이 정치적 이슈를 이해하고 참여하기 어렵게 만든다. 청년들은 자신이 정치적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고 느끼며 내적 효능감마저 낮아진다. 정치가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정치적 효능감은 단순한 참여율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효능감이 높은 사람은 정치적 이슈를 더 깊이 이해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청년층이 정치적 효능감을 높이면 이들은 미래의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할 잠재적 주역이 된다. 정치적 효능감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유지하는 힘이다. 개인이 자신의 목소리가 정치적 결과에

[조각 맞춤] 사회가 풀려고 하지 않는 문제를 기술 혼자 풀 수는 없다

“전시장에 수백 개가 넘는 부스가 있는데 우리 아이들을 배려해 만든 에듀테크는 열심히 찾아야만 보이네요.” 지난 9월 23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에듀테크 코리아 페어’ 전시장에서 경기도 화성의 초등학교에서 통합학급을 맡고 있는 한 교사가 에누마의 ‘토도수학’ 부스를 발견하고는 “반가움이 반, 섭섭함이 반”이라며 소회를 털어놓았다. ‘에듀테크 페어 코리아’는 교육부와 산업자원부 등이 주최하고, 200개가 넘는 국내외 교육기업이 참여하는 교육분야 대표 전시회다. 행사장을 찾는 방문객이 4만 여명인데, 특히 올해는 교육과 AI의 만남을 주제로 해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런데 넓은 행사장을 둘러봐도 특수교육대상 학생이나 느린학습자(경계선 지능)를 고려하고 배려한 학습도구를 소개하는 부스는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현장에 선 교사가 마주하는 ‘오늘의 교실’과 전시회에 나온 에듀테크 기업이 제시하는 ‘미래’ 사이에 간극이 있는 걸까. 공교육, 특히 초등교실은 한국 사회의 변화를 가장 앞서 마주하는 공간이다. 출생률 감소로 학령인구 수는 줄어드는데 이주배경 학생의 비율은 꾸준하게 늘고 있다. 신경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자폐 스펙트럼,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읽기 장애를 일찍 발견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장애’로 명명되지는 않았지만, 여러 이유로 심리정서적 발달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도 늘고 있다. 실천교육교사모임이 2023년에 펴낸 책 <대한민국 교육, 광장에 서다>에서는 이 같은 교실의 변화를 한 장면으로 요약한다. 통계를 토대로 따져보면 초등학교 한 학급에 20명의 학생이 있다고 할 때 ▲다문화 학생(1명) ▲느린학습자 학생(3명) ▲특수교육대상 학생(1명) ▲ADHD 학생 (1명)이다. 사회가 변하니 교실에 모여 앉는 아이들의 구성이 변한다. 한 교실에 모인 아이들이

이호영 십시일방 대표
[사회혁신가의 두 가지 언어] 우리에게는 새로운 선발 기준이 필요합니다

필자가 운영하는 비영리단체 ‘십시일방’은 아동보호시설 등에서 거주하다 만 18세가 되어 홀로서기를 시작한 자립준비청년에게 주거와 교육을 제공하는 일을 한다. 서류와 면접 심사를 통해 매년 10명의 자립준비청년을 선발하는데, 사업 초기에 아래의 선발 기준을 적용했다. ‘자립 계획’과 ‘성장 가능성’에 60점이나 배점하니 이미 자신만의 계획이 확고하고 성장 궤도에 오른 청년들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다시 말해 굳이 십시일방이 아니어도 어차피 알아서 잘했을 청년들일수록 선발의 우선순위를 가져가는 것이다. 이렇게 선발된 청년들은 역시나 알아서 잘했고, 나는 그들이 낸 성과를 잘 정리해 대외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았다. 기부자분들께도 ‘여러분이 후원해 주신 돈으로 이렇게 좋은 결과를 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선발된 자립준비청년 모두가 ‘어차피 잘했을’ 청년들은 아니었다. 사업 초기에는 십시일방이라는 단체의 인지도가 낮아 지원율이 1대 1에 불과했다. 그래서 심사 점수가 낮은 청년까지 선발됐다. 이들은 알아서 잘하는 청년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는 이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 그렇게 1년이 지났고 이 청년들의 삶 또한 많이 좋아졌다. 나는 이들에게 나타난 변화야말로 ‘십시일방’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중대한 변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듬해부터는 십시일방 사업의 지원자가 많아져 경쟁률이 3대 1까지 치솟았다. 지난번과 동일한 심사 기준을 적용했는데 지원자가 많다 보니 높은 점수를 받은, 어차피 잘할 것 같은 청년들 위주로 선발이 마무리됐다. 덕분에 취업, 진학 등 대외적으로 공표할 만한 성과는 충분히 얻었다. 다만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이런 의문이

어떻게 하면 ‘지방소멸’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지방소멸은 곧 ‘지역경제 쇠퇴’이자 ‘국가균형발전이 무너지는 것’이기에 시급한 정책과제로 여겨진다. 지방소멸의 해결책은 무엇일까.  “지방을 키우기 위해 지역 활성화 예산을 확충하고 지방의 관광상품을 활성화해야 합니다.” “청년들이 지방 인구 유출의 핵심 요인이니, 지방에 대학과 일자리를 늘려 청년인구 유출을 막아야 합니다.” 지방소멸을 주제로 질문하면 나오는 답변이다. 주로 제도적, 행정적인 시각에서 다뤄지는 거대담론이다. 그렇다면 지방소멸의 주체는 정부인가? 아니다. 지방소멸의 핵심 주체는 청년이다. 거주지를 이동하는 것도 청년,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청년이다. 그럼에도 청년은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끌려오고, 또 다시 일자리가 만들어진 지방으로 이동하는 대상이다. ‘나’는 일자리만 있으면 이동 당해도 되는가? ◇ ‘나’의 이야기로 말하는 지방소멸 ‘나’의 입장에서 지방소멸을 이야기하자고 하니, 막상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뱉어봐야 좀 전에 읽은 기사와 통계뿐이다. 그제야 문제를 느꼈다. 이 담론의 주체인 나는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수천, 수만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는 이미 많다. 정량적 조사만으로 이 상황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거대담론은 잠시 옆으로 두고 청년인 ‘나’에 집중해 보고자 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필자는 지금까지 살아온 수도권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가고 싶었다. 서울 지하철은 그만 타고 싶었고, 넘치는 인프라는 과하다고 느꼈다. 다르게 사는 법을 경험하고 싶었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간 대학원도 서울에 있었다. 첫 직장도 서울이었다. 벗어나고 싶은 의지와 달리 한 번 서울에 닿고 나니, 경력을 쌓을수록 서울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서울로 끌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왜 서울로 끌려가는가’를 주제로 설문을 진행해

안정권 노을 CSO(Chief Sustainability Officer)
[벤처, 건강하게 성장하기] 사람처럼 조직도 건강이 중요하다

누구나 건강한 조직에서 일하고 싶어 한다. ‘어떤 조직이 건강한 조직인데?’라고 물어보면 사람마다 머릿속에 그리는 모습은 제각각이겠지만, 건강한 조직에 관한 바람은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최근 사회적으로 ‘조직 건강성(Organizational Health)’에 대한 관심이 많이 높아졌다고 느낀다. 표현과 강조점은 달라도 직원 웰빙, 직원 경험, 조직문화같이 건강한 조직과 관련한 다양한 주제의 책이나 강의, 워크숍을 찾기가 이전보다 훨씬 수월해졌다. 심지어 외부 세미나를 찾아다닐 필요도 없다. 당장 유튜브에 ‘건강한 조직’으로 검색하면 2년 이내에 올라온 퀄리티 높은 영상을 수십 건 이상 바로 볼 수 있다. 글을 쓰며 구글 트렌드에서 확인하니 한국에서만 최근 1년 새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의 검색량이 약 3배 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현실 체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세미나, 강의 등 네트워킹 자리에서 만난 사람들과 건강한 제도나 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사실 저도 그쪽에 관심이 정말 많아요”라는 말을 꽤 자주 듣는다. 특히, 사회적 미션을 추구하는 영리·비영리 스타트업이나 소셜벤처의 리더들은 조직 건강성이나 조직문화를 사업 성공만큼 깊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느낄 때가 많다. 사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도전적인 사회적 미션을 추구하는 스타트업에서 지속가능성을 담당하다 보니 지난 몇 년간 이런 질문을 가장 자주 떠올렸다. “어떻게 하면 조직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까?” 본 칼럼에서도 같은 질문을 곱씹어가며 조직 건강성에 관한 현실에서의 고민과 배움을 나눌 생각이다. 다만, 조직 건강성이라는 주제가 워낙 포괄적이다 보니 세부적인 관심 범위와 다루고자 하는 내용에 있어 독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