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
[모금하는 사람들] 튀르키예 지진 성금으로 보는 재난기부금의 진실

느닷없이 들이닥친 2월의 비극. 튀르키예 지진 피해 현장을 담은 사진과 영상 앞에 무심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무너진 건물 더미에 깔린 딸의 손을 잡은 채 초점을 잃은 눈빛으로 망연자실하게 앉아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많은 이들의 한숨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목숨은 건졌지만 집을 잃고, 이젠 추위를 피할 곳도 잠을 청할 수 있는 공간도 없는 이들에게 과연 ‘다행이다, 희망을 품자’는 말을 꺼낼 수 있을까. 우리는 허망함으로, 그리고 미안함으로 조용히 입을 닫는다. 그 와중에도 생명을 위한 시간 싸움은 계속된다. 무너진 건물 잔해를 치워가는 동안 기적적으로 살아있는 이들을 발견할 때마다 우리는 한 줄기 희망이란 것을 느끼게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기꺼이 돕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고, 그것이 작은 행동으로 이어져 기부하게 된다. 지진 피해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국제구호 NGO의 사무실은 비상 체계로 돌아간다. 지진 발생 6시간, 12시간, 24시간, 48시간, 7일 등 시간 흐름에 따른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대응조치에 대해 수시 회의가 진행된다. 지진의 강도와 피해 정도가 심할 수록 재난 카테고리 등급이 올라간다. NGO들은 현지 소식을 수시로 모니터링하면서 가장 필요한 조치를 선별한다. 우선 보유하고 있던 긴급지원금 예산에서 일차적으로 보낼 수 있는 지원금 규모를 결정하고 국제본부로 송금한다. 재난발생국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재난지원센터의 전문인력과 자원공급 물류창고를 통해 어떤 경로로 어떻게 지원할지, 타 단체의 네트워크와 현지 사업 강점을 파악하고 협력 방안을 모색한다.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민간 국제구호단체들이

조대식 KCOC 사무총장
[사회혁신발언대] 대규모 재난 앞에 해야 할 일과 해선 안 되는 일

형제 나라 튀르키예 남동부에서 규모 7.8의 대지진이 발생한지 나흘째다. 튀르키예와 인근 시리아 양국의 희생자 수는 1만5000명을 훌쩍 넘기면서 지난 2015년 네팔 대지진 피해 규모를 넘어섰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국제사회는 발 빠르게 구호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12년 전 지진 피해지역인 시리아 인근의 전쟁터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아랍의 봄’으로 내전이 발발한 리비아에서 경험한 재난 현장의 모습은 지금도 떠올리고 싶지 않을 만큼 참혹했다. 이처럼 대규모의 재난을 돕기 위해서는 뜨거운 가슴이 중요하다. 그러나 마음만으로 현장에 뛰어들면 도움이 되기보다 오히려 구호 활동에 방해될 수도 있다. 뜨거운 가슴과 함께 갖추어야 할 차가운 머리에 대해 생각해본다. 첫째, 지진과 같은 재난 현장에는 여진이 지속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재난이 발생할 수 있다. 현장에 자원봉사로 참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전문적으로 훈련되지 않은 채 단순히 선한 의지만으로는 도움은커녕 오히려 현장에서 혼선만 일으킬 수 있다. 재난 현장 자체의 위험성과 민감성이 있기에 현장에는 오랜 기간 훈련된 전문가가 투입돼야 한다. 아무나 갈 수 있는 곳도 아니고, 억지로 가서도 안 되는 곳이다. 둘째, 해외 재난은 국내 재난과 대응 방식이 다르다는 점이다. 단지 장소와 물리적 거리의 차이가 아니다. 국제적인 대형 재난의 경우 국내외 기관들이 참여하는 매우 복잡한 조정 체계에 따라 진행된다. 현지 정부뿐 아니라 UN과 국제 NGO, 현지 민간기관 등 다양한 대응 기관이 존재하기 때문에 국제적인 공조와 조정 체계에 대한 이해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기업과 사회] 인권실사에 대한 네 가지 오해

첫 번째 오해 : 조사 또는 감사?인권실사는 ‘Human Rights Due Diligence’를 번역한 말이다. 나는 ‘실사’라는 번역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인권실사를 조사(investigation)나 감사(audit)로 오해하게 한다. ‘Due Diligence’는 직역하면 ‘적절한 성실성’이다. 미국 법률 사전에서는 ‘특정 상황에서 합리적이고 신중한 보통의 사람에게 적절하게 기대되고 일반적으로 행사되는 신중함, 행동 또는 성실성의 척도’라고 풀이한다. 일반적인 사람(선량한 관리자)이라면 기울일 주의를 말한다. 한국에서는 이를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선관주의)라고 한다. 인권실사는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UN Human Rights 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 이하 UNGPs)에서 나온 말이다. UNGPs는 기업이 인권존중책임을 다하기 위해 ▲인권정책을 수립하고 서약하며 ▲인권실사를 하고 ▲구제 절차 제공을 요구한다. 이 중 인권실사는 기업 활동이 인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식별, 방지, 완화하고 인권에 대한 영향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설명하는 일련의 절차다. 인권존중을 위해 이 정도의 주의의무는 기울여야 한다는 ‘프로세스’를 말한다. 두 번째 오해 : 기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UNGPs가 만들어지기 전 국제사회는 ‘기업과 인권’에 대하여 많은 논의를 했다. 다국적 기업의 인권침해가 크게 문제됐기 때문이다. 처음 나온 것은 ‘유엔 기업인권규범 초안’이었다. 이 규범은 다국적기업에 국제법적 인권의무를 부과하고, 여러 집행장치를 마련했다. 40여 개에 달하는 국제인권법규를 기업이 준수하도록 했다. 인권규범 이행 상황을 정기적으로 공시하도록 하고, 독립적인 외부 모니터링과 검증을 받도록 하며, 다른 경제주체와 계약을 체결할 때 인권규범을 포함하도록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국제 인권조약 중 기업에 직접 법적 의무를 부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당사국에 의무를 부과할

이희숙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모두의 칼럼] “비영리의 인건비는 ‘사업비’다” 법원 판결이 불러올 나비효과는?

늦은 밤. 동료들의 전화 통화, 타이핑 소리가 이어진다. 학교에서 부당한 처분을 받은 발달장애 학생에 대한 구제 사건, 외국인보호소에 수 개월째 구금된 난민에 관한 사건, 북송된 어머니와의 친생자관계를 입증해야 하는 탈북민 자녀 사건…. ‘공익변호사’들은 소송의 결과를 예측하지 않는다. 이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 뿐이다. 이런 간절함으로 재판을 하고, 서면을 쓰고 관계자를 설득하는 노력들이 사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비영리의 활동가, 연구자들도 마찬가지다. 성폭력 피해를 당한 여성을 상담하고, 구제받을 길을 함께 찾고,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캠페인을 기획하는 일은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에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된다. 문제는 이들에 대한 인건비가 사업비가 아닌 단순 운영비로 치부돼 법적 규제 대상이 되곤 한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도 같은 경우였다. 주무관청은 ‘공익법인의 상근임직원의 인건비는 운용소득의 20% 이내로 제한되어야 한다’는 내부 기준을 이유로 들며 독립운동가와 친일 역사를 규명하는 공익사단법인의 연구자 직원 정수 승인을 거부했다. 연구원 인건비 지급을 위한 기부회원들의 기부금 사용도 동결시켜 기부금이 쌓여 있음에도 임금을 지급할 수 없는 상황이 수개월째 이어졌다. 결국 연구자들은 소속을 바꿀 수밖에 없었고 수십 년간의 쌓아온 연구소의 연구 기능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공익법인은 주무관청을 설득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결국 처분을 다투는 행정 소송을 진행했고, 1년여 기간을 다툰 끝에 지난 12월 법원은 공익법인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렸다. 주무관청의 상근임직원 정수승인신청 반려처분을 취소한다는 판결이 확정된 것이다. 주무관청은 행정기관 내부의 사무처리 기준에 따라

장서정 자란다 대표
[오늘도 자란다] 인연의 가치

얼마 전, 동네에 있는 교정 전문 치과에 아이를 데려갔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갓 입학하고서 앞니 부정교합으로 치료를 한 후, 꽤 오랜 만에 방문한 치과에는 아이의 6년 전 진료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차트에는 앳된 얼굴의 아이가 이를 모으고 찍었던 사진도 그대로 붙어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많이 컸네”하면서 아이를 기억했다. 앞으로 검진할 주기와 주의해야 하는 습관을 하나씩 알려주면서 “치과는 이렇게 더 자라서 찾아오는 아이들이 많아 좋다”고 했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고 시험 공부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였다. 초등 저학년 때 아이와 만났던 자란다 선생님과 연락이 닿았다. 아이가 크면서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 당황스럽다고 했다. 선생님은 본인이 아이를 잘 아니까,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보겠다 했다. 아이는 어릴 적 만났던 선생님에게 이런저런 수다를 하며 속이 시원해진 듯했다. 며칠 전 고객센터에서 상담이 진행되는 소리가 들렸다. 낯익은 이름이라 물어보니 서비스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이용했던 남녀 쌍둥이 부모님과의 통화였다. 당시 일곱살 쌍둥이를 키우던 부모님은 두 아이 성향이 너무 달라,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하곤 했다. 여전히 자란다 선생님을 잘 만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용 기록에는 아이들의 성장 흔적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시간이 쌓이면서 만들어진 인연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던 순간들이다. 시장에 맞춰 빠르게 변화하느라 2~3년 내 사라지는 서비스가 많은 스타트업 시장에서도 ‘고객 생애 가치(Customer Lifetime Value)’라는 지표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고객 생애 가치는 고객이 기업과 관계를 유지하는 기간

유지민(거꾸로캠퍼스 재학생)
[Z의 휠체어] 전통과 장애의 공존

지난해 말 가족들과 서울 종로구 익선동에 놀러 갔다. 익선동은 볼거리, 놀거리, 먹을거리들이 가득한 소위 ‘핫플레이스’다. 근방에 창덕궁, 경복궁, 운현궁이 있고 거리 곳곳에 한옥 식당, 카페, 상점도 많다. 그러나 휠체어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많은 가게를 앞에 두고도 하염없이 거리를 걷기만 했다. 과거와 현대의 멋이 공존하는 한옥은 장애인에게 ‘그림의 떡’ 같은 존재이다. 초등학생 시절 체험학습으로 궁에 가는 걸 싫어했다. 애초에 계획 단계부터 배제당했다. ‘어차피 가기 힘드니까’라는 말로 시작하는 문장을 수십 번 들었다. 어찌어찌 가더라도 관람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다른 친구들이 건물을 둘러보고 설명을 듣는 동안 가만히 기다리기 일쑤였다. 그냥 집에 보내달라고 말하던 어린 마음엔 큰 상처가 남았다. 2020년 8월, 이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SK텔레콤이 AR(증강현실)을 통해 궁을 관람하는 ‘창덕ARirang’을 선보였다. 창덕ARirang 광고에는 휠체어를 탄 아이가 나온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창덕궁에 놀러 갔지만 휠체어 바퀴가 턱에 걸려 내부로 들어가지 못한다. 이어 아이는 스마트폰 앱으로 창덕궁 내부를 관람한다. 이러한 앱은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다. 장애인에게도 ‘직접 경험할 권리’가 있다. 이 권리의 공백은 어떤 기술의 발전도 채워줄 수 없다. 대다수의 한옥은 단차가 높고 내부가 좁다. 대대적인 개조를 하지 않는 이상 휠체어로 가기 매우 힘들다. 궁이나 한옥마을의 ‘준수한 휠체어 접근성’은 보통 내부 이동로와 화장실, 주차장 같은 부가 시설에만 해당한다. 정작 주요 관람지인 건물은 갈 수 없다. 심지어 이마저도 제대로 갖춰지지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가 되려면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는 “농업에 투자하고 싶은데 우리나라 농업의 미래는 어떨까?”다. 나의 대답은 늘 똑같다. “우리 농업이 아주 부족해 보인다는 건 투자를 통해 개선할 수 있는 게 많고, 그만큼 성장 잠재력이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라고. 그렇지만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불안감까지 떨칠 수는 없다. 우리 농업은 “정부의 지원 중심에서 시장 중심으로 무게추를 옮겨갈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다. 그때가 조만간 오긴 하겠지만 언제일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많은 소비자는 미국 농산물이 우리나라보다 더 많은 농약과 비료를 사용해 생산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대규모 기업농이 재배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또한 라오스와 같은 개도국에서 생산된 농산물은 친환경적이고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물론 사실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헥타르(ha) 당 370kg의 비료를 사용했지만, 미국은 129kg에 불과하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단위면적 당 비료 사용량이 많은 국가 중 하나다. 개도국에서는 높은 독성을 이유로 선진국에서 금지된 농약을 다수 사용한다. 반면에 미국은 자연의 재생 역량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미생물제제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국가로 꼽힌다. 또 하나의 착각 중 하나는 규모화된 농업은 덜 도덕적이고 소농이 더 친환경적일 것이라는 점이다. 이 역시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지켜야 할 규칙을 생산자들이 얼마나 잘 준수하느냐의 문제이지 규모와는 상관없다. 이 경우는 오히려 생산 단위의 규모가 클수록 더 유리하다. 단위 면적당 관리 비용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농업에 대한 투자를 주저하게 만드는 불안감의 근원은 뭘까?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기업과 사회] 한국 기업이 성소수자를 포용할 수 있을까?

미용학원에 다니던 트랜스젠더 여성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성전환 수술을 한 그녀는 트랜스젠더임을 밝히고 여자 화장실을 이용했다. 남성 같은 외양이 남아있는 그녀를 불편해하는 여성들이 있었다. 민원이 제기되었고 미용학원은 다른 층 또는 남자 화장실을 쓸 것을 요구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시정 권고를 내렸다. 이후 제기된 손해배상소송에서 법원은 7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김규진씨는 레즈비언이다. 국제학교를 나와 명문대를 졸업하고 외국계 회사에 다니다 동성결혼했다. 결혼식을 앞두고 그녀는 인사팀에 청첩장을 보냈다. 한국에서 동성혼은 법률상 인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회사는 동성결혼을 인정하여 결혼휴가를 주고 경조금을 지급했다. 성소수자 문제는 한국에서 뜨거운 감자다. 진보적 정치인들도 이 문제만큼은 보수적으로 발언한다. 포괄적 차별금지법(평등법)은 성소수자를 포함하고 있다는 이유로 국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2014년 발표한 ‘성소수자 차별 실태조사’에 의하면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등 41.7%가 직장에서 따돌림, 협박, 조롱, 성희롱을 경험했다. 남자 또는 여자답지 못하다고 지적받거나 조롱당하는 것을 넘어서 ‘동성애자는 더럽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트랜스젠더의 62%가 직장 내에서 따돌림, 비난, 조롱, 성희롱을 경험했다. 동성애자 등의 14.1%, 트랜스젠더의 24.1%가 해고나 권고사직을 경험했다. 성소수자와 함께 일하기를 꺼린다는 등의 이유였다. 한국의 구직시장과 직장은 성소수자들에게 성적 지향(어떤 성에 끌리는지)과 정체성(어떤 성이라 자각하는지)을 철저히 숨기도록 강요한다. 글로벌 기업들은 어떨까? 포천(Fortune) 500대 기업의 93%가 차별금지 정책에 ‘성적 지향’을 포함하고, 85%는 ‘성 정체성’을 포함하고 있다.  50%는 동성애 커플에 대하여 동거인 혜택을 제공하고, 62%는 트랜스젠더를 포함하는 건강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일본 기업만 해도 이 문제에 적극적이다.

장서정 자란다 대표
[오늘도 자란다] 꿈의 시작점

매해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은 초·중·고 학생들의 희망직업을 조사한 ‘진로교육 현황조사’를 발표한다. 아이들의 희망직업이 해마다 조금씩 바뀌는 것이 인식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 같아 눈여겨보게 된다. 올해 조사에서 초등학생의 희망직업 1위는 운동선수, 2위는 교사였다. 크리에이터가 3위에 올라 처음으로 ‘톱 3’에 진입했다. 지난해 2위였던 의사는 올해 4위가 됐다. 가장 눈길이 갔던 부분은 희망직업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였다. 절반의 초등학생들은 ‘좋아하는 일이라서’라는 답변했다. 반대로 ‘희망 직업이 없다’고 답한 초등학생의 39.2%는 ‘내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몰라서’, 37.8%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직 잘 몰라서’라고 이유를 골랐다. 한창 고민이 많을 중·고등학생이 50%에 가까운 비율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직 잘 몰라서’라고 답한 것은 이해가 됐지만, 호기심과 에너지가 많을 초등학생의 77%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하는지 모른다는 답을 한 것은 의외였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자신의 흥미와 적성을 찾기까지 어떤 도움을 주고 있을까? 조사에 따르면, 두 달에 한 번 정도 부모와 아이가 관련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주목할 점은 부모 또한 이 과정에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부분이다. 자란다의 자체 설문에서도 부모들은 이렇게 답했다.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지 뚜렷한 관념을 가진 아이로 키우고 싶다” “아이가 스스로 꿈을 찾을 수 있게 도와달라” “아이가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시키기보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시키고 싶다”라고. 교육, 그리고 성장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찾고, 그것을 개발하면서 행복에 가까워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성적을 올리는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함부로 혁신을 말하지 말라

2022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시작하면서 개인과 기업은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다짐한다. 이때 종종 등장하는 단어가 ‘혁신’이다. 필자가 근무했던 한 기업은 한때 전 사원과 일부 협력업체의 직원이 `혁신학교` 과정을 이수해야 했다. 혁신을 바탕으로 강인한 정신력을 함양하기 위해 4박5일 간 의무적으로 입소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몇 년간 지속하다가 없어졌지만 그때의 기억은 생생하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주어진 미션을 수행해야 했고, 평소에 하던 업무를 다른 시각으로 보는 훈련도 계속됐다. 각자가 갖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는 도전 과제도 주어졌다. 즉 완전히 새롭게 ‘혁신’한 ‘내’가 됨으로써 몸담은 조직 또한 혁신 조직으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정부 차원에서도 혁신은 한창이다. 서울, 경기 등 전국 19개 지역에 소재한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는 지역 내 창업허브로서 창업 활성화와 기업가정신 함양, 창업가 역량향상 등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센터의 명칭에도 혁신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다. 현재 몸담고 있는 대학의 내부 조직 명칭도 ‘사회혁신센터’다. 이처럼 혁신은 일상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단어지만, 혁신의 뜻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쉽게 사용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면 혁신이란 무슨 뜻일까? 혁신(革新·innovation)은 묵은 제도나 방식을 고쳐서 새롭게 한다는 뜻으로 한문과 영어의 어원을 살펴보면 그 의미를 자세히 이해할 수 있다. 먼저 한자로 혁신(革新)을 살펴보자. 이는 ‘정신혁고(鼎新革故)’에서 온 단어로 새것을 취하고 옛것을 버린다는 뜻이다. 이미 있던 왕조를 뒤집고 새 왕조를 세움을 이르는 말로 사용되곤 했다. 왕조를 뒤집는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성공하면 역사가 되지만

윤성호 대한적십자사 부회장
[사회혁신발언대] 왜 적십자 인도주의 리더십인가?

근대 이전에는 신과 소통할 수 있는 주술적 능력이 리더십의 중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근대 이후 신에 대항한 인간의 주체적 자아가 형성되면서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특별한 리더십보다 엘리트 대중과 교감하는 합리적 지도력이 중요해졌다. 근대 유럽인들은 수학과 과학적 지성을 앞세워 자신의 존엄성을 찾아갔다. 당시 지식인들은 인간이 신과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이유를 인간의 이성(理性)에서 찾았다. 이성은 수학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과 동의어였다. 서양의 이성은 메소포타미아에서 발원한 기하학(geometry)이 그 뿌리다. 기하학은 경작지의 면적 측량에서 출발해 이집트를 거쳐 그리스에서 한 차원 높은 추상적 고등수학으로 발전했다. 합리와 추상적 논리를 중요한 가치로 여긴 당시 그리스 철학자들은 새로운 학문에 열광했고 모두 기하학의 마니아가 됐다. 기원전 6세기 피타고라스는 이 고등수학을 기반으로 세상을 수로 설명하는 수리적 세계관을 세웠다. 서양의 수리적 전통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으로 꽃을 피운 후 서양철학 2000년을 지배하는 이성적 사고의 원형이 됐다. 이러한 수학적 전통을 감안하면 근대 인문학자들이 인간을 자연계의 어떤 종과도 차별되는 특별한 존재로 여긴 이유가 “수학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때문이라는 설명은 당연했다. 바로 이 수학적 이성 때문에 인간은 신으로부터 독립할 충분한 자격이 있고 신만큼 존엄하다고 생각했다. 수학에 바탕을 둔 근대의 합리적 인문주의는 시간이 흐를수록 한계를 명백히 드러냈다. 인간이 수학적 사유 능력을 가진 존재라서 존귀한 것이라면 수학 교육의 세례를 받지 못한 대다수의 평범한 인간은 어떤가? 평민과 노예, 여성 그리고 아프리카의 흑인, 봉건사회의 압제에 신음하던 동시대 아시아인들의

이해영 세종학당재단 이사장
[사회혁신발언대] 한류 소비자에서 전문가까지, 세종학당재단의 도전

지난 11월,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한국을 주제로 파리에서 강연했다. 강연자는 제주와 서울을 배경으로 한 소설 ‘폭풍우’와 ‘빛나: 서울 하늘 아래’를 집필한 지한파 작가이자, 이화여대 초빙교수를 지낸 프랑스인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다. 13개국 100명이 넘게 참석한 파리 거점 세종학당 기념행사에서 이 거장은 청중들의 들썩이는 기대를 뒤로한 채, 준비된 원고를 그저 조용하고 차분하게 읽어 내려갔다. 그러다 한글 이야기가 나온 좌담에 이르러서 그는 호소력 있는 소통의 태도로 한글에 대한 지식과 사랑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한글은 모든 소리를 표기할 수 있고, 전 세계에서 가장 쉽게 배울 수 있는 문자라면서 말이다. 그날 대문호가 보여준 한글과 한국어 사랑은 놀랄만한 감동이었다.  프랑스인들의 한국어 사랑에 대한 증거는 또 있다. 지난 9월 개원한 프랑스 거점 세종학당에서는 첫 수강생 모집에 900명이 넘는 지원자가 한꺼번에 몰려 북새통이 벌어졌다. 올해 10월 개최된 세종학당 우수학습자 말하기 대회에서 무려 230대1의 경쟁을 뚫고 대상을 받은 학생도 프랑스 라로셸 세종학당 학생이었다. 그런데 유럽에서의 한국어 학습 붐이 어디 프랑스에만 국한된 것이랴. 조용하던 유럽에 한류의 바람과 함께 찾아온 한국어 학습 열기는 유럽에 27개국 57개소의 세종학당이 설치되는 동력이 되었다.  바야흐로 세계는 한류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으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진 한국어 학습 열기로 뜨겁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의 유명 대학에 설치된 한국어 전공 학생 수가 500명이 넘었고 올해 타슈켄트에서 개최된 세종학당 지역별 워크숍에 9개국 184명의 참가자가 몰렸다는 것이나, 베트남에서는 한국어가 제1외국어로 채택되고 국영방송에서 한국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