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ESG, 풍월을 읊는 시대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이 있다. 어떤 분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오래 있으면 어느 정도의 경험과 지식이 쌓인다는 뜻이다. ‘ESG’라는 단어는 약 3~4년 전부터 많이 사용되기 시작해서 이제는 누구나 웬만큼 ESG 관련 풍월을 읊을 수 있을 정도로 친숙해졌다. 투자자와 기업으로부터 시작된 ‘ESG 경영’ 열풍은 공공기관과 비영리조직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ESG 전문가 양성 교육과정도 많아졌고, ESG 전략 컨설팅을 필요로 하거나 ESG 보고서 발간을 위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기업과 기관도 늘고 있다. ESG를 투자자의 용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기업이 ESG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유를 투자자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과연 ESG는 투자자 관점의 용어인가? 그렇다면 공공과 비영리는 왜 ESG라는 단어를 사용할까? ESG와 유사한 지속가능경영·기업시민과 같은 단어도 있는데 굳이 ESG라는 표현을 써야 할까? ESG 경영을 해야 하는 진짜 목적은 무엇인가? 현재 ESG는 삼척동자도 아는 상식이 됐지만, 위와 같은 질문에는 명확히 답하기가 쉽지 않다. 요즘 전문가들이 말하는 ESG 항목과 실행방안 등에서 다루는 내용도 아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답을 알지 못한다면 ESG에 대해 충분한 이해를 갖는 것은 불가능하며, ESG 분야에 제대로 된 솔루션을 제공하기도 어렵다. 먼저 ESG 경영을 해야 하는 진짜 이유를 살펴보자. 이에 대한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ESG가 처음 등장한 2004년으로 거슬러가 보자. 당시 유엔 사무총장이었던 코피 아난은 9개국 20여개 금융기관을 초청해 변화하는 세상에 금융시장이 연결돼야 한다며 ESG를 강조하는 회의를 진행했다. 회의의 제목은

장서정 자란다 대표
[오늘도 자란다] 내게 당연한 것은 상대에게도 당연하다

아이와 시간을 함께 보내 줄 선생님을 매칭해주는 비즈니스를 운영하면서 가끔 받게 되는 질문이 있다. “선생님 때문에 아이가 상처받는 경우는 없나요?” 그리고 이 반대의 질문은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아마 어른인 선생님이 아이보다 우위에서 일방향적인 소통을 하는 환경을 떠올리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 선생님이 아이를 나무라고 혼내는 모습을 상상하지만, 아이나 가족으로부터 선생님이 고통을 받는 일을 걱정하진 않는다. 선생님이 방문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아이가 혼자 방치되는 상황을 우려하는데 비해, 선생님과의 약속을 가정에서 지키지 않아 아무도 없는 집 앞에서 곤란함을 겪는 선생님의 상황을 떠올리는 이는 거의 없다. 자란다와 같이 수요자와 공급자, 양쪽을 연결해주는 플랫폼을 ‘매치메이커’라 한다. 서로 필요한 것을 줄 수 있는 관계를 적절하게 매칭하는 것이 곧 플랫폼의 역할이다. 쌍방의 니즈가 한 점에서 만나기 때문에 일방향적인 요구 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내가 충분히 할 수 있고 어렵지 않은 것을 맡기기 위해 굳이 비용을 지불하는 경우는 없다. 시간이 부족하거나 일을 처리할 에너지 혹은 전문성이 부족할 때, 다른 사람의 시간과 수고를 플랫폼을 통해 구하는 것이다. 때문에, 내가 플랫폼에 투입한 금전이 소중한 만큼, 상대방이 투입한 시간과 수고 역시 소중하게 바라봐야 한다. 자란다에서는 선생님의 활동이 금지될 정도로 치명적인 것이 ‘당일 취소’와 ‘노쇼’다. 아이러니하게도 고객센터를 통해 접수되는 자란다 선생님들의 불편사항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부모님들의 ‘당일 취소’와 ‘노쇼’다. 프리랜서 플랫폼으로 유명한 한 플랫폼에서는 견적요청서만 올려놓고서 프리랜서가 플랫폼에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대표이사
[한수정의 커피 한 잔] 드라마 속 우영우의 충고 “핵심을 봐야 해요”

“핵심을 봐야 해요.” 최근 인기를 끄는 TV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충고다. 주인공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갖고 있지만, 뛰어난 능력과 자질을 가진 변호사다. 그녀는 지금 일어난 현상 너머,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미래를 지켜주기 위해 사건의 핵심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어떤 마음과 의도를 갖고 그 일을 했는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지난 5월 31일은 ‘바다의 날’이었다. 그즈음, 바다의 미래에 대한 매우 중요한 무역협정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협정은 강대국과 개도국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21년을 끌고 왔다. 어떻게 바다를 지속가능한 삶의 터전으로 만들어 우리의 미래를 지킬 것인지 그 ‘핵심’에 합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역협정을 다루는 사람 중에 우영우 같은 변호사가 없기 때문일까. 무역협정이란 국가 간 산업의 개방 또는 보호를 위해 수출입 관세와 시장 점유율 제한 등의 무역장벽을 제거하기로 약속하는 것이다. 또한 수출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협상국가 내의 보조금도 규제한다. 보조금을 받은 생산농가는 국제시장에 낮은 가격으로 팔 수 있고, 이는 무역질서 교란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21년째 타결하지 못한 세계무역기구(WTO)의 무역협정 주제는 바로 ‘수산업 분야에 대한 보조금’이다. 이런 협정은 매우 전문적이고 실생활에 대한 영향력을 즉각적으로 체감하기 어려워 시민이 관심을 갖고 참여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그럼에도 무역협정과 관련 우리 기억 속에 또렷이 남은 몇 장면이 있는데, 2008년 ‘광우병 위험물질이 포함된 쇠고기의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그렇다. 당시 협정에서 문제가 됐던 부분은 광우병을 일으킬 수

이기권 전 노동부 장관
‘기업 시민’은 共生이다

1990년 주쿠웨이트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노무관으로 근무할 때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전쟁이 벌어지자 대사관은 한국 근로자들부터 안전한 장소로 철수시켰다. 나를 포함한 대사관 직원들, 그리고 몇몇 교민도 요르단 암만으로 피신하기로 했다. 차를 타고 1500㎞ 거리를 달려 막 국경을 넘으려는데 요르단 국경 수비대에 붙잡혔다. 검문하는 군인 앞에 나섰는데, 그가 내 가슴에 총구를 댔다. 순간 머리를 스친 생각은 ‘이 군인에게 우리가 그들 편이라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필사적으로 그들이 알 만한 한국 기업 이름을 서넛 외쳤다. 순간 놀랍게도 군인이 총구를 내렸다. 호감과 명성이 목숨을 살린 순간이었다. 이후 나는 ‘대한민국의 명성은 누가 형성하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결론은 정부나 공직자보다는 근로자와 기업이었다. 집과 도로를 건설하고, 전자제품과 자동차를 생산하는 정직하고 성실한 근로자와 기업 말이다. 2005년 광주지방노동청장으로 근무하던 당시엔 이런 일도 있었다. 한 철강 회사의 하도급 업체 근로자가 크레인에 올라 시위를 벌였다. 열흘을 설득해 겨우 내려오게 할 수 있었다. 당시 상황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선 사람들은 부장·차장급인 중간 간부 20여 명이었다. 분규 현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누구인지 물었더니, 포스코에서 퇴직한 뒤 재취업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때부터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포스코 정신, 그 근간은 무엇일까?’ 대한민국이 누리는 명성의 근간을 지탱하는 기업들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포스코는 지난 수년간 ‘공생적 일자리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협력회사의 임금 체계 개선에만 약 7700억원을 지원했다. 2021년에는 ‘포스코·협력회사 상생 발전 공동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해조류는 ‘소 산업’을 구할 수 있을까?

세계에는 약 15억 마리의 소가 사육되고 있다. 이 소들은 연간 70억t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우리나라가 연간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10배에 해당하는 양이다. 소 사육으로 발생하는 온실가스의 40%는 메탄으로 주로 소가 되새김질할 때 위 속에서 밖으로 배출된다. 메탄은 이산화탄소에 비해 온실효과가 28배나 더 강하다. 따라서 탄소중립 요구가 거세질수록 소 산업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탄소중립은 소 산업의 가장 큰 위협으로 등장했다. 호주의 한 농민은 방목하던 소의 무리 중 유난히 건강하게 잘 자라는 소들을 발견하고 그 이유를 찾아봤다. 그런데 건강한 소들 사이의 공통점은 바닷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해조류를 먹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이 사실은 연구자들에게 알려졌고 해조류 효과에 대한 연구가 시작됐다. 연구자들은 해조류에 들어있는 물질이 소의 위에서 메탄을 생성하는 효소의 작용을 억제해 최대 90%까지 메탄 발생을 감소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반면에 소의 사료전환 효율을 20%까지 개선하면서 소의 성장을 촉진한다는 것도 알아냈다. 호주 태즈메이니아에서 1300마리 규모의 젖소 농장을 운영하는 한 농부는 아스파라고프시스라는 해조류와 카놀라유로 조제한 첨가제를 소에게 먹이고 있다. 이 농부는 해조류가 세계 축산업의 미래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아스프라고프시스는 전 세계 학계와 언론계로부터 큰 주목을 받게 된다. 그렇지만 해결하기 힘든 과제도 남았다. 그중 가장 큰 제약은 생리활성물질을 함유한 해조류를 상업적으로 대량 생산하는 것이다. 이 뉴스를 봤을 때 새로운 가능성이 떠올랐다. 우리나라는 이미 해조류의 최대 생산국 중 하나다. 미역은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생산국이고, 김은 독보적인 1위다.

김경신 파울러스 대표
[메타버스와 사회혁신] 관망과 실천

6월의 마지막 주, 국제영화제로 잘 알려진 프랑스 칸의 드넓은 해안가에 수많은 미디어, 광고회사들이 모였다. 구글, 아마존, 메타와 같은 세계적인 미디어 플랫폼 회사들이 모래사장 위에 거대한 부스를 세웠고, 낮에는 세미나로 밤에는 네트워킹 파티로 쉴새 없이 열렸다. 지중해의 태양만큼이나 사람들의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던 칸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곳에서 매년 국제광고제 ‘칸 라이언즈(Cannes Lions)’가 개최된다. 규모 면에서나 참가 인원, 예산으로도 영화제를 훨씬 압도하는 큰 행사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지난 2년은 온라인 행사로만 진행됐고, 올해 다시 오프라인 행사를 시작했다. 파울러스는 이번 칸 라이언즈 광고제에 총 3개의 프로젝트를 여러 부문에 출품했다. 팬데믹이 막을 내리는 시점에서 글로벌 광고계의 동향도 경험하고 세계인들과 네트워킹도 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수상에 있어서는 기대보다 성과가 좋았다. 세계 최초 시각장애인 점자패드 ‘닷패드’의 광고 캠페인이 가장 영광스러운 상으로 알려진 ‘티타늄(Titanium) 상’을 받았고, 독립 광고대행사 이노레드와 함께 진행한 ‘우유안부(Greeting Milk)’ 캠페인 등으로 총 5개의 본상을 받게 됐다. 국내 광고 회사로는 으뜸가는 성적이다. 수상하게 된 ‘닷패드’의 캠페인은 시각장애인들의 정보 접근성(Accessibility) 문제를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유안부’는 독거노인의 건강 및 고독사 방지를 위한 우유활용 캠페인에 더해 일반인의 기부 참여를 독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광고제라고 해서 재미있거나 멋진 연예인을 기용해 대중의 기억에 각인시킨 광고를 발굴하고 시상할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세계적 광고제 칸 라이언즈에서 커뮤니케이터와 브랜드의 사회적 참여, 혁신적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공로를 인정해온

유지민(거꾸로캠퍼스 재학생)
[Z의 휠체어] 건강하게 살 권리

초등학교에 다닐 때 친구들과 함께 수영장에 간 적이 있다. 옷을 주섬주섬 갈아입는 나에게 한 친구가 물었다. “지민아, 너는 수영 어떻게 해? 휠체어에 앉아서 해?” 나는 상당히 황당했다. 철과 쇠로 만들어진 휠체어가 물에 뜰 수 없다는 건 너무 당연한 상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친구를 이해한다. 초등학생이 ‘운동하는 지체장애인’을 볼 일은 패럴림픽을 빼고 없었을 것이다. 이 일이 있고 5년이 흘렀다. 그 사이 퍼스널트레이닝(PT), 필라테스, 요가, 발레 등은 더욱 대중화됐지만 여전히 지체장애인을 보기 쉽지 않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지체장애인이 운동할 수 있는 장소는 턱없이 부족하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다. 입구가 완만하고, 엘리베이터가 있고, 장애인 화장실과 탈의실이 있는 운동 시설을 찾기는 매우 어렵다. 설령 찾는다고 해도 ‘장애인은 사고 위험이 더 크고, 사고가 일어나면 책임질 수 없다’라며 등록을 거부당하기 일쑤다. 고의가 아닌 이상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내부에서 일어난 사고에 대해선 시설이 책임져야 하지 않는가? 또 장애인이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편견 아닌가? 사람들이 묻는다. “장애인 복지관을 이용하면 되지 않나요?” 2016년 나는 서울의 모 장애인 복지관에서 물리치료를 받기 위해 2년 이상을 기다렸다. 장소와 인력은 극히 한정돼 있는데, 수요자는 너무나 많다. 사설 센터도 상황이 비슷하다. 이렇다 보니 간신히 등록에 성공하면 멀리 이사를 하더라도 장거리 이동을 감수하며 다니던 곳에 다닐 수밖에 없다. 대기를 하는 동안에는 운동할 수 없어 건강이 악화한다. 거대한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나는 체육

장서정 자란다 대표
[오늘도 자란다] 불확실성이 만드는 성장의 미학

스타트업 경영과 육아의 공통점은 상시로 ‘불확실성’과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영역에서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다. 최선을 다해 분석하고 준비해도 불확실성은 남기 마련이고, 이러한 불확실성은 마치 산소처럼 자연스럽게 맞이해야 한다. 그럼에도 경영과 육아를 하다 보면, 불확실성은 피하고 싶은 대상이 된다. 사전에 구상한 계획대로 일이 술술 풀려 가길 기대하고 통제 가능한 범위 안에서 상황이 발생할 때 우리는 안정감을 느낀다. 반대의 경우에는 불안요인으로 느끼는 경우가 많다. 1인 창업으로 시작한 사업은 나의 의도와 의지 안에서 흘러갈 수 있으리라 기대했었다. 하지만 함께 일하는 구성원이 늘고 사업 규모도 확장되면서 나의 통제 안에 있거나 확신을 가지고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점차 줄어들게 됐다. 아이들 역시 부모인 나만큼은 누구보다 아이를 잘 알고 있다 생각하고 성장모습을 예측한다. 하지만 친구나 선생님에게 영향을 받고 본인의 생각이 커지면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강점이나 약점이 강화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렇다면 우리는 경영을 하며, 또 아이를 키우며 생기는 불확실성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글로벌 컨설팅기업 맥킨지의 휴 커트니는 불확실성을 4단계로 구분했다. 단 하나의 예측을 내놓을 수 있는 경우는 1단계 ‘확실한 미래’, 몇 개의 대안적인 시나리오로 미래를 예측해볼 수 있는 경우는 2단계 ‘대안이 있는 미래’로 분류된다. 여러 개의 변수가 있어 발생 가능한 대략의 범위만 간신히 예측할 수 있다면 3단계 ‘범위를 정할 수 있는 미래’, 복합적인 불확실 요소로 인해 사실상 예측이 불가능하다면 4단계 ‘완전히 모호한 미래’에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
[모금하는 사람들] 따뜻한 마음이 만들어낸 1335억원의 기적

시가 1만 달러(1290만원)의 금 175g이 하루아침에 1억350만 달러(약 1335억원)가 됐다. 세계 난민의 날인 지난 20일, 뉴욕 헤리티지 경매에서 벌어진 일이다. 화제의 경매 물품은 러시아 반체제 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지난해 받은 노벨평화상 메달이다. 무라토프는 ‘노바야가제타’라는 언론의 편집장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의 비리를 폭로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판하다가 러시아 당국의 처벌 위협 속에 올해 3월 폐간됐고, 소속 기자 6명은 의문의 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목숨을 내걸고 진실을 말하고자 하는 언론인으로서 노벨평화상을 받을 만하다. 그가 이 메달을 우크라이나 난민 어린이를 위해 사용하겠다고 옥션에 내놓았고, 수익금은 유니세프에 전달돼 쓰일 예정이다. 남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모습이라 해도 많이 부러운 광경이다. 목숨처럼 영예로운 메달을 경매에 내는 것도, 그 메달 하나를 1억 달러에 사는 것도, 그 수익금이 난민 어린이를 위해 쓰인다는 것도 명분이 좋다거나 통이 크다는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 장면에는 다양한 서사가 녹아있다. 독재와 전쟁을 일삼는 이들, 진실을 수호하는 이들, 그를 칭찬하는 이들, 전쟁의 피해로 부모와 일상을 잃어버린 난민 아이들, 도움이 절실한 이들을 위해 자기 명예와 재산을 기꺼이 내놓는 용기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는 따로 있다. 누군가의 눈물과 아픔과 진심이 담긴 진짜 삶의 이야기는 마음에서 마음을 타고 멀리멀리 흘러가는 동안 내내 그 울림이 살아있다. 그런데 이야기를 말하는 입보다 더 중요한 것은 ‘듣는 귀’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실상 앞의 그 경매에서 내가 부러운 것은, 그곳에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나쁜 차별과 건강한 구별

이번 학기 대학에서 강의하는 과목 중 ‘CSR과 사회혁신’이라는 수업이 있다. 사회문제를 정의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통해 이를 해결하는 방법을 학습하고 실행계획까지 수립하는 것이 한 학기의 커리큘럼이다. 지난 3월 학기 초반에 학생들에게 한가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우리 사회, 청년들의 사회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이때 학생들이 꼽은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여러 의견 중 가장 많이 나온 이슈가 ‘젠더갈등’이었다. 지난 5월, 조선일보와 서울대사회발전연구소가 발표한 ‘2022 대한민국 젠더 의식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6.6%가 ‘한국 사회 남녀 갈등이 심각하다’고 답했는데, 이 중 20대 여성은 무려 82.5%가 갈등이 있다는 것에 동의했고 20대 남녀 평균도 79.8%에 달했다. 2018년에 확산한 미투운동과 n번방 사건 등은 젠더갈등을 촉발했고, 이대남과 이대녀 등의 용어는 젠더갈등의 심각성을 보여주기에 부족하지 않다. 해외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 4월 글로벌 온라인 전자상거래·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 회사인 아마존은 직장 내 인종차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외부감사를 받기로 했다. 미국 고용평등기회위원회(EEOC) 조사 결과, 아마존에서 저임금 시간제 근로자 60% 이상이 흑인이나 히스패닉이지만 사무직·기술직은 18%에 불과했다. 지난해 9월에는 미국 상원의원 6명이 아마존에 대해 연방조사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마존 직원 대부분이 창고에서 일하는데, 이들 중 임신하거나 장애가 있는 근로자를 회사가 제대로 보호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물류·포장 업무를 맡은 직원의 경우, 정해진 시간과 할당량 때문에 화장실에 가거나 휴식을 취하는 시간을 포기하고 있고 근로자 본인의 안전조치에 소홀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가 큰 상황임을 지적했다. 전기자동차를 만드는 테슬라의

아나스타샤 샤포발 굿네이버스 우크라이나 긴급구호 자원활동가
[사회혁신발언대] 누구도 난민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지난 2월 24일 아침, 음악 수업이 있어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 르비우(Lviv)로 향하던 중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갑작스런 분쟁 발생으로 수업이 취소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2월 중순부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분쟁 가능성은 주요 뉴스 중 하나였다. 당시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은 ‘설마 21세기에 무슨 전쟁이 일어날까’하며 단순 루머일 뿐이라 생각했다. 믿을 수 없게도, 현실로 마주한 분쟁의 현실은 참담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불안감이 몰려왔다. 바로 전날까지도 나는 선생님을 꿈꾸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분쟁 발생 직후 아이들에게 영어와 음악을 가르치고 싶다는 꿈도,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 소망도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말았다. 내가 살고 있던 이즈마일(Izmail) 지역에서 20km 떨어진 군 시설이 폭격 되면서 가족들은 서둘러 짐을 쌌다. 20여 년의 추억이 담긴 고향을 떠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언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두려웠다. 평소엔 루마니아 국경까지 2시간 거리였지만, 밀려드는 피란민 행렬로 10시간 만에 루마니아에 도착했다. 낯선 땅 루마니아에서의 첫 달은 고비였다. 무작정 우크라이나를 벗어나긴 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매일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독일, 스위스 등 다른 나라로 뿔뿔이 흩어진 친구들이 그리웠고, 매일 연주하던 피아노가 생각났다.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가족, 친척과 함께 안전한 공간에 머무는 것뿐이었다.    루마니아에서 지내며 한국에서 시작된 NGO(비영리기구) 굿네이버스의 지원을 받게 됐다. 이를 계기로 자원활동가로 함께 할 기회를 얻게 됐다. 같은 어려움을 겪은 우크라이나인을 위로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