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함부로 혁신을 말하지 말라

김민석 지속가능연구소장
김민석 지속가능연구소장

2022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시작하면서 개인과 기업은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다짐한다. 이때 종종 등장하는 단어가 ‘혁신’이다. 필자가 근무했던 한 기업은 한때 전 사원과 일부 협력업체의 직원이 `혁신학교` 과정을 이수해야 했다. 혁신을 바탕으로 강인한 정신력을 함양하기 위해 4박5일 간 의무적으로 입소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몇 년간 지속하다가 없어졌지만 그때의 기억은 생생하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주어진 미션을 수행해야 했고, 평소에 하던 업무를 다른 시각으로 보는 훈련도 계속됐다. 각자가 갖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는 도전 과제도 주어졌다. 즉 완전히 새롭게 ‘혁신’한 ‘내’가 됨으로써 몸담은 조직 또한 혁신 조직으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정부 차원에서도 혁신은 한창이다. 서울, 경기 등 전국 19개 지역에 소재한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는 지역 내 창업허브로서 창업 활성화와 기업가정신 함양, 창업가 역량향상 등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센터의 명칭에도 혁신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다. 현재 몸담고 있는 대학의 내부 조직 명칭도 ‘사회혁신센터’다. 이처럼 혁신은 일상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단어지만, 혁신의 뜻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쉽게 사용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면 혁신이란 무슨 뜻일까? 혁신(革新·innovation)은 묵은 제도나 방식을 고쳐서 새롭게 한다는 뜻으로 한문과 영어의 어원을 살펴보면 그 의미를 자세히 이해할 수 있다.

먼저 한자로 혁신(革新)을 살펴보자. 이는 ‘정신혁고(鼎新革故)’에서 온 단어로 새것을 취하고 옛것을 버린다는 뜻이다. 이미 있던 왕조를 뒤집고 새 왕조를 세움을 이르는 말로 사용되곤 했다. 왕조를 뒤집는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성공하면 역사가 되지만 실패하면 역모를 꾀한 무리가 돼  3대가 멸족당할 일이다. 이처럼 왕조를 뒤집을 만한 중차대한 상황에서 사용되는 단어가 바로 혁신이다. 혁신에서 ‘혁(革)’은 가죽이라는 뜻이자, 바꾼다는 의미다. 신(新)은 새로운 것을 의미한다. 가죽을 만들기 위해서는 짐승을 잡아 털을 벗겨내고 껍질만 떠내 말려야 한다. 혁(革)은 이러한 가죽의 모양을 본떠 만든 상형문자인데, 동물의 가죽을 펼치면 위에는 머리, 가운데는 몸통, 아래에는 다리와 꼬리가 있는 모양을 띤다. 즉 혁신이란 동물의 껍질을 벗겨내고 시간을 들여 물리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것’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영어의 혁신(innovation)은 어떤가? 이노베이션은 ‘인(in)’과 ‘노바(nova)’가 함께 사용된 단어다. 인(in)은 안쪽이라는 의미고, 노바(nova)는 라틴어 ‘novus’의 여성형으로 새롭다는 뜻이다. 즉 이노베이션은 안으로부터 새롭게 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내부부터 새롭게 해야 혁신이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혁신은 나부터, 우리부터 시작되어야 함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면 혁신의 사례는 어떤 것이 있을까? 배면뛰기, 일명 포스버리 플롭(Fosbury flop)이 대표적이다.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딕 포스버리(Dick Fosbury)는 과거 올림픽의 높이뛰기 종목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기술을 선보이며 2.24m 넘어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높이뛰기는 두 개의 지주를 수직으로 세우고 그 사이에 걸친 막대를 뛰어넘는 경기로, 더 높은 높이를 넘을수록 이기는 경기다. 처음에는 바로 서서 높이 뛰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었지만 도움닫기가 결합하면서 가위뛰기가 도입됐다. 이 방법으로 1895년 마이클 스위니가 1.97m를 넘었다. 1912년에는 바와 병행되게 몸을 눕혀 옆으로 돌면서 넘는 기술인 등면뛰기(Western Roll)로 조지 호라인이 2.01m의 기록을 세웠고, 1941년에는 복면도약(Belly Roll) 기술로 레스터 스티어가 2.11m를 넘으면서 최고의 기술로 인정받았다. 이때만 해도 배를 아래로 해서 바를 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는 딕 포스버리가 배를 위로 향하는 기술을 세상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며 신기록을 세운 것이다. 4년 후인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는 40명의 높이뛰기 출전 선수 중 28명이 포스버리가 선보인 배면뛰기로 막대를 넘었다. 그리고 1988년 서울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배가 아래로 향하는 높이뛰기 기술은 올림픽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아직도 1985년 포바루친 선수가 배면뛰기로 성공한 2.40m의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이처럼 딕 포스버리는 기존의 것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것을 택하는 혁신적인 결단을 했다. 그리고 자신부터 실행하기 시작했다. 

정리하면 ‘혁신’은 완전히 바뀌는 것을 의미하며, 나부터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혁신과 개선은 많은 차이가 있다. 점진적 개선도 필요하지만 현 사회는 혁명과 같은 혁신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혁신이란 단어를 제대로 사용하고 있을까? 가죽을 벗겨내고 말리는 험난하고 지난한 과정을 거치면서까지 완전히 바꿀 의지가 있는지, 바꿀 준비는 되어 있는지, 무엇보다 나부터 바꿀 수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탈피해야 하듯, 우리는 완전히 새롭게 되는 혁신이라는 두려움을 극복해야 지속가능한 발전과 도약을 할 수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지금 혁신을 이야기하는 조직이 있다면 우리 조직은 진정한 의미의 혁신을 하고 싶은지, 나부터 혁신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김민석 지속가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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