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동네에 있는 교정 전문 치과에 아이를 데려갔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갓 입학하고서 앞니 부정교합으로 치료를 한 후, 꽤 오랜 만에 방문한 치과에는 아이의 6년 전 진료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차트에는 앳된 얼굴의 아이가 이를 모으고 찍었던 사진도 그대로 붙어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많이 컸네”하면서 아이를 기억했다. 앞으로 검진할 주기와 주의해야 하는 습관을 하나씩 알려주면서 “치과는 이렇게 더 자라서 찾아오는 아이들이 많아 좋다”고 했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고 시험 공부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였다. 초등 저학년 때 아이와 만났던 자란다 선생님과 연락이 닿았다. 아이가 크면서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 당황스럽다고 했다. 선생님은 본인이 아이를 잘 아니까,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보겠다 했다. 아이는 어릴 적 만났던 선생님에게 이런저런 수다를 하며 속이 시원해진 듯했다.
며칠 전 고객센터에서 상담이 진행되는 소리가 들렸다. 낯익은 이름이라 물어보니 서비스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이용했던 남녀 쌍둥이 부모님과의 통화였다. 당시 일곱살 쌍둥이를 키우던 부모님은 두 아이 성향이 너무 달라,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하곤 했다. 여전히 자란다 선생님을 잘 만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용 기록에는 아이들의 성장 흔적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시간이 쌓이면서 만들어진 인연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던 순간들이다. 시장에 맞춰 빠르게 변화하느라 2~3년 내 사라지는 서비스가 많은 스타트업 시장에서도 ‘고객 생애 가치(Customer Lifetime Value)’라는 지표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고객 생애 가치는 고객이 기업과 관계를 유지하는 기간 동안 비즈니스에 기여하는 총 가치를 말한다. 한 마디로, 기업이 인연을 맺은 고객과 견고한 관계를 길게 이어갈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해졌다는 뜻이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따르면,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는 데에는 기존 고객을 유지하는 것보다 5배에서 최대 25배까지 더 많은 비용이 든다. 고객 유지율이 5%만 증가해도 기업 수익의 25~95%가 증가한다는 경영 컨설팅 기업 베인앤컴퍼니의 연구도 있다. 한정된 자원으로 사업을 유지하면서, 수익성을 높여 성장해야 하는 기업이 ‘고객과의 인연’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국내에서 되돌아볼 사례로 코웨이의 사례가 떠오른다. 코웨이는 한 번 팔고 말았을 정수기에 렌털과 필터 관리를 포함한 방문점검 시스템을 연결했다. 고객들이 장기간 인연을 이어갈 가치와 이유를 새롭게 만들어낸 것이다. 코웨이는 일반 가정의 수질 데이터베이스를 축적해 고객 각각의 수질 환경에 따라 맞춤 필터를 추천하는 등 그 접점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어떻게 고객과의 접점을 계속해서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다른 선택지를 고르는 것보다 우리 서비스와 맺은 인연을 유지했을 때 얻는 가치가 높아야 인연이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 가치는 고객들의 쌓인 데이터에서 만들어진다. 기존 고객과 신규 고객의 차이는 고객에 대해 보유한 데이터의 양과 질에 있기 때문이다. 고객 한 명, 한 명의 고유한 데이터를 통해 그에 맞는 서비스를 먼저 알아차리고 미리 제안하는 지점에서 고객은 다시 한번 그 서비스를 찾게 된다.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 일년 후 이 사업이 생존하고 있을 지조차 가늠이 되지 않았다. 생존이 중요한 상황에서 1년 후, 5년 후, 10년 후에도 고객과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사업 모델을 설계하는 것이 당장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사업 모델을 가지고 있든, 고객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지를 잘 쌓는 일은 인연의 가치를 분명히 높일 것이다. 매일, 한 달 혹은 일년만에 찾아도 기억하고 반갑게 맞아주는 서비스가 고객에게 인연의 가치를 느끼게 만든다.
장서정 자란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