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파타고니아의 목적

“기업은 누구를 위해 사업을 해야 할까요? 기업에게 자원을 제공하는 지구를 위해 이뤄져야 합니다. 자연 환경 없이는 주주도, 직원도, 고객도 그리고 기업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의 유일한 주주는 지구입니다.” 얼마 전 미국 아웃도어 브랜드인 ‘파타고니아’는 깜짝 놀랄만한 소식을 전했다. 이 회사의 창업주인 이본 쉬나드 회장과 아내, 두 자녀는 약 30억 달러, 우리 돈으로 4조원이 넘는 파타고니아의 소유권을 신탁 및 비영리단체에 양도한 것이다. 암벽등반 등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던 이본 쉬나드는 암벽 등반시 필요한 바위 틈새에 박는 강철 쇠못인 피톤(piton)을 생산해 상당한 이익을 얻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가 만든 피톤이 바위를 심하게 훼손한다는 것을 알게 되며 결국 사업을 중단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1973년 지금의 파타고니아를 설립하여 아웃도어 의류 중심의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이후 파타고니아는 이들의 비즈니스가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목도하며, ‘환경’을 우선시하는 기업의 ‘목적’을 분명히 하기 위해, 지난 2018년 ‘우리는 우리의 터전,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사업을 합니다’라는 사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일부 경제학자들과 자본가들은 기업의 목적은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1976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밀턴 프리드먼의 학설로 알려져 있는 ‘신자유주의’는 시장 실패시 정부의 개입이 중요하다는 케인즈의 경제이념과는 반대로, 정부의 개입을 반대하고 시장의 자유를 강조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는 1947년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주도로 스위스에서 결성된 몽펠르랭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몽펠르랭회는 신자유주의를 명시적으로 표방하며, 모든 형태의 국가 개입에 반대한다고 선포했으며,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를 확산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지구 생존에 인간은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지속가능한 삶을 살고 있을까? 최근 ‘ESG 경영’이 강조되면서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도 자주 들을 수 있다.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완성하는 비재무적 요소를 ESG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제부터일까?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를 강타하는 기상이변 뉴스가 심상치 않다. 100년만의 기록적 폭우를 쏟아낸 한국, 유럽과 러시아는 최고기온을 갱신했고 영국과 독일, 중국의 일부 지역은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다. 지난달에는 이상고온으로 빙하가 녹아서 알프스산맥의 인기 탐방로인 몽블랑과 마터호른의 일부가 통제됐다. 이러한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2030년, 즉 8년 후면 지구가 멸망한다는 내용이 소셜미디어에 등장하기도 했다. 즉 우리의 삶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속가능성이라는 개념은 가장 오래된 서사시로 알려져 있는 지금으로부터 약 4000년 전에 쓰여진 ‘길가메시 서사시(Gilgamesh Epoth)’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기원전 2750년경에 실재했던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도시국가 중 하나인 우루크의 왕인 길가메시를 주인공으로 한 문학 작품이다. 이 서사시는 환경과 자연을 훼손해 문명이 멸망했다는 단서를 남겼다. 길가메시가 신들에게 반항하며 광대한 삼나무 숲을 벌채한 탓에 이 땅에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자라지 못해 살 던 곳을 떠나 바빌론과 아시리아로 피난해야 했다는 것이다. 마야(Maya) 문명으로 잘 알려져 있는 고대 마야는 ‘보존의 우주론(A Cosmology of Conservation)’으로 불리는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 당시 마야인은 의식, 농사, 사냥, 삼림 관리, 사교 활동 등 일상 생활에서 지속가능한 관행을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전통적인 마야 세계관은 인간이 그들이 공유하는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상호 책임을 지는 많은 부분, 즉 동물, 새, 나무,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ESG, 풍월을 읊는 시대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이 있다. 어떤 분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오래 있으면 어느 정도의 경험과 지식이 쌓인다는 뜻이다. ‘ESG’라는 단어는 약 3~4년 전부터 많이 사용되기 시작해서 이제는 누구나 웬만큼 ESG 관련 풍월을 읊을 수 있을 정도로 친숙해졌다. 투자자와 기업으로부터 시작된 ‘ESG 경영’ 열풍은 공공기관과 비영리조직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ESG 전문가 양성 교육과정도 많아졌고, ESG 전략 컨설팅을 필요로 하거나 ESG 보고서 발간을 위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기업과 기관도 늘고 있다. ESG를 투자자의 용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기업이 ESG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유를 투자자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과연 ESG는 투자자 관점의 용어인가? 그렇다면 공공과 비영리는 왜 ESG라는 단어를 사용할까? ESG와 유사한 지속가능경영·기업시민과 같은 단어도 있는데 굳이 ESG라는 표현을 써야 할까? ESG 경영을 해야 하는 진짜 목적은 무엇인가? 현재 ESG는 삼척동자도 아는 상식이 됐지만, 위와 같은 질문에는 명확히 답하기가 쉽지 않다. 요즘 전문가들이 말하는 ESG 항목과 실행방안 등에서 다루는 내용도 아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답을 알지 못한다면 ESG에 대해 충분한 이해를 갖는 것은 불가능하며, ESG 분야에 제대로 된 솔루션을 제공하기도 어렵다. 먼저 ESG 경영을 해야 하는 진짜 이유를 살펴보자. 이에 대한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ESG가 처음 등장한 2004년으로 거슬러가 보자. 당시 유엔 사무총장이었던 코피 아난은 9개국 20여개 금융기관을 초청해 변화하는 세상에 금융시장이 연결돼야 한다며 ESG를 강조하는 회의를 진행했다. 회의의 제목은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나쁜 차별과 건강한 구별

이번 학기 대학에서 강의하는 과목 중 ‘CSR과 사회혁신’이라는 수업이 있다. 사회문제를 정의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통해 이를 해결하는 방법을 학습하고 실행계획까지 수립하는 것이 한 학기의 커리큘럼이다. 지난 3월 학기 초반에 학생들에게 한가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우리 사회, 청년들의 사회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이때 학생들이 꼽은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여러 의견 중 가장 많이 나온 이슈가 ‘젠더갈등’이었다. 지난 5월, 조선일보와 서울대사회발전연구소가 발표한 ‘2022 대한민국 젠더 의식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6.6%가 ‘한국 사회 남녀 갈등이 심각하다’고 답했는데, 이 중 20대 여성은 무려 82.5%가 갈등이 있다는 것에 동의했고 20대 남녀 평균도 79.8%에 달했다. 2018년에 확산한 미투운동과 n번방 사건 등은 젠더갈등을 촉발했고, 이대남과 이대녀 등의 용어는 젠더갈등의 심각성을 보여주기에 부족하지 않다. 해외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 4월 글로벌 온라인 전자상거래·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 회사인 아마존은 직장 내 인종차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외부감사를 받기로 했다. 미국 고용평등기회위원회(EEOC) 조사 결과, 아마존에서 저임금 시간제 근로자 60% 이상이 흑인이나 히스패닉이지만 사무직·기술직은 18%에 불과했다. 지난해 9월에는 미국 상원의원 6명이 아마존에 대해 연방조사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마존 직원 대부분이 창고에서 일하는데, 이들 중 임신하거나 장애가 있는 근로자를 회사가 제대로 보호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물류·포장 업무를 맡은 직원의 경우, 정해진 시간과 할당량 때문에 화장실에 가거나 휴식을 취하는 시간을 포기하고 있고 근로자 본인의 안전조치에 소홀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가 큰 상황임을 지적했다. 전기자동차를 만드는 테슬라의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용기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것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어, 근데 책임은 아무나 질 수 없는 거다. 용기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거야.” 몇 년 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 나오는 대사 중 하나이다. 이 드라마는 청춘들의 창업 스토리를 담았는데, 경쟁이 치열한 비즈니스 세상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상대방에 맞서 소신과 정의를 지키고 신뢰를 쌓으며 성공을 이루어간다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 용기 있는 사람만이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책임’에 대한 중요한 속성이 언급된 것이다. 책임이란 단어는 ‘맡아서 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임무’라는 사전적 의미와 함께 법률적으로는 ‘법률상의 불이익 또는 제재가 가해지는 일’을 의미한다. 근대형법의 원칙 중 하나인 ‘책임주의’에서는 ‘책임이 없으면 형벌도 없다’는 법언에 따라 책임이 없으면 범죄가 성립하지 않고, 범죄 형량도 책임의 크고 작음에 따라 결정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보통 책임자는 조직 내에서 권한과 힘을 가진 주체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책임자는 어떠한 문제가 생겼을 경우 형벌을 받는 주체가 됨을 의미하는, 다소 엄중한 뜻을 내포하고 있다. 즉 책임이란 단어는 일상에서도 많이 쓰지만, 함부로 사용하기에는 부담되는 단어인 것이다. 올해 1월 27일,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하여 중대산업재해에 이르게 한 경우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 등에 처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었다. 법 시행과 더불어 많은 기업이 CSO(최고안전책임자)를 선임하였는데, 이에 대에 ‘전문적으로 안전을 관리하고 책임진다’는 해석과 함께, ‘대표를 보호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의 방패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ESG경영, 잘 모르지만 잘하고는 있어요

프랑스 정부는 이달 초 ‘탄소 관련 홍보 기준에 관한 법령’을 발표했다. 기업의 환경경영 투명성을 높이고 그린워싱의 영향을 방지하기 위해 제정된 이 법은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 주요 내용에는 인터넷, 텔레비전 및 포스터 등 광고에서 ‘탄소중립’을 증명할 수 없는 제품은 이와 유사한 표현으로 광고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것이 포함됐다. 따라서 기업은 초기 제조부터 제품 수거 또는 재활용을 통한 최종 변형에 이르기까지 탄소배출량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기업 홈페이지나 서비스 사이트에 온실가스 배출을 줄인 성과와 이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탄소저감 방안과 보상을 위한 명확한 전략도 기재하도록 했다. 글로벌 자연보호 비정부기구인 세계자연기금(WWF)은 자동차 제조사들의 광고 중 멋진 자연을 질주하는 SUV 광고가 너무 많다며 이를 줄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광고 속의 SUV는 아름답고 거친 풍경을 달리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실제 SUV 차량은 타 승용차에 비해 많은 연료를 소비하고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자연을 위해서는 절대로 좋은 선택이 아니며, 항공부문에 이어 탄소발생의 주범이라고 경고했다. 그린피스, 지구의벗 등 환경분야 NPO들은 글로벌 정유회사인 토탈에너지(TotalEnergies)가 벌인 환경캠페인이 그린워싱이라며 지난달 법원에 제소했다. 토탈에너지는 풍력 발전, 태양전지 패널 및 전기 자동차 충전소를 배경으로 ‘탄소중립 추구’ ‘넷제로 사회 달성’ 등의 메시지를 광고에 담았는데, 이러한 주장에 근거가 없고 회사가 제시한 전략이 2050년까지 달성하겠다는 ‘넷제로’ 또는 ‘탄소중립’ 목표와 전혀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국의 경우 2021년 3월부터 최근까지 16개의 광고가 그린워싱에 해당하여 광고금지 명령을 받았다.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쓰레기를 되가져갑니다

얼마 전 국립공원에 들렀다가 한 문구를 보았다. ‘쓰레기를 되가져갑니다. 자연을 지킵니다.’ 그린포인트 제도를 소개하는 내용과 함께 적힌 문구였다. 그린포인트 제도는 2010년 국립공원 내 쓰레기 저감 및 자기 쓰레기는 자기가 처리하는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시행됐다. 국립공원에 방문한 탐방객이 자기 쓰레기 등을 되가져오는 경우, 쓰레기 1g당 2포인트(2원)를 제공해 온라인 쇼핑몰 또는 공원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10년 넘은 이 제도가 곧 종료되고, 올해 7월부터는 포인트 지급이 중단된다고 한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쓰레기 회수 문화가 정착되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공원에서 수거한 쓰레기를 결국 가정에서 처리하기 때문에 국가의 총 쓰레기 발생량 감소에는 기여하지 못한다는 한계 때문이다. 그래도 ‘쓰레기 되가져가기’ 문화가 정착되었다니 다행이기는 하다. 2019년 3월, 미국 CNN에서 우리나라 경북 의성군에 있는 거대한 쓰레기 산을 집중 보도한 적이 있었다. 한 폐기물 재활용 업체가 수거한 폐기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방치하면서 허용량의 80배가 넘는 양의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쓰레기가 분해되며 발생한 가스로 인해 화재가 일어났고, 주민의 건강과 지역 미관을 해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러한 쓰레기 문제는 한국에서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린피스 영국사무소가 지난해 5월 발표한 ‘트래시드(Trashed)’ 보고서는 터키 아다나주 주변에 영국과 독일에서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가 적치되어 있거나 불타고 있다고 밝혔다. 영국 정부는 플라스틱 포장재의 절반 가까이가 재활용된다고 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재활용을 위해 수거된 수천 톤의 플라스틱 폐기물은 소각로에서 소각되고, 일부는 다른 나라에 수출한다. 솔직하게 표현하면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ESG는 정말 비용일까?

한 해를 놓고 보면 학기 중에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방학 때는 기업이나 공공기관 대상의 자문이나 컨설팅을 주로 한다. 이번 겨울방학도 예외는 아니었다. 방학 기간 동안 수십여 개 기업과 기관 관계자를 만나 지속가능경영, ESG, CSR 등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공통적으로 나왔던 말이 있다. “회사에서는 ESG를 잘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정작 인원과 예산은 변함이 없다” “ESG 활동 계획을 세우고 보고 드리면, 첫 질문이 돈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느냐” 등의 내용이었다. ESG 경영이 중요해지면서 모두의 관심이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조직 내부의 현실은 조금 다른 듯하다. ESG 경영이 기업의 기본적인 활동으로 정착되는 분위기는 어느 정도 맞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올 1~2월에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매출 상위 300대 기업 중 81.4%가 작년 대비 ESG 사업 규모를 늘리겠다고 답했다. 또한 ESG 위원회를 설치했거나 설치할 예정이라고 응답한 곳이 88.4%에 달했고, 탄소배출량 감축, 신재생 에너지 활용, 사업장 안전보건 관리 및 공급망 리스크 관리 등을 우선순위로 꼽았다. 동시에 이러한 ESG 경영을 위해서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감세, 공제 등 세제지원과 규제 완화, 금융지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필자가 지난해 기고했던 ‘ESG의 배신’이라는 제목의 칼럼이 있다. ESG 경영이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맞지만, 철저한 준비 없이 어설프게 ESG 경영을 도입하는 것은 오히려 안 하는 것보다 못하다는 개념으로 ‘ESG 패러독스(역설)’를 소개했다. ESG와 관련된 워싱을 경계하자는 의미로, ESG 경영은 선언으로만 그쳐서는 안 되고, ESG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지킬 박사와 하이드, 그리고 보물섬

어느 밤, 영국 런던 번화가의 어느 작은 도로에서 ‘하이드’라는 남자가 소녀를 무참히 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를 목격한 사람들은 하이드에게 “돈으로 소녀에게 배상하라”고 요구했고, 하이드는 지역 내 명망 높은 지킬 박사의 서명이 적힌 백지 수표를 건네주고 자리를 떠난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서막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소설은 자신의 자아에 내재하는 또 다른 자아에 쫓기는 한 인간의 이중성을 다룬 작품으로, 모두에게 존경을 받는 지킬 박사가 사실은 잔인하고 추악한 모습을 지닌 하이드였다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최근 한국의 어느 ESG(환경·사회·거버넌스) 평가기관이 ‘ESG 워치리스트’를 발표했다. ESG 리스크가 높은 요주의 기업 9곳을 선정해 공개한 것이다. 오염물질 배출 및 배출량 조작,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근로자 사망사건, 근로자 산업재해, 고객정보 유출 사고, 하도급업체 기술 유용, 총수일가 횡령, 뇌물공여, 계열사 부당지원, 정경유착을 통한 합병 등이 선정 이유였다. 그런데 이들 기업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ESG 경영을 선언하고 ESG 활동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타 ESG 평가에서는 우수한 기업으로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ESG 우수기업으로 ESG 경영을 잘 실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셈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떠오르는 장면이다. 어떻게 해야 기업의 이러한 이중성을 막을 수 있을까? 이탈리아 사크로 쿠오레 가톨릭대학교의 알폰소 델 주디체 교수와 실비아 리가몬티 교수는 기업의 부정행위와 ESG 평가 결과와의 관계에 대해 연구했다. 연구에 따르면, 일반적인 ESG 평가는 복잡한 설문지와 기업이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지배구조’의 실패가 금융위기를 낳았다

약 20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임직원이 2만명에 이르고 매출액은 1110억 달러가 넘었고 6년 연속 포춘지가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선정한 엔론(Enron Corporation)이 2001년 12월 파산했다. 엔론은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계획한 회계부정으로 기업의 부실한 재정상태를 치밀하게 감춤으로써 투자자와 사회에 큰 손실을 끼치게 되었다. 엔론 사태 7개월 후 미국의 또 다른 거대 통신기업인 월드컴(MCI WorldCom)이 분식회계와 사기 영업을 반복하다 결국 파산했다. 그리고 2008년 9월에는 글로벌 투자은행인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보호를 신청하면서 전 세계가 금융위기를 맞게 되었다. 당시 신용과 소득이 낮은 사람에게 주택 자금을 빌려주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상품이 금융기관의 부실관리와 실적에만 관심을 갖던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로 인해 부적절하게 판매되면서 리먼 브라더스는 물론 전 세계가 미국발 금융위기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2009년 8월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일가족 4명이 탄 렉서스 브랜드 차량이 시속 200km 정도로 달리다 가드레일에 추돌하여 탑승자 모두가 사망한 사건이 생겼다. 당시 도요타 일부 모델에서 급발진 및 액셀러레이터 이상반응이 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회사는 운전자의 조작 미숙이라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본격적인 조사가 진행되고 매트와 페달 불량의 원인이 밝혀지자 도요타는 부랴부랴 대규모 리콜 계획을 발표했다. 일명 ‘페달 게이트’로 알려진 도요타의 리콜 사태로 세계 자동차 판매량 1~2위를 다투던 도요타의 신용은 하루아침에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도요타는 페달을 생산한 미국업체가 문제라며 협력업체에 문제의 원인을 전가하려다가 신뢰를 잃었을 뿐 아니라 회사 내부적으로 결함을 알고 있었음에도 8년간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CEO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방송인 유재석과 조세호가 다양한 사람을 만나서 인터뷰하고 퀴즈를 내는 ‘유퀴즈 온 더 블록’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약 1년 전 이 프로그램에서 직장인들의 삶을 다룬 ‘미생’편이 방영된 적이 있다. 신입사원부터, 대리, 부장, 대표 등 다양한 직급의 직장인들이 출연해 회사생활에 대한 소회를 털어놓으며 많은 공감을 받았다. 각 출연자는 회사에서 많이 쓰는 말을 꼽기도 했다. 사원은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될까요?’, 대리는 ‘넵’ ‘감사합니다’ ‘해 볼게요’라는 말을 선택했다. 팀장과 부장은 ‘확인했니?’ ‘의견 있으세요?’라는 질문을, 대표는 ‘결론부터 이야기하라’는 말과 ‘오너십’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고 했다. 최근에는 각 기업의 경영진은 지속가능경영, 사회적 가치, ESG(환경·사회·거버넌스) 등의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실제로 CEO들은 어떤 단어를 많이 사용했을까?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답이 있다. 윤지혜, 이종화는 지난 8월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담긴 CEO 인사말을 분석해 다음과 같은 결과를 공개했다. 2013년부터 3년 단위로 조사한 결과, 새롭게 등장한 단어로 2013년에는 공유, 원칙, 생산, 만족, 국민 등이 나타났고, 2016년에는 기회, 인류, 윤리경영, 우수, 따뜻 등의 이슈 키워드가 나타났다. 가장 최근인 2019년에는 디지털, 지속가능성, 파트너, 전기, 수소 등이 보고서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는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개념이 사회공헌뿐 아니라 환경, 기후변화, 지배구조, 상생적 협력 등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CEO들의 관심은 사회적 흐름과 요구에 따라 조금씩 변하고 있다. 지난 5월 자본시장연구원은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의 조사 결과를 인용해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선진국 주요 기업 6500개사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우리는 자격 있는 이해관계자인가?

약 10여년 전 ‘남자의 자격’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죽기 전에 해야 할 101가지’라는 부제를 갖고 있던 이 프로그램은 합창단 도전, 실제 라면으로까지 출시된 라면왕 콘테스트 등 유명한 에피소드를 많이 만들어냈다. 비록 목표했던 101가지 모두를 담지 못한 채 97개의 미션으로 마무리되었지만, 방송에서 보여준 출연진들의 노력은 이들의 자격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자격(資格, qualification)’은 일정한 신분이나 지위를 가지거나 일정한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나 능력을 의미한다. 최근 진행된 UN 총회에서는 유명 보이그룹인 방탄소년단이 문화특사 ‘자격’으로 연설을 했다. 의사, 바리스타, 제빵사 등의 직업도 ‘자격’을 취득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부적절한 행위가 발견되면 부여받은 자격이 정지 또는 취소되기도 한다. 이처럼 ‘자격’은 어떤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기준이 된다. 최근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주주뿐 아니라, 임직원, 고객, 협력회사,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고려하여 기업경영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ESG(환경, 사회, 거버넌스)가 기업의 중요한 경영전략이 된 이후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더욱 힘을 얻고 있다. 그리고 이해관계자들은 기업에 당당히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MZ세대와 지역사회의 이해관계자를 신경 쓰기 시작한 기업과 기관이 늘어나고 있고, 조직 내부의 노동조합을 포함한 임직원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기업은 이처럼 이해관계자를 고려한 경영을 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그렇다면 ‘기업의 이해관계자는 이와 같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해보게 된다. ‘이해관계자’는 아무런 조건 없이 부여받은 권리일까? 마땅히 해야 할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