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목)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용기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것

김민석 지속가능연구소장
김민석 지속가능연구소장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어, 근데 책임은 아무나 질 수 없는 거다. 용기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거야.”

몇 년 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 나오는 대사 중 하나이다. 이 드라마는 청춘들의 창업 스토리를 담았는데, 경쟁이 치열한 비즈니스 세상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상대방에 맞서 소신과 정의를 지키고 신뢰를 쌓으며 성공을 이루어간다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 용기 있는 사람만이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책임’에 대한 중요한 속성이 언급된 것이다.

책임이란 단어는 ‘맡아서 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임무’라는 사전적 의미와 함께 법률적으로는 ‘법률상의 불이익 또는 제재가 가해지는 일’을 의미한다. 근대형법의 원칙 중 하나인 ‘책임주의’에서는 ‘책임이 없으면 형벌도 없다’는 법언에 따라 책임이 없으면 범죄가 성립하지 않고, 범죄 형량도 책임의 크고 작음에 따라 결정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보통 책임자는 조직 내에서 권한과 힘을 가진 주체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책임자는 어떠한 문제가 생겼을 경우 형벌을 받는 주체가 됨을 의미하는, 다소 엄중한 뜻을 내포하고 있다. 즉 책임이란 단어는 일상에서도 많이 쓰지만, 함부로 사용하기에는 부담되는 단어인 것이다.

올해 1월 27일,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하여 중대산업재해에 이르게 한 경우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 등에 처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었다. 법 시행과 더불어 많은 기업이 CSO(최고안전책임자)를 선임하였는데, 이에 대에 ‘전문적으로 안전을 관리하고 책임진다’는 해석과 함께, ‘대표를 보호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의 방패 역할’을 한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동시에 일기도 했다. 법 시행 이후 지난 5월 3일까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사고는 총 59건으로 사망자 65명이 발생했다. 하지만 시행 후 수개월이 지난 지금, 산업계는 ‘책임자와 범위를 구체화’ 해달라는 요구 안을 제출했지만 노동계는 ‘위험의 외주화’ 문제의 개선과 현장의 실질적인 안전 강화를 요구하며 경영계와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때 경영계가 요구하는 것 중 하나인 ‘책임’자를 명확하게 해달라는 속뜻은 바로 앞서 언급한 형벌을 받는 책임자를 구체화해달라는 것을 의미한다.

책임은 사람에게만 부여된 것은 아니다. 2010년 11월, 국제표준화기구(ISO)는 사회적 책임에 대한 가이던스, 즉 ISO26000을 발표했다. 이 표준안은 공공, 민간, 비영리 조직 모두가 준수해야 할 7개 분야의 핵심주제를 담고 있다. 핵심주제는 ‘조직 거버넌스’ ‘인권’ ‘노동관행’ ‘환경’ ‘공정운영관행’ ‘소비자 이슈’ ‘지역사회 참여 및 발전’을 의미하는데,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또는 사회책임경영을 해온 조직에는 친숙한 개념이기도 하다. ISO26000에서는 7개의 핵심주제 이외에 7개의 ‘사회적 책임 원칙’도 제시하고 있는데, 핵심주제에 반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으나 매우 중요한 개념이므로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7개 원칙 중 첫 번째 원칙으로 ‘책임’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바로 ‘설명책임(accountability)’이다. 설명책임이란 이해관계자들에게 조직의 의사결정과 활동에 대해 답변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즉 모든 조직은 자신이 경제, 사회 및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설명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칙은 조직이 외부로부터 적절한 감시를 수용하고 이러한 감시에 대응할 의무를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또한 조직을 경영하는 경영진이 이해관계자의 요구에 답변할 의무와, 조직이 관련된 법과 규정에 대해 법률 당국에 답해야 하는 의무를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잘못이 발생했을 때 그 잘못을 개선하는 적절한 조치를 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책임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이 외에도 책임을 지는 정도는 권한의 범위나 넓기에 항상 부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처럼 조직이 제대로 ‘책임’을 이행한다면 조직뿐 아니라 사회 모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목도하는 책임자는 어떠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직장에서, 가정에서, 또는 어떤 상황에서든 책임을 진다는 것은 자신감의 표현인 동시에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단지 과정과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 외에도, 각자의 삶에 대해 주인의식을 갖고 숭고하고 진실한 방식으로 사회를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책임지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고 멋진 일이지만 아무나 질 수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실제로 많은 책임자가 책임 대신 회피를 선택하고 있다. 책임은 용기 있는 사람만이 질 수 있다. 우리 사회에 책임지는 경영자, 용기 있는 경영자가 많아지길 기대한다.

김민석 지속가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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