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부모 이혼, 공부 대신 일 시키던 엄마 떠나 중 3때부터 ‘그룹홈’에서 생활’
나만 힘든 게 아니다…’스스로 다독이며 열심히 공부.
사회복지학 전공해서 저개발국 어린이 돕고 싶지만 대학등록금 생각하면 막막
“헤어진 지 6년 만에 동생이랑 아빠를 만났어요. 동생은 남처럼 어색했고, 아빠는 ‘미안하지만 대학 등록금은 알아서 해결하라’는 말만 했어요. 등록금 때문에 찾아간 건 아니었는데….”
지난 13일, 전주시 한 그룹홈에서 만난 혜린이(가명·19)는 담담하게 말문을 열었다. 혜린이의 부모님은 7년 전 이혼했다. 혜린이는 어머니를, 혜린이의 남동생은 아버지를 따라갔다. 두 살 터울인 동생이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가 되자 동생의 안부가 궁금했던 혜린이는 동사무소에서 등본을 떼어보고 아버지가 사는 곳을 찾아갔다. 재혼한 아버지는 풍족하지는 않지만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어머니를 때리고 못살게 굴던 예전의 아버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남동생은 청소년 축구선수가 되어 있었다. 남동생의 10살 때 모습만 기억하고 있던 혜린이는 훌쩍 커버린 동생을 보며 동생을 잘 키워주신 아버지와 새어머니가 고마웠다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혜린이가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이야기를 하자마자 “동생에게 돈이 많이 들어가니 너 대학은 못 보내주겠다”고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아버지의 새 가족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던 혜린이는 그 후 아버지와 연락을 하지 않게 됐다.
사실 혜린이가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남동생을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동생이 걱정되어서였다. 어머니가 자신의 고등학교 진학을 막았던 것처럼 아버지 역시 동생의 고등학교 진학을 반대하지는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반대였다면 남동생은 분명 저보다 훨씬 힘들어했을 거고, 삐뚤어졌을지도 몰라요. 누나인 제가 힘든 게 더 나아요.”
뿔테 안경 너머 동그란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혜린이는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듯했다.
혜린이의 어머니는 혜린이가 공부하는 걸 늘 못마땅해했다. 일 년에 1~2권 문제지를 사겠다고 하면 “왜 이렇게 문제지를 자주 사냐”고 말했고, 밤에는 공부를 못하게 아예 불을 꺼버렸다. 준비물을 살 돈도 주지 않았다. 그나마 장학금이라도 받지 못했다면 혜린이는 중학교도 마치지 못할 뻔했다.
어머니는 대신 어린 혜린이에게 일을 시켰다. 당시 어머니는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부업으로 칡즙을 짜서 팔았다. 혜린이는 매일 방과 후에 세탁소 손님을 받고 세탁물 배달을 했다. 작두로 칡을 써는 것도 혜린이의 몫이었다. 자르기 전의 칡은 13살 어린 혜린이의 허리둘레만큼 굵었다.
당시 혜린이는 세탁소에 딸린 비좁은 단칸방에 살았다. 장롱과 싱크대만으로 이미 꽉 차버린 방바닥에는 칡 덩어리와 흙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방바닥을 치워도 한 몸 누일 만한 공간이 겨우 남을 정도였다. 혜린이는 그 방에서 일주일 내내 거의 혼자 잤다. 어머니는 동거남과 다른 집에서 생활했기 때문이다. 혜린이는 집에서 밥을 해먹은 적이 거의 없다고 했다. 어머니는 쌀이 아닌 밀가루만 한가득 사다놓았고, 혜린이는 그 밀가루로 저녁마다 혼자 수제비를 해먹는 것이 고작이었다. 겨울에도 난방이 되지 않아 은박 돗자리를 깔고 겨울 잠바를 껴입은 채 잠을 잤다.
“그때는 동상에 걸려서 주먹을 세게 쥐면 손등에서 피가 났어요. 발은 조금만 부딪혀도 통증이 심했고요.”
혜린이의 양손은 추위에 떠는 사람의 입술색처럼 새파랬다. 인터뷰 내내 따뜻한 방 안에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심한 동상에 걸렸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는 셈이다. 혜린이는 “손과 발이 여전히 나의 컴플렉스”라고 말했다.
어머니의 방임을 몇 년이나 묵묵히 견뎠지만 중학교 3학년 때 “고등학교에 보내주지 않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마침내 참지 못하고 폭발하고 말았다. 혜린이는 “다른 부모님들은 공부를 못 시켜서, 좋은 학교에 못 보내서 안달인데 공부도, 진학도 못하게 하는 엄마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반에서 3등을 하고 학급 부실장을 맡을 정도로 모범생이었던 혜린이는 “장학금을 받아 공부하겠다”며 집을 나와 자진해서 ‘그룹홈’으로 왔다. 그룹홈은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가정과 같은 주거환경에서 보호·양육하는 소규모 아동보호시설이다. 세탁소를 정리한 어머니는 양육포기서를 쓰면서 이사 갈 주소도 알려주지 않았다.
이후 혜린이는 담임 선생님의 배려로 3년간 장학금을 줄 실업계 고등학교를 찾아 진학했다. 실업계 고등학교에서도 혜린이는 착실하게 공부해 내신 1등급을 받았다. 8시 10분이 정해진 등교시간이지만, 혜린이는 7시 반 전에 도착해 교실을 환기시키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대학 진학반에 들어가 매일 10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했고, 그룹홈에 돌아와서도 새벽 1~2시까지 더 공부했다. 고등학교 1~2학년 때는 그룹홈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학원에도 다녔다. 혜린이는 “처음으로 학원에 다녀보니 너무 좋았다”며 “학원에 실업계 고등학교 학생은 나밖에 없었고 인문계 아이들을 따라가기에는 힘에 부쳤지만 오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룹홈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자신감도 생겼다.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특히 최근에 들어온 6살짜리 성주(가명)를 보면서 “함께 사는 동생들을 위해서라도 더 힘을 내서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중학교 때는 생각해 볼 겨를도 없었던 ‘장래희망’도 생겼다. 사회복지사가 되어 저개발 국가의 어려운 어린이들을 돕는 것이 꿈이다.
“텔레비전에서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굶고 있는 모습을 봤어요. 살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까 저도 이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살고 싶어요.” 혜린이는 수줍게 웃었다.
혜린이에게 지금 가장 큰 고민은 대학진학과 자립이다. 혜린이는 전북대 정시모집에 지원할 예정이다. 모의고사에 비해 수능을 잘 보지 못해 마음을 졸이고 있지만, 이번 수능이 예년보다 어려웠다는 뉴스를 보며 한편으로 마음이 놓이기도 한다. 합격하면 사회복지사가 되어 세계를 돌아다니며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자신의 꿈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러나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남았다.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현재 그룹홈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생활비도 어느 정도 받고 있지만, 만 18세가 되면 그룹홈에 머물기가 어렵고 정부 지원금도 끊긴다. 혜린이는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수능이 끝나니 오히려 마음이 착잡하다”며 고개를 떨궜다.
활달한 성격의 혜린이는 10명이 함께 살고 있는 그룹홈에서 맏언니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밥을 먹다 말고 초등학교 2학년 세희(가명)의 순두부찌개에 밥을 비벼주는가 하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화장실에도 갔다 왔다. 혜린이를 돌보는 굿네이버스 한송이(31) 간사는 “공부만 하라고 해도 그룹홈 청소를 도맡아 하는 혜린이를 보면 기특하기도 하면서 마음이 짠하다”라고 말했다. 혜린이는 “뭐든지 다 남들보다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나의 장점”이라며 “대학에 가고 더 성장해서 엄마·아빠 없이도 이렇게 잘 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착한카드’ 가입만 해도 혜린이를 도울 수 있어요
‘착한카드’에 가입하는 것만으로도 혜린이를 도울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가입할 때마다 1만원이 적립되어 혜린이를 포함,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에게 지원됩니다. 직접 혜린이의 대학등록금과 자립을 지원하고 싶으신 분은 굿네이버스(1599-0300, www.gni.kr)로 연락하면 됩니다.
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