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1급 장애인만 ‘도움’이 필요한가요?

장애인 활동보조지원서비스 르포
만 6~18세 활동보조지원 月 60시간 이하로 제한 2급 장애부턴 혜택도 못 받아

반짝 추위로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던 지난 15일 아침 7시. 서울 동작구 한 아파트입구에서 휠체어를 탄 동준이(가명·16)를 만났다. 동준이는 기자가 하루 동안 ‘활동보조지원서비스’를 하기로 한 뇌병변 1급 장애아다. 장애인 활동보조지원서비스란 혼자서 일상생활과 사회활동을 수행하기 어려운 중증장애인에게 보건복지부에서 활동보조인을 지원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장애인 가족의 부담을 덜고 장애인의 자립을 돕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류정화 기자(오른쪽)가 뇌병변 1급 장애아 동준이(가명)의 휠체어를 밀며 이동을 보조하고 있다. 낮은 턱도 동준이와 류 기자에게는 큰 장애물이었다.
류정화 기자(오른쪽)가 뇌병변 1급 장애아 동준이(가명)의 휠체어를 밀며 이동을 보조하고 있다. 낮은 턱도 동준이와 류 기자에게는 큰 장애물이었다.

기자가 첫 인사를 건네려는 순간, 동준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마침 아침산책을 다녀오던 외할아버지를 본 것이다. 깜짝 놀란 기자에게 동준이 어머니 최희승(가명·42)씨는 “외할아버지가 너무 좋아서 그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태어날 때부터 작은 뇌를 가지고 태어난 동준이의 지능은 만 1세에서 멈췄다. 좋고 싫음은 구별할 줄 알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들이 아니면 동준이의 의사표현을 알아듣기가 어렵다고 했다.

동준이는 누군가 옆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집에서 밥을 먹고 씻고 옷을 입는 것은 어머니의 손을 빌린다. 학교에 가고 점심을 먹고 일주일에 한두 번 언어치료와 재활원 마사지를 받는 곳까지 이동하는 일은 활동보조인과 담임교사의 도움을 받는다. 기자는 어머니로부터 동준이의 휠체어를 넘겨받아 부드럽게 밀어보았다. 아파트 단지를 나와 길 건너 통학 버스를 기다리는 곳까지 가는 동안, 휠체어는 길 위의 작은 요철에도 들썩거렸고 낮은 턱에도 자꾸 멈춰 섰다.

보건복지부_그래픽_장애인_장애등급_2010동준이를 휠체어 채로 통학버스에 태워 학교에 갔다. 동준이는 장애인 특수학교인 한국우진학교의 중학교 2학년 과정에 재학 중이다. 4교시를 마친 점심시간, 교내 식당은 아이에게 밥을 먹이려는 어머니들과 활동보조인들로 붐볐다. 동준이의 활동보조인인 김윤아(가명·42)씨는 소시지와 오이무침을 보더니 “동준이는 고기를 좋아하는데 오늘 반찬은 별로네”라며 웃었다. 기자가 난감해하자 김씨는 “그래도 ‘꼬~기’라고 말하면 입을 잘 벌릴 것”이라고 조언해주었다. 열 번도 넘게 ‘거짓말’로 ‘꼬~기’를 외친 끝에 한 그릇을 다 먹였다. 자꾸 밥알을 흘려 밥 한 숟가락을 먹을 때마다 입가를 닦아주었다. 수시로 흘리는 침을 닦아주고 서너 시간에 한 번은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도 활동보조인의 몫이었다. 학교를 나설 땐 벗었던 점퍼를 입는 데 10분이 걸렸다.

동준이는 상반신은 자신의 의지로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지만, 하반신은 움직일 수가 없다. 다리 근육이 거의 없어 가느다랗고 뻣뻣했다. 학교에서 병원으로, 병원에서 다시 재활원으로 이동하는 길에는 동준이에게서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울퉁불퉁한 도로를 휠체어로 달리는 일은 생각보다 위험천만했다.

활동보조인 김씨가 동준이를 돕는 날은 일주일에 이틀 정도다. 언어치료와 재활원 마사지를 받을 때만 돕는다. 정부의 활동보조지원서비스는 장애 정도에 따라 월 40시간에서 100시간까지 제공되지만 만 6세부터 18세인 장애아동은 최대 60시간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이 아이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며 “한 달 60시간은 아이를 돌보기에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동준이의 어머니 최씨는 고등학교 수학교사다. 동준이가 활동보조지원서비스를 받지 못하면 당장 직장을 다니기가 힘들어진다. 최씨는 “한 달 60시간으로는 점심식사 보조와 일주일에 두 번 재활치료 때 이동보조만 받기에도 부족하다”고 아쉬워했다.

부족한 시간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장애인 가족들은 급수로 활동보조지원서비스를 제한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1급 장애인에게만 활동보조지원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가족의 부담을 덜고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장애인 활동보조지원서비스의 본래 취지에 충실하려면 2급 이하 장애인에게도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급 뇌병변 장애인인 김헌식(44)씨는 부모님의 집에서 나와 자립한 지 10년이 됐다. 재활치료를 꾸준히 받아서 불완전하게나마 걸을 수 있게 됐지만, 가끔 혼자서 생활하는 일이 불편할 때가 있다. 김씨는 “대소변을 가린다고 해서 활동보조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_그래픽_장애인_실태조사보고서_2010활동보조를 받지 못하는 2급 장애인의 가족은 장애인의 삶까지 떠안아야 한다. 2008년 보건복지부 장애인 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의 일상생활은 주로 가족 구성원(87.4%)이 돕고 있다. 장애인 자녀를 보살피기 위해 빠듯한 집안 살림에도 직장에 다니지 못하는 부모도 많다. 고1인 2급 지적장애인 조희경양의 어머니 조영실(44)씨는 지난 3월에 사회복지사 일을 시작했지만 곧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 가지 않는 개교기념일에 또래 친구가 없는 희경이가 집에 혼자 있다가 인터넷 채팅을 통해 모르는 아저씨를 만난 것이다. 다행히 조양을 알아본 동네 사람들이 집으로 데려왔지만 그날 이후 출근길 발걸음이 쉽사리 떼어지지 않았다. 조씨는 “나가지 말라고 해도 말을 잘 듣지 않고 나이가 들수록 다루기가 어려워진다”며 “활동보조인이 있다면 사회화도 되고 자립성도 길러질 것 같은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조씨의 바람은 정부에서 활동보조지원서비스를 제공할 때 의학적 등급이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와 장애인 가족들이 그 서비스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에 따라 유연하게 제공하는 것이다.

얼마 전 장애등급심사를 다시 받아 2급에서 1급이 되었다는 서별(13)양의 어머니 안인숙(40)씨는 “우리끼리는 엄마가 죽기 전에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1급을 받아주는 것이라고 한다”며, “그만큼 활동보조서비스가 장애인에게 절실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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