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1일(목)

아프간 1000명 사망 지진에도 국제사회 외면… “한달째 피해복구 기약 없어”

[인터뷰] 타민드리 드 실바 월드비전아프가니스탄 회장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터진 날
아프간서 규모 6.3 강진 발생
재난 발생 한 달, 이재민 27만명

아프가니스탄 지진이 발생한 지 약 한 달이 지났다. 지난달 7일(현지 시각) 오전 11시. 아프간 북서부 헤라트주를 규모 6.3의 지진이 강타했다. 나흘 뒤인 11일과 15일에도 같은 규모의 강진이 연달아 발생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에 따르면 이번 지진으로 1480명이 사망했다. 직접 피해를 입은 사람은 27만5200여 명에 달한다.

아프간 강진이 발생한 날,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했다. 이스라엘은 곧바로 전쟁을 선포했고 국제사회 관심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 집중됐다.

탈레반 정권이 집권한 아프간은 재난 발생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구호작업에 차질을 빚고 있다. 20년간 이어진 분쟁에 대부분의 인프라는 무너졌고, 탈레반 재집권 이후 해외 원조는 끊겼기 때문이다.

타민드리 드 실바 월드비전아프가니스탄 회장은 “아프간 이재민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정신력이 매우 강하다”며 “국제사회가 조금만 도와주면 이들은 빠르게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월드비전

아프간 지진 한 달을 앞둔 지난 3일 월드비전아프가니스탄 사무소의 타민드리 드 실바 회장이 현지 소식을 보내왔다. 실바 회장은 짐바브웨, 수단, 스리랑카 등에서 인도주의 구호활동을 해온 국제구호개발 전문가다. 유니세프, 세이브더칠드런, MJF자선재단 등을 거쳐 지난해 8월부터 월드비전아프가니스탄 사무소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이번 지진 대응에 필요한 기금은 9360만 달러(약 1230억원)로 추정되지만, 현재 모금액은 26% 수준에 그친다”고 말했다.

국제기구도, 언론도 외면한 재난

-국제사회에 아프간 상황이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현장은 어떤 상황인가.

“지난달 7일 발생한 첫 번째 지진으로 16개 마을이 피해를 입었다. 이어진 11일, 15일 지진 때는 4개 지역 400여 개 마을이 무너졌다. 지진 이후가 더 문제다. 주민들의 정신력과 회복력은 강한 편이지만, 월드비전 직원을 포함한 대부분 주민은 여전히 집에 돌아가기를 두려워하면서 텐트에서 생활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가족을 잃고 슬픔을 달랠 시간도 없었다. 2주 전에는 기습적인 모래 폭풍으로 200여 가구의 텐트가 날아갔다. 피해 지역 중엔 전화 연결이 되지 않는 외딴곳도 많다. 월드비전 합동 조사팀은 고립된 피해 마을을 찾는 중이다.”

-구조 활동은 어떻게 진행됐나.

“아프간에서 지진이 발생한 건 20년 만이다. 그렇다보니 구조 작업 준비가 거의 안 돼 있었다. 지진 발생 후 이틀 동안은 손으로 잔해를 파내면서 구조 작업을 했다. 이후 대형 기계와 굴착기가 투입돼 잔해에 파묻힌 희생자들을 수습할 수 있었다. 국제이주기구(IOM) 주도로 적신월사, 월드비전, 현지 NGO 등이 함께 피해 지역에서 구호 물품 배분을 시작했다. 기업인들과 주변 지역사회에서도 피해자들을 위한 식량과 담요, 의류, 현금, 텐트 등을 지원했다.”

아프간 헤라트주 지진으로 부상을 당한 어린이. /월드비전
아프간 헤라트주 지진으로 부상을 당한 어린이. /월드비전

-벌써 재난 발생 한 달이 지났는데.

“이란에서 지진 대응 훈련을 받은 구조대원을 파견했지만, 그 외에 지원은 거의 받지 못했다. 재난 상황에서 OCHA가 주도해 지원 수요를 파악하고 종합적인 대응 규모를 제시하는 ‘인도적지원 대응 계획(Humanitarian Response Plan)’도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대규모 공여국이나 기업, 단체도 아직 없다. 월드비전은 여러 국가에서 모금을 시작했지만, 전 세계 언론은 최근 가자지구에서 일어난 전쟁과 글로벌 경제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이재민들은 상황을 어떻게 버티고 있나.

“아프간 국민들은 놀라운 사람들이다. 위기 상황에서 음식, 담요 등 자신이 가진 모든 정보와 자원을 나누면서 서로 돕고 있다. 지진으로 고아가 된 약 300명의 아이를 돌볼 때도 마찬가지다. 조부모, 숙모, 삼촌 등 대가족이 공동으로 부모 잃은 아이들을 돌본다. 많은 사람이 지진으로 휴대폰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휴대폰을 함께 쓰고 정보를 공유하는 등 여러 방법으로 이웃을 살피고 있다. 피해 주민들의 강인한 정신력에 매번 감동 받는다. 외부에서 조금만 도와주면 이들은 빠르게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다가오는 겨울, 갈 곳 없는 이재민들

아프간은 인프라가 부족해 대부분 복지 서비스를 국제 NGO에 의존했다. 하지만 2021년 정권을 잡은 탈레반 지도부는 기존 정권과 달리 NGO 활동을 적대시했다. NGO의 모든 사업에 대해 각 지역에서 주정부 허가를 받은 후 수도 카불에서 경제부에 추가 승인을 받도록 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여성 NGO 직원의 활동도 막았다. 구호단체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이슬람 율법에 따라 히잡을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명령을 따르지 않는 단체에는 활동 허가를 취소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로 인해 국제사회는 잇따라 지원 중단을 선언하기도 했다.

-탈레반 정권이 NGO 활동을 제한하기도 하는데.

“지진 발생 직전에 헤라트 주는 기근으로 인해 긴급 지원이 필요했다. 그때 경제부에서 NGO에 각종 승인 절차를 포괄적으로 면제해주기로 합의했었다. 다행히 지진 발생 당일 이 조치가 시행됐다. 지진이 발생하고서는 피해 지역 조사와 구호를 위해 여성 NGO 직원의 출장이 허가됐다. 덕분에 구호 활동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다 탈레반 지도부(사실상 당국)는 민간인을 포함한 여러 주체가 동시에 대응하면서 중복 수혜 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여성 직원들에게 출장 전에 다시 사전 승인을 받도록 했다. 최근 이 문제가 OCHA 회의에서 다시 다뤄졌고, 지난주 모든 NGO에 대한 포괄적 승인이 다시 이뤄진 상태다.”

지진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생필품 구입을 위한 지원금을 받기 위해 월드비전 임시 텐트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월드비전
지진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생필품 구입에 필요한 지원금을 받기 위해 월드비전 임시 텐트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월드비전

-당장 필요한 지원은 무엇인가.

“지진 피해자들이 임시 거주공간, 식량, 생필품 등 일상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지원받고 있기는 하지만 앞으로 겨울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걱정이다. 엘니뇨 현상 등으로 이번 겨울은 특히 추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민들은 겨울을 어떻게 보낼지 대비책을 전혀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추운 날씨에는 호흡기 질환과 폐렴 환자도 증가한다. 대응 방안을 신속히 준비해야 한다. 이재민이 생계 수단인 밭과 가축에 이전과 같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하려면 기존 거주지와 가깝고, 추운 날씨를 견딜 수 있는 따뜻한 임시 거주공간이 필요하다.”

-일상 회복에는 얼마나 시간이 필요할까.

“지금으로서는 정말 예측할 수 없다. 오늘 만난 한 남성은 급수 차량을 통해 식수 공급은 받고 있지만, 지진 이후 목욕은 한 번도 못했다며 몸을 씻고 싶다고 했다. 한 사람의 의견이긴 하지만 잔해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얼마나 절실하게 일상을 되찾고 싶어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잔해를 치우기, 주택 공급 등 지원이 빠르게 이뤄져야 이 사람들이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NGO가 망가진 마을을 재건하고 이재민들이 다시 생계를 꾸릴 수 있도록 하려면 장기적으로 복구에 투입할 자금이 필요하다. 대부분 구호 활동이 긴급구호 차원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장기 회복 목적으로는 자금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프간 주민들이 일상을 되찾기 위해선 국제사회 도움이 절실하다.”

최지은 기자 bloomy@chosun.com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