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정의원·월드비전 국회 토론회 개최
“지난 5년간 한국의 인도적 지원 예산은 3배가량 증가했습니다. 올해 지원 규모는 4036억원 수준입니다. 국제사회에서 분쟁, 기후변화, 전염병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면서 한국도 글로벌 위기 해소에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강화하고 있죠. 문제는 현행 ‘해외긴급구호에 관한 법률’은 인도적 지원의 일부인 긴급구호만을 다루고 있습니다. 재난 예방이나 복구 활동, 만성 재난 지원 관련 내용은 빠져 있다 보니 포괄적인 인도적 지원 활동에 한계가 있습니다.”
남상은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옹호실장은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열린 ‘인도적 지원 법적 기반 강화를 위한 ‘해외긴급구호에 관한 법률’ 개정 토론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번 토론회는 긴급구호와 더불어 재난에 대비하기 위한 예방적 활동과 재건·복구 활동을 포괄하는 인도적 지원의 법적 기반 강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재정 의원과 월드비전이 공동으로 주최로 열린 이번 토론회는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굿네이버스·글로벌호프·기아대책·세이브더칠드런·초록우산어린이재단·컨선월드와이드가 후원했다.
이재정 위원장은 개회사로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인도적 지원을 필요로 하는 인구는 3억6000만명으로 추정된다”며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정부는 글로벌 위기 해소에 책임을 다하려고 하지만, 국내 법체계에는 인도적 지원의 원칙과 방향이 반영돼 있지 않아 일시적인 단발성 지원 계획에 의존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 6월 ‘해외긴급구호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안’을 발의했다”며 “이번 토론회를 통해 한국의 법과 제도, 정치가 어떻게 인도적 지원을 뒷받침해야 할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축사를 맡은 정태영 세이브더칠드런 사무총장은 “재난에 대한 예측과 예방에서부터 재건과 복구에 이르는 전 과정에 포괄적인 개입과 지원이 필요하다”며 “물품 전달 차원의 단기적인 해외긴급구호를 넘어 재난 피해 인구의 존엄성 보장·보호에 중점을 둔 인도적 지원 법적 기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13일 발의된 ‘해외긴급구호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안’은 법률 제명을 기존 ‘해외긴급구호에 관한 법률’에서 ‘해외재난의 인도적 지원에 관한 법률’로 변경하고, 인도적 지원의 정의와 기본 원칙을 재정의하면서 인도적 지원에 있어 국가의 책무와 관련된 조항을 신설했다. 현행법은 인명구조·의료구호 등 긴급구호활동만 포함하지만 개정된 법안은 긴급구호부터 재난 복구와 조기회복, 만성재난지원까지 포괄한다. 또 해외재난의 유형을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으로 구분해 자연재해뿐 아니라 감염병 확산·분쟁 등으로 발생한 피해까지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남상은 실장은 “이번 법 개정은 범정부 차원에서 인도적 지원의 목적과 범위, 원칙, 책무에 대한 공통의 이해와 규범을 제공할 수 있다는 의의를 가진다”며 “정부는 법안을 실효성 있게 추진하기 위해 이행 체계를 마련하고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인도적 지원의 법적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패널 토론도 진행됐다. 김남연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가 좌장을 맡았다. 박명희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장은하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이규호 외교부 개발협력국 심의관, 이경주 KCOC 인도적지원사업부장, 김시원 조선일보 더나은미래 편집국장이 참석했다.
박명희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인도적 지원의 정의와 활동범위를 비교하면 이번 개정안이 굉장히 선도적인 수준”이라면서도 “법률간 중복의 문제, 모니터링의 문제 등은 보완돼야 할 지점”이라고 했다.
이규호 심의관은 “전반적으로 법안 발의 취지에 공감하지만, 인도적 지원을 정의하는 과정에서 재난이 무엇인가에 매몰된 것 같다”며 “개발협력과 인도적 지원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아 모호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경주 부장은 “선진화된 법안이기 때문에 일부 보완돼야 할 점이 있음에도 동 법률 개정안의 기대 효과는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며 “한국의 경우 법과 시행령을 근간으로 행정력이 움직이기 때문에 법안에 인도적 지원을 명시하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시원 편집국장은 우크라이나, 튀르키예, 레바논 현장 취재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인도적 지원의 법적 기반이 마련돼야 함을 강조했다. “현행법만으로는 우크라이나의 사회재난, 튀르키예의 자연재난, 시리아·레바논의 만성재난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자연재해와 분쟁으로 직장, 커리어, 거주지, 가족·친구를 잃은 이들은 위기 상황이 끝난다고 해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재건과 복구, 일상으로의 회복이 중요하기 때문에 복합적이고 장기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이에 제대로 된 근거법을 정비하고 정부와 NGO, 유엔기구가 함께 파트너십을 형성해 국제사회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하길 기대합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우리의 간절한 외침, 아웃크라이’라는 주제로 시리아, 대한민국 아동이 각각 대표로 청원서를 낭독하기도 했다. 레바논 난민촌에 사는 시리아 난민 아동 마르와(14)는 영상 편지를 보내왔다. “시리아 분쟁으로 삶이 산산이 무너진 아동 수백만 명의 목소리를 대표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우리에게 인도적 지원은 생명줄과 같습니다. 식량, 식수, 거주지, 의료서비스 등 생존에 필수적인 필요를 채웁니다. 한 아이로서 저는 모두가 배고프지 않고 아프지 않은 세상을 꿈꿉니다. 그리고 인도적 지원의 적절한 법적 기반이 이 꿈을 실현하는 중요한 한 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아동을 대표해 청원 편지를 낭독한 김민지(11) 독산초등학교 학생은 “시리아 친구 마르와의 간절한 목소리가 매우 생생하고 분명하게 들린다”며 “인류애라는 원칙이 무너지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은 바로 국회의원과 정부 관계자들에게 달렸다”고 말했다. 앞서 월드비전은 지난달 1일부터 국민청원캠페인 ‘아웃크라이(OUTCRY)’를 진행 중이다. 월드비전에 따르면, 지난달 28일까지 누적 아동 394명, 성인 1848명이 아웃크라이에 참여했다.
김수연 기자 yeo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