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나은미래×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
자원봉사 스펙트럼 넓어진다
MZ세대를 중심으로 확산한 ‘플로깅(plogging)’은 자원봉사로 볼 수 있을까? 플로깅은 개인이나 단체가 조깅하면서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줍는 환경 캠페인이다. 코로나 이후 야외 활동 욕구와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의식이 맞물리면서 인기를 얻었다. 딱히 주관하는 단체가 없고 수혜자도 특정되지 않아 자원봉사라기보다 취미로 보는 인식이 더 크다.
결론을 말하면 플로깅은 자원봉사다. 자원봉사활동 기본법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법이 규정한 자원봉사의 기본 원칙은 ‘공익성’ ‘자발성’ ‘무보수성’ ‘비정파성’ 등이다. 플로깅의 특성과 여러모로 꼭 맞는다. 자원봉사센터에 활동 일지와 결과 보고서 등을 제출하면 ‘인증’도 가능하다.
기후 위기와 코로나 팬데믹이 자원봉사의 지형도를 바꾸고 있다. 전통적 자원봉사 활동은 대면 서비스가 주류였다. 활동을 이끄는 단체가 분명했고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최근에는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로 비대면 봉사를 선호하는 분위기다. 단체보다는 개인, 대규모보다는 소규모로 움직이는 활동이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로 불편을 겪는 이웃의 심부름을 하는 일, 커뮤니티 매핑, 온라인 캠페인 참여, 반려견·반려묘 돌봄 봉사, 반려 식물 키우기 등 자원봉사의 형식이 확장되고 있다.
무한 확장하는 ‘비공식 자원봉사’
유엔 산하 유엔자원봉사단(UNV)은 자원봉사를 ‘공식’과 ‘비공식’ 두 가지로 설명한다. 단체에서 정기적으로 하는 활동을 ‘공식 자원봉사(Formal Volunteering)’, 단체를 통하지 않고 하는 봉사 활동을 ‘비공식 자원봉사(Informal Volunteering)’로 부른다. 국제노동기구(ILO)도 비공식 자원봉사 유형을 이웃 장례 돕기, 이웃 반려동물 돌봄, 집수리 봉사, 요리 돕기 등 19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3년 주기로 실시하는 자원봉사 실태 조사에서 ‘비공식 자원봉사 활동’을 조사 항목에 포함하고 있다.
대부분의 비공식 자원봉사 참여자들은 자신들의 활동을 개인적인 선행 정도로 생각할 뿐 봉사 활동으로는 인식하지 못한다. 지난해 발표된 ‘2020 자원봉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자원봉사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33.9%였지만 이웃 돕기에 참여한 적이 있다는 응답자는 72.5%로 높게 나타났다. 이웃 돕기는 비공식 자원봉사에 해당하지만 상당수가 이를 자원봉사로 인식하지 못했다. 소속 단체 등을 통해 자원봉사 시간을 인증받는다고 답한 비율은 34.5%로 전체 봉사자 3명 중 1명꼴이었다. 따로 인증을 받지 않지만 시간이나 활동 내용을 개인적으로 기록해 놓는다는 비율은 21.7%였다. 나머지 절반에 가까운 봉사자들은 봉사 시간을 의식하지 않고 비교적 자유롭게 활동하는 셈이다.
이원규 한국자원봉사문화 연구위원은 “비공식 활동은 공간과 지역, 방식 등에서 경계 없이 확장될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다양한 유형이 나올 수 있다”면서 “자원봉사센터는 이러한 비공식 활동을 포괄하고 조정하면서 자원봉사의 가치와 지평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권미영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장은 “자원봉사 기관의 목표를 전 국민의 자원봉사 일상화로 볼 때 ‘과연 종전의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활동만으로 달성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생기는 게 사실”이라며 “공식적으로 인증되지 않는 다양한 활동을 자원봉사 범주에 포함하고 촉진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개인이 직접 봉사활동 기획하기도
팬데믹으로 위축될 것 같았던 봉사 활동의 영역은 오히려 생각지 못했던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다.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에 따르면, 지난 1년 10개월 동안 코로나 대응에 나선 자원봉사자 수는 302만명에 이른다. 특히 전국에 설치된 코로나19 예방접종 센터에서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무료 봉사한 시민이 22만명이었다. 예방접종 센터의 접종 절차·동선 안내, 예진표 작성 보조, 주차 안내 지원 등 대면 봉사 활동이 대부분이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된 상황에서 마을 단위로 셔틀버스를 운행하며 이동 약자들을 위한 지원 활동에 나선 ‘풀뿌리 자원봉사자’들도 있었다. 한국어가 서툰 이주민들이 코로나 의료 지원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직접 통역에 나선 이주 노동자들도 있었다. 고령층의 심리 방역을 위해 청년 예술가들이 연주회를 열고 이를 온라인 콘텐츠로 올리거나 미술 전시를 기획한 사례도 접수됐다. 권미영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장은 “지난해 백신 수급이 원활하지 않았을 때는 미접종 상태 봉사자도 많았다”면서 “코로나 최일선에는 의료진뿐 아니라 아무 대가 없이 이웃을 위해 헌신한 자원봉사자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스펙 쌓기용 봉사를 거부하는 청소년도 늘고 있다. 코로나가 오래가면서 각 시·도교육청은 중·고등학생의 내신 성적에 반영되는 봉사 활동 시간을 크게 줄였지만, 청소년들은 기관을 통하지 않고 봉사 활동을 직접 기획해 진행하고 있다. 올해 ‘경북 청소년 자원봉사 이그나이트 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안정원(18·의성여고 3)양은 “코로나 이후 대면 활동이 거의 중단되면서 비대면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하다가 지역 아동 센터 아이들에게 마스크 스트랩을 만들어주고 빛이 반사되는 스티커를 우산에 붙여 안전하게 등하교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말했다.
사회적경제·비영리 등 유사 섹터와 연계한 새로운 유형의 자원봉사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플라스틱 포장을 줄이기 위해 직접 용기를 들고 시장이나 매장에서 물건을 받아오는 ‘용기 내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그린피스를 비롯한 비영리단체의 캠페인으로 출발했지만 여러 비공식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로 점차 확산하면서 대형 마트와 전자제품 제조사에서 과대 포장을 줄이겠다고 선언하는 성과를 거뒀다. 반려견과 함께 산불 피해 지역을 복원하기 위한 ‘산타독 프로젝트’도 있다. 칠레 동물 보호 단체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산타독은 반려견 몸에 구멍 뚫린 주머니를 달고 씨앗을 채워 산에서 마음껏 뛰어놀게 하는 활동이다. 반려견들이 이리저리 산을 누비면서 씨앗이 뿌려지는 동시에 땅을 다지게 된다. 신은경 쏘셜공작소 이사는 “비공식 자원봉사는 우리가 새롭게 습득해야 하는 과제가 아니다”라며 “지금까지 비영리 활동가의 영역, 자원봉사자 영역으로 구분하던 것이 온라인, 신기술 등에 의해 경계가 흐려진 것뿐”이라고 말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