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1일(수)

슬세권에서 플라스틱 제로를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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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나은미래×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공동기획
[이것이 사회적경제다]
②언제 어디서든 제로웨이스트

주거 공간에 조성한 제로웨이스트숍
집 앞으로 찾아가는 ‘이동형 가게’도
플라스틱 회수해 업사이클 제품으로

지난 5일 서울 연희동의 사회주택 ‘달팽이집 연희’. 저녁 시간이 되자 입주민들이 건물 1층으로 하나둘 내려왔다. 입주민 공용 공간에 조성한 제로웨이스트숍 ‘틈새구역’에 생필품을 사러 온 것이다. 접이식 테이블 위에 20L짜리 액체 세제, 대나무 칫솔, 천연 수세미, 실리콘 랩 등이 진열돼 있었다. 201호 입주민은 가지고 온 용기에 액체 세제 1L를 담아 올라갔다. 대나무 칫솔을 사 가는 사람, 다회용 실리콘 랩을 사 가는 사람도 있었다.

폐기물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포장재 없이 생활 용품이나 식품을 판매하는 ‘제로웨이스트숍’이 최근 몇 년 새 급격하게 늘었다. 전국적으로 100곳 넘는 제로웨이스트숍이 생겼지만 절반가량이 서울에 있어 수도권 외 지역에서는 이용하기 어려웠다. 서울에서도 구별로 1~2곳 정도 조성된 수준이라 이용자들이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청년을 위한 주거 공간을 관리·운영하는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은 제로웨이스트숍을 ‘집 안’으로 들였다. 틈새구역을 기획한 안지원 조합원은 “슬세권(슬리퍼를 신고 갈 수 있을 만큼 가까운 동네 상권)에 제로웨이스트숍이 있어야 더 많은 사람이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월 서울 광진구의 사회주택 ‘달팽이집 중곡’에서 열린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의 제로웨이스트숍 ‘틈새구역’에서 손님들이 플라스틱 포장을 하지 않은 물품을 둘러보고 있다.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제공

슬리퍼 신고도 갈 수 있는 제로웨이스트숍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은 지난 8월 서울 내 달팽이집 13곳 입주민을 대상으로 제로웨이스트숍 사업 설명회를 열었다. “건물 내 공용 공간에 제로웨이스트숍을 만들어보자”는 조합 설명에 ‘달팽이집 중곡’과 ‘달팽이집 연희’ 입주민들이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조합은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지원금을 받고 제품을 준비해 지난 9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2주씩 제로웨이스트숍을 시범 운영했다.

입주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중곡에서는 표백제 대용으로 쓰이는 과탄산소다 5㎏이 하루 만에 동났다. 연희에서도 샴푸바, 세안 비누 등 진열된 제품 대부분이 매진됐다. 달팽이집 연희 입주민 송지원(가명·33)씨는 “지인들한테 제로웨이스트숍에 대해 얘기는 많이 들어봤지만 정작 경험해본 적은 없었다”며 “이번에 틈새구역에서 컨디셔너바를 구매해서 이용해보니 마트에서 파는 컨디셔너보다 좋은 것 같아 계속 이용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안지원 조합원은 “제로웨이스트숍이 건물 안에 있으니 편했다며 계속 운영해달라는 입주민 요청이 많았다”면서 “무인으로 운영할지, 어떤 제품을 판매할지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한 뒤 본격적으로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제로웨이스트숍을 집 안에 만들 수 없다면 ‘집 앞’으로 부르면 된다. 지난해 10월 설립된 예비사회적기업 ‘다시채움’은 전국 어디든 찾아가는 ‘이동형 제로웨이스트숍’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용자가 원하는 시간, 장소, 필요한 물품 등을 온라인으로 예약하면 제품을 실은 밴 차량인 ‘리필카’가 찾아온다. 리필카 안에는 제로웨이스트숍이 전부 담겼다. 세탁 세제, 섬유 유연제, 샴푸바, 천연 수세미, 대나무 칫솔 등 제로웨이스트숍에서 볼 수 있는 제품들을 한 번에 구경할 수 있다.

플라스틱 자원 회수도 하고 있다. 액체 세제 통(HDPE 소재 플라스틱)을 깨끗이 씻어 다시채움에 신청하면 리필카가 찾아와 수거해간다. 거둬간 폐기물은 플라스틱 업사이클 업체에서 새로운 제품으로 탄생한다. 김보경 다시채움 대표는 “학교, 도서관 등 교육 현장에서 리필카를 부르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용인의 느티나무도서관은 다시채움과 업무 협약을 맺고 아동 교육용 리필스테이션 체험 공간을 조성했다. 경기 고양의 강선초등학교에서도 학생들을 대상으로 리필스테이션 체험을 진행했다. 지난 9개월간 리필카를 이용한 고객은 1200여 명이다. 전국에 리필카 거점을 만드는 게 내년 목표다. 서울, 강원도, 충청도 지역 3곳에서 다시채움 지점을 운영하고 싶다는 이들이 생겨났다. 김보경 대표는 “전국 어디서든 제로웨이스트숍을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다”고 말했다.

프래그가 제주 시민 단체 ‘재주도좋아’와 협업해 제작한 ‘바라던바다 기타피크’. 제주도 바다에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를 업사이클해서 만들었다. /프래그 제공

재활용한 플라스틱 병뚜껑, 롯데월드타워 4개 높이

유럽 플라스틱 산업 협회인 플라스틱유럽(Plastic Europe)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3억6800만t에 달했다. 전년보다 약 900만t 늘어난 수치다. 국제환경법센터(CIEL)에 따르면 플라스틱의 생산부터 폐기까지 전 단계에 걸쳐 배출하는 온실가스양은 지난 2019년 기준 8억5000만t에 달한다. 이는 국내 보령, 당진 등에 있는 500㎽급 석탄화력발전소 189곳이 연간 내뿜는 온실가스 양과 맞먹는다.

플라스틱 병뚜껑처럼 크기가 작은 경우에는 재활용도 어렵다. 작은 플라스틱 제품은 재활용 선별장에서 골라내기 어려워 대부분 소각되거나 매립됐다. 최근에는 제로웨이스트숍에서 플라스틱 병뚜껑만 따로 수거하는 장소가 생겨나고 있다. 소셜벤처 ‘프래그’는 이렇게 수거된 병뚜껑을 포함해 PP, HDPE 단일 소재의 작은 플라스틱들을 키링, 튜브 짜개, 비누 받침, 필름 케이스 등 제품으로 업사이클하고 있다. 지난 2017년 설립된 프래그가 현재까지 재활용한 플라스틱 총무게는 약 516㎏이다. 이건희 프래그 대표는 “병뚜껑 하나의 무게가 3g”이라며 “병뚜껑 약 17만2000여 개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고 말했다. 병뚜껑을 일렬로 쌓아올리면 롯데월드타워 4개 하고도 반을 쌓은 높이와 맞먹는다.

이건희 대표는 글로벌 플라스틱 업사이클 커뮤니티인 ‘프레셔스 플라스틱’에서 무료로 공개한 플라스틱 가공 기계 도면을 보고 지난 2016년 을지로에서 직접 부품을 공수해 플라스틱 업사이클 기계를 만들었다. ‘재주도좋아’ ‘모레상점’ ‘수퍼빈’ ‘페이퍼팝’ 등 다양한 단체, 기업들과 협업해 병뚜껑 업사이클 제품들을 제작했다. 지난해부터는 서울환경운동연합의 ‘플라스틱방앗간’과 협업하면서 재료로 쓸 플라스틱을 모을 수 있었다. 지난 4월까지 진행한 플라스틱방앗간의 ‘참새클럽’ 시즌1~3에 참여한 시민들이 보내준 플라스틱만 총 2897㎏에 달한다.

프래그는 플라스틱 업사이클 브랜드 전환을 꿈꾸고 있다. 단체나 기업 의뢰를 받아 제품을 만들던 OEM 방식을 벗어나 프래그 자체 제품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지난 8월부터는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 서울 시내 제로웨이스트숍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제로웨이스트숍을 통해 플라스틱도 수거하고 프래그의 신제품도 입점시킬 예정이다. 색깔별로 플라스틱을 5t씩 모으는 게 첫 목표다. 공장에 플라스틱 펠릿 제작을 의뢰하기 위한 최소 무게 단위다. 이건희 대표는 “그동안 작은 분쇄기로 일일이 갈아왔지만 이제 양질 재료를 대량으로 만들어 시민들에게 업사이클 제품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강 더나은미래 기자 rive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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