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여행문화학교 ‘동강기행’
가리왕산 휴양림 계곡에 피어 있던 꽃을 처음 보았을 때, 기준이(가명·18)는 “선생님, 이게 꽃 냄새에요? 저 꽃향기 처음 맡아봐요”라고 말했다. 정말 꽃향기를 처음 맡아보냐고 묻자 “지금껏 꽃을 가까이할 기회가 없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음에는 가족들과 함께 오고 싶어요. 특히 엄마랑 꼭 와보고 싶어요” 기준이는 가족들을 폭행한 죄로 보호관찰 처분을 받고 있었다.
지난 10월 22일, 기준이를 포함한 보호관찰대상 청소년 15명이 ‘청소년여행문화학교’에 참석했다. 사단법인 길과문화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연계한 이번 여행은 걷기를 통한 치유와 문화체험을 실시하는 프로그램이다. 폭력, 절도 등의 범죄에 연루되어 소년보호시설인 살레시오 청소년센터에 감호 위탁 중인 아이들은 1박 2일의 일정 동안 강원도 정선군 일대의 동강 길을 걸었다.
“이 풀은 오늘 길에서 보았던 ‘털 초’입니다. 털 초가 바위산에 자리 잡기까지는 꼬박 10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우리들도 털 초처럼 꿋꿋하게 버텨서 꿈을 이루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동강 길을 따라 걸으며 직접 찍은 사진을 발표하는 시간, 이름 모를 야생초에 아이들은 어느새 ‘털 초’라는 이름을 붙였다. 고불고불한 머리카락이 무성하게 난 모양을 닮은 털 초는 이 날 아이들이 찍은 사진에 유난히 많이 등장했다. 단단한 석회암을 뚫고 뿌리내렸다는 사실만으로 평범한 작은 풀은 아이들의 마음속에 깊게 자리한 듯했다.
사진작가가 꿈이라는 민수(가명·17)도 생애 처음 탁 트인 자연환경을 마음껏 촬영할 기회를 가졌다. 그렇게 찍은 사진이 정선읍 달뜨락 마을회관에 모인 모두 앞에서 발표됐을 때, 곳곳에선 감탄이 터져 나왔다. 강변의 나무를 찍은 자신의 첫 작품을 민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녹색이 평온을 가져다준다는데, 이 사진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불편한 마음을 내려놓고 편해졌으면 좋겠습니다.”
평범한 여행조차 해보지 못했던 아이들은 이번 탐방을 통해 기준이와 민수처럼 저마다 색다른 경험을 했다. 동강 탐방안내소에서부터 가수분교까지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질주하기도 했고, 아래가 훤히 내다보이는 병방치 전망대에 오르려 처음 보는 선생님과 손을 맞잡기도 했다. 하루 4시간 이상 걷는 고된 일정에도 아이들이 “걷기가 제일 재밌었다”며 입을 모았던 이유였다.
“선생님, 저 걷기 5분대기 조 할래요. 그때까지 이탈 안 하고, 말썽도 안 부릴 거예요. 만기 다 채워서 나갈게요. 다음에도 꼭 같이 걸어요.” 일정을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아이들은 먼저 다가와서 다음을 기약하는 다짐을 했다. 1박 2일 동안 함께한 아이들의 작은 변화를 직감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