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명 넘게 대피… 진화인력 5000명 투입
재난 현장의 사각지대는?
경북 일대에서 발생한 산불로 3만명이 넘는 주민이 대피했고, 진화 작업에 투입된 인원은 5000명에 육박한다. 긴급 구호 현장은 크게 두 곳으로 나뉜다. 하나는 산불을 끄는 ‘진화대’, 또 하나는 이재민들이 모여 있는 ‘대피소’다. 현장은 그야말로 전쟁터다. 구호단체들은 젖은 몸을 말릴 핫팩부터, 하루에도 몇 번씩 갈아 신는 양말과 속옷까지 ‘현장형’ 물품 지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27일 산림청에 따르면 이날 오전 5시 기준 산불 진화에 투입된 인력은 총 4960명. 이들이 머무는 현장엔 진흙과 연기, 물이 범벅된다. 한 번 작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온몸이 젖는다. 피스윈즈코리아는 26일 의성 진화대에 속옷 2000장과 작업용 양말 3000켤레를 지원했다. 해당 단체 이동환 사무국장은 “진화 인원보다 더 많은 수량을 준비해 원하는 만큼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며 “젖은 양말을 하루에도 다섯 번씩 갈아 신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의 김미감 구호관리팀장은 “작업을 마친 뒤 기온이 떨어지면 체온 유지가 어려워 핫팩 수요가 많은데, 계절상 수급이 쉽지 않다”고 했다.
◇ 3만명 넘어선 대피 인원…생필품 지원부터 일상회복까지
대피소도 평온하지 않다. 특히 이번 산불의 경우 강풍으로 인해 확산 속도가 매우 빨라 대피 초기에 혼선이 컸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27일 오전 5시 기준 대피 인원은 3만7185명. 재난 현장을 수차례 경험한 구호 인력조차 “대피소 준비가 되기 전에 급히 피신했고, 불길이 워낙 빨리 번져 구호 물품을 싣고 가던 차량이 새벽에 통제돼 돌아온 적도 있다”며 “이번만큼 어려운 상황은 드물다”고 했다.
대피소에서는 주로 생필품이 전달된다. 식사, 옷, 세면도구, 수건 등이 기본이다. 산불 연기로 인한 간접 피해를 막기 위한 마스크도 수요가 높다. 고령층이 많은 지역 특성을 고려해, 희망브리지는 대한의사협회와 함께 호흡기 질환 예방을 위한 의료 지원 방안을 협의 중이다. 대피소 운영이 길어질 경우에는 특수 세탁차량을 투입해 무료 세탁 서비스도 제공할 계획이다.
◇ “노인, 이주노동자, 반려동물까지…여전히 놓치는 이들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응답받지 못하는 ‘사각지대’도 많다. 국내에서 고령화 비율(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의성군의 경우, 체육관 대피소 절반이 요양시설에서 온 노인들이다. 대부분 거동이 어려워 누워서 지내며, 보호사의 돌봄이 필요한데, 별도의 공간이나 텐트 설치가 쉽지 않다. “조명·소음을 조절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지내는 노인들의 피로도가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언어 장벽으로 인해 이주 노동자와 다문화 가정도 충분한 보호를 받기 어렵다. 김동훈 더프라미스 상임이사는 “재난 상황에 대비한 다문화 대응 전담팀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꾸준히 냈지만, 여전히 체계적인 대응은 부족하다”고 말했다.
재난 현장에서 ‘동물권’도 새 화두로 떠올랐다. 현행법상 반려동물과의 동반 대피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27일 오전 더프라미스, 동물자유연대, LG유플러스는 지자체 자원봉사센터 등과 협력해 경북 의성읍 체육관 대피소에 국내 최초로 ‘반려동물 쉼터’를 조성했다. 김동훈 이사는 “의성 체육관 대피소 앞 차량 일부에 반려동물을 동반한 대피자들이 있다”며 “임시 거주가 길어질수록 반려동물 돌봄 서비스도 필요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구호단체들은 긴급 지원뿐 아니라 ‘일상 회복’도 재난 대응의 핵심이라고 입을 모은다. 더프라미스는 대피소에서 스트레스에 취약한 아동·청소년을 위해 상담은 물론 미술·음악치료 등 심리지원 프로그램을 마련 중이다. 대상자별 면담을 통해 개별 키트도 제공하기로 했다. 헤드폰이나 애착 인형처럼 연령과 성향에 맞춘 맞춤형 구성이다.
공동체 회복을 위한 프로그램도 추진된다. 피스윈즈코리아는 2022년 울진 산불 당시 운영했던 ‘다시봄 사진관’을 이번에도 연다. 불길에 가족 사진을 잃은 이재민에게 새 사진을 찍어 액자에 담아 선물하는 프로젝트다. 메이크업 전문가와 사진 작가가 직접 마을을 찾아 촬영하고 현장에서 인화까지 한다.
이동환 피스윈즈 사무국장은 “산불 피해가 마을마다 달라 지원에 온도차가 생기고, 그게 때로는 갈등으로 번지기도 한다”며 “사진 촬영 같은 마을 행사는 주민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 나누는 계기가 되고, 그렇게 조금씩 회복의 발판이 마련된다”고 말했다.
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