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유기견 입양센터·부산 장난감 순환센터 등 지역 기반 실험 활발
지자체-민간-비영리 협력으로 사회문제 푸는 ‘프로젝트 자금조달’ 주목
2011년, 일본에서 한 해 동안 살처분된 유기견은 16만 마리. 그중 유기견이 가장 많이 희생된 히로시마현은 획기적인 전환을 택했다. 피스윈즈재팬이 2013년 시작한 ‘피스 원코(ワンコ) 프로젝트’는 보호소 운영과 입양 프로그램을 통해 4년 만에 ‘살처분 제로’를 달성했다. 보호한 유기견 7000여 마리 중 3000마리 이상이 새 가족을 만났다. 이 프로젝트는 고향사랑기부제의 벤치마킹 모델인 일본의 ‘고향세(ふるさと納税)’ 제도를 통해 매년 50억 원 이상의 기부금을 조달하며 운영됐다.
이 모델을 한국에 접목한 것이 ‘유기견 안락사 제로’ 프로젝트다. 피스윈즈재팬의 한국 지부인 피스윈즈코리아와 광주 동구는 현재 고향사랑기부제를 통해 목표액 5억 원 목표 중 3억 원의 기부금을 확보했고, 광주 도심에 유기견 입양센터를 조성해 보호·입양 프로그램을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 ‘누구’보다 ‘무엇’에 투자하는 시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자금 조달 방식으로 ‘프로젝트 단위 투자’가 주목받고 있다. 이 같은 방식은 ‘임팩트 프로젝트 파이낸싱’이라 불린다. 도현명 임팩트스퀘어 대표는 “글로벌 임팩트 투자 자산 중 스타트업 지분 투자는 8~9%에 불과하고, 오히려 프로젝트 기반으로 유입되는 자금은 25% 이상으로 추산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내 임팩트 투자 생태계는 여전히 스타트업 지분투자 중심이다. 이 때문에 자금 조달이 어려운 소규모 조직이나 비영리 프로젝트는 사회문제의 근본적 해결보다 조직의 ‘생존’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단기 성과를 우선시하는 구조 속에서, 본질적 변화보다 보여주기식 결과물에 그치는 경우도 많다.
이 같은 변화는 현장에서도 감지된다. 지난 19일, 서울 성수동 KT&G 상상플래닛에서 열린 ‘플래닛 써밋: 임팩트 프로젝트 파이낸싱’에서는 프로젝트 단위 자금 조달을 실험 중인 사례들이 공유됐다. 행사에는 루트임팩트, 피스윈즈코리아, 코끼리공장, 월드비전 등 8개 기관이 참여해 실무 경험과 과제를 나눴다.
그중에서도 루트임팩트가 운영하는 ‘IP1 기금’은 프로젝트 중심 자금 지원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루트임팩트는 2022년부터 2028년까지 총 36억원 규모로 해당 기금을 운영하고 있으며, 선정된 10개 지원 대상 중 한 곳은 ‘비영리 생태계 활성화’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영리 조직 또는 특정 프로젝트를 대상으로 자금을 배정했다.
기금 운용 과정에서 루트임팩트는 ‘조직’이 아닌 ‘프로젝트’의 목적과 실행 역량에 초점을 맞춘 별도 심사 기준을 마련했고, 2023년에는 주식회사 베이크의 ‘베이크 액션 부스터’ 프로젝트를 지원 대상으로 선정했다. 베이크는 월드비전 사내벤처로 시작해 독립한 소셜 액션 플랫폼으로, 시민이 사회문제 해결 프로젝트를 직접 제안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다. 기존의 후원 중심 비영리 구조를 넘어, 커뮤니티 기반의 참여형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양해진 루트임팩트 매니저는 “프로젝트는 추진 도중 예상치 못한 변수가 많다”며 “우리는 이를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실패도 함께 나누는 신뢰 기반의 지원 체계를 갖추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 “가치사슬 따라 움직이는 프로젝트가 해법”
임팩트 프로젝트 파이낸싱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단순한 협업을 넘어 ‘가치사슬 기반의 연결’이 중요하다.
대표 사례로는 순환경제를 기반으로 한 사회적기업 ‘코끼리공장’이 운영하는 ‘우리동네 ESG 센터’가 있다. 이 프로젝트는 지역 어르신 인력을 활용해 폐장난감을 수리·소독하고, 이를 지역아동센터 등에 기부한 뒤 남는 부품은 분쇄·재활용해 새로운 원료로 활용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이 과정에는 지자체, 민간기업, 공공기관, 지역주민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했다. 부산시와 부산도시공사는 금정구의 유휴 상가 공간을 제공했고, 이마트와 롯데케미칼은 장난감 순환공간과 환경교육 체험장 조성 비용을 지원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금정구청, 금정 시니어클럽은 장난감 수리와 소독을 담당할 어르신 390명을 모집하고 교육했다.
이러한 협업이 가능했던 것은, 장난감 폐기 문제와 취약계층 아동의 놀이 자원 부족이라는 이중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정을 명확히 단계별로 나눈 뒤, 각 단계에 맞는 이해관계자를 참여시켰기 때문이다. ‘장난감 기부 → 수리 및 소독 → 아동센터 배포 → 잔여 자원 재활용’으로 구획된 이 가치사슬에 따라 역할이 배분된 것이다.
코끼리공장은 이 전체 흐름을 설계하고 조율하며, 성과 데이터를 관리하는 ‘백본(backbone) 조직’ 역할을 맡고 있다. 이채진 코끼리공장 대표는 “굉장히 많은 이해관계자를 만나는 것이 핵심”이라며 “각자가 원하는 바를 조율하고, 공동의 목적을 설계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프로젝트 파이낸싱이 임팩트 투자 모델로 자리 잡기 위해선 제도적 기반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호윤 월드비전 경영혁신본부장은 “정부, 비영리, 금융의 기금이 분절돼 있어 협력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문제 해결형 프로젝트에 유입되는 자금을 늘리기 위한 촉매 자본(Catalytic Capital)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시·부동산 분야의 임팩트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참여한 정수현 앤스페이스 대표는 “백본 조직의 역할은 갈수록 중요해지지만, 국내에는 이를 명확히 정의한 개념이나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다”며 “법적·행정적 체계를 갖춰야 사회적 자산으로 축적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정웅 임팩트얼라이언스 팀장은 “사회문제의 구조적 해결을 위해서는 가치사슬 기반의 협력과 프로젝트 파이낸싱 구조를 도입한 규모 있는 자금이 필요하다”며 “이를 통해 중소 조직도 협업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민간 주도의 지속가능한 임팩트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