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운영하는 비영리단체 ‘십시일방’은 아동보호시설 등에서 거주하다 만 18세가 되어 홀로서기를 시작한 자립준비청년에게 주거와 교육을 제공하는 일을 한다. 서류와 면접 심사를 통해 매년 10명의 자립준비청년을 선발하는데, 사업 초기에 아래의 선발 기준을 적용했다.
‘자립 계획’과 ‘성장 가능성’에 60점이나 배점하니 이미 자신만의 계획이 확고하고 성장 궤도에 오른 청년들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다시 말해 굳이 십시일방이 아니어도 어차피 알아서 잘했을 청년들일수록 선발의 우선순위를 가져가는 것이다. 이렇게 선발된 청년들은 역시나 알아서 잘했고, 나는 그들이 낸 성과를 잘 정리해 대외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았다. 기부자분들께도 ‘여러분이 후원해 주신 돈으로 이렇게 좋은 결과를 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선발된 자립준비청년 모두가 ‘어차피 잘했을’ 청년들은 아니었다. 사업 초기에는 십시일방이라는 단체의 인지도가 낮아 지원율이 1대 1에 불과했다. 그래서 심사 점수가 낮은 청년까지 선발됐다. 이들은 알아서 잘하는 청년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는 이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 그렇게 1년이 지났고 이 청년들의 삶 또한 많이 좋아졌다. 나는 이들에게 나타난 변화야말로 ‘십시일방’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중대한 변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듬해부터는 십시일방 사업의 지원자가 많아져 경쟁률이 3대 1까지 치솟았다. 지난번과 동일한 심사 기준을 적용했는데 지원자가 많다 보니 높은 점수를 받은, 어차피 잘할 것 같은 청년들 위주로 선발이 마무리됐다. 덕분에 취업, 진학 등 대외적으로 공표할 만한 성과는 충분히 얻었다. 다만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이런 의문이 더욱 커졌다.
‘이것이 정말로 십시일방이 만든 변화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없었어도 어차피 나타났을 성과가 아닐까?’
또 이렇게 선발된 청년들에게 사회의 자원이 집중된다는 우려가 들었다. 내가 봤을 때 우수한 성과를 낼 것 같은 자립준비청년은 다른 사업 운영자의 눈에도 비슷하게 보일 것이다. 그래서 한 사람이 여러 사업에 중복으로 합격하거나 혜택을 받는 경우가 많다.
최근 3년 동안 정부와 기업, 시민의 관심 덕분에 자립준비청년 지원 사업의 수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하지만 이와 비례해 사업의 혜택을 받는 자립준비청년들의 수가 증가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정보력이 좋고 누가 봐도 우수한 성과를 낼 것으로 점쳐지는 소수의 준비된 자립준비청년들이 누릴 수 있는 사업의 개수가 늘었다고는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십시일방에 합격한 청년들도 이미 서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모두가 처음 만나는 오리엔테이션 자리임에도 자립준비청년들끼리 이미 잘 알고 있어 자기소개 시간이 필요 없는 때도 있었다. 어떻게 아는 사이냐고 물어보니 다른 민간 지원사업에서 만났다고 했다.
사업의 성과를 입증해야 하는 사람은 선발 과정부터 사업이 창출할 성과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쉽고 확실한 길은 알아서 좋은 성과를 낼 만한 ‘이미 준비된’ 사람들을 뽑는 것이다. 이들은 큰 변수 없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러한 청년이 만든 변화에 해당 사업이 기여도는 그리 높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여기 아니면 도움받을 곳이 없는 사람들을 선발하여 믿어주고, 준비시키고, 기회를 주면서 만들어진 변화에 대한 해당 사업의 기여는 더욱 클 것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임팩트고 앞으로 십시일방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이를 위해 십시일방은 내년부터 선발 기준을 바꿀 계획이다.
자립준비청년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사회적 관심과 함께 급증한 지원 사업들. 이제는 ‘어떻게 더 많은 자원을 끌어올 것인가’라는 고민에서 ‘어떻게 하면 지원이 더 시급한 자립준비청년을 발굴하고 고르게 자원을 배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넘어갈 때다.
지원 사업에 잘 나타나지 않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발굴하려는 노력, 남들보다 준비가 덜 된 듯 보이지만 도움이 절실한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결정, 그리고 그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며 만든 작지만 기여도가 높은 변화가 제대로 평가받았으면 한다. ‘누구를 선발할 것인가’라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는 비영리 종사자들에게 확신을 줄 수 있는 사회적 동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호영 임팩트리서치랩 CRO·십시일방 대표
필자 소개 임팩트를 측정·평가하는 전문 기관인 (주)임팩트리서치랩에서 최고연구책임자(CRO·Chief Research Officer)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한양대학교에서 겸임교수로 재직하며 대학생들에게 지속가능경영과 소셜벤처 창업, 임팩트 측정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학교 재학 시절 취약계층 청년들에게 무료 식권을 전달하는 비영리단체 ‘십시일밥’을 설립했고, 현재는 자립준비청년들에게 무료 주거지를 제공하는 비영리단체 ‘십시일방’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는 사회혁신 생태계의 N잡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