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법인과 세금 세미나
일반 공익법인·학교법인·기업재단의 세금 문제 종합적으로 논의
“세법이 규제법의 역할을 하면서 다른 법을 압도하는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안경봉 국민대학교 법학연구소장이 비영리법인과 세금 세미나에서 “한국 비영리법인 지형에 맞는 세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8월 22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법무법인 태평양 재단법인 동천에서 ‘비영리법인과 세금 세미나’가 열렸다. 법조계, 세무계, 비영리법인 관계자 등 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공익법인의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세법 개정에 대해 다각도로 논의했다.
이번 세미나는 비영리법인의 조세문제를 공익법인 일반·학교법인·기업재단의 시각에서 다양한 의견을 교류하기 위해 마련됐다. 국민대학교 법학연구소, 북악세법연구회, 한국공익법인협회,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재단법인 동천이 함께 주최하고, 더나은미래가 미디어 파트너로 참여했다.
◇ 출연재산 많아질수록 공익법인 과세위험 커진다… 기부 위축 우려
먼저 김일석 한국공익법인협회 상임이사가 ‘공익법인의 출연재산 의무사용비율 규제제도 개선방안’이라는 주제로 일반 공익법인 입장에서 출연재산 의무사용 규제가 과도하다고 설명했다. 현행법상 공익법인이 기부를 받으면 이를 3년 안에 공익목적사업에 사용해야 한다. 또한 공익법인이 발행주식의 5% 넘게 기부받은 경우, 받은 재산의 1~3%를 매년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사용하지 못한 금액에 대해서는 가산세를 부과한다.
김일석 상임이사는 “의무사용 기준을 따르려면 공익법인이 출연재산을 자유롭게 써야 하는데 법인의 재정적 기반인 기본재산을 사용하려면 주무부처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롭다”며 “기본재산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보통재산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는 법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출연재산이 많아질수록 공익법인의 과세위험이 커져 기부가 위축되고, 결국 공익사업도 영향을 받는다”며 “법인 설립목적에 맞는 사업을 수행하는 다른 공익법인에도 재산을 출연할 수 있도록 공익법인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교육청 공익법인팀 위대환 전문관은 “법인이 재산을 자율성 있게 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에 개인적으로 동의한다”며 “다만 현재 법에서는 기본재산을 보통재산으로 전환하는 것이나 다른 법인에 재산을 출연할 수 있게 하는 것은 현행법상 어렵다”고 말했다. 주무관청에서는 법인의 안정성을 위해 재산 운용을 보수적으로 제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더함의 정순문 변호사는 “출연재산 의무사용제도의 존재 자체가 공익법인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담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폐지에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며 “그러나 현행 제도가 지나치게 경직적인 측면은 있기 때문에 의무사용액 이월제도 등 현행 제도에 대한 개선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학령 인구 감소에 따라 도산하는 학교법인, 해산장려금 고려해야
이한우 북악세법연구회 세무사는 ‘학교법인의 설립, 운영, 해산과 세금’ 발제를 통해 학교법인의 실정에 맞는 세법 개정이 필요하다 목소리를 냈다. 먼저 학교법인의 토지 취득, 보유, 양도는 투기 목적이 아니라 교육 목적임에도 투기 억제를 위해 도입된 합산과세의 적용을 받는 점을 짚었다.
학령 인구 감소에 따른 사립학교의 어려움도 언급했다. 이한우 세무사는 “많은 지방 사립대학이 도산하고 있는데 원활한 해산을 지원하기 위해 교육 기여도를 반영한 해산장려금 지급에 대한 입법 논의가 필요하다”며 “폐지되었던 학교법인 해산에 따른 증여세 부과특례를 재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김홍균 세무사는 학교 해산 시 혜택을 주어야 한다는 방향성에 동의하며 “최근 학생 수 감소 등으로 인한 사립대학 등의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지원하는 측면에서 학교법인 해산 시 ‘학교법인’과 ‘설립자’에 대한 증여세 과세제도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올해 하반기 ‘사립대학 구조개선법’을 다시 추진한다. 21대 국회에서 여야 모두 사립대학 구조개선법을 발의했지만 ‘해산장려금’의 범위를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정경희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에는 한국사학진흥재단기금의 청산 계정으로 귀속된 재산의 30% 이내에서 해산장려금을 지급하도록 했다. 반면 문정복 더불어민주당 의원 안은 해산장려금의 범위와 한도를 시행령에 위임했다.
◇ 공정거래법보다 엄격한 상증세법 주식보유 한도, 확대 후 사후관리가 중요
유철형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상증세법상 공익법인 주식보유 한도 개선방안’ 발제에서 기업 공익재단법인의 주식보유 한도 규제가 지나치다고 꼬집었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기업재단(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과 특수관계에 있는 공익법인)은 발행주식의 5%까지 보유할 수 있다. 반면, 공정거래법은 이를 15%까지 허용하고, 대신 위반 시 형사처벌 등 제재를 가한다.
유철형 변호사는 ” 해외 입법례를 보면 독일, 스웨덴은 기업 공익재단의 주식보유를 제한하지 않고 있고 미국,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높은 주식 보유 한도를 두고 있으며 의결권 행사에도 제한이 없다”며 “편법 상속이나 증여, 우회적인 기업 지배의 문제가 없거나 적은 경우라면 공익법인의 주식 보유 한도를 현재보다 대폭 높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세법이 기업 우회지배를 강력하게 규제하는 공정거래법보다 엄격하게 주식보유 제한하는 것은 부당하다”면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공익법인의 주식보유 한도를 공정거래법과 동일한 조건하에 15%로 확대하고 사후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공익법인의 주식보유 한도를 5%로 정한 것은 1994년이다. 유 변호사는 “지난 30년 동안 우회적인 기업 지배와 편법 재산 승계를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사후관리제도가 상증세법과 공정거래법 등에서 시행되고 있다”면서 “이러한 30년 간의 관련 법률과 제도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현행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재고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박훈 서울시립대 교수는 “특수 관계 법인에 대한 통제 장치를 마련했다면 공정거래법처럼 주식 보유 한도를 15%까지 높이는 것이 주식 기부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며 “북돋아야 할 주식 기부를 법이 오히려 막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김종필 세무사는 “주식 보유한도를 현재보다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며 “다만,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의 주식보유한도를 확대하는 것은 일반공익법인에 비해 기업우회지배의 우려가 더 있는 것도 사실이기에 사후 관리 방안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yevi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