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시작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과 공유가치창출(CSV·Creating Shared Value)에 대한 논쟁을 지켜보면서, 어쩌면 이러한 논쟁 과정에서 여전히 한국 기업들은 CSR을 기업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사회공헌(Contribution) 정도로 축소해서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CSR의 개념 및 세부 내용은 이미 ISO 26000지침(2010)이나, GRI(지속가능보고서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국제기구)의 G3, G4 가이드라인(2013), UN 글로벌 컴팩트(Global Compact) 10대 원칙 등에서 조직 거버넌스, 환경, 노동, 인권에 대한 책임, 법규 준수와 반부패, 소비자 이슈, 지역사회 참여와 발전에 대한 기여 등으로 확대되고 있고 학계에서는 CSR의 범위를 경제적, 법적, 윤리적, 자선적 책임으로 나누고 있다.
또한 CSR은 사실 어떤 의미에서 기업이 주주의 소유인가, 아니면 사회의 소유로도 볼 수 있는가 하는 기업 본질론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제 세계 각국은 CSR 관련 국제규범 준수뿐만 아니라 이를 자국 내 법규에 도입하는 시도들을 시작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 한국 기업들도 CSR을 단순히 사회공헌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CSR 규제들을 숙지하고 못하고 지키지 못함으로써 기업에 손실을 발생시키는 위험, 즉 법률 리스크(Legal Risk)를 관리해야 하는 시대로 들어서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흐름을 반영해 중국은 회사법(2006)에 CSR의 법적근거를 마련하기 시작한 이래, 순환경제촉진법(2008), 전자정보 제품으로부터 발생되는 오염관리에 대한 행정처분(2006) 등에서 CSR 관련 규제를 마련하고 있고, 중국 국유자산관리감독위원회(SASAC) 및 중국상무부(MOFCOM)의 CSR 가이드라인(2008)이, 최근 외국 투자와 기업의 환경보호 가이드라인(2013) 등이 마련되고 있으며, CSR에 대한 전국 가이드와 CSR 리포트(2014)도 발행되고 있다. 한편 이러한 규제로 인해 GSK(글락소 스미스클라인)의 중국 투자(China Investment)회사가 뇌물수수로, 미국 밥콕 앤 윌콕스(Babcock & Wilcox)의 베이징 지사가 대기오염으로 큰 액수의 벌금을 물기도 하였다.
일본은 일본만의 독특한 CSR 법제 운동으로, 기업과 야쿠자 간의 부패가 다양한 인권침해와 사회 부정의를 야기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 거래에서 계약 상대방이 야쿠자와 제휴하고 있다면 계약을 취소하게 하는 법안(일명 ‘Yakuza Elimination Clauses’)을 도입하고 있다. 또 이를 확대 발전시켜서 기업 거래에서 CSR 준수를 위한 법안(일명 ‘Supply Chain CSR Cla use’) 도입을 제안하는 지침(일명 HRDD지침·Human Rights Due Diligence)을 마련하여 기업이 UN BHR(유엔 기업과 인권)가이드 원칙을 적용시킬 수 있도록 하는 법적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인도 역시 작년 4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인도 개정 회사법에 마련한 CSR 조항을 통해 CSR 의무적용 대상 기업에 대해 사회적 책임 활동 보고 및 지출을 강제화하고 있는데 이는 유례가 없는 세계 최초의 자선적 CSR 강제 법률로 평가되기도 한다.
한편 우리나라는 산업발전법, 지속가능발전법, 사회적기업육성법, 저탄소 녹생성장 기본법, 중소기업 관련 법제 등처럼 개별 법률에 CSR 개념을 승인하기 위한 조항을 마련한 법제들이 나타나고 있긴 하지만 아직 자율적 준수의 성격에 머무르고 있다. 다만 자본시장법이나 국민연금법에 CSR을 승인하기 위한 법률 개정안들이 지속적으로 제출되고 있으며, 앞으로 좀 더 효과적인 CSR 법제 입법화가 필요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한국의 기업들은 이제 CSR 정책 수립이나 집행에 있어 국내외 CSR 관련 법률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이를 기업의 발전 전략으로 삼는 데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