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나은미래 논단] 사회적기업 성장모델 육성이 절실할 때

정선희 세스넷 이사장
정선희 세스넷 이사장

1년 반 전, 미국 대사관 주최로 릭 오브리(Rick Aubry) 스탠퍼드 경영학과 교수와 ‘사회적기업가 정신과 사회적기업의 성공 요건’이라는 주제로 열린 화상 강연에 토론자로 참석한 적이 있었다. 릭 오브리는 1986년부터 2009년까지 미국의 대표적 사회적기업 중 하나인 루비콘 프로그램스를 이끈 CEO였다. 이 강연에서 그는 “이 지구 상에 존재하는 사회문제의 크기에 비해 사회적기업은 거의 지역(local) 수준으로 운영되고 있어 규모의 갭(gap)이 존재한다”고 지적하면서 사회적기업의 성장과 스케일업(Scale up·영향력을 확대하고, 수혜 대상을 늘리기 위해 사회적 혁신을 다른 지역으로 확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 또한 이를 위해 전국적 규모의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지원하는 ‘뉴 파운드리 벤처스’라는 플랫폼을 창립하기도 하였다. 지금 1년 반 전의 강연을 새삼 언급하는 이유는 미국 사회적기업의 파이어니어였던 릭 오브리가 강조한 사회적기업의 ‘성장’과 ‘스케일업’이야말로 지금 우리 사회적기업 육성에서 매우 중대하고도 시급한 주제라는 점을 말하고 싶어서이다.

2007년 사회적기업 육성법이 제정된 이후 사회적기업은 빠르게 외연을 확장해왔다. 1300여개 인증 사회적기업과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정하는 예비 사회적기업까지 합치면 3000여개 이상의 사회적기업이 운영 중이다. 여기에 인증이나 지정을 받지 않고 다양한 사회혁신적 모델을 실험하고 있는 청년 소셜 벤처들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더 늘어난다. 그러나 아직 고용 규모나 사회서비스 제공 정도로 보았을 때는 그 사회적 영향력은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아직은 육성 초기 단계여서 그렇다 할 수 있다. ‘그럼 시간이 지나면 사회적기업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더 커질 수 있을까?’ 질문해본다. 나의 대답은 그다지 긍정적일 수 없을 것 같다.

얼마 전 나는 사회적기업 육성정책 평가 연구에 참여하여 5년 이상 사업 연한과 10억원 이상 매출을 가진 몇 개의 사회적기업 대표들과 심층면접을 한 적이 있다. 면접에 참여한 사회적기업가들은 한결같이 “정부의 지원제도가 사회적기업 초기 설립에 집중되어 있을 뿐 아니라 성장 단계에 대한 면밀한 고려가 없이 1/N로 나눠주기 방식으로 제공됨으로써 소규모의 사회적기업들만 양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지원 방식은 사회기업의 규모화를 제약하고 사회적기업 간 경쟁을 증대시키며 사회적기업의 고비용 구조 또는 비효율성을 야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나눠주기식 지원 제도하에서는 각자가 고생이다”라는 사회적기업 대표의 볼멘소리를 귀담아들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제는 성장 가능한 사회적기업을 발굴하고 이들이 규모화될 수 있도록 집중 지원하는 정책 수단을 마련해야 할 때다. 개발도상국의 사회적기업을 지원하고 있는 NESsT의 임원인 코몰리(Comolli)와 에카르트(Echart)는 한 연구(2014)에서 ‘사회적기업들은 2~3년간의 인큐베이팅 단계를 거치고 자신의 사업 콘셉트를 증명하게 되면 거버넌스(조직구조), 팀 역량, 파이낸싱(외부 금융조달) 등에 대한 세심한 설계를 통해 스케일링의 단계로 진입하고, 최소 5년 많게는 8~10년의 점진적 과정을 통해 성장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초기 단계와는 규모와 내용 면에서 차원이 다른 지원이 필요하다. 사회적기업에 대한 많은 저술을 낸 데이비드 셔먼 교수도 ‘사회적기업의 성공은 창업 단계에서 스케일업 단계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으며 스케일업을 통해 완결된다’고 말하고 있다. 소규모 영세업체들을 양산하는 현재의 육성 정책은 재정립해야 할 때가 되었다. 사회적기업 육성 정책이 시작된 지 7년이 넘어서는 지금, 나는 ‘사회혁신’으로 불릴 만한 ‘작은’ 성공 사례들을 적지 않게 본다. 작지만 성공 가능성이 있는 ‘증명된(proved) 모델’을 발굴하고 이들이 스케일업을 통해 사회적 영향력을 더욱 확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육성프로그램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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