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2024 서울 홈리스월드컵’ 유치한 안병훈 빅이슈코리아 상임이사
‘홈리스월드컵(Homeless World Cup)’은 적절한 주거가 없는 15세 이상 홈리스들이 국가를 대표해 경기를 펼치는 글로벌 축구 토너먼트 대회다. 영국 홈리스월드컵재단은 홈리스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2003년부터 매년 대회를 열고 있다. 전 세계 70국이 대회 파트너로 참여할 정도로 규모와 영향력이 큰 행사다.
박서준과 아이유가 주연한 영화 ‘드림’(이병헌 감독)은 홈리스월드컵에 처음으로 출전한 한국 대표팀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지난 11일 만난 안병훈(41) 빅이슈코리아 상임이사는 축구장에 모인 관중이 꼴찌팀인 ‘대한민국’을 외치며 응원하는 신을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았다. “국뽕 영화냐는 사람들도 있던데 모두 실제 있었던 일이에요. 홈리스월드컵이 그런 대회죠. 선수들과 개최국의 시민이 서로의 환경과 상황, 문화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신기한 광경이 펼쳐집니다.”
내년 10월 이 광경을 ‘직관’할 수 있다. 2024년 홈리스월드컵 개최 도시로 대한민국 서울이 최종 선정됐다. 오스트리아, 스웨덴, 호주, 브라질, 프랑스, 영국, 미국 등 주요 국가에서 열여덟 번의 홈리스월드컵이 열렸지만, 아시아 지역에서 개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안병훈 이사는 “대회 유치를 위해 1년간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변화의 촉매제
―서울 선정 소식은 언제 들었나요.
“한국 시각으로 6일 새벽 홈리스월드컵 재단 제임스 맥미킨 COO(최고 운영 책임자)에게 메시지를 받았어요. 공식 발표는 18일(현지 시각)로 예정돼 있어요. 이 인터뷰가 나오는 날이네요.”
―대회 유치를 위해 재단 관계자들을 한국에 초청하기도 했다고요.
“지자체, 대학, 투자사, 축구협회 관계자 등 다양한 사람과 만나게 해줬어요. 많은 자원과 자본이 홈리스월드컵 개최를 지지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요.”
―서울에서 대회를 열고 싶었던 이유가 뭔가요.
“빅이슈코리아는 지난 10년간 홈리스의 경제적·사회적 자립을 돕는 잡지를 만들어 판매했어요. 홈리스 판매원 10명 중 1명이 잡지 판매를 통해 지역사회 정착에 성공했죠. 하지만 전체 홈리스의 삶은 달라진 게 없습니다. 법도 생기고 제도도 생겼지만 변한 게 없어요. ‘홈리스의 주거권’이라는 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식이 바뀌고 법과 제도가 바뀌어야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죠. 홈리스월드컵이 촉매제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홈리스월드컵을 통해 인식과 제도가 바뀔 수 있다는 뜻인가요.
“물론이죠. 현지에서 홈리스월드컵을 경험했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어요. 홈리스를 게으르고 의지가 부족하고 우울한 이미지로 떠올리는 사람이 많은데 그런 모습과 정반대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홈리스 선수들의 넘치는 에너지와 자신감. 그들을 향한 시민들의 편견 없는 지지, 즐거운 응원전. 그걸 직접 경험하면 생각이 바뀔 수밖에 없어요.”
평균 나이 21세
―홈리스월드컵에 청소년들이 많이 출전하는 것 같아요.
“나라마다 다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청소년과 청년 비율이 높아요. 특히 브라질이나 칠레에서는 풋살 아마추어 리그에서 뛰는 빈민가 청소년들이 주로 출전해요. 잘하는 아이들을 뽑아서 홈리스월드컵에 내보내는 식인데 다들 실력이 대단합니다.”
―한국 선수들의 연령대는 어떤가요.
“올해 7월 미국 새크라멘토 홈리스월드컵에 출전한 한국 대표팀은 전원 10대와 20대로 꾸려졌어요. 선수 7명의 평균 나이가 21세였어요. 18세 차광환 선수는 한국팀 역대 최연소 참가자였어요. 어머니가 베트남 국적을 가진 다문화가정 청소년이에요. 대회에 같이 나갔던 20대 선수들은 모두 자립준비청년들이었습니다.”
―영화에서는 선수들 나이가 많은 걸로 나오던데요.
“‘드림’은 2010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대회를 모티브로 했어요. 그때는 빅이슈 판매원들로만 팀을 꾸리다 보니 모두 중·장년층이었어요. 지금은 보육원 청소년, 쉼터 청소년, 보호 처분 받은 위기 청소년, 자립준비청년 등을 선수로 선발하고 있어요.”
―보육원 청소년이나 자립준비청년들을 ‘홈리스’로 보는군요.
“유럽에서는 장애인 시설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홈리스로 분류해요. 성인이 자신의 주거 공간을 갖지 못하면 모두 홈리스로 분류합니다. 직장을 잃어 월세를 내기 어려워진 사람도 홈리스로 봐요. 주거가 불안하면 다 홈리스예요. 보육원, 쉼터 등 시설에 있는 청소년, 자립준비청년들도 당연히 홈리스로 봅니다.”
―한국에서는 홈리스를 ‘노숙인’이라고 부르잖아요.
“노숙인이라고 부르는 순간 범위가 좁아집니다. 거리 노숙인, 시설 노숙인, 부랑인 등을 지칭하게 되죠. 우리도 주거 선진국들처럼 홈리스라는 용어를 법률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인생을 바꾸는 시간
홈리스월드컵은 가로 22m, 세로 16m 경기장에서 4:4로 경기를 진행하게 된다. 경기장이 벽으로 막혀 있어서 공이 밖으로 나가지 않고 튕겨져 들어오는 구조라 쉴 새 없이 경기를 펼치게 된다. 전·후반 7분씩 경기하고 중간에 1분 쉰다.
―올해 한국팀 성적은 어땠나요.
“5승 6패, 19위를 기록했어요. 브라질, 불가리아, 이탈리아 같은 강팀들과 같은 조에 들어가는 바람에 순위가 내려갔어요. 그래도 역대 최고 성적이었습니다.”
―결과보다는 경험이 중요하죠.
“K팝 열풍 때문인지 미국 현지에서 한국 선수들의 인기가 높았어요. 사진 요청도 많이 받았죠. 피켓을 들고 한국팀을 응원하는 외국인 팬들도 많았어요. 우리 선수들도 다른 나라 경기를 관람하며 응원을 하고 경기장 밖에서도 해외 선수들과 우정을 쌓았어요. 마지막 날에는 모두가 끌어안고 격려하며 다시 돌아갈 서로의 일상을 지지하는 세리머니를 했습니다.”
―선수들은 물론 개최국 시민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아요.
“홈리스월드컵에 참가한 한국팀 선수들의 사례를 보면 그 영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어요. 꿈을 찾아 검정고시를 치르고, 축구 코치가 되기도 하고,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어요. 사회복지사가 돼 청소년 홈리스 시설에서 일하게 된 선수도 있어요. 참가 선수들은 다양한 사람을 만나 편견 없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를 경험하고 치열하게 진행되는 경기 속에서 서로에 대한 존경심을 키웁니다. 또 수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으며 자존감을 높이게 되죠. 이런 긍정적인 변화가 개최국 시민들에게도 큰 울림을 줍니다.”
서울 홈리스월드컵은 내년 10월 개최된다. 전 세계 50국 약 600여 선수가 8일간 한국에 체류하며 대회를 펼칠 예정이다. 홈리스월드컵재단은 지금부터 한 달간 참가국 수요를 조사해 1월경 정확한 개최 일자와 장소를 확정하게 된다. 운영사인 빅이슈코리아는 실무팀을 구성해 본격적인 대회 준비에 돌입한다. 더나은미래는 홈리스월드컵의 공식 미디어 파트너로 참여한다. 대회의 의미와 가치를 확산하고 주거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많은 예산과 자원이 필요한 일이라 스폰서와 협력사를 모집하는 일부터 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입니다. 청소년과 청년 홈리스들이 삶의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게 응원해주세요. 누구나 홈리스가 될 수 있고, 또 누구나 홈리스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김시원 기자 blindletter@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