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8년 만에 가격 올리는 ‘빅이슈’
외국에선 철저한 ‘일자리 제공형 비즈니스’
한국에선 주거·재취업·의료 등 전방위 지원
원가·코로나 사태로 어쩔 수 없이 가격 인상
“판매원들 자립 위한 길… 따뜻한 관심 부탁”
홈리스(homeless)의 자활을 돕는 잡지 ‘빅이슈(The Big Issue)’는 지난 1991년 영국에서 시작됐다. 한국을 비롯해 대만, 일본,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여섯 나라에서 총 8종이 발행되고 있다. 다른 나라의 빅이슈는 홈리스 판매원이 잡지 판매 금액의 절반을 가져가는 일자리 제공형 비즈니스에만 집중하지만, 한국의 빅이슈는 ‘홈리스 지원 단체’ 역할까지 한다. 임대주택, 주거지원금, 커뮤니티, 직업훈련 등 다양한 지원을 하며 홈리스의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어가고 있다.
지난 2010년 설립된 빅이슈코리아는 비영리 사단법인이자 사회적기업이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약 550명의 홈리스가 빅판(빅이슈 판매원)으로 근무했다. 현재 활동 중인 빅판은 33명 정도다. 빅이슈코리아가 잡지 판매량이나 매출보다 더 중요하게 관리하는 데이터는 ‘판매원’에 관한 기록이다. 판매원들이 왜 가족과 연락이 끊겨서 홈리스가 됐는지, 건강 상태나 성향은 어떤지, 현재 어디에 사는지, 언제 마지막으로 회사와 통화했는지 등을 꼼꼼하게 정리해둔 데이터다.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 판매원도 더러 있다. 이들을 찾는 것도 빅이슈코리아 직원들의 업무다. 지난달 초, 고(故) 신영순 판매원이 병원에 실려 갔다는 것도, 며칠이나 연락이 안 되는 걸 이상하게 여긴 직원이 그가 살던 고시원에 찾아갔다 알게 된 사실이었다. 입원한 병원을 수소문해 찾아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신영순씨를 만날 수는 없었다. 폐렴기가 있다고만 전해 들었던 신영순씨는 3월 10일 병세가 갑자기 악화돼 세상을 떠났다. 빅이슈코리아 직원들이 그의 죽음을 안 건 4월 1일이었다.
동료 19명이 함께한 어느 홈리스의 장례식
신영순 판매원의 부고는 빅이슈코리아에도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곧 퇴원하리라 믿었던 그가 세상을 떠난 것도 안타까웠지만, 하마터면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한 채 떠나보낼 뻔했다. 빅이슈코리아는 그가 입원한 병원에 연락해 ‘무슨 일이 생기면 반드시 연락해 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병원에서는 사망 소식을 가족에게만 알렸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병원에 달려간 직원들은 시신이 어디로 갔는지조차 알 수가 없어 발을 동동 굴렀다.
직원들은 고인이 살던 동네의 주민센터를 찾았다. 몇 번이나 사정을 하고서야 고인이 ‘무연고자’로 처리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락을 끊고 지내던 고인의 가족이 시신 인계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장례식은 4월 5일로 예정돼 있었다. 쓸쓸할 뻔했던 장례식에 빅이슈코리아 직원들과 판매원 동료 19명이 모였다. 안병훈 빅이슈 본부장은 “고인과 일상을 나누던 사람이 이렇게 많이 있었는데도 외롭게 그분을 보낼 뻔했다”며 “화장이 끝난 뒤 알았다면 남은 모두에게 너무나 큰 상처였을 것”이라고 했다.
2014년부터 빅판으로 일했으니 올해로 8년이 됐다. 향년 67세로 사망한 신영순씨의 죽음에는 전혀 다른 두 이야기가 남았다. ‘무연고자. 서울시 거주 기초수급자. 혼자 살던 고시원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으나 병원에서 사망. 가족이 시신 인계 거부. 무연고자 장례 처리.’ 서울시립 장례 시설인 승화원에 남겨진 기록이다. ‘말수는 적지만 잘 웃고, 자신도 어려우면서 남을 먼저 돕던 사람. 그의 퇴원을 기다리던 친구가 수십 명이나 있던 사람. 성실한 잡지 판매원.’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써 내려간 그에 대한 기억이다.
이선미 빅이슈코리아 판매팀장은 “어디선가 고독사 소식이 들려오면 보통 사람들은 ‘왜 죽었느냐’고 묻는데, 우리 판매원은 ‘어떻게 발견됐느냐’고 물을 정도로 고립감을 심하게 느끼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코로나19 확산 전에는 판매원들에게 잡지를 가지러 사무실로 나오도록 했는데, 이 역시 ‘생존 확인’과 ‘만남’의 의미가 컸다는 설명이다. 홍대입구역에서 빅이슈를 판매하는 성기영(76)씨는 “외롭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직원들과 얘기하고, ‘힘 내세요’ 하며 인사해 주는 시민들과 만날 때가 가장 기쁘다 “면서 “평소 친분이 있던 신영순씨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팠는데, 빅이슈에서 마지막까지 챙기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고 했다.
잡지사로 위장한 홈리스 지원 단체
홈리스에게 돈보다 절실한 건 ‘사회적 관계’다. 안병훈 본부장은 “빅이슈는 잡지사라기보다 사실상 홈리스 지원 단체로 보는 게 맞는다”고 했다. 지원 사업에 투입되는 예산이 잡지 제작비의 3배를 넘는다. 빅이슈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예산 17억원 가운데 3억5000만원(20.5%)이 잡지 제작비로 쓰였고, 나머지 11억원(64.7%)은 지원 사업에 사용됐다. 지원 사업은 ▲주거 ▲신용 회복 ▲정서 ▲의료·건강 ▲재취업 등 판매원의 사회 복귀를 돕는 전 분야에서 이뤄진다. 구체적으로는 개인 상황에 따라 임대주택이나 고시원 등을 제공하고, 채무 등으로 인한 주민등록 말소자는 이를 되찾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또 닥터노아·열린의사회 등과 연계해 의료 지원도 제공한다.
사회적 관계 회복을 위한 다양한 행사와 모임도 수시로 연다. 봄소풍, 여름소풍 등 철마다 모이고 명절과 연말연시도 챙긴다.
베이커리·가드닝 클래스 등을 운영하기도 하고 생활습관 코칭도 해준다. 바리스타 자격증이나 운전면허 취득도 돕는다. 사회 복귀 준비를 마친 판매원 대상으로는 안정된 직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채용 연계를 지원한다. 빅이슈코리아 판매원으로 일하다가 재취업이나 진학에 성공한 사람만 50명 정도다. 가족과 재결합한 경우도 있다.
판매원들에게 빅이슈에서 잡지를 판다는 건 단순한 일자리 이상의 의미다. 잡지 한 권을 팔면 판매원들에게는 판매가 절반인 2500원이 남는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오랫동안 사회와 단절된 채 살아가던 홈리스들이 사람과 다시 연결되는 경험이다. 잡지를 판다고 금세 판매원들의 형편이 나아지진 않지만 “아직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선미 판매팀장은 “자립에 성공한 판매원 대부분이 시민들과 마음을 나눈 경험을 갖고 있다”고 했다.
빅이슈 직원들 사이에 회자되는 얘기가 있다. 몇 년 전 빅이슈에 찾아온 신참 판매원 얘기다. 처음엔 쭈뼛거리며 시민들에게 빅이슈 안내 인사조차 제대로 건네지 못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얼굴이 확 밝아졌다. 영문을 묻는 빅이슈 직원들에게 그는 웃으며 소중히 품고 있던 목도리를 보여줬다. 그는 “아주 추운 날 덜덜 떨면서 입도 못 떼고 역 앞에 서 있는데, 한 사람이 ‘많이 추우시죠’ 하면서 자신이 하고 있던 목도리를 풀어 매줬다”면서 “아주 오랜만에 느껴본 사람의 온기였다”고 했다. 그는 한여름에도 목도리를 항상 들고 다녔다. “외롭고 힘들어 무너질 것 같을 때마다 이 목도리를 보면 견딜 수 있다”고 한다.
8년 만의 가격 인상
빅이슈코리아가 처음부터 이런 활동을 계획한 건 아니다. 판매원과 자주 교류하다 보니 이들의 어려움이 눈에 보였고, 정부 지원은 빈틈이 많았다. 가장 큰 문제는 국내 주거 취약계층 대상 지원이 현실과 동떨어져있다는 점이다. 현행법상 주거 취약계층을 ‘노숙인 등’으로 정의하다 보니 당장 거리에 나와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쉼터를 만들거나 급식소를 운영하는 식으로 지원이 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정부 통계는 매년 ‘노숙인 역대 최저’라고 발표하고 있지만, 주거 취약계층으로 개념을 넓히면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안병훈 본부장은 “홈리스들은 돈이 생기면 PC방이나 고시원에 갔다가, 돈이 떨어지면 다시 거리로 나오는 등 불안정한 주거 생활을 이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특정 시점에 거리로 나가 사람이 얼마나 나와있는지를 세는 식으론 현실을 확인할 수도,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고 꼬집었다. 빅이슈가 ‘노숙인’이 아니라 ‘홈리스’라는 단어를 고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홈리스라는 말엔 안정적인 주거 공간과 돌아갈 가정이 없는 ‘주거 취약계층’이라는 의미가 폭넓게 담겨 있다.
올해 빅이슈코리아는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다음 달 1일부터 잡지 가격을 5000원에서 7000원으로 올리기로 한 것이다. 지난 2013년 최초 3000원이던 가격을 5000원으로 올린 뒤 8년 만의 가격 인상이다. 선의로 잡지를 사주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기 때문에 최대한 현상 유지를 하려고 했지만, 치솟는 제작비 원가와 코로나19로 닥친 어려움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지난해 잡지 매출은 3억6000만원인데, 제작 원가만 3억5000만원이었다. 거리에서 잡지를 파는 빅이슈 특성상 코로나19 이후 매출이 말 그대로 ‘폭삭’ 주저앉았다. 지난해 판매 부수는 16만9000부. 2019년에 비해 36%나 떨어진 수치다. 홈리스 판매원에게 도움이 필요한 일은 몇 배로 늘어났다. 각 사업부가 인쇄, 마케팅 등 외주 사업을 진행하고 기업이나 재단을 찾아다니며 지원을 받아 버텼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아예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컸다.
빅이슈 직원들은 “솔직히 두렵지만 10년 이상 확인해온 우리 사회의 따뜻함을 믿기로 했다”고 말한다. 앞으로도 할 일이 많다. 잡지를 만들고, 판매원들과 만나고, 다른 지원책을 만들면서 정부나 지자체에 홈리스 관련 정책 토론에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10년간 판매원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온 이선미 판매팀장은 “모두가 어려운 시기 가격을 올려 죄송한 마음”이라면서 “독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판매원들에게 빅이슈는 사람들과 만나는 연결 고리이자 먹을 밥, 옷, 집이 됩니다. 자립을 향한 노력이 이어질 수 있도록 따뜻한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