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토)

미국 청소년들은 어떻게 기후소송에서 승소했을까?

미국 몬태나주(州)에 사는 5~22세 아동·청소년 16명이 주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기후헌법소송에서 14일(현지 시각) 승소했다. 지난 수년간 미 전역에서 비슷한 소송이 제기됐지만, 실제 재판까지 이어진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소송이 제기된 건 지난 2020년. 당시 몬태나주에는 산불과 홍수 등 이상기후 현상으로 인한 피해가 빈발했다. 이런 상황에서 몬태나주 의회는 주 정부의 화석연료 관련 사업 승인 심사에서 온실가스 배출량 조사 항목을 제외하는 정책을 통과시켰다. 미국에서 석탄 채굴 등의 사업을 운영하려면 주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조사하고 허가를 내리는 절차가 필요하다.

몬태나주가 미국의 대표적인 석탄·천연가스 생산지다. 몬태나주에만 가스정(井) 5000개, 유정(油井) 4000개, 정유공장 4개, 탄광 6개가 있다. 미 전역 석탄 매장량의 30%를 차지하는 규모다. 석탄을 이용한 화력발전으로 에너지의 3분의 1가량을 얻는다.

몬태나주 정부가 기후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화석연료 개발을 승인해 지역주민들의 ‘깨끗하고 건강한 환경에 대한 권리’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아동·청소년 환경운동가들. /AFP 연합뉴스
몬태나주 정부가 기후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화석연료 개발을 승인해 지역주민들의 ‘깨끗하고 건강한 환경에 대한 권리’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아동·청소년 환경운동가들. /AFP 연합뉴스

이에 지역 청소년들은 해당 정책이 주 헌법에 위배된다는 취지의 소송을 냈다. 몬태나주의 주 헌법은 ‘깨끗하고 건강한 환경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며 ‘주 정부와 개인은 현재와 미래 세대를 위해 환경을 유지하고 개선할 책임이 있다’고 명시한다. 원고들은 “주 정부가 화석연료 개발을 승인해 건강한 환경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연소 원고인 네이트(5)는 대기질 악화로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다. 또 다른 원고 게오르기(21)는 매해 11개월씩 훈련하던 스키선수였지만, 기후변화로 훈련 장소 구하기가 어려워지면서 진로를 포기했다. 겨울에 눈이 적게 내리고 여름에 산불이 발생한 탓이다. 지금은 스키선수의 길 대신 대학에서 환경과학을 공부하고 있다.

학교 옥상에 태양전지판을 설치하려던 클레어(20)는 몬태나주에서 태양광 발전 설비 설치를 제한하면서 기후위기 대응 활동에 방해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청소년들은 재판에서도 “국립공원 빙하가 줄고 있다” “산불이 길어지면서 천식이 심해졌다”와 같은 고충을 증언했다. 청소년 원고들의 증언에 대해 주 정부는 “기후위기는 전 지구적인 문제로, 몬태나주의 탄소 배출량은 전 지구적 흐름을 바꾸기엔 미미한 수준”이라고 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원고의 손을 들었다. 캐시 실리 몬태나주 지방법원 판사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조사하지 않은 주 정부가 주민들의 헌법상 권리를 침해했다고 판결했다. 실리 판사는 판결문에서 “원고들은 깨끗하고 건강한 환경에 대한 근본적 헌법적 권리를 갖고 있다”며 “기후는 생명 유지 체계의 일부”라고 했다. 주 정부는 판결에 대해 “터무니없다”며 항소할 계획이라 밝혔다.

현지 매체들은 이번 판결에 대해 “역사적인 승리”라며 다른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리처드 라자루스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는 “주 정부가 기후변화 관련 헌법상 권리를 침해했다는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획기적 승리”라고 말했다.

이번 판결이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법원이 ‘깨끗한 환경에서 살아갈 헌법상 권리’를 인정했고, 청소년·비영리단체·과학전문가들의 탄탄한 전략적 연대가 빛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이번 소송을 대리한 비영리단체 ‘우리 아이들의 신뢰(our children’s trust)’의 줄리아 올슨 변호사는 2010년부터 미국 연방정부와 주를 상대로 다양한 청소년 기후소송을 전개해왔다. 지난 13년간의 다양한 소송전략과 경험을 바탕으로 마침내 승소 결과를 얻었다.

재판 과정에서 기후과학자들과 청소년 원고들이 직접 증언할 기회가 있었다는 것도 승소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과학자들은 지난 6월 법정에서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가 기후변화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증언했다. 또 기후변화 완화조치가 없는 경우 환경적 피해가 어떻게 심화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말했다. 청소년 원고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물질적·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다.

하지현 기후솔루션 변호사는 “몬태나주의 핵심 산업군이 화석연료인 만큼 이번 소송에 반대하는 움직임도 매우 컸다”면서도 “▲주 헌법에 ‘깨끗하고 건강한 환경에 대한 기본권’이 명시돼 있었다는 점 ▲주 단위 온실가스 배출량이 큰 몬태나주에서 소송이 제기됐다는 점 ▲기후변화에 따른 극단 기상현상으로 실제 주민들의 건강이 악화했다는 점 등을 재판부가 중요한 요인으로 고려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소송을 지원한 과학자·변호사·지역주민들의 끈끈한 연대가 돋보였다”며 “국내 기후소송 과정에서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이 함께하고, 나아가 재판부도 기후공동체 일원으로 시민의 의견을 청취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국내에서 기후소송을 제기한 청소년들은 법원으로부터 그 어떤 답변도 듣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0년 한국 청소년들은 낮은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아동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소를 제기했으나 3년이 지나 성인이 된 현재까지 헌법재판소의 답변을 기다리는 중이다.

김수연 기자 ye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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