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토)

[사회혁신발언대] 한류 소비자에서 전문가까지, 세종학당재단의 도전

이해영 세종학당재단 이사장
이해영 세종학당재단 이사장

지난 11월,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한국을 주제로 파리에서 강연했다. 강연자는 제주와 서울을 배경으로 한 소설 ‘폭풍우’와 ‘빛나: 서울 하늘 아래’를 집필한 지한파 작가이자, 이화여대 초빙교수를 지낸 프랑스인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다. 13개국 100명이 넘게 참석한 파리 거점 세종학당 기념행사에서 이 거장은 청중들의 들썩이는 기대를 뒤로한 채, 준비된 원고를 그저 조용하고 차분하게 읽어 내려갔다. 그러다 한글 이야기가 나온 좌담에 이르러서 그는 호소력 있는 소통의 태도로 한글에 대한 지식과 사랑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한글은 모든 소리를 표기할 수 있고, 전 세계에서 가장 쉽게 배울 수 있는 문자라면서 말이다. 그날 대문호가 보여준 한글과 한국어 사랑은 놀랄만한 감동이었다.

프랑스인들의 한국어 사랑에 대한 증거는 또 있다. 지난 9월 개원한 프랑스 거점 세종학당에서는 첫 수강생 모집에 900명이 넘는 지원자가 한꺼번에 몰려 북새통이 벌어졌다. 올해 10월 개최된 세종학당 우수학습자 말하기 대회에서 무려 230대1의 경쟁을 뚫고 대상을 받은 학생도 프랑스 라로셸 세종학당 학생이었다. 그런데 유럽에서의 한국어 학습 붐이 어디 프랑스에만 국한된 것이랴. 조용하던 유럽에 한류의 바람과 함께 찾아온 한국어 학습 열기는 유럽에 27개국 57개소의 세종학당이 설치되는 동력이 되었다.

바야흐로 세계는 한류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으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진 한국어 학습 열기로 뜨겁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의 유명 대학에 설치된 한국어 전공 학생 수가 500명이 넘었고 올해 타슈켄트에서 개최된 세종학당 지역별 워크숍에 9개국 184명의 참가자가 몰렸다는 것이나, 베트남에서는 한국어가 제1외국어로 채택되고 국영방송에서 한국어 학습 방송이 송출되었으며, 작년 태국에서는 4만6458명의 중고등학생이 한국어를 배웠다는 보도 역시 놀랄만한 일이지만 이제 낯선 소식도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세계인의 한류와 한국어 사랑은 친숙한 일이 되었다.

세종학당 누적 수강생은 58만명에 이른다. 2021년 집계된 오프라인 학생 수는 8만1476명으로, 740명으로 시작했던 2007년과 비교해 보면, 15년 만에 110배 이상 증가했다. 2007년 13개였던 세종학당 수도 2022년에는 84개국 244개소로 19배 가까이 늘었다. 이들을 가르치는 교원의 수는 또 어떤가? 현지 교원 639명을 포함 911명에 이른다. 그런데도 교원과 강의실 부족으로 2022년 9월 전 세계 세종학당에서는 약 9148명의 대기자가 발생했다.

이들은 왜 한국어를 배우려는 것일까? 2022년 1월 집계한 세종학당 학습자의 학습 목표나 이유를 보면, 한국문화에 대한 단순한 관심은 23.1%로 여전히 상위권이었다. 그러나 한국 유학은 30.4%로 전년 대비 3.1% 상승하였고, 한국기업 취업은 17.6%로 나타났다는 점이 흥미롭다. 취미와 호기심에서 출발한 한국어 학습이 직업적 목적이나 학문적 목적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그들의 미래 설계와 관계 맺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전 세계 학습자가 세종학당을 통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면서 한류 소비자에서 더러는 생산자로, 또 누군가는 전문가로 성장하고 자신의 꿈을 실현해 나갈 수 있도록 한국어 교육의 목표 지점을 다양화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해외 세종학당 출신의 경기민요 전수자, 판소리 소리꾼, 번역가, 사진작가, 방송인, 행정가, 교수의 등장은 그 가능성의 서막이 아닐까? 이러한 시작은 해외에서의 지속 가능한 한국어 교육 발전의 꿈으로 이어질 것이다. 세종학당재단이 대학과 같은 국내외 교육기관은 물론 해외 한국문화원과 한국교육원을 비롯한 재외동포 교육기관, 그리고 국내외 기업체와의 협업을 통하여, 장학, 인턴십과 취업 연계를 시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계 언어 정보를 다루는 에스놀로그를 보면, 전 세계 7151 언어 중 한국어는 사용자 순위는 23위다. 세종학당의 역할을 강조하던 르 끌레지오의 확신에 찬 얼굴이 떠오르면서, 한국어 보급 사업의 현재와 함께 재단이 바라볼 미래 비전을 생각해 보게 된다.

이해영 세종학당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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