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 세계 밀 공급에 비상이 걸렸다. ‘유럽의 곡창지대’로 불리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세계 밀 수출량의 4분의 1을 담당하고 있다. 이로 인해 밀을 주식으로 삼는 취약 지역 아동의 영양 상태도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4일 세이브더칠드런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밀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탓에 예멘, 레바논, 시리아 등 세계에서 가장 취약한 환경에 놓인 아동들이 기아 위기에 직면했다”고 밝혔다.
밀 가격은 올해 들어 약 2달간 연초 대비 20%가량 오름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러시아가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하룻밤 사이에 약 7%나 상승했다. 세계 밀 가격 기준인 시카고 밀 가격은 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우크라이나의 밀 수확 시기인 6월이 되면 가격 상승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호주 루럴뱅크는 앞으로 50% 이상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밀 농사가 전면 중단됐다. 밀 수출 통로였던 항구에 아직 폭발 피해는 없지만 상업선 취항은 멈춘 상태다. 러시아 항구는 열려 있지만, 전쟁 지역이기 때문에 배들이 평소와 같이 접근하기는 어렵다.
밀 값 상승으로 인한 피해는 예멘·레바논·시리아 등 중동 국가에서 특히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7년 동안 내전을 겪은 예멘은 밀 수입 의존도가 95%에 달한다. 이 중 30% 이상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수입한다. 예멘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 식량 가격이 2배 이상 폭등해 일상적으로 끼니를 거르는 가정이 많다. 지난해 말,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은 예멘 인구의 절반이 넘는 1620만명이 급성 기아 상태에 직면했다고 밝혔다. 5세 미만 어린이도 절반에 달하는 인구가 영양실조에 걸릴 위험에 처했다.
레바논도 비슷한 상황이다. 레바논은 전체 밀 소비량의 80%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로부터 들여온다. 세이브더칠드런 레바논 사무소에서 활동하는 제니퍼 무어헤드 디렉터는 “지난해부터 레바논 경제 위기가 심화하면서 기본 식료품 가격이 4배가량 치솟았다”고 전했다. 이어 “하루 식사량을 절반으로 줄인 가정이 많다”며 “이들에게 우크라이나에서 수입하는 밀은 생명줄과도 같다”고 말했다.
시리아는 지난 11년간 내전으로 자국 내 밀 생산 시스템이 붕괴했다. 지난해 시리아 밀 생산량은 분쟁 이전의 4분의 1로 줄었다. 시리아 인구의 56%인 약 1200만명이 식량 불안정을 겪고 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기근으로 위기를 겪는 인구는 현재 전 세계 43국 4500만명으로, 코로나19 이전보다 60%가 증가했다”며 “수입 밀에 의존해 살아가는 아동과 그 가족의 상황이 더 악화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지은 더나은미래 기자 blo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