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 보건소 폐쇄, 탄자니아 약품난…한국의 리더십은 [글로벌 ODA 위기 리포트]

[긴급 진단] 글로벌 ODA 위기 리포트<下>
美 삭감 여파에 20만명 진료 중단…글로벌 약품 공급망도 흔들
한국, 중견국 책무로 다자협력 확대…“성과 가시성 높아”

“자금 부족으로 콩고민주공화국 내 92개 보건소가 문을 닫았습니다. 20만 명이 넘는 주민들이 기본 보건 서비스조차 받지 못하고 있어요.”

김지혜 세이브더칠드런 국제사업1팀 팀장이 전한 현장 소식이다. 수단과 시리아에선 영양실조 어린이 치료가 중단됐고, 440만 파운드(약 200만kg) 상당의 식량이 창고에 쌓인 채 기근 지역 주민들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그는 “글로벌 헬스 펀드, 민간 재단, 기업 후원 등 다양한 재원을 확보하고, 보건 인력 교육과 지역 자원 동원, 커뮤니티 헬스 워커 역량 강화 등 간접 지원 위주로 사업을 전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수단 아코보웨스트의 이동 영양 클리닉에서 세이브더칠드런 직원이 10개월 된 아동의 팔 둘레를 측정하고 있는 모습. 세이브더칠드런은 세계적 원조 축소로 콩고 내 92개 보건소가 문을 닫았다고 전했다. /세이브더칠드런.

굿네이버스의 김수지 국제보건팀장 역시, 탄자니아에서 진행 중인 ‘열대질환 퇴치사업’ 현장을 통해 유사한 위기를 감지하고 있다. 그는 “WHO와 UN의 의약품 공급망 차질이 본격화되고 있으며, 2025년부터 약품 수급 위기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탄자니아 정부의 WHO 의존도가 높아 새로운 약품 조달 방식을 찾는 등 전체 사업의 재구성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 미 원조 흔들리자 ‘글로벌 보건 위기’ 현실화

국제보건기술연구기금에 따르면, 유니세프(UNICEF)는 미국발 자금 삭감으로 2026년 예산이 2024년 대비 최소 20%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세계식량계획(WFP)의 2025년 예산도 전년보다 40% 감소했다. 세계백신면역연합(이하 GAVI)에서는 계획됐던 3억달러(약 4113억원)의 기여금이 줄고, 총 17억달러(약 2조3300억원) 규모의 장기 약속이 철회됐다.

전통적으로 미국에 기댔던 글로벌 보건체계의 구조적 취약성이 드러나면서, 그 공백을 메울 새로운 공여국들의 역할이 재조명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등 중견국이 보건 분야에서 보다 적극적인 기여를 검토할 시점이라고 진단한다.

한국 정부는 올해 글로벌펀드, CEPI, 세계 소아마비 근절 이니셔티브(GPEI) 등에 총 481억 원을 집행할 예정이며, WHO 분담금도 전년 대비 증가해 147억 원에 달한다. 보건 분야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은 약 249만8300달러(약 34억 원) 수준이다. 절대적 금액은 크지 않지만, 증액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책임국으로의 전환 의지를 보여주는 흐름으로도 해석한다.

◇ 글로벌 보건 기여 확대, 한국에겐 ‘전략적 선택’

김형준 GAVI 선임 매니저는 한국의 글로벌 보건 공여 확대가 생명을 구하는 것을 넘어 국격 상승과 국익 증대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김 매니저는 “보건은 성과가 수치로 입증돼 설득력이 높고, 예방접종만 해도 매년 약 400만 명의 생명을 구한다”며 “1달러 투자 시 최대 54달러의 사회경제적 효과가 창출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의 국민총소득(GNI) 대비 ODA 비율은 0.18%로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평균(0.37%)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김 매니저는 “G7과 G20에서도 보건은 기후변화, 경제와 더불어 최우선 글로벌 의제로 다뤄진다”며 “성과 가시성이 높은 만큼, 향후 ODA의 전략적 투자처로 삼기에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WHO, 글로벌펀드, 국제의약품구매기구 등 다자보건기구의 이사국으로서 거버넌스에 참여하고 있으며 글로벌 보건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 /dreamsite

한국은 현재 WHO 집행이사국, 글로벌펀드 이사국, 국제의약품구매기구(Unitaid) 이사국 등 다자보건기구의 주요 거버넌스에 참여하고 있다. 이훈상 세계보건기술기금 이사는 “미국 원조는 정치적 변수에 따른 변동성이 크다”며 “한국이 중장기적 시야로 글로벌 보건 기여에 나선다면 국제사회에서 더욱 신뢰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KOICA, KOFIH, EDCF 간의 협력은 물론, 아프리카 질병관리통제센터, 범아메리카보건기구, 아세안 보건 플랫폼 등 지역 거버넌스를 연계 글로벌 보건 역량도 높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보건 공여는 한국 산업에도 힘을 더한다. 한국은 글로벌펀드의 의료 제품 3위 공급국이자, 진단키트 세계 최대 공급국이다. GAVI를 통해 연간 1500억 원 이상 백신을 수출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국내 바이오 기업의 글로벌 인지도가 크게 높아지고 있다.

한국의 대표 무상원조기관 코이카는 다자협력을 전략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오동길 코이카 디지털·보건·사회개발팀장은 “개발협력 재원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보건 분야 다자협력을 통해 효과성과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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