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 태국 청년이 ‘불법체류’ 단속에 쫓기다 지난달 24일 사망했다. 이름은 품 누 아누삭. 그가 한국 땅을 밟은 건 지난해 8월이다. 가족의 생계에 보탬이 되고자 지방의 공장을 전전한 지 1년 만에 벌어진 비극이다. 그의 죽음을 추모한 사람은 없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흔히 ‘불법 체류자’로 불리는 신분 탓이다. 아누삭의 장례는 사망 열흘 만인 지난 4일 태국에서 치러졌다. 본국의 부모는 막내아들을 데리러 올 형편이 못 됐고, 시신은 방부 처리돼 태국행 비행기 화물칸에 실렸다. 압착 종이로 짠 3만원짜리 관 앞에 어머니는 주저앉았다.
아누삭이 눈을 감은 지 보름이 지났지만, 죽음을 둘러싼 진실 공방은 계속되고 있다. 쟁점은 단속반의 사망 책임 여부다. 단속에 나선 법무부 산하 부산출입국·외국인청(이하 부산출입국청)은 단속 당시 추격이나 신체적 접촉이 일절 없었다며 이번 사망 사건과 무관하다는 입장이지만, 이주민지원단체들은 부산출입국청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사건을 은폐·축소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장 목격자인 동료 8명은 이미 본국으로 강제 추방당한 상황. 목격자는 사라졌고, 고인은 말이 없다.
엇갈린 진술… 태국 노동자 추락사 진실 공방
사건을 맡은 김해중부경찰서에 따르면, 아누삭은 단속이 있던 지난달 24일 오후 3시쯤 단속 현장 인근에서 사망했다. 부산과학수사연구소 부검 결과 사인은 ‘장기 손상으로 인한 과다 출혈’이다. 부검의는 갈비뼈 3대가 부러질 정도로 강한 외부력이 있었으며, 외부 충격으로 인한 간 파열이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추정했다.
지난 11일 사건 현장을 찾았다. 도시 외곽에 자리 잡은 공장은 700㎡ 규모로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곳이다. 왕복 4차로 도로와 맞닿은 정문이 유일한 출입구였고, 수풀이 우거진 계곡을 등지고 있었다. 아누삭은 공장 뒤편에 있는 옹벽 아래 계곡으로 추락하면서 변을 당했다. 옹벽의 높이는 약 60㎝로 성인 남성 무릎 정도 높이지만 옹벽 뒤편은 50m 낭떠러지였다.
부산출입국청은 지난달 25일 설명자료를 통해 “단속반원 16명이 현장 단속에 나서 미등록 체류자 8명(중국인 4, 태국인 3, 베트남인 1)을 적발했고, 이후 공장 인근 수색 과정에 사망 외국인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형진 김해이주민인권센터 대표는 “부산출입국청은 단속 1시간 전 선발대 2명을 보내 공장 뒤편 옹벽 아래에 배치했고, 여러 이주노동자가 공장 뒤편 야산 쪽으로 도망쳤다”며 “고인의 사망 지점이 옹벽에서 바로 내려다보이는 곳인데 단속이 끝나고서야 발견했다는 말은 정황상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목격자의 진술도 부산출입국청의 주장과 충돌한다. 부산출입국청은 “공장 뒤편 인근 야산으로 뛰어가는 외국인을 봤지만 안전을 위해 추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에서 단속된 베트남 이주노동자는 사고 이튿날 김해이주민인권센터와 면담을 통해 “공장을 둘러싼 단속반원을 피해 이주노동자들이 공장 뒤편으로 달아났는데, 옹벽 뒤에 숨어 있던 단속반원들이 사람들을 덮쳤고 이에 놀란 몇몇은 계곡 아래로 굴러떨어지면서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고 증언했다.
사망 지점에 대한 엇갈린 진술도 의구심을 더한다. 사고 다음 날인 25일 경찰이 단속반원 초기진술을 받아 주한 태국 대사관에 보낸 ‘사고경위 보고’를 보면 사망자 발견 지점을 ‘공장에서 200m 떨어진 야산 풀숲’이라고 썼다. 하지만 같은 날 부산출입국청이 발표한 설명자료에는 ‘공장 밖 대략 100m 부근’으로 돼 있다. 김해 동부소방서에 따르면, 사망자는 ‘계곡 옆 야산 평탄한 곳’에 있었다. 이 지점은 공장에서 약 40m 떨어진 장소로 추정된다. 김형진 대표는 “부산출입국청의 진술에는 일관성이 없고 사망자가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는 주장도 믿기 어렵다”며 “한 목격자는 계곡물에 머리를 처박고 엎어져 있는 아누삭을 봤다고 증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목격자가 지목한 계곡 아래에서 고인이 작업 중 착용했던 마스크와 도주 당시 신고 있던 슬리퍼를 발견했다. 해당 목격자는 지난 3일 본국으로 강제 추방됐다.
경찰이 받은 사건 초기 진술이 사실과 다른 점은 또 있다. 경찰이 조사한 사고경위 보고에 따르면, 변사자 발견 시각이 ’15시 17분’이라고 적혀 있다. 김해 동부소방서의 구급일지에 기록된 신고 접수 시각은 ’15시 8분’이다.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이다. 이주공동행동과 부울경이주민공동대책위는 성명을 내고 ▲살인적 단속 추방 중단 ▲태국인 미등록 이주노동자 사망에 대한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등을 촉구하며 “이번 사망 사고가 단속과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현재 부산출입국청은 사고 당일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다. 조영주 부산출입국청 조사과장은 “설명자료로 발표한 내용이 모두 팩트고 더는 할 말 없다”며 “경찰에 물어보라”고 했다. 해당 사건을 수사 중인 김해 중부경찰서 형사과 관계자는 “현재 수사 중인 사안이라 말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무리한 ‘살인 단속’… 쫓아가던 공무원도 목숨 잃어
이번 단속에 출동한 인원 16명이 이례적으로 많은 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등록 체류자 단속 업무는 ‘특별사법경찰관’직무를 수행하는 조사과 직원이 맡는 게 원칙이다. 사건 초기 이주민지원단체에서는 자격이 없는 직원이 단속에 동원된 것 아니냐는 ‘인력 동원’ 문제를 제기했다. ▲단속반원 복장이 제각각인 점 ▲단속 과정을 채증하는 핸디캠을 모두 소지하지 않은 점 ▲정부 합동단속도 아닌 소규모 단일 공장 단속에 이례적으로 많은 인원이 출동한 점 등이 이유다. 부산출입국청 소속 특별사법경찰관 수가 16명 이상이라면 문제 될 게 없다. 이에 대해 부산출입국청은 “단속 전담 인력 수를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단속반은 법무부가 정한 내부 규정도 지키지 않았다. 법무부 훈령인 ‘출입국사범 단속 과정의 적법절차 및 인권 보호 준칙’에는 주의를 요하는 사안에 대해 단속반장에게 미리 현장을 답사하게 한 후 안전 확보 방안이 포함된 보호계획서를 작성하게 하고 있다. 또 단속반원은 출입국 공무원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게 복장을 착용해야 하고, 단속반장은 사업주나 주거지 관계자에게 조사 목적을 알려야 한다.
당일 현장 CCTV를 확인해보면 규정대로 진행된 것은 거의 없다. 우선 단속반 복장부터 제각각이다. 근무 조끼를 입은 직원과 평상복 차림의 직원이 뒤섞여 있었다. 사업주는 단속 여부를 사전에 통보받지 못한 상태였고, 이주노동자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단속반원들은 별다른 설명 없이 이들에게 달려들었다. 단속반원을 발견하고 도주를 멈춘 이주노동자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목 조르는 장면도 포착됐다. 김형진 대표는 “출입국청 직원들이 불법 체류 단속 때 욕하거나 소리를 지르는 건 늘 있는 일이라 특별할 것도 없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행정범’으로 분류되지만, 현실에서는 형사 절차상 ‘체포’ 혹은 ‘구속’에 준하는 방식으로 신체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있다. 살인 사건의 용의자를 구속할 때도 구속영장이 필요하지만,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연행할 때는 영장이 필요 없는 상황이다. 국가인권위가 이 문제를 지적하며 감독 체계를 마련하라고 권고했지만, 법무부는 출입국관리법에 따른 단속이 형사 절차가 아닌 행정 절차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권고 사항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이주민센터 ‘친구’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조영관 변호사는 “단속은 피의자 또는 참고인의 동의를 얻어 연행하는 ‘임의동행’ 형태로 진행돼야 하며 당사자가 거부했을 때 동행을 강요할 수 없도록 돼 있지만 단속반원이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신체를 구속하고 물리력을 행사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면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강제로 연행하면 임의동행이 아니라 현행범으로 체포하는 꼴이 된다”고 말했다.
무리한 단속으로 법무부 공무원이 사망하는 일도 벌어졌다. 지난 2014년 인천에서는 단속 공무원이 현장에서 추락 사고로 순직했다. 2011년에는 당시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현 서울출입국외국인청) 단속팀장이 미등록 이주노동자 추락사를 겪은 뒤 괴로워하다 심장마비로 사망하기도 했다. 당시 유족은 고인의 산업재해를 인정받기 위한 재판을 벌였고, 법원은 고인의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지난해 미등록 체류자 35만5126명… 단속 대신 자진출국 유도 방안 찾아야
“단속이 필요하지만 우리나라 경제 현황이란 것이 불법 체류 노동자가 없으면 지역 3D 업종이 돌아가지 않는다. 아무리 불법 체류자라도 지켜야 할 최소한의 인권이 있다. 우리나라가 그 정도 수준은 된다.”
조국 전 법무장관이 지난달 3일 후보자 시절 ‘국민청문회’ 이름으로 연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내용이다. 하지만 조 전 장관은 지난달 24일 “불법 체류 외국인이 급증한 원인을 분석하고 관계기관과 협의해 수를 감축할 실효적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법무장관 지시는 공교롭게도 아누삭 사망일과 같은 날에 떨어졌다.
단속으로 강제 퇴거 조치된 미등록 체류자는 지난해 3만1811명이다. 지난해 국내 미등록 체류자 35만5126명 대비 약 9%에 해당한다. 최근 법무부가 국정감사 자료로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미등록 체류자는 이미 지난해 숫자를 웃도는 37만5510명으로 집계됐다. 해마다 역대 최대치를 기록 중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산업 현장을 고려한 이주민 행정을 주문한다. 정영섭 이주공동행동 집행위원은 “지역에는 한국 노동자들이 일하러 가지 않는 한계기업이 많고 농어촌은 더 심각한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어, 미등록 이주노동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불법 고용하는 게 현실”이라며 “단속만으로 이주노동자 숫자를 줄이기에만 몰두할 게 아니라 국내 체류 기간이나 범죄 이력 등 기준을 마련해 이들의 양성화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많이 거주하는 경기 안산과 경남 김해에 소규모 제조업 공장이 몰려 있는 건 우연이 아니다.
정부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단속하는 이유는 ▲국내 취업 시장 보호 ▲불법 고용에 따른 세금 미납 ▲피의자·피해자로 범죄 발생 가능성 등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조영관 변호사는 “현행 단속 방식은 어느 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최악의 방법”이라며 “국내 취업 시장 보호는커녕 사람을 구하지 못해 도산하는 영세기업이 발생할 수 있고, 도망자 신세인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공포에 질려 더 깊은 곳으로 숨어버리게 된다”고 했다. 조 변호사는 “미등록 체류자도 소득세를 내게 하고, 대신 체류 자격에 대한 벌금을 부과하는 식으로 자진출국을 유도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제도권 안에서 관리감독을 해야 단속으로 인한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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