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토)

휠체어 타고 올레길부터 백두산까지, 누구나 즐기는 ‘無장애 여행’

중국 베이징으로 ‘무장애 여행’을 떠난 사람들. ⓒ한벗재단

“난생처음 떠나는 해외여행은 막연한 두려움과 긴장감 그 자체였습니다. 저와 같은 중증장애인은 집 밖으로 잠시 외출하는 일조차 쉽지 않거든요. 특히 해외여행에는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비행기를 타고 중국 땅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기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근육 장애가 있는 손모(45·서울 노원구)씨는 최근 중국 여행을 다녀왔다. 그가 해외여행에 나설 수 있었던 건 여행 내내 장애에 대한 이해가 높은 가이드가 함께했고,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저상버스가 동원됐기 때문이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도 손쉽게 여행할 수 있는 ‘무(無)장애 여행’이 뜨고 있다. ‘무장애 여행’은 장애인을 비롯한 영·유아 가족, 임산부, 노약자 등 이른바 ‘교통 약자’가 불편함 없이 여행할 수 있도록 이동성과 접근성을 높여 여행 문턱을 크게 낮춘 것을 말한다. 여행 장벽을 없앴다는 의미로 ‘배리어프리(Barrier-free) 여행’이라고도 부른다.

◇“누구나 여행을 떠날 자유가 있다”

장애인들의 여행 수요가 늘어나면서 무장애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단체들이 늘고 있다. 사회복지법인 한벗재단은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리프트 버스를 동원하고, 여행 코스도 턱이 없는 곳으로만 짠다. 숙소 역시 휠체어 이동에 제약이 없는 호텔로 잡는다. 시각·청각·지체·지적 장애 등 다양한 장애 유형을 가진 사람들이 편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비영리 목적의 투어 프로그램이다.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편백마을’의 사람들이 사회적기업 두리함께를 통해 무장애 제주여행을 즐겼다. ⓒ두리함께

제주시에 있는 예비사회적기업 ‘두리함께’는 이동 약자를 위한 차별 없는 여행, 쉬운 여행을 테마로 지난 2015년부터 지적·지체 장애인을 위한 여행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100곳이 넘는 현장 답사를 통해 구성한 ‘휠체어 제주 올레길’이 인기다. 두리함께를 통해 제주를 찾은 사람은 지난 2015년에는 480명, 2016년 1800명, 지난해 4200명으로 해마다 급격히 늘고 있다. 이 가운데 휠체어 이용자 비율은 40.5%. 재방문율은 50%가 넘을 정도로 만족도 역시 높은 편이다. 이보교 두리함께 이사는 “무장애 여행이 가능한 일상과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제도가 더 필요하다”며 “무장애여행은 시혜적인 이벤트나 복지관광이 아니라 관광·이동 약자들이 주체적으로 여행문화를 즐기고 참여하는 소비주체가 되는 여행”이라고 강조했다.

◇전국 고속·시외버스 중 휠체어 탑승 가능한 버스는 한 대도 없어

하지만 장애인들의 여행에는 여전히 걸림돌이 많다. 2018년 7월 기준으로 전국 1만730여 대에 이르는 고속·시외버스 중에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버스는 단 한대도 없다. 열차도 KTX에만 휠체어 석이 마련돼 있고, 무궁화호의 경우 탑승구에 리프트 설치가 불가능하다.

장애인 객실을 갖춘 숙박 시설도 찾아보기 어렵다. 휠체어로 드나들기 어려운 곳이 많고, 투숙하더라도 현관이나 화장실 문턱 때문에 이용에 불편을 겪는다.

이처럼 장애인에게는 ▲저상버스·콜택시·휠체어 접근 가능 여부 ▲엘리베이터와 경사로 유무 ▲주차장 위치와 출입통로 ▲테이블의 입식·좌식 등 사소한 부분들이 여행을 즐기는 데 있어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캐나다에서 활동하는 접근성 컨설팅 전문가 테아 커디(디자인에이블 부대표)는 “공공장소와 명소에 대한 장애인의 접근성을 제한하는 가장 큰 요인은 건물 우회”라며 “승강기 부족, 출입 통로, 주차 시설 등도 큰 걸림돌로 꼽힌다”고 지적했다.

무장애 여행은 단지 휠체어를 탄 장애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시·청각 장애인, 임산부, 영유아, 노약자 등도 무장애 여행의 대상자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보다 다양한 여행 프로그램이 개발돼야 한다”고 설명한다.

◇무장애여행 대중화, 유니버설디자인에 달렸다

현재 정부를 비롯한 여러 기관은 일상 속 장벽 낮추기 작업에 한창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장애인도 관광에 불편함이 없는 무장애 관광지를 매년 선정해 소개하고 있다. 올해는 ▲아산 외암마을 ▲시흥 갯골생태공원 ▲함양 상림공원 ▲장흥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 등 12곳을 선정했고, 2022년까지 100개소 선정에 목표를 두고 있다.

전국 시·도 지방자치단체들도 하나 둘 교통 약자의 무장애여행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나서고 있다. 서울시는 올해를 ‘무장애 서울관광 원년’으로 선포하고 지난 4월 무장애관광지원센터를 오픈했다. 이곳에서는 전국 공공·민간기관이 보유한 5000개 데이터와 관광지 주변 2000여 곳의 편의시설을 종합해 고객 맞춤형 무장애여행 정보를 제공한다. 경기도는 관광지 출입구 턱, 경사로, 계단 등 각종 장애요소를 파악하기 위해 예산 1억원을 들여 실태조사 중이다. 이후 일부 여행지를 ‘무장애 투어코스’로 지정해 장애물 없는 관광지 조성에 나설 계획이다.

민간 영역에서는 배리어프리를 넘어 보다 넓은 개념의 ‘유니버설디자인’에 무게를 싣고 있다. 유니버설디자인이란 나이·성별·장애에 제약 없이 모두가 특수 디자인에 의존하지 않고 이용할 수 있는 제품과 환경을 디자인하는 것을 의미한다. 홍서윤(31)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장은 “배리어프리가 장애를 중심으로 기존 설비와 건축 환경을 고침으로써 장애환경을 제거하는 쪽이라면 유니버설디자인은 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 도시 디자인 계획단계에서부터 장애를 제거하고 모든 시민의 이용성을 고려한 도시공간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무장애여행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도시와 생활환경 전반에서 누구나 환경적 접근에 장애가 없는 유니버설디자인을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혜원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9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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