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일)

“소록도병원, 자원봉사자들의 힘으로 굴러갑니다”

국립소록도병원 자원봉사 직접 해보니

녹동버스터미널에서 바라본 소록도. 버스로 15분이면 섬에 닿는다. ⓒ송주상 청년기자

지난 8월 13일, 서울에서 버스로 5시간을 달려 전라남도 고흥군 끄트머리에 있는 작은 섬 소록도에 닿았다. 섬 이곳저곳에서는 에메랄드 빛깔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가이드를 따라다니는 단체 관광객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나병 환자촌’이란 인식 때문에 ‘절대 발을 들여놓아선 안 되는 곳’으로 여겨졌던 소록도가 정부와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달라지고 있다. 한센병(나병의 올바른 표현)에 대한 오해가 풀리고, 2009년 육지와 섬을 잇는 소록대교가 개통되면서 사람들과 한층 가까워졌다.

소록도와 인근 지역 사람들에게 해마다 늘어나는 관광객은 반가운 존재다. 섬에 활기를 불어넣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소록도를 찾는 사람들도 증가하고 있다. 국립소록도병원에는 한센병 후유증으로 손발 끝이 수축해 혼자 생활하기 어려운 이들이 의료진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밥을 먹고, 옷을 입고, 목욕을 하는 일상생활을 누군가 곁에서 도와줘야 하기 때문에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절실한 상황이다. 기자는 4박 5일간 국립소록도병원 자원봉사에 참여하며 환자들과 의료진, 자원봉사자들의 이야기를 취재했다.

◇새벽 5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정신없이 흘러가는 봉사자의 하루

병동 입구 게시판에 요일별 업무와 자원봉사자 활동 시간표가 나란히 붙어있다. ⓒ송주상 청년기자

소록도병원 자원봉사자의 하루는 새벽 5시에 시작된다. 가로등 하나만 켜져 있는 바깥은 아직 한밤중. 자원봉사자들은 조끼만 더듬더듬 꿰입고 숙소인 자원봉사회관을 나서 배정된 병동으로 향한다. 일어나지 않은 ‘원생’(소록도병원에선 ‘환자’ 대신 ‘원생’이란 표현을 쓴다)을 깨우고 이불과 베갯잇을 새것으로 갈아주는 것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다. 그 사이 원생들의 아침식사가 준비된다. 일반 식단, 갈아서 나온 식단, 당뇨를 위해 조절된 식단 등 개인별 건강 상태를 고려한 맞춤식이다. 의료진의 지시에 따라 봉사자 세 명이 원생 스무 명에게 식사를 가져다준다. 기자는 특수 제작된 숟가락으로 혼자 식사를 하는 원생 옆에 앉아 고향 이야기, 아침 뉴스 속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도왔다.

원생들이 식사를 미치면 봉사자들도 다 같이 병동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다. 메뉴는 콩나물국에 오이겉절이와 계란부침. 아침부터 다들 바쁘게 움직인 터라 싹싹 비웠다. 식사 후 잠시 눈을 붙이거나 산책을 하며 휴식을 취한 봉사자들이 오전 9시 담당 병동에 다시 모였다. 원생들의 물리치료를 도울 차례. 원생을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기기 전 휠체어가 움직이지 않도록 안전장치 거는 것을 깜빡해 간호사 A씨에게 야단을 맞았다. A씨는 “첫째도, 둘째도 안전”이라며 신신당부했다. 물리치료가 끝나고 병실로 돌아온 원생들과 장기도 두고, TV를 보며 잠시 숨을 돌렸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봉사자들이 안쓰러웠는지 나이 지긋한 한 원생이 “모처럼 우리 동네 왔는데 먹을 거 하나 못 줘서 어떡하느냐”며 “그냥 옆에 앉아 좀 쉬라”고 의자를 끌어당겼다. 내어준 의자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점심때가 됐다. 아침보다는 조금 익숙해진 동작으로 원생들의 식사를 도왔다.

 

◇목욕 봉사 몇분 만에 온몸이 땀으로 젖어

오후 봉사 일정은 1시부터 시작됐다. 가장 힘들다는 목욕 보조 업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원생이 무사히 욕조에 들어갈 수 있도록 거들고, 목욕이 끝난 원생의 몸을 수건으로 닦아주면 된다는 의료진의 간단한 설명에 씩씩하게 욕실로 걸어 들어갔다. 거동이 불편한 원생들을 부축하며 몸을 씻기는 작업은 설명처럼 간단치 않았다. 욕실로 들어간 지 몇분 만에 땀인지 물인지 모를 액체로 온몸이 흠뻑 젖었다. 이 고된 일을 어떻게 매일 하느냐는 물음에 간호사는 “하다 보면 익숙해진다”며 조용히 웃었다.

봉사자들이 원생들과 병원 주변을 산책하고 있다. ⓒ송주상 청년기자

새벽 5시에 시작된 봉사 일과는 오후 5시에 끝났다. 병동을 나서는 봉사자들에게 직원들은 연거푸 고맙다고 인사했다. 김광문 국립소록도병원 자원봉사계장은 “방학 기간엔 그래도 봉사자들이 많이 오는 편이지만 평소엔 항상 일손이 부족하다”며 “봉사자 한 명이 없으면 간호사가 그만큼 일을 더 해야 해 부담이 크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병원 일이 전부 하나하나 사람 손길이 필요한 것들이라서 봉사자가 꼭 필요하다”면서 “소록도병원은 봉사자 힘으로 굴러간다고 봐도 될 것”이라고 봉사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가족 만나러 오듯” 명절마다 찾아오는 봉사자들도 많아

국립소록도병원의 절박함을 몸으로 느낀 봉사자 중엔 몇 번이고 다시 찾아오는 이들이 많다. 제주도에서 온 김모(45)씨는 “명절엔 특히 병원이 휑한데 그게 늘 마음에 걸렸다”면서 “매년 설이나 추석 연휴 중 한 번은 병원에서 어르신들과 보내고 있다”고 했다. 고등학생 김명준(17)군은 “작년에 봉사 시간을 채우기 위해 처음으로 소록도병원을 찾았는데, 올해 또 오게 됐다”고 말했다. “왜 다시 오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다시 와야 할 것 같았어요.” 또 다른 봉사자는 “가족을 만나러 오는 기분으로 매년 이곳을 방문한다”고 했다. “어르신들이 워낙 따뜻하게 반겨주시니까 다시 안 올 수가 없잖아요. 그냥 친척 어르신을 뵈러 오는 마음입니다.”

자원봉사 마지막 날, 침구 교체와 아침식사 보조 업무를 마치고 떠날 준비를 했다. 짐을 챙겨 나온 다른 봉사자 5명과 함께 자원봉사회관 앞에서 김 계장과 인사를 나눴다. 마을버스를 타고 소록대교를 건너 육지의 녹동버스터미널로 가는 내내 다들 말이 없었다. 그때 갑자기 봉사자 한 명이 울기 시작했다. 아무도 왜 우느냐고 묻지 않았다. 창밖으로 점점 작아지는 소록도를 보며 “다음에 꼭 또 오라”며 손을 흔들던 김 계장을 떠올렸다. 아마도 다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송주상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9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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