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7일(금)

“현장의 창의성·자율성 보장돼야 사회적경제 활성화”…중간지원조직 6곳 인터뷰

중간지원조직에 묻다
 

‘사회적경제 활성화’는 문재인 정부의 주요 국정 과제 가운데 하나다. 사회적 기업·협동조합·마을기업 등 사회적경제를 일으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정부와 시민을 연결하는 곳을 ‘중간지원조직’이라고 한다. 중간지원조직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연결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 현장을 지원하면서도, 공공의 사무를 위탁받아 수행하는 행정 전달 체계 역할을 한다. 사회적경제 현장의 변화를 가장 가까이서 체감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사회적경제 현장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더나은미래는 중간지원조직 6곳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1세대 지원조직 중에서는 함께일하는재단과 사회적기업연구원 등 2곳이, 2018년 권역별 통합지원기관 중에서는 모두의경제 사회적협동조합(경남), 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제주), 지역과소셜비즈(경북), 커뮤니티와경제(대구) 등 4곳이 인터뷰에 응했다.

◇여전한 명령 하달식 구조… 1년 단위 계약, 실적 압박

중간지원조직들은 ‘정부 주도의 사회적경제 전달 체계’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현재 사회적경제 중간지원조직은 부처별로 나뉘어 설치돼 있다. 고용노동부와 기획재정부는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을 지원하는 권역별 통합지원기관을, 행정안전부는 마을기업지원기관을, 보건복지부는 자활기업을 지원하는 자활센터 등을 각각 운영하고 있다. 사회적기업의 경우 고용부 산하에 사회적기업 인증과 육성사업 등을 담당하는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있고, 전국 17개 권역별로 통합지원기관이 선정돼 운영된다. 여기에 각 지자체가 조례로 설치하는 사회적경제지원센터(이하 사경센터)도 중간지원조직으로 기능을 하고 있다.

현장은 현 체계를 ‘명령 하달식의 비효율적 구조’라고 지적했다. 박지영 함께일하는재단 사무국장은 “정부가 ‘사회적기업 1000개를 만들겠다’고 발표하면, 사회적기업진흥원은 ‘창업팀 30개를 육성하라’는 식으로 중간지원조직에 실적을 요구한다”며 “행정상 요구하는 자료도 너무 많다”고 말했다.

연 단위로 계약되는 위탁기관 공모가 안정성을 해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현재 권역별 통합지원기관은 매년 위탁 운영기관을 공모하고, 사경센터는 3년 주기로 위탁기관을 새로 뽑는다. 강종우 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센터장은 “매년 인증 사회적기업 수나 매출 등 ‘양적’인 증가를 두고 평가해 압박하지만, 정작 사회 서비스나 취약 계층 일자리 등 원래 추구했던 사회적 가치에 대한 평가는 빠져 있다”면서 “사회적기업이 안정성을 확보하기까지 3~5년을 지켜봐야 하듯, 이를 지원하는 중간지원조직도 긴 호흡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경철 사회적기업연구원 센터장은 “3년 장기 계약을 맺고 매년 평가를 통해 큰 실수가 없는 곳은 공모 없이도 유지하게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행정 지원부터 자금 조달까지 다양한 역할이 중간지원조직에 몰려 있는 것도 문제다. 강종우 센터장은 “설립 초기엔 행정지원과 인큐베이팅 역할만 했는데, 2~3년 지난 후부터는 홍보와 판로 지원, 자금 조달까지 맡게 되면서 업무가 점점 가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커뮤니티와경제 측은 “행정 지원에 전력을 쏟다 보니 사회적경제기업 간의 네트워크 조성, 사회적경제 의제 및 주체 발굴, 사회적경제 기반이나 협력생태계 조성 등 사업에 투자할 시간이 부족하다”며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민관이 공동 사업을 고민하고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회적경제, 民이 이끌고 官은 뒤에서 지원해야

중간지원조직들은 “사회적경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민간에 힘을 싣고, 관은 뒤에서 지원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철훈 지역과소셜비즈 상임이사는 “지난 10년간 정부를 중심으로 사회적경제의 틀을 갖췄지만, 이로 인해 지원 체계의 경직화가 심화됐다”면서 “창의성과 자율성, 책임성을 바탕으로 사회적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새로운 체계를 설계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또 “중간지원조직은 현장의 요구를 파악해 정부에 제안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간지원조직의 역량 강화를 위한 별도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신경철 센터장은 “현재 정부 정책은 사회적기업 역량 강화에 대한 예산 중 일부 교육비를 빼고는 중간지원조직의 역량을 강화하는 정책은 없다”며 “사회적금융, 사회적경제 정책 등 중간지원조직 담당자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적극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종우 센터장은 “전라북도 완주의 ‘완주공동체지원센터(옛 완주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처럼 위탁기관의 주기를 5년으로 설정하고, 1~2차 연도엔 100%, 3~5차 연도엔 50% 등으로 정부 지원을 줄이고 자체 수익 사업으로 운영비를 쓰는 방식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부처별로 흩어져 관리되고 있는 중간지원조직을 하나로 통합하자는 목소리도 있었다. 지난해 10월 정부가 발표한 ‘사회적경제 활성화 종합계획’에도 사회적경제 정책 컨트롤타워를 통해 부처별·법령별로 설치된 중간지원조직을 연계하고 협력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강종우 센터장은 “동일 대상, 동일 목적의 공공서비스는 부처가 달라도 공동으로 할 수 있는 통합 지원 프로세스가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신영규 모두의경제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은 “지원 체계의 통일이 사회적경제의 획일화, 단순화로 갈 가능성도 있다”면서 “다양성과 포용성을 원칙으로 연대할 수 있는 사회적경제 협의체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 사회적경제과 담당자는 “정부의 사회적경제 활성화 계획에도 담긴 해당 안건을 관계 부처와 검토하고 있다”면서 “중간지원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개선 방안도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박혜연·박민영·한승희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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