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근 후 샤워를 하고 나와 에어컨 바람을 쐬며 제철 요리를 해 먹는 시간이 요즘 가장 행복하다. 어떤 곳에서는 40도에 이르는 더위 속에서도 에어컨을 제대로 설치하지 못한다고 하니, 이 정도면 감지덕지라고 생각한다. 올여름은 햇빛만 피하면 비교적 시원한 날이 길었고, 우기에 가까운 장마도 오래 이어지지 않아 생각보다 견딜 만했다. 7월 말이 되어서야 본격적인 무더위가 찾아왔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대로 곱게 지나갈 리 없다. 지난 6월 말 유럽을 강타한 기록적인 폭염으로 일주일 동안 무려 1만 명이 숨졌다. 올해도 이미 심각하지만 내년에는 더 큰 피해가 예상된다. 지난 23일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올해 슈퍼 엘니뇨가 발달하면서 2027년 지구 평균기온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기후위기는 폭염과 산불, 태풍, 가뭄과 같은 자연재난을 더욱 빈번하고 심각하게 만든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도 기후위기로 인해 심화된다. 지난 3월 그린피스가 산불 피해 주민 1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재난심리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9%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고위험군으로 확인됐다. 기후재난은 일시적일 수 있지만 트라우마는 오래 지속된다. 기후위기로 인한 심리적 불안은 범죄로도 이어질 수 있다. 2022년 세계경제포럼은 주변 온도가 1~2도 오를 경우 폭력범죄가 3~5%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앞으로는 불쾌지수가 아니라 ‘기후범죄지수’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기후까지 걱정해야 하니, 비슷한 또래 여성들 사이에서는 출산 전부터 우려가 앞선다. 2021년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33%가 기후변화 등 환경 문제 때문에 자녀를 갖지 않겠다고 답했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이러한 기후불안을 더 크게 겪는다. 지난 1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층의 기후불안 점수는 2.24점으로, 2.44점인 장년층보다 낮아 우울감을 더 크게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낮은 출생률에 기후위기도 한몫 거드는 셈이다.
우리를 더욱 무력하게 만드는 것은 정부와 기업의 역행이다.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를 가동하기 위해 앞으로 지어질 수많은 LNG 발전소, 화석연료 가격을 인위적으로 낮추는 유류세 인하 발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과 더 빠른 감축을 요구한 대국민 공론화 결과에도 불구하고 이를 외면한 국회의 중장기 탄소감축목표까지. 이러한 정책 결정은 기후 대응을 위한 시민들의 노력을 무색하게 만들고 구조적 변화를 늦춘다.
구조적인 변화가 없다면 기후위기 대응은 계속해서 실패할 것이다. 지역 중심의 분산형 재생에너지 체계로 전환하려면 전력시장과 전력 거버넌스를 투명하게 운영하고 전기요금을 현실화해야 한다. 미래가 아니라 현재 더 많은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서는 조기 감축 경로를 법제화하고, 독립적인 권한을 가진 거버넌스가 정부의 이행을 감시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국면은 구조적 전환은커녕 정부와 기업의 개별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전체 구조를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처럼 보인다.
스타 플레이어를 영입해도 감독의 전술이 없으면 축구 경기에서 승리하기 어렵다. 감독을 바꾼다 해도 유능한 감독을 선임하는 시스템이 없다면 장기적인 국제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 기후위기 대응 역시 현재 우리나라 축구가 처한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업의 최고경영자와 부처 장관, 심지어 대통령까지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기후위기 대응을 말하지만,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한 지점에서는 행동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필자는 상근 활동가지만 주변의 모두가 상근 활동가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오히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밥도 잘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며 ‘잘’ 살아야 한다. 돈도 잘 벌고, 가능하다면 자연에 무해한 방식이면 더 좋다. 이유는 단순하다. 기후위기를 걱정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진심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더 오래 활동하고, 더 잘나가고, 사회에서 성공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들이 결국 구조를 바꿀 것이라고 믿는다.
순진한 문제의식에 더 순진한 해결책이 아닌가 싶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한 사람이 지닌 생활양식과 가치관이 올바르고 건강해야 세상도 올바르고 건강하게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무력감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쏟았던 에너지도 컸다는 의미다. 내가 원하는 방식의 기후위기 대응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사랑하는 계절과 소중한 자연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돌보는 여유를 갖기를 감히 권한다. 나만의 사과나무를 심어보자.
김민 빅웨이브 대표
필자 소개 ‘당사자에서 배제되고 파편화된 청년들이 기후위기의 대응의 주체가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활동하는 사단법인 빅웨이브의 대표입니다. 외계의 위협으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해 ‘어벤져스’를 모으는 것과 같이, 더 많은 역량 있는 청년들이 성장하여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온전히 목소리 낼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NGO, 국회, 정부 위원회 등 다양한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모든 사회문제를 기후위기 관점에서 바라보고 기후 문제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관(기후 유니버스)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