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나눔으로”…22세 청년이 남긴 따뜻한 유산

유산기부 당사자 인터뷰 <2> 고(故) 김지환 청년 유가족 남희경 씨
조의금에서 시작된 나눔…추모기부, 일상 속으로 들어온 유산기부

“추모기부는 슬픔을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승화시키는 방법일 수 있습니다.”

22세의 나이에 공군 복무 중 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故) 김지환 씨의 가족은 고인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기부’를 택했다.

지환 씨의 장례식에는 약 500명이 찾았다. 친구와 부대 동료, 자녀를 군에 보낸 부모 모임까지 가족이 알지 못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유가족은 “조의금을 받을 생각이 없었지만 경황이 없었고, 나중에 확인해보니 모르는 분들만 200명이 넘었다”고 전했다. 결국 유가족은 평소 후원을 이어오던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조의금을 기부하기로 했다. 이른바 ‘추모기부’다. 추모기부란 세상을 떠난 이의 삶과 뜻을 기리기 위해 유가족이나 지인이 고인의 이름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최근 비영리단체들은 이 같은 추모기부를 넓은 의미에서 ‘유산기부’의 일환이자 중요한 마중물로 보고 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애도의 시기에 고인을 대신해 나눔을 실천해 본 경험이 죽음과 기부에 대한 심리적 문턱을 낮춰주고, 나아가 남겨진 이들이 훗날 자신의 생애 끝자락에서 유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결정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들과 함께 평소 나눔을 실천해온 고(故) 김지환 씨의 유가족은 그의 사망 이후 조의금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기부해 자립준비청년을 지원했다. 사진은 24년 10월 공군 복무 중 휴가를 나온 지환 씨.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기부 절차는 지환 씨의 이모 남희경 씨가 맡았다. 그는 이번 결정이 갑작스럽게 내려진 선택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희경 씨 남매는 부모의 영향으로 평소에도 봉사와 후원을 이어왔고, 지환 씨 역시 용돈 일부를 기부하거나 저소득층 아동 대상 영어 교육 봉사에 참여해 왔다. 희경 씨는 “지환이는 어릴 때부터 주변을 살피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아이였다”고 말했다.

기부금의 사용처는 지환 씨 또래인 자립준비청년으로 정했다. 희경 씨는 “지환이와 비슷한 나이에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을 떠올렸다”며 “혼자가 되는 순간이 얼마나 두려울지 생각하니 그 마음이 계속 남았다”고 말했다.

장례 부조금이나 상속 재산 일부를 고인을 기리며 기부하는 추모기부는, 넓은 의미에서 유산기부의 한 방식으로 볼 수 있다. 특히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계기로 기부를 경험하면서, 죽음과 기부의 연결을 인식하게 되고, 이후 자신의 유산기부까지 고민이 확장되는 흐름도 나타난다.

◇ 이어지는 마음과 계속되는 추모기부

기부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가족은 지환 씨의 기일이 아닌 생일에 맞춰 기부를 이어가고 있다. 생전 지환 씨 역시 생일에 기부를 하기도 했다.

장례식에 함께했던 이들뿐 아니라 지인의 지인을 통해 해외에서도 기부가 이어졌다. 미국에 있는 희경 씨의 후배와 친구들이 부활절을 맞아 모은 기부금은 올해 생일 기부에 더해질 예정이다.

기부 이후 자립준비청년 10명은 지환 씨 부모에게 편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기부금 사용 내역을 적은 편지와 2주간 감사 일기를 써 보낸 사례도 있었다. 희경 씨는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을 받아 가족들이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초록우산이 운영하는 온라인 추모관에는 지환 씨를 기억하는 지인들의 메시지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초록우산 홈페이지 갈무리

지환 씨를 기억하는 글은 온라인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초록우산이 마련한 온라인 추모관에는 지환 씨를 기억하는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희경 씨는 “계속 슬퍼하기보다는 먼저 떠난 사람을 추억하고 대화를 건네며, 서로 위로를 나누는 공간”이라고 표현했다.

친구들은 “네가 즐겨 마시던 방식으로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해봤다”거나 “학교를 휴학하고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다”는 등 근황을 남긴다. 희경 씨는 “또래 친구들의 글을 보면 웃게 된다”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추모기부가 이어지기도 했다. 희경 씨는 과거 지환 씨의 어머니와 함께 영아원을 찾았다가 봉사를 하지 못하고 돌아온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당시 미안한 마음에 떡을 맞춰 보냈는데, 해당 떡집 사장이 추모관에 글을 남겼다. “어머님의 마음을 응원하며 저희도 음료를 기부했다”는 내용이었다.

◇ “나누면서 기억하는 것, 결국 나를 위한 일”

희경 씨는 추모기부가 사회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기부를 하는 사람에게도 의미 있는 경험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떠난 이를 기억할 때 슬픔에만 머무르기보다,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리고 그 마음을 나누는 방식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추모기부는 일상 속에서도 할 수 있는 나눔”이라며 “누군가를 떠올리며 하는 작은 후원도 모두 추모기부”라고 했다.

지환 씨의 이모 남희경 씨는 추모기부가 슬픔을 나눔으로 옮기는 방식이자, 누구나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나눔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2023년 8월 미국 LA 유니버셜스튜디오를 찾았던 지환 씨.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또 “이런 경험이 쌓이면 유산을 마주했을 때 일부를 나누는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추모기부가 유산기부를 더 가깝게 느끼게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희경 씨는 끝으로 이렇게 말했다. “슬픔은 피할 수 없지만, 다른 방식으로 옮겨볼 수는 있어요. 저는 후원과 자원봉사가 결국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말이 진짜라고 생각합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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