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기부 당사자 인터뷰 <1> 권준하·조강순 부부
원금은 남기고 수익은 기부…펀드로 구현한 유산기부 모델
“내 펀드도 ‘유산’으로 기부할 수는 없을까. 수익이 나면 기부금이 마르지 않고 계속 불어날 텐데.”
유산을 사회에 남기는 ‘유산기부’의 방식은 다양하다. 현금이나 부동산을 맡기는 전통적 방식부터 보험금 수익자 지정, 신탁 활용까지 그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자신의 유산을 ‘펀드’로 남기기로 한 이들이 있다. 권준하 신익산화물터미널 대표(82)와 조강순 후원자(81) 부부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사업을 이어온 권 대표는 지난 30년간 펀드 투자를 통해 자산을 일궈온 베테랑 투자자다. 장기간 시장을 경험하며 자신만의 투자 기준을 쌓아온 그는 펀드 투자를 통해 사업 못지않은 성과를 거뒀고, 자녀들에게 자산을 안정적으로 이전하는 상속 과정도 마칠 수 있었다.
그 곁에는 약학을 전공하고 평생 남편의 든든한 파트너로 함께해온 아내 조강순 여사가 있다. 이들에게 펀드 투자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자산을 지키고 키워 다음 세대로 이어온 ‘또 하나의 사업’이었다.

◇ 투자 전문성이 담긴 ‘펀드’를 사회에 남긴다면
이들의 기부는 2013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아너 소사이어티’에 전국 최초로 부부가 함께 가입하면서 시작됐다.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자산가들의 삶에 감명받은 권 대표의 결단과, “편안하게 살아온 삶에 대한 감사함을 사회에 돌려주고 싶다”는 조 여사의 뜻이 맞닿은 결과였다.
부부는 자녀와 손주들에게 충분한 자산을 물려주며 상속 문제를 먼저 매듭지었다. 권 대표는 “자녀들에게 미리 증여를 마쳤기에 유산 기부에 대한 이견은 없었다”며 “오히려 판단력이 있을 때 빨리 정리하는 것이 자식들을 돕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상속을 마친 뒤 그는 한 가지 질문을 떠올렸다. 돈뿐 아니라, 장기간 축적된 ‘투자 전문성’까지 사회에 남길 수는 없을까.
“현금으로 기부를 하면 은행에 넣어두고 이자만 받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걸 보면서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펀드를 기부할 수 있으면 수익금으로 더 의미 있는 사업을 할 수 있을 텐데요.”
이 아이디어가 ‘유언대용 펀드신탁 기부’로 구체화했다. 기부자가 생전에는 금융회사에 자신의 자산을 맡겨 관리·운용하며 수익금을 기부하고, 사후에는 원금과 남은 수익금을 기부처에 넘기는 방식이다. 원금을 한 번에 소진하는 일회성 기부와 달리, 수익을 기반으로 기부가 지속되도록 설계됐다.
권 대표는 “펀드 수익금을 사업비로 활용하면서도 원금은 유지되기 때문에, 수익뿐 아니라 앞으로의 수익 가능성까지 함께 전달하는 기부”라고 설명했다. 다만 펀드는 원금이 보장되는 금융상품은 아니다. 이 같은 구조는 기부자가 직접 운용을 맡고, 장기간 축적한 투자 경험을 바탕으로 수익을 창출한다는 전제에서 가능한 방식이다.
부부가 지난해 10월 밀알복지재단에 기부한 5억 원 규모의 펀드신탁은 약 5개월이 지난 현재 1억8000만 원의 수익을 냈다. 권 대표는 “일부는 1년 만에 100% 수익률이 나기도 한다”며 “다른 펀드 기부금들도 순항하며 수익을 내고 있다”고 밝혔다.

부부는 이 방식을 통해 지금까지 사회복지공동모금회(46억 원), 숙명여자대학교(20억 원), 서울대학교(10억 원), 익산남성고(10억 원), 서울상대 향상장학회(5억 원), 사랑의달팽이(5억 원), 원광대병원(5억 원) 등 다양한 기관에 원금 기준 총 128억 원을 기부했다.
◇ 남는 건 ‘자산’만이 아닌, 사회로 이어지는 삶
부부가 유산기부를 결심하게 된 데에는 매부인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의 영향이 컸다.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며 “나의 큰 행복을 위해 기부한다”고 말했던 그의 삶을 곁에서 지켜보며, 권 대표는 기부를 실천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임종 직전까지 머뭇거리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는 후회를 남기기보다, 내 취지를 살려 재생산 기부 모델을 완성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이러한 펀드 기부의 결과는 지역과 개인의 삶 곳곳에 이어지고 있다. 사랑의달팽이를 통한 보청기 지원 사업이 대표적이다. 부부의 고향인 전북 익산을 중심으로 청각장애인을 위한 인공와우 수술과 보청기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권 대표는 “낙후된 지역이라 보청기를 맞추려면 먼 곳까지 이동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현장에서 지원이 이뤄지니 반응이 좋았다”며 “고향에서 받은 것을 다시 지역에 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역을 넘어 개인의 삶에 남긴 흔적도 있다. 서울대·카이스트 등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등산 장학금이다. 서울대에서 1457명, 현재 모집 중인 카이스트에서도 800명이 신청했다. 권 대표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장학생의 편지를 떠올렸다. “부모님 손을 잡고 처음으로 고향 산에 올라 평소 못 했던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산 위에서 오롯이 나 자신과 대화하면서 인생의 어려운 순간을 극복할 힘을 얻었습니다” 등이 장학생들의 고백이다.
“등산을 할 때마다 내 생각을 할 거 아니에요. 등산을 시작하게 해 준 사람한테 고마운 마음이 들거든요. 저도 누군가가 권해줘서 등산을 시작했어요. 그 한 사람 한 사람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이건 엄청난 거지요.”

부부는 유산기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하루라도 빨리 실행에 옮기라”고 조언했다. 판단력이 있을 때 결단을 내리는 것이야말로, 이들 부부가 말하는 ‘인생의 완성’이라는 것이다.
끝으로 무엇을 남기고 싶냐는 질문에 권 대표는 잠시 말을 고르다 답했다. “세상이 각박하잖아요. 그래도 살 만하다는 걸 느끼게 해 주고 싶어요. 어렵고 힘든 사람한테 힘이 되고, 그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을 조금 덮어주고 싶고. 나중에 ‘아, 익산에 그런 사람이 있었구나’ 하는 걸 하나 남겨주고 싶습니다.” 조 여사는 조용히 한마디를 보탰다. “사랑이지요. 사랑은 다 감싸주잖아요. 다 해결해 주고.”
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