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 발의만 수차례…번번이 막힌 유산기부법, 이번엔 통과를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한국형 ‘레거시 10′<2>
5년 만에 재발의된 유산기부법
편법 상속 차단 등 안전장치 마련… ‘부자 감세·이중 혜택’ 논란 넘어설까

상속 재산의 10%를 공익단체에 기부하면 상속세 10%를 깎아주는 이른바 ‘한국형 레거시 10’ 제도가 5년 만에 국회에 다시 등장했다. 국내에서 흔히 ‘유산기부법’으로 통칭되는 이 입법 논의는 과거 ‘이중 혜택’과 ‘부자 감세’ 논란에 부딪혀 번번이 폐기됐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은 대기업의 편법 상속을 막는 등 안전장치를 더해 여야 공동으로 발의됐다. 고령화와 기부 감소라는 구조적 변화 속에서 ‘한국형 레거시 10’ 도입 논의가 다시 힘을 얻고 있다.

◇ 2019년 움트기 시작한 유산기부법, 시민사회 캠페인부터 법안 발의까지

2019년 비영리·자선단체들이 9월 13일을 ‘유산기부의 날’로 지정하자고 제안하며 관련 캠페인을 펼쳤고, 같은 해 국회에서는 김병욱·추미애 의원이 유산기부 활성화 법안을 발의했다. /한국자선단체협의회

국내에서 유산기부 논의가 본격화한 건 2019년부터다. 한국자선단체협의회를 중심으로 비영리단체들이 유산기부 캠페인을 벌이면서다. 이들은 유언장 작성 독려 등 인식 개선 활동을 이어가는 한편, 국회에 제도 도입을 요구했다. 이에 발맞춰 굿네이버스, 초록우산, 밀알복지재단 등 주요 단체들은 유산기부 전담 조직을 새로 꾸렸다.

이러한 움직임은 그해 9월 10일, 국회에서 40여 개 단체가 모인 ‘대한민국 유산기부의 날 선포식’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영국·스위스·캐나다 등 주요국이 동참하는 국제 유산기부의 날에 맞춰 우리나라도 매년 9월 13일을 유산기부의 날로 지정하자고 한목소리를 냈다.

이 선포식을 기점으로 국내에서도 유산기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시민사회의 움직임에 정치권도 응답했다. 선포식 당일인 9월 10일,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상속재산의 10% 이상을 공익 목적으로 기부하면 상속세액의 10%를 공제하는 내용의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는 최근 정태호·박수영 의원이 발의한 법안과 동일한 ‘10% 기부 시 10% 공제’ 구조다.

그러나 해당 법안은 20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했다. 김 의원은 2021년 9월 24일 같은 내용의 개정안을 다시 발의했지만, 기획재정위원회(현 재정경제기획위원회)를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같은 해 12월 양기대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공익법인 주식 의결권 규제 완화를 중심으로 하면서 유산기부에 대해서는 상속재산의 10%를 기부하면 상속세액의 10%를 공제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역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또 2019년 10월 31일에는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유산기부를 제도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유산기부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법안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유산기부 활성화를 위한 종합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고, 기부연금 제도를 도입하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이 역시 국회 심사를 넘지 못하고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 이중 혜택 논란…유산기부법, 왜 국회 문턱 넘지 못했나

당시 법안이 막힌 배경에는 ‘이중 혜택’ 논란이 있었다. 현행 상속세법은 공익법인에 기부한 재산을 상속세 과세가액에서 제외하고 있다. 즉 공익법인에 출연한 재산은 애초에 상속세 과세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추가로 상속세액까지 공제해주는 것은 비과세 혜택에 더해 세액까지 낮추는 이중 지원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로 2021년 당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검토보고서는 “공익법인 출연재산에 대하여 상속세 비과세 혜택을 제공 중이므로 출연 후 잔여재산에 대한 세액공제 도입은 과도한 이중지원이 될 우려가 있다”는 기획재정부 의견을 소개했다. 다만 보고서는 동시에 “상속재산의 기부를 통해 부의 사회환원을 장려하고 건전한 기부문화를 확대할 수 있는 긍정적인 취지가 있다”고도 평가했다.

또 상속세를 둘러싼 ‘부자 감세’ 논쟁도 영향을 미쳤다. 피상속인의 전체 재산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현행 ‘유산세 방식’을 상속인이 실제로 받은 재산에 과세하는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바꾸는 논의가 매 정부마다 반복됐고 상속세 완화에 대한 비판과 세수 감소 우려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산기부 세제 혜택 역시 상속세를 일부 완화하는 정책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국회 기획재정기획위원회는 짚었다.

다만 유산기부 활성화가 세수 감소보다 더 큰 공익적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박훈 서울시립대 교수 연구에 따르면, 레거시 10 제도가 도입될 경우 예상 세수 감소 규모는 연간 1253억~6263억 원 수준이지만 민간 기부는 2900억~1조4500억 원 증가할 수 있다. 이는 납세자의 10~50%가 제도를 활용하는 시나리오를 가정한 결과다.

영국의 사례를 통해 실제 공익적 효과를 엿볼 수 있다. 영국은 2012년부터 상속재산의 10% 이상을 기부하면 상속세율을 40%에서 36%로 낮춰주는 레거시 10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제도 도입 이후 유산기부 규모는 2012년 약 23억 파운드(한화 약 4조5600억 원)에서 최근 약 45억 파운드(한화 약8조9200억 원) 수준으로 증가했다. 영국 정부는 레거시 10 도입으로 연간 약 6000만~1억6000만 파운드(한화 약 1200억~3200억 원)의 세수 감소를 예상했지만, 실제 민간 기부 증가 규모는 이보다 약 2.7배 큰 것이다.

◇ 기부는 줄고 고령화는 빨라지고…유산기부 입법 재가동

2026년 들어 멈췄던 유산기부 입법 논의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 1월 21일 국회의원회관에서는 ‘유산기부 활성화를 위한 한국형 레거시 10 제도 도입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를 주도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여야 간사인 정태호 의원과 박수영 의원은 이후 3월 13일 ‘한국형 레거시10’ 법안을 공동 발의했다.

2026년 1월 국회에서 ‘유산기부 활성화를 위한 한국형 레거시10 제도 도입 정책토론회’가 열려 약 500명이 참석했고, 이어 3월에는 정태호·박수영 의원이 19·20대 국회에서 발의된 개정안을 보완해 공동 발의했다. /뉴시스

이번 개정안은 기존 법안과 기본 구조는 같지만 제도의 악용을 막기 위한 장치도 포함했다. 공익법인을 활용한 편법 상속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과 특수관계에 있는 공익법인은 세제 혜택 대상에서 제외했다. 아울러 유산기부를 받는 공익법인의 투명성 확보가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해, 세제 혜택을 적용받는 공익법인의 요건과 운영 기준 등 세부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법안 심의 검토를 담당하는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여야 간사들이 공동 발의한 만큼, 실제 입법 가능성에 대한 기대도 크다. 과거 법안들은 모두 위원회 단계에서 기대 효과와 우려가 동시에 제기되며 논의가 멈췄기 때문이다.

처음 법안이 발의된 2019년보다 지금은 유산기부의 필요성이 더 커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영국 자선지원재단(CAF)의 세계기부지수에 따르면 한국의 기부 순위는 2018년 146개국 중 60위에서 최근 144개국 중 88위로 하락했다. GDP 대비 기부금 비중도 2007년 0.84%, 2017년 0.75%, 2022년 0.65%로 감소하는 추세다.

최근 유류분 제도 변화도 유산기부 논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로 꼽힌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상속인이 유류분을 청구할 경우 기부자의 의사가 제한될 수 있다는 점이 유산기부 확산의 걸림돌로 지적돼 왔다. 그러나 2024년 헌법재판소는 피상속인의 형제자매에게 유류분을 인정한 민법 규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려 해당 규정의 효력을 상실시켰으며, 패륜적 행위를 한 상속인에게도 유류분을 인정하는 제도에 대해서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025년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복지 수요 역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정부 재정만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개인 재산의 사회 환원을 확대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으며, 유산기부 활성화가 그 대안 중 하나로 거론된다. 이런 배경에서 ‘한국형 레거시 10’ 제도 도입 논의도 다시 힘을 얻고 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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