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연금술사가 되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악보’를 읽어드립니다

박정호 MYSC 부대표 겸 CSO

작년에 이어 한국을 찾은 일본 피아니스트 츠지이 노부유키는 선천적 시각장애를 지니고 있다. 점자 악보가 귀해 그는 왼손·오른손 파트를 코치가 한 소절씩 녹음해 준 것을 들으며 곡을 외워 연습한다. 지난달 자카르타에서 만난 공유주거 스타트업 루키타(Rukita)와의 미팅은 마치 그 코치가 된 듯한 기분을 안겨주었다.

루키타는 공유주거와 청소·세탁 서비스, 주거 정보 플랫폼까지 운영하는 인도네시아 1위 프롭테크 기업이다. 자매 대표를 처음 만난 2023년, 그들은 필자를 도심 옆 미개발 지역의 여인숙(Kost)으로 데려갔다. 사회초년생들이 한 달 300달러를 내고도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이어 찾은 루키타의 코리빙 하우스는 쾌적한 공간과 합리적 비용으로 확연히 대비됐다.

본사에서 만난 자매는 자신들의 사업이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세부목표(11.1)에 정확히 부합한다는 사실을 그날 처음 알았다. 심지어 서울에서 가져간 SDGs 피켓을 기념품처럼 기증하고 돌아와야 했다.

2년이 흐른 지금, 루키타는 3만 개 방과 5만 명의 고객을 보유한 인도네시아 최대 코리빙 서비스로 성장했다. 단순한 숫자 확대에 그치지 않았다. 기존 월 270달러(한화 약 37만원) 수준에 개별 에어컨과 가구, 공용주방·거실, 세탁·청소 서비스까지 제공하던 모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올해는 ‘우마(uma)’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내놨다. 월 100~150달러로 깨끗한 방과 청소·세탁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상품이다.

대표 사브리나는 “청년 입주자들의 안정감을 보며 더 많은 이들에게 적정 주택을 보급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출시와 동시에 전 객실이 만실을 기록했고 대기자까지 몰려 확장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창업자 자매가 새롭게 주목하는 키워드는 ‘이웃’이다. 그들이 짓고 있는 9층 규모 시그니처 공유주택은 아직 덜 개발된 주도로 옆에 자리한다. 건물 사방에는 LED 가로등이 들어선다. 지자체 지원이 아닌, 입주민과 지역 주민 모두의 안전을 위해 회사가 자체 설치하는 조명이다.

지난 2월 ESG 리포트와 비콥 인증 준비 과정에서 필자가 ‘팀하스 주차장’ 사례를 전한 적이 있다. 미국 슬럼가에 일부러 대형 주차장을 지어 불을 밝힘으로써 지역 치안에 기여한 사례였다. 반년 뒤 루키타의 설계도에는 이미 그 아이디어가 반영돼 있었다. 올해 9월 개관하는 이 건물은 직장인들의 밤길 안전까지 책임지게 될 것이다. 이 가로등은 KOICA 혼합금융 사업을 통한 펀딩으로 가능해졌다.

많은 스타트업이 투자와 지원금을 받지만, 그것이 오래된 사회·환경 문제 해결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제대로 쓰일 때 그 자금은 지역 사회를 바꾸는 힘이 된다. 왼손·오른손으로 짧게 나눠 녹음한 소절들은 평범해 보이지만, 모이면 수많은 청중이 숨죽여 듣는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가 된다. 마찬가지로 루키타에 건넨 조언은 입주 청년과 이웃의 밤길을 밝히는 불빛이 됐다. 그 불빛은 머지않아 인도네시아의 다른 도시, 더 나아가 동남아 곳곳에서도 반짝이게 될 것이다.

박정호 MYSC 부대표 겸 CSO

필자 소개

MYSC에서 임팩트 투자와 글로벌 사업을 맡고 있습니다. 특히 임팩트테크,기술기반의 소셜벤처,에 투자하고 동남아에서 임팩트를 확장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ODA재원을 제공하는 혼합금융을 적극적으로 적용하고,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하는 콜렉티브 임팩트 프로젝트를 추진하여 임팩트를 확대하는 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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