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여전히 따뜻한 法] 자립의 무게, 빈틈에 놓인 무연고 탈북청소년

무연고 탈북청소년을 처음 마주한 것은 2016년의 일이다.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한 멘티에게 추석 연휴 계획을 묻자, 그는 담담히 “가족이 없어 아무런 특별한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혼자 북한을 탈출해 남한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털어놓은 것이다. 이미 몇 차례 멘토링을 진행하며 어느 정도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그 고백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후 그는 학업이나 진로 대신 교우관계, 연애상담 등 일상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부모와 함께라면 가정에서 시시콜콜하게 나눌 대화들이었다.

2024년 4월 기준 국내에 거주하는 북한배경학생은 2600여 명. 이 가운데 일부는 직계존속을 동반하지 않고 입국한 무연고 탈북청소년이다. ‘북한이탈주민법’은 북한에 주소·가족·배우자·직장 등을 두고 탈북한 사람 중 외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자를 ‘북한이탈주민’으로 정의한다. 이 중 보호 및 지원을 받는 대상자를 ‘보호대상자’라 하고, 필자가 만난 멘티처럼 보호대상자로서 직계존속을 동반하지 아니한 만 24세 이하 무연고 아동·청소년에 대해서는 ‘무연고청소년’ 추가적인 보호 규정이 있다.

관계 법령에 따르면 통일부 장관은 무연고청소년의 보호를 위해 ‘무연고청소년보호 및 지원 심의위원회(이하 심의워원회)’를 두고 있다. 필자도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위원회는 보호자 선정, 후견인 선임 필요 여부, 개인별 보호 및 정착 지원 방안 등을 심의한다. 선정된 보호자는 거주지 전입 이후 청소년의 생활 지원과 교육 지원을 맡는다. 통일부는 2024년 11월부터 무연고청소년 가산금을 신설하는 등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제도적 개선이 필요한 지점이 많다.

첫째, 보호자의 법적 지위가 모호하다. 북한이탈주민법상 ‘보호자’는 민법상 친권자와 별개다. 따라서 보호자가 선정돼도 법정대리권이 자동 부여되지 않아, 법률행위 대리를 위해서는 민법상 후견인 심판청구를 별도로 진행해야 한다. 시간·행정적 부담은 물론, 친권자와 보호자가 다를 경우 이해 충돌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둘째, 주무부처의 역할이 제한적이다. 현재 통일부는 무연고청소년 관련 법령 정비와 제도 총괄, 보호·지원 심의위원회 운영, 현황·통계 관리 업무를 맡고 있다. 심의위원회에서 보호자 선정·변경·취소를 심의하지만, 보다 완결성 있는 보호체계를 구축하려면 보호자 지정 이후 실제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는지 사례관리가 필수적이다. 최근 논의되는 북한이탈주민 지원업무 주무부처 변경과 마찬가지로, 미성년공공후견제도 등 기존 아동보호체계와의 일원화를 비롯해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셋째, 무연고청소년의 개념도 확장돼야 한다. 현행법은 입국 당시 직계존속이 없는 경우에만 무연고청소년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입국 후 보호자가 사망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정착도 마치기 전에 혼자가 된 북한이탈 청소년은 일상에서 심각한 위기에 놓인다. 특히 제3국에서 출생한 북한이탈주민의 자녀인 경우 한국어가 서투른 경우가 빈번하여, 유일한 보호자인 모친마저 사망하면 한국사회 정착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현행법상 이들은 무연고청소년 요건에 해당하지 않아, 북한이탈주민법에 따른 특별 보호를 받기 어렵다.

2016년 첫 만남 이후에도 같은 처지의 청소년들을 종종 만났다. 그들의 표정에는 복잡한 심경이 담겨 있었다. 단순한 남한살이의 고단함을 넘어, 북한에 가족을 두고 혼자 왔다는 죄책감, 남겨진 가족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이 어깨 위에 얹혀 있었다. 무연고 탈북청소년은 ‘무연고’·‘북한이탈주민’·‘청소년’이라는 삼중의 어려움을 동시에 짊어지고 있다. 이들의 현실을 반영한 제도 개선을 통해, 어깨와 마음에 얹힌 짐들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전규해 사단법인 온율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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