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이 주운 폐지, 아이들의 도화지가 됐습니다” [더나미GO] 

더나은미래 기자, 자원봉사자가 되다 <4>
유한양행 ‘페이퍼캔버스 제작’ 봉사 현장

“풀은 너무 많이 바르면 흘러내려요~ 적당히, 적당히!”

지난 19일 오후 12시 30분, 경기도 용인 유한양행 중앙연구소. 점심시간을 쪼개 연구원 30여 명이 팔토시를 끼고 책상 앞에 둘러앉았다. 유한양행 창립 99주년을 맞아 진행된 ‘창립기념 나눔주간’ 행사 중 하나인 ‘페이퍼캔버스 제작’ 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기자도 팔토시를 챙겨서 봉사에 함께했다. 

책상 위 봉사 키트를 열자 폐지, 헝겊, 풀, 젯소, 붓 등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단출해 보이지만 이 키트는 사회적기업 ‘러블리페이퍼’가 폐지 수거 어르신들에게 시세보다 6배 높은 가격에 매입한 폐박스를 재활용해 만든 것이다. 완성된 캔버스는 아동보육시설에 기부돼 아이들의 도화지로 쓰인다.

작업은 책상 위에 신문지를 까는 것부터 시작됐다. 폐지 세 장을 겹쳐 풀칠한 뒤 천을 덮고 눌러 고정했다. 단순해 보였지만, 고르게 바르는 손놀림과 가장자리 마감에는 의외의 섬세함이 필요했다. 옆자리 연구원은 삐져나온 실밥이 못내 거슬렸는지, 가위로 테두리를 수차례 다듬었다.

마무리는 흰 젯소 칠. “위아래, 양옆으로 꼼꼼하게 발라주세요.” 기우진 러블리페이퍼 대표의 안내에 따라 붓질이 분주해졌다. 표면이 매끈해질수록 흰색 도화지 위에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졌다. 흰 젯소가 얇게 발리며 점차 순백의 캔버스가 모습을 갖춰가자, 뿌듯함이 밀려왔다.

“페이퍼캔버스 한 개당 약 17g의 탄소가 절감돼요. 나무틀을 사용하지 않으니 친환경이죠.”

기 대표는 “이 활동은 환경, 노동, 교육 세 가지 가치를 동시에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어르신은 페이퍼캔버스 키트 제작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있으며, 이들의 급여는 기존 수입 대비 약 5.4배에 달한다고 했다. “폐지를 줍는 일이 단지 고단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순환과 기여의 활동으로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말에 현장에 있던 임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봉사에 참여한 심재영 연구운영팀 팀장은 “예전엔 폐지 줍는 어르신을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오늘은 그 일 친환경적이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다는 걸 처음 실감했다”고 말했다. 

이은정 바이오신약1팀 팀장은 “단순한 자원봉사라 생각했는데, 폐지가 경제활동과 연결되는 과정을 보면서 사회적기업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며 “기업이 이런 활동을 마련해준 덕분에 평소 몰랐던 사회문제를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캔버스가 모두 마른 뒤, 작은 붓과 물감 세트를 함께 담아 다시 폐박스에 포장했다. 이날 임직원들이 만든 31개의 캔버스 세트는 수원 아동보육시설 ‘경동원’에 전달될 예정이다. 이곳은 유한양행 임직원이 정기적으로 축구 멘토링 봉사를 이어오고 있는 곳이다.

현장에서 만난 강성만 유한양행 ESG2팀 부장은 “단순 후원을 넘어, 직원들이 사회문제를 직접 체감하고 함께 해결 방법을 고민할 수 있는 봉사를 지향해왔다”며 “러블리페이퍼와는 2020년 처음 인연을 맺었고, 코로나 이후 올해 두 번째로 다시 함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봉사는 유한양행이 6월 10일부터 19일까지 전국 사업장에서 진행한 ‘나눔주간’의 마지막 일정이다. 이 기간 전국 사업장에서는 반려식물을 만들어 독거노인에게 기부하는 원예 봉사, 이면지 노트 만들기, 보육원 아동을 위한 제빵 봉사, 안전 우산 제작 등 다양한 봉사활동이 이어졌다. 

“봉사는 억지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참여해야 진짜 의미가 있습니다.” 강 부장은 앞으로도 다양한 사회문제를 함께 고민하며 실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1시간 동안 폐지를 붙이고 젯소를 칠하는 사이, 손에 남은 건 하얀 얼룩뿐만이 아니었다. 작은 작업이 쌓여 하나의 캔버스가 완성됐고, 어르신의 손에서 출발한 폐지는 아이들의 꿈을 담을 자리에 닿았다.

용인=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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