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제주에서 100여 명의 아시아 임팩트 투자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아시아 임팩트 나이츠’는 아시아 전역의 임팩트 투자자들이 모여 함께 성찰하고 임팩트 투자의 확대 방안을 논의하는 장으로 필자가 몸담고 있는 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에서 2016년부터 주최해 온 행사이다.
‘아시아 임팩트 나이츠’는 늘 ‘마음가짐 정리(Intention setting)’로 시작한다. ‘직함이 아닌 당신 자신을 온전히 가져오세요’, ‘세일즈가 아닌, 당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나누세요’, ‘모두의 목소리는 중요합니다. 우리는 모두 배우기 위해 여기 있습니다’ 이렇게 마음가짐을 정리한 후, 이어지는 Fireside Chat에서는 아시아 임팩트 투자의 선구자들이 나와 후배 투자자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며 앞으로의 임팩트 투자 여정을 격려한다.
기후 변화의 심각성과 시급성이 날로 커지는 가운데, 이에 대응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이 올해에도 중요한 화두였다. 중공업과 소비재 산업을 비롯한 특정 산업의 전환과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투자 방안, 그리고 ‘사회적 포용성을 고려한 기후 해결책’ 등 다양한 주제가 논의됐다. 또한, ‘기후 행동과 정책’을 중심으로 한 세션도 진행되어, 기후 변화 대응 전략과 실천 방안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가 이루어졌다.
다양한 투자 관련 논의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홍콩과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임팩트 투자에서 패밀리 오피스의 역할과 확대 방안’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졌고, 한국과 일본 중심으로 임팩트 상장(Impact IPO)을 주제로 ‘임팩트 비즈니스의 상장 사례와 상장된 임팩트 주식에 특화된 자산운용사 사례’ 등이 소개되며, 기존 초기 투자 중심의 임팩트 투자에서 한 단계 더 성숙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또한, 인도를 중심으로 소액 금융(Microfinance)과 사회성과연계채권(Social Impact Bond) 등의 금융 구조를 통해 ‘소외된 계층을 포용하는 다양한 금융 모델’이 제시되었다. 이와 함께, 복잡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스템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투자 전략’과 그 과정에서 ‘촉매 자본의 역할’을 고민하는 워크숍을 통해 참가자들은 자신의 투자에 적용해 볼 수 있는 실질적인 실행 방안을 함께 도출했다.
이처럼 기후 변화와 같은 전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국이 가진 고유한 강점과 자원을 기반으로 협력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국가별로 차별화된 임팩트 투자 전략들이 상호 보완적으로 연결될 때 더 큰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 참가자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점점 더 긴밀하게 연결되었고, 그 연결성은 행사 마지막 날 정점에 이르렀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과 동남아시아 임팩트 투자 생태계를 연결하는 지역별 라운드 테이블에서 각국의 생태계를 이해하고 상호 협력을 도모하는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이후 진행된 세션에서는 한국의 임팩트 투자 생태계의 리더들이 지난 10년을 성찰하며, 협력을 통해 앞으로 만들어갈 미래에 대한 구체적 방안을 논의하는 뜻깊은 대화가 이어졌다.
2박 3일의 일정을 마무리하며,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문학, 철학, 과학, 정치 등의 여러 분야에서 큰 영향을 미친 괴테라는 인물을 통해 ‘사람이 뜻을 가지면 얼마나 클 수 있는가, 그런 사람은 자기를 어떻게 키웠는가’라는 메시지를 한국 사회에 전해주시는 독어독문학자 전영애 교수님과 함께, ‘우리 모두의 꿈과 함께 꾸는 꿈의 아름다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어진 대담에서, 괴테의 파우스트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인간은 지향(志向)이 있는 한 방황한다’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나 이 문장은 비문이라고 했다. 지향이 있다면 방황하지 않아야 하고, 방황한다는 것은 지향이 없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문장이 괴테가 파악한 진짜 인간의 모습이라고 했다. 방황하고 있다면 지향이 있는 것이다.
그러자 청중 한 명이 공감을 표하며 임팩트 투자 역시 비문이라고 했다. 임팩트는 임팩트고, 투자는 투자인데, 임팩트 투자는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조합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조합은 때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방황하게도 한다. 하지만 그 방황은 ‘임팩트 투자는 지향이 있는 투자’이기 때문이다. 많은 투자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투자사로서 투자에 집중해 성과를 내야 하는 우리가 아시아 임팩트 투자 생태계를 위한 포럼을 주최하는 것도 어쩌면 비문과 같다. 지난 6개월 동안 포럼 준비에 상당한 시간을 투자했고, 그로 인해 투자 업무의 효율성이 저하된 것도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그리고 팀에게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이번 행사에 특별히 주안점으로 둔 것은, 한국 임팩트 투자 생태계의 협력 강화, 한국-일본 임팩트 투자 생태계 간의 협력 강화, 아시아 대표성 확대였다. 한국이라는 작은 시장에서 경쟁보다는 창조적 협력을 통해 더 큰 임팩트를 만들어 낼 수 있으며, 인구 문제나 기후 변화 대응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비슷하고, 가까운 이웃 나라이기도 한 일본과의 협력이 아시아 임팩트 투자 협력의 시작점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중국, 홍콩, 싱가포르, 베트남, 인도, 호주 등 아시아 주요 국가의 대표적인 임팩트 투자자들을 초청해 행사 이름에 걸맞은 아시아 대표성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힘썼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연결과 협력이 활짝 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행사 준비에 임했다.
아직 보완해야 할 지점들도 있지만, 감사하게도 우리의 2박 3일은 바랐던 대로 아시아 임팩트 투자의 연결과 협력의 장이 되었다. 한국 임팩트 투자 생태계와 한국-일본 임팩트 투자 생태계 간의 실질적 협력 방안들이 논의되기 시작했으며,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서도 한국 임팩트 투자 생태계에 대한 큰 관심을 보였다. 한국의 여러 임팩트 투자 기관들이 한국과 아시아 곳곳에서 활발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고, 앞으로 한국 임팩트 투자 생태계가 아시아 임팩트 투자 생태계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도 확인할 수 있었다.
임팩트 투자의 확대를 위해 각자 자신의 역할에서 탁월함을 발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일은 협력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일이다. 임팩트 투자의 확대라는 지향 아래, 본업인 투자에 충실하면서도 큰 행사를 준비하는 동안 때때로 혼란과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그 방황 끝에는 큰 기쁨이 있었다.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 그리고 그 방황 끝에는 큰 기쁨이 있다.
2019년 처음 ‘아시아 임팩트 나이츠’에 참여했을 때 임팩트 투자의 깊이와 넓이에 매우 놀랐었고, 그 경험이 내가 임팩트 투자자가 되기로 결심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올해의 대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해가 갈수록 임팩트 투자는 그 깊이와 넓이가 더욱 확장되고 있다.
‘아시아 임팩트 나이츠’는 앞으로도 아시아 전역에서 모인 투자자들이 임팩트 투자의 확대를 위해 서로 연결되고 협력하는 장으로 계속 발전할 것이다. 같은 지향을 가진 동료들, 친구들, 그리고 멘토들과 함께한 제주에서의 2박 3일은 내게 정말 큰 기쁨이었다. 당신도 이 여정에 함께하고 싶지 않은가?
정원식 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 심사역
필자 소개 글로벌 기후위기와 한국의 인구위기 해결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임팩트 투자사 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에서 심사역으로 일하며 기후테크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고,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의 Global Shapers Community에서 활동하며 지방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지방특별시 포럼’을 주최하고 있습니다. KAIST 물리학 학사, KAIST K-School에서 기술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대학원 과정 중 프랑스 그랑제꼴 Polytechnique와 HEC의 기업가정신 공동 석사 과정을 수료했습니다. 학부생 시절, 도서산간 지역의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비영리단체 ‘여행하는 선생님들’을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