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시어머니는 청소노동자였다. 건물 계단을 쓸고 닦는 일은 삶을 보조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그러다 사고가 났다. 계단에서 넘어지며 크게 다치셨고 뇌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산재보험이 적용돼 수술비와 요양비 일부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다시 일을 할 수는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 경우는 그나마 다행한 편이었다. 적어도 다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었고, 산재보험으로 연결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곁에는 다쳐도 어디에 말해야 할지 모르고, 부당한 일을 당해도 혼자 참아 넘기며, 끝내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제대로 불리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들이 너무 많다. 사회는 그들의 노동을 매일 필요로 하지만, 정작 그 노동에는 이름이 없다. ◇ 한국 사회의 중심에 들어온 ‘불안정 노동’ 이제 불안정 노동은 한국 사회 노동시장의 한복판으로 들어와 있다. 비정규직은 더 이상 일부의 문제가 아니며, 플랫폼 종사자와 프리랜서, 특수형태 종사자는 이미 한국 사회의 익숙한 노동 풍경이 되었다. 사회 변화는 돌봄노동·경비노동·청소노동을 필수적으로 만들었지만, 이들을 향한 보호는 여전히 얇다. 재활용 선별 노동처럼 우리의 편리함과 친환경 담론을 떠받치는 노동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의 이름은 제각각이다.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요양보호사, 경비노동자, 청소노동자, 재활용 선별 노동자. 그러나 현실은 놀랍도록 닮아 있다. 고용형태는 불안정하고 협상력은 낮으며, 사회보장은 취약하고 산재보호에는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문제가 생겨도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건강권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사치처럼 여겨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사회는 이들의 노동을 필요로 하지만, 그 권리를 보장하는 데에는 한없이 인색하다. 그래서 이들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