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팩트는 보고서가 아니라 관계”…투자의 언어가 바뀌고 있다 [AVPN 2025]

UOB·테마섹·제라야·NDB, 임팩트 관리 통해 ‘투자자→동반자’로 진화 숫자보다 현장의 변화, 이해관계자 간 신뢰를 새 기준으로 세우다 싱가포르의 UOB벤처매니지먼트(UOB Venture Management·이하 UOBVM) 임직원들은 투자처뿐만 아니라 대출을 받은 사람들까지 ‘직접’ 찾아간다. 포용금융(금융 접근성이 낮은 사람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활동)을 위한 투자를 진행할 때, 현장에서 계획과 실행이 일치하는지를 확인하고 대출자가 어떤 변화를 경험하는지를 직접 듣기 위해서다. 예컨대 인도네시아의 핀테크 기업 ‘아마르타(Amartha)’에 투자한 뒤에는 본사뿐 아니라 지사 곳곳을 돌며 여성 사업가들을 만났다. 대출자의 절반 이상이 초등학교 학력 이하의 여성임을 확인한 UOBVM은 현장 관찰을 바탕으로 ‘금융 문해력(Financial Literacy)’ 교육을 투자 서약서에 새롭게 추가했다. 단순한 자금 지원이 아니라, 현장의 맥락을 이해하고 지속가능한 변화를 설계하기 위해서다. 1992년 설립된 UOBVM은 UOB(United Overseas Bank) 그룹의 사모투자 및 벤처캐피털 운용사로, 약 20억 싱가포르 달러(한화 약 2조2000억원) 규모의 자산을 관리하고 있다. 이들의 임팩트 관리(Impact Management)는 ▲사전 검토 ▲임팩트 실사 ▲서약서 작성 ▲사후 모니터링의 네 단계로 구성된다. 실사 이후에는 IRIS에서 발췌한 표준 지표와 기업 맞춤형(customized) 지표를 함께 활용해 핵심 지표(metrics)를 설정한다. 현장 점검 결과는 투자 계약 시 작성하는 ‘임팩트 서약서(Impact Commitment Letter)’에 반영되며, 인력 교육이나 피투자기업 역량 강화를 주요 항목으로 포함한다. 투자 이후(Post-investment) 단계에서는 정량적·정성적 데이터를 꾸준히 추적하며, 단순한 평가를 넘어 “투자자가 기업에 어떤 가치를 더할 수 있는가”를 함께 고민한다. UOBVM은 아마르타의 대출자 300만 명을 대상으로 마이크로보험(Micro-Insurance)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현지 보험 전문가와 데이터 기관을

‘SF 영화 속 장면’이 된 농장, AI가 일하는 시대가 열렸다

애그테크, 농업의 미래를 짓다<3> AI 로봇으로 농업의 자동화 혁신 이끄는 ‘아이오크롭스’ 농촌 인력 부족과 기후변화가 심화되면서 농가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체 농가의 78%가 인력 부족을 가장 큰 경영 애로로 꼽았다. 국회입법조사처의 ‘2024년 국정감사 이슈 분석’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국내 농업 분야의 기후피해 복구 비용은 약 5295억 원으로, 2022년(2056억 원)과 2021년(2346억 원)을 합친 금액보다 많았다. 이러한 농촌의 현실에 기술로 해법을 제시하는 스타트업이 있다. 바로 아이오크롭스다. 이 회사는 자동화 로봇과 인력 관리 솔루션 등 통합형 스마트팜 시스템을 개발해 농작업 효율을 높이고 있다. 아이오크롭스를 설립한 조진형 대표는 포항공대 기계공학과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친 공학도 출신이다. 2016년 대학원 시절, 기숙사 화분이 시들자 직접 수분 센서와 LED 조명을 결합한 ‘스마트 화분’을 만든 것이 출발점이었다. 이후 각종 창업 공모전에 도전하던 그는 “농업을 직접 배워야 제대로 된 기술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으로 대학원을 자퇴하고 충남 천안의 토마토 농장에서 3개월간 재배 기술을 익혔다. 이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2년간 인턴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농업의 현실을 몸소 체감했다. 그는 “공학적 시각에서 벗어나 작물 재배와 소비자 심리까지 이해하게 된 경험이 아이오크롭스의 기술 철학이 됐다”고 말했다. ◇ 자율주행 로봇 ‘헤르마이’로 예찰·방제 자동화 그렇게 조 대표는 2018년 아이오크롭스를 창업했다. 회사의 대표 기술은 자율주행 농업 로봇 ‘헤르마이(HERMAI)’다. 숙련된 농부처럼 작물의 생육 상태를 관찰하고 예찰 및 방제 작업을 수행한다. 농장 레일을 따라 이동하며 작물의 색·크기·형태를

불확실성의 시대, 기부는 ‘사명’으로 답했다

변화하는 미국의 기부 생태계 <2> 불경기 속 혼합기부 증가…사명 뚜렷한 단체에 기부 몰린다 팬데믹과 경기 침체, 정부의 예산 삭감이 겹치며 미국 비영리단체들은 혹독한 시험대에 올랐다. 그러나 후원자들의 선택은 달랐다. 규모나 오래된 전통보다, 위기 속에서도 방향을 분명히 지키는 단체를 찾아 기부했다. 미국 비영리 전문 매체 ‘크로니클 오브 필란트로피(Chronicle of Philanthropy)’가 2021~2023년 개인·재단·기업의 기부 데이터를 바탕으로 발표한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자선단체(America’s Favorite Charities)’ 100대 순위에서도 이러한 흐름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 매체는 “불확실성의 시대일수록 사명에 충실하고, 후원자에게 우리가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는지 설득하는 황금률이 강조된다”고 분석했다. ◇ “사명에 충실한 단체가 살아남는다” 기빙USA에 따르면 같은 기간 미국 개인 기부는 23% 늘었지만, 상위 기관들의 증가율은 이에 미치지 못했다. 상위 100곳 중 절반 이하인 46곳만이 23%보다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고, 18곳은 오히려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조직의 연혁이 아니라, 사명의 일관성이 생존을 좌우했다”고 분석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플랜드페어런트후드(Planned Parenthood·29위)다. 트럼프 행정부 2기에서 낙태 관련 법이 강화되고 공공의료보험 환급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정치적 압박이 이어졌지만, “여성의 생식권과 건강권은 타협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유지했다. 정부 보조금 지급이 중단됐음에도 같은 시기 개인 후원은 오히려 급증했다. 레오라 한서 모금 최고책임자는 “이런 시기에 침묵은 통하지 않는다”며 “사명을 회피하는 단체는 결국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말했다. 세인트주드 어린이연구병원(St. Jude Children’s Research Hospital·2위)도 마찬가지다. ‘모든 아동에게 무상치료를 제공한다’는 단일 사명 아래, 치료 과정과 가족 이야기를

사회적 금융 확산 속, 공익법인의 새 역할은 [공익법인 NEXT]

투자로 다시 쓰는 공익의 미래 <下> 1조 50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한 글로벌 시장 속, 한국도 공익투자 실험 본격화 “이제 공익법인도 돈을 쓰는 기관이 아니라, 자본의 선순환을 설계하는 기관이 돼야 합니다.” 김양우 수원대 특임교수는 지난달 25일, 서울 강남구 소재 마루 180에서 열린 ‘공익법인의 다음 10년, ‘임팩트 투자’로 답하다’ 세미나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최근 자산운용사와 벤처캐피탈은 물론, 자선재단·패밀리오피스·연기금·보험사·정부 등 다양한 주체가 임팩트 투자 시장에 참여하면서 ‘사회적 금융(social finance)’의 경계가 확장되고 있다”고 짚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공익법인 역시 새로운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사회적 금융은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도 일정한 재무적 수익을 창출하는 투자 방식을 말한다. 글로벌 시장 규모는 1조5000억 달러를 넘어섰고, 금융 수단도 마이크로파이낸스·지역개발금융기관(CDFI)·사회성과연계채권(SIB) 등으로 다변화되고 있다. 김 교수는 “한국의 공익법인도 이런 구조를 이해하고, 새로운 길을 고민해야 사회문제 해결이 지속가능해진다”고 말했다. 김경하 더나은미래 편집국장은 미디어의 시선에서 본 사회적금융 확산 흐름을 짚었다. 그는 “임팩트투자 관련 보도는 2010년대 초반에 비해 현재 약 30배 이상 늘었다”며 “과거 ‘사회적기업’과 ‘CSR’ 중심에서 2018년 이후 ‘임팩트투자’와 ‘ESG’가 주요 담론으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외에서는 민간 재단의 88%가 기관 차원에서 임팩트 투자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절반 이상이 이미 실행 단계에 있다”며 “공익법인도 담론의 확산을 실제 실행으로 옮길 때”라고 덧붙였다. 이어 “국내 임팩트투자 생태계도 여전히 단기 수익률의 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며 “사회문제를 풀기 위해선 더 긴 호흡의 ‘인내자본(patient capital)’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기부에서 투자로” 공익법인의 다음 10년이 달라지려면 [공익법인 NEXT]

투자로 다시 쓰는 공익의 미래 <上> 공익법인, 사회혁신의 주체로 서기 위한 제도 개편 시급 “우리나라의 공익활동은 기업의 기부와 자원봉사에서 출발했다. 지난 10년은 사회적기업과 소셜벤처 등 혁신가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사회문제를 풀어온 시간이었다. 이제 다음 10년은 ‘공익적 투자’와 ‘협력’이 주도할 차례다.” 이종익 한국사회투자 이사장은 지난달 25일, 서울 강남구 소재 마루 180에서 열린 ‘공익법인의 다음 10년, ‘임팩트 투자’로 답하다’ 세미나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한국의 공익법인은 기부와 보조금 중심으로 운영돼 왔지만, 복합화된 사회문제 앞에서 단발성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제 공익법인에도 자본이 선순환되는 ‘투자’ 구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익법인이 사회문제를 지속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본을 ‘운용’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손원익 한국비영리학회 회장은 “공익법인이 여전히 기부금 중심의 제도 틀 안에 묶여 있다”며 “세제 개편과 제도 혁신 없이는 사회혁신 자본이 선순환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현행 세법상 대기업이 공익법인에 주식을 출연할 때 증여세 면세 한도는 5%에 불과하다. 손 회장은 “이 한도를 10% 이상으로 확대해야 기업들이 기부와 투자를 병행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또한 “공익법인이 출연받은 기업의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한 규제도 지나치게 경직돼 있다”며 “투명성을 담보하면서 사회적 목적이 명확한 경우에는 제한적 의결권을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익법인이 보유한 자산을 단순히 ‘운영 수익’이 아닌 ‘사회문제 해결의 도구’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손 회장은 “이제는 공익법인도 자본을 굴려 사회적 가치와 재정적 수익을 결합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법적

365일 딸기 키우는 스마트팜, 버려질 작물까지 살린 비결은 

애그테크, 농업의 미래를 짓다<2> 딸기 수직농장으로 재배·유통 혁신하는 ‘아그로솔루션코리아’ 세종시 나성동 거리를 걷다 보면, 강렬한 핑크색 간판이 시선을 끄는 카페가 있다. 이름은 ‘포시즌베리(Four Seasons Berry)’. 유리창 너머로는 층층이 자라는 초록 식물이 보이고, 문을 열면 싱그러운 딸기향이 퍼진다. 포시즌베리는 2023년 세종 나성동 본점을 시작으로 부산·대전으로 확장한 프랜차이즈 카페다. 이곳을 운영하는 주체는 스마트팜 전문기업 아그로솔루션코리아(대표 이상훈)다. 2020년 설립된 이 회사는 국내외 약 10곳에 딸기 수직농장을 구축하며 재배·유통·체험 프로그램·기술 컨설팅까지 아우른다. 이상훈 대표는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에서 18년간 근무하며 전 세계 스마트팜 구축 사업을 담당했다. 그는 “해외에서 K-스마트팜에 대한 수요가 많지만 정부 주도의 소규모 프로젝트로는 한계가 있었다”며 “대규모 유통이 가능한 민간 모델을 만들기 위해 창업했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에서는 토마토나 오이보다 한국산 딸기의 인기가 훨씬 높다”며 “딸기는 10도 이하의 저온에서만 자라기 때문에 어떤 기후에서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수직농장 모델을 직접 고안했다”고 설명했다. ◇ LED와 다층 재배로 연중 수확…“온실 대비 생산성 8배” 아그로솔루션코리아의 핵심은 LED 기반 수직농장 시스템이다. 이 회사는 국내 LED 전문기업과 협력해 딸기 생육에 최적화된 조명을 자체 제작한다. 오전에는 일부 LED만 켜 자연광을 보완하고, 정오에는 전면 조명을 가동해 광합성을 극대화한다. 밤에는 온도를 낮춰 영양분을 집중시킨다. 자연재배 딸기는 햇빛을 그대로 받기 때문에 당도가 높고 과일이 크지만, 최근에는 기후변화로 일조량이 불규칙해지면서 일반 온실에서는 당도 편차나 품질 저하가 발생하기 쉽다. 반면 수직농장은 광의 세기와 시간을 인위적으로

팬데믹 이후, 기부의 축이 달라졌다

변화하는 미국의 기부 생태계 <1> 유나이티드웨이 23% 급감, 사마리탄스퍼스·컴패션 등 ‘현장형 단체’ 두 자릿수 성장 코로나19 팬데믹과 전쟁,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미국의 기부 생태계가 재편되고 있다. 비영리 전문매체 크로니클 오브 필란트로피(Chronicle of Philanthropy)는 지난 7일(현지시각) 2021~2023년 개인·재단·기업 기부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자선단체(America’s Favorite Charities)’ 100곳을 발표했다. 이번 보고서는 단체별 순위뿐 아니라, 팬데믹 이후 5년간의 기부 흐름과 정치·경제·문화적 요인을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조사 결과, 전통적 대형 기관의 성장세는 둔화된 반면, 재난·보건 분야를 중심으로 현장 중심의 단체들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자선단체’ TOP10 2021~2023년 평균 모금액을 기준으로 한 상위 10개 단체는 ▲유나이티드웨이(1위) ▲세인트주드 어린이연구 병원(2위) ▲구세군(3위) ▲YMCA(4위) ▲컴패션 인터내셔널(5위) ▲미국 소년소녀클럽(6위) ▲해비타트포휴머니티(7위) ▲스텝업포스튜던츠(8위) ▲미국 적십자(9위) ▲사마리탄스퍼스(10위) 순이다. 순위권에는 100년 넘은 전통 단체들이 여전히 강세를 보였다. 유나이티드웨이, 구세군, YMCA, 미국소년소녀클럽, 미국 적십자 등은 모두 19세기에 설립돼 미국 시민사회의 근간을 형성한 기관들이다. 반면 2000년 설립된 ‘스텝업포스튜던츠(Step Up for Students)’는 교육 장학 지원을 주력으로 하는 단체로, 10위권 중 유일한 2000년대 설립 기관이다. 특히 코로나19와 전쟁, 기후 위기 등 복합적 위기가 기부 흐름을 재편한 것으로 보인다. 오랜 역사와 전국적 네트워크를 지닌 유나이티드웨이(1위)는 ‘직장 내 모금’ 기반이 약화되며 2018~2020년 평균 대비 모금액이 23% 급감했다. 반면, 사마리탄스퍼스(10위)·컴패션인터내셔널(5위) 등 재난 대응 및 빈곤 지역 지원 등 현장 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단체들은 오히려 두 자릿수 성장세를

“기후 위기는 곧 건강 위기”…멈춰선 시스템, 해법은 ‘협력의 장’[AVPN 2025]

[인터뷰] 카스텐 슈커(Carsten Schicker) 세계보건정상회의 대표 “이제 ‘기후 위기’가 곧 ‘건강 위기’라는 사실은 명확하다. 세계보건정상회의는 정책을 직접 만들거나 실행하지는 않지만, 적절한 사람들을 연결해 더 나은 해법을 찾는 역할을 한다. 지금처럼 불안한 국제 정세에서는 이런 역할이 더 중요하다.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 눈높이를 맞추고 대화할 수 있는 ‘공정한 플랫폼’이 필요하다.” 카스텐 슈커(Carsten Schicker) 세계보건정상회의(World Health Summit·WHS) 대표는 지난달 11일 홍콩에서 열린 ‘AVPN 글로벌 콘퍼런스 2025’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복잡해진 국제 질서 속에서도 여전히 협력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계보건정상회의는 국제 보건 분야를 대표하는 글로벌 플랫폼이다. 정책, 거버넌스, 시민사회, 학계, 민간 부문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한자리에 모여 해법을 논의한다. WHO, 유럽연합(EU), 세계은행, 각국 보건부와 연구 기관이 참여하며,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논의를 통해 글로벌 보건 의제를 형성한다. 2009년 출범한 WHS는 매년 10월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된다. 약 3000명이 현장에, 2만여 명이 온라인으로 참여하는데 기후 변화와 건강, 팬데믹 대응, 백신 접근성, 보건 재정 등 주요 의제가 다뤄진다. 올해 회의는 ‘분열하는 세상에서 건강에 대한 책임(Responsibility for Health in a Fragmenting World)’을 주제로 10월 12일부터 14일까지 베를린에서 열린다. 세계보건정상회의에 2022년 취임한 슈커 대표는 글로벌 헬스 분야 입문 2년 반의 신임 리더다. 민간 부문에서 20년 가까이 전략과 재무를 담당한 경험을 토대로, WHS의 체질 전환을 주도하고 있다. 그는 바우어 미디어 그룹(Bauer Media Group)에서 최고전략책임자(CSO)로 일하며, 140년 된

한국과 영국, ‘정치로 푸는 기후 위기’ 해법을 논하다

성수동서 열린 ‘기후에너지 혁신간담회’…“정파 넘어 협력해야” 英 보수당 의원단·韓 혁신기업들, 전환 비용·기술 해법 논의 “에너지 전환은 본질적으로 정치의 문제다. 화석연료 산업이 퇴조하고 새로운 산업이 부상하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일자리를 잃고, 누군가는 새로운 기회를 얻는다. 이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장다울 오션에너지패스웨이 한국대표는 지난달 30일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열린 ‘기후에너지 혁신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에너지 논의가 지나치게 정쟁화돼 피로감이 크다”며 “영국은 정파 간 차이가 있어도 활발히 토론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간담회에는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과 김세연 전 의원을 비롯해 영국 보수당의 마크 가니어(Mark Garnier) 하원의원, 바로네스 커피(Baroness Coffey) 상원의원 등 영국 정치인 2명이 참석했다. 식스티헤르츠, 도시유전, 오션에너지패스웨이 등 20여 개 기후·에너지 혁신기업과 단체 관계자들도 함께 자리했다. 참석자들은 글로벌 정책 연계와 산업 협력 방안을 논의하며, 정치와 기술의 균형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공유했다. 아래는 주요 참석자들의 발언이다(이름 가나다순). 김세연 前 국민의힘 의원  “에너지 문제를 정쟁에서 분리하려는 시도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사례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였다. 당시 원전에 대한 진영 간 대립은 극심했지만, 시민배심원단 500명이 4개월간 학습과 토론을 거듭한 끝에 공사 재개로 결론을 냈다. ‘비정치화’라는 명분 아래 논의를 배제하기보다, 정치의 절차 안에서 공정하고 투명한 토론이 이루어질 때 사회적 합의가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다.”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 “정치가 기후 문제를 다룰 때 생산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물론 감축은 중요하지만, 생산을

“우유만 담으란 법 있나요?”…곡물도 품은 종이팩 혁신 

애그테크, 농업의 미래를 짓다<1> 친환경 포장 기술로 농산물 가치 되살리는 ‘리필리’ “농업이 지속가능해지려면 포장재도 달라져야 합니다.”  김재원 리필리(Refeely) 대표의 말이다. 리필리는 비닐·플라스틱으로 포장되던 쌀, 콩, 밀가루 등 농산품을 자원순환이 가능한 종이팩으로 대체한 스타트업이다. 주로 식음료에만 쓰이던 종이팩을 생활용품과 화장품까지 확장하며, 농산물의 가치를 높이는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리필리의 출발점은 김 대표가 탄소배출권 컨설팅 회사에 근무하던 시절 품은 의문에서 시작됐다. “플라스틱 대체재 중 종이팩만큼 친환경적이고 경제적인 것은 없는데, 왜 우유 같은 음료에만 쓰이는 걸까?” 실제로, 서울대학교 그린에코공학연구소에 따르면, 종이팩을 100% 재활용하면 연간 20년생 나무 130만 그루를 심는 효과와 함께 320억 원의 원료 절감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김 대표가 직접 세제와 샴푸를 담아 실험해 본 결과, 며칠 지나지 않아 종이팩은 터지고 내용물이 새어 나왔다. 일반 멸균팩은 방수 코팅, 빛과 공기 차단 등의 역할을 하는 펄프·플라스틱·알루미늄 세 가지 소재가 층층이 붙어 내용물을 보호한다. 하지만 이 방식은 세제나 샴푸처럼 화학 성분이 강한 생활용품을 담기에는 취약했다. ◇ 5000번 실험 끝에 ‘무접착 초음파 종이팩’ 개발 리필리는 문제 해결을 위해 기존 3중 구조를 유지하면서 소재 비율을 새로 조정했다. 그 결과, 화장품과 생활용품 등을 3년 이상 안정적으로 보관할 수 있는 내구성을 확보했다. 또한, 5000번이 넘는 실험 끝에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는 ‘초음파 접합 기술’도 자체 개발해 특허를 냈다. 김 대표는 “초음파 접합은 생산 속도를 20% 높이고 전력 사용량은

“자선은 시작일 뿐, ‘시스템’을 남겨야 지속된다” [AVPN 2025]

[인터뷰] 카바사와 이치로(Kabasawa Ichiro) 일본재단 전무(Executive Director) “교육부는 교육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점을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일본재단은 기업, 교육부와 함께 온라인 대학 설립에 나섰습니다. 첫해 4000명 이상이 등록했고, 앞으로 5년은 재단이 지원하지만 이후에는 기업이 재정을 맡아 운영합니다.” 지난 4월, 일본 최초의 온라인 대학 ‘ZEN 대학’이 문을 열었다. 배경에는 심각한 사회문제 ‘부등교(不登校·등교거부)’가 있다. 일본 문부과학성에 따르면 2023년 초·중학교에서 30일 이상 결석한 학생은 34만6000여 명. IT기업 도완고(Dwango)와 모회사인 일본의 대형 미디어 그룹 ‘카도카와(KADOKAWA)’가 온라인 고등학교를 세운 데 이어, 일본 재단이 대학 설립까지 나선 이유다. ◇ “혼합금융, 시스템을 바꾸는 힘” 지난달 9일 홍콩에서 열린 ‘AVPN 글로벌 컨퍼런스’에서 <더나은미래>와 만난 카바사와 이치로(Kabasawa Ichiro) 일본재단 전무는 이를 ‘혼합금융(Blended Finance)’ 사례로 설명했다. “사회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시스템을 바꾸는 혼합금융이 필요합니다.” 2017년 재단에 합류해 국제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카바사와 전무는 NHK 기자로 20년 넘게 일하며 이라크전·아프간전을 취재했던 인물이다. “기자는 문제를 찾아내 보도할 뿐 해결은 남의 몫이었죠. 지금은 재단에서 돈이 헛되이 쓰이지 않도록 지속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게 제 책임입니다.” 1962년 설립된 일본재단은 일본의 민간 자선재단으로, 해양 정책, 장애 포용, 교육, 고령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 왔다. 지난해 기준 재단의 사업비 지출은 1050억엔(한화 약 1조원), 순자산은 3408억엔(한화 약 3조2450억원)에 이른다. 카바사와 전무는 “단기 지원이 아니라 장기적 문제 해결 시스템 구축이 우선순위”라고 강조했다. 그가 꼽은 시스템 구축의 핵심은 ‘협력’이다. “정부·기업·비영리

1인 6역은 기본…10년째 이어진 ‘목소리 봉사’ 참여해 보니 [더나미GO] 

더나은미래 기자, 자원봉사자가 되다 <7> 롯데홈쇼핑 ‘드림보이스’ 녹음 봉사 현장  “‘와하하하’를 조금 더 웃는 느낌으로, 자연스럽게 다시 한번 가볼게요.”“마이크는 멀리 두고, 연기 톤 더 넣어주세요!” 지난달 25일 서울 영등포구 롯데홈쇼핑 본사 녹음실. 기자가 동화집 ‘여름과 가을 사이’를 한 문장 읽자 조정실에서 서지은 그래픽디자인팀 감독의 피드백이 쏟아졌다. 롯데홈쇼핑 대표 사회공헌 프로그램 ‘드림보이스’ 시즌8 녹음 봉사 현장이다. 드림보이스는 시각장애 아동을 위한 음성도서 제작 봉사다. 롯데홈쇼핑이 2016년 한국장애인재단과 함께 시작해 올해로 10년째를 맞았다. 시즌별로 쇼호스트와 음향감독 등 임직원이 참여할 수 있도록 사내 공지를 통해 참여자를 모집한다. 시즌 3부터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드림보이스 서포터즈’ 제도가 도입됐다. 서포터즈는 한국장애인재단과 함께 취업포털 및 대학생 대외활동 플랫폼을 통해 연 1회 공개 모집하며, 지난해 경쟁률은 약 5대 1에 달했다. 지금까지 총 300여 명의 임직원과 80여 명의 서포터즈가 참여해 동화 196권을 녹음했고, 이를 담은 4450세트가 1700여 개 기관에 전달됐다. 드림보이스 사업을 담당하는 이종열 롯데홈쇼핑 커뮤니케이션팀 책임은 “시각장애 아동의 독서, 학습환경과 장애아동에 대한 인식 개선에 동참하기 위해 10년 째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 10년 차 쇼호스트의 ‘1인 6역’ 이날 녹음실에는 10년 차 쇼호스트 이휘진 씨가 등장했다. “하이 큐!” 소리와 함께 녹음이 시작됐다. “그 즈음 나라가 평화로워서 각종 행사가 열렸어. 가장 큰 건 나라시험이었지.” 10분 만에 노인·소년·아저씨 등 여섯 가지 배역을 자유자재로 오갔다. 조정실에선 “역시 다르다”는 감탄이 터졌다. 이휘진 씨는 “롯데홈쇼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