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청년 농업의 공백, 벨기에·네덜란드에서 답을 찾다

농촌에는 여전히 비옥한 땅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 위에 설 청년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2022년 기준 국내 농가 인구 중 65세 이상 비율은 49.8%에 달한다. 농업은 고령화 문제를 넘어, 다음 세대가 부재한 산업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도시 청년에게 농업은 점점 더 ‘선택하기 어려운 진로’가 됐고, 기존 정책은 높은 진입 장벽만을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해 왔다. 아산 프론티어 아카데미 14기 사회혁신 프로젝트 팀 ‘K-파밍브릿지’는 이 지점에서 질문을 바꿨다. “어떻게 청년을 농업으로 끌어들일 것인가”가 아니라, “왜 청년은 처음부터 농업을 진로로 고려하지 않는가”라는 물음이었다. 답을 찾기 위해 팀은 지난해 9월 12일부터 21일까지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농업 현장을 9박 10일간 찾았다. 이곳은 첨단 기술뿐 아니라, 청년이 농업을 선택하고 지속할 수 있는 조건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지역이었다. ◇ 신뢰로 시작하는 청년 농업 첫 번째 방문지는 벨기에 겐트 인근의 그루엔겜 농장(Groentegem)이었다. 대중교통을 타고 도착한 마을은 한국의 읍내와 비슷해 보였지만, 정돈된 도로와 주택이 어우러진 풍경은 유럽 농촌 특유의 안정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벤트 헨드릭스(Bengt Hendrickx)와 로라 에스카우지에(Laura Eschauzier) 부부가 운영하는 이 농장은 예상보다 규모가 컸다. 대형 하우스 한 동과 함께, 목재 팔레트를 재활용해 만든 교육 공간, 수확물을 판매하는 작은 매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루엔겜 농장은 지역사회지원농업(CSA, 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 방식으로 운영된다. 250명의 회원이 연회비를 선결제하고, 필요한 농산물을 직접 수확하는 구조다. 농장 설립에 필요한 초기 자본 대부분은 이 선결제 방식으로 충당됐다. 부채

네덜란드·독일에서 확인한 동물복지 전환의 조건

한국에서 동물복지 양돈은 여전히 낯설다. 국내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돼지 농장은 26곳, 전체의 0.3%에 불과하다. 생산자는 “기준이 높고 비용이 부담된다”고 말하고, 소비자는 “좋지만 비싸고 어디서 사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수요와 공급은 엇갈린다. 2025년 국내 소비자 대상으로 한 ‘동물복지인증 축산물 소비패턴 분석 연구’에 따르면,  국민의 90% 이상이 동물복지 돼지고기를 ‘먹고 싶다’고 답했지만, 실제 구매 경험이 있는 비율은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아산 프론티어 아카데미 14기 사회혁신 프로젝트 팀 ‘모소리(모두를 위한 축산, 모두를 위한 소비)’는 이 정체의 원인을 공공급식에서 찾고자 했다. ‘한 끼로 구조를 바꾼다’는 문제의식이었다. 일회성 캠페인이 아니라, 생산·유통·소비가 실제로 연결되는 지점을 만들 수 있는가가 핵심 질문이었다. 그렇다면 이 전환은 해외에서는 어떻게 작동하고 있을까. 모소리팀이 탐방지로 선택한 곳은 네덜란드와 독일이었다. 두 나라는 동물복지 축산과 공공급식을 제도·시장·소비가 함께 움직이는 방식으로 전환해 온 국가다.  ◇ “돼지가 돼지답게 살아도, 농장은 지속됩니다” 지난해 9월, 네덜란드 오버레이설(Overijssel) 주 헤이노(Heino)에 위치한 양돈 농장 니쉬케스 에르프(Nieske’s erf)를 찾았다. 암스테르담에서 차로 약 한 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이 농장은 전통적인 네덜란드 농촌 풍경 속에 자리 잡고 있었고, 첫인상부터 내가 떠올리던 기존의 양돈 농장 이미지와는 확연히 달랐다. 돼지들이 좁은 칸막이 대신 흙바닥 위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햇빛이 드는 외부 공간에서 몸을 비비고, 꼬리를 흔들며 흙을 파는 모습은 한국의 양돈 농장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항생제 사용은 적었고 폐사율도 낮았다. ‘동물복지’라는 말이 붙기 전,

영국은 어떻게 ‘들을 권리’를 일상으로 만들었나

청각장애는 국내에서 매년 가장 빠르게 늘어나는 장애 유형이다. 2023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각장애인의 95%는 후천적 원인으로 장애를 겪고 있으며, 94.7%는 수어가 아닌 음성언어를 사용한다. 노화와 소음 노출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 난청은 더 이상 일부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조건이 됐다. 그러나 이들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보청기나 인공와우만으로는 넓은 공간의 울림과 배경 소음을 온전히 걸러내기 어렵다. 공공장소에서 흘러나오는 안내방송조차 제대로 알아듣기 힘든 이유다. 난청인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보조기기’가 아니라, 제대로 들을 수 있는 환경이다. 이 간극을 메우는 기술이 ‘청취보조시스템(Assistive Listening System)’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공공 인프라로 자리 잡았지만, 한국에서는 개념조차 낯설다. 사단법인 히어사이클 조사에 따르면 국내에서 청취보조시스템이 설치된 곳은 전국 20여 곳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상당수는 작동하지 않거나 방치된 상태였다. 이 격차의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 아산 프론티어 아카데미 14기 사회혁신 프로젝트 팀 ‘와우와우’는 영국을 찾았다. ◇ 청취보조시스템이 ‘일상’이 된 도시 지난해 9월 말 찾은 런던 킹스크로스역(King’s Cross Station). 하루에도 수십만 명이 오가는 분주한 역사 내 소음 속에서도, 매표소 창구마다 부착된 휠체어 표지 옆에 파란색 귀 모양의 청취보조시스템 안내 표지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기차 매표소와 지하철 개찰구, 은행 창구는 물론 공중전화 부스까지, 도시는 처음부터 ‘들을 수 있는 공간’으로 설계돼 있었다. 기차 매표소 직원에게 사용 가능 여부를 묻자, 그의 의아한 표정이 돌아왔다. 인공와우를 텔레코일 모드(T-mode·보청기와 인공와우에 내장된 구리 코일이 전자신호를

청년 기자들, 현장에서 ‘작동하는 해법’을 묻다

SSIR Korea 센터·더나은미래 ‘솔루션 저널리즘 프로젝트’ 수료식 현장 고발을 넘어 해법을 묻는 저널리즘을 현장에서 배우다 “그동안 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고발하는 기사만 써왔는데, 솔루션 저널리즘을 하면서 문제를 실제로 해결하는 사례를 찾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한양대학교 SSIR Korea 센터와 더나은미래가 공동 주최한 ‘솔루션 저널리즘 프로젝트’에 참여한 박선윤(한양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청년기자의 말이다. ‘문제는 비명을 지르지만 해법은 속삭인다’는 말처럼, 문제를 지적하는 일보다 실제로 작동하는 해결책을 찾아내는 일은 훨씬 어렵다. 그러나 그만큼 지금의 저널리즘에 요구되는 과제이기도 하다. 이번 프로젝트는 청년 기자들이 그 과정을 직접 경험해보는 자리였다. 지난 27일, 서울 성동구 헤이그라운드 성수시작점에서 열린 수료식에는 1월 6일부터 3주간 진행된 프로젝트에 참여한 3개 팀, 9명의 한양대 학생이 함께했다. 참가자들은 솔루션 저널리즘을 이론이 아닌 실제 취재와 기사 제작을 통해 익혔고, 완성된 세 편의 기사는 더나은미래에 게재됐다. 해당 기사들은 향후 SSIR 한국어판 웹페이지에도 게시될 예정이다. 청년 기자들은 각자의 관심사를 바탕으로 노인·청소년·노동 문제를 주제로 삼아, 보다 구체적인 쟁점을 좁혀 들어갔다. 문제의 현황을 짚고, 당사자와 전문가를 직접 만나 구조적 원인과 해결 가능성을 살핀 뒤 이를 기사로 정리하는 전 과정을 경험했다. 이 과정에는 더나은미래 기자들이 멘토로 참여해 취재와 작성을 함께했다. 서현선 SSIR 편집장은 “문제 해결을 위한 기사를 쓰고자 하는 이들이 하나의 완결된 저널리즘 사이클을 경험해 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프로젝트를 기획했다”며 “주제 발굴부터 취재, 작성까지 전 과정을 실제로 겪어본 경험은 향후 더

도시를 깨끗하게 하는 노동, 안전은 왜 비켜서 있나

야간 수거·‘죽음의 발판’이 일상이 된 현장 왜 안전 기준은 작동하지 않는가 지난 19일 새벽 1시. 비가 그친 뒤의 서울 성동구 용답동 골목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인적이 끊긴 시간, 골목을 채운 것은 사람들이 아니라 집집마다 배출 시간에 맞춰 내놓은 쓰레기봉투였다. 한 상점 앞에는 50리터 종량제 봉투 다섯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봉투 입구는 제대로 묶이지도 못한 채 원통처럼 부풀어 있었다. 기자가 봉투 하나를 들어 올리자 중심을 잡기 어려울 만큼 묵직했다. 약 한 시간 반 뒤, 골목 안으로 수거 차량이 들어왔다. 두 명의 환경공무관이 차에서 내려 봉투를 집어 들었다. 습기를 머금은 봉투들은 거침없이 트럭 위로 던져졌다. 한 명이 봉투를 들어 올리면, 다른 한 명은 계단 세 단 높이의 적재함 위에 올라 ‘토스’하듯 받아 올렸다. 골목을 돌수록 차량 위에 쌓인 봉투 더미는 점점 높아졌다. 기온은 영하 3도. 얼굴에는 이내 땀방울이 맺혔다. 쉼 없이 이어지는 작업 탓이었다. 기자가 뛰어 수거 차량을 따라잡을 수 있을 만큼 정차 지점은 촘촘했다. 성동구 환경공무관의 야간 근무 시간은 자정부터 오전 8시까지. 제한된 시간 안에 담당 구역을 끝내야 하다 보니 작업 속도는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나흘 뒤 찾은 도봉구에서는 ‘주간 수거’가 이뤄지고 있었다. 작업 시간은 오전 6시부터 오후 3시까지. 현장에서는 2인 1조 또는 3인 1조가 움직이고 있었다. 한 명이 차량을 운전하고, 나머지 인원은 도보로 골목을 돌며 쓰레기를 한곳에 모은 뒤

교실을 벗어난 청소년들, ‘꿈드림’에서 다시 길을 묻다

학교 밖 청소년의 진로·관계·생활을 다시 잇는 ‘꿈드림’ 현장에서 확인한 ‘안전망’과 남은 과제는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어요. 선택지가 많다 보니 오히려 진로를 정하는 게 더 어려웠죠. 세상은 늘 한 가지 길만 요구했는데, 그 기준에 저를 맞추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학교를 떠나게 됐어요.” 조혜민(21)씨는 12살이 되던 해 학교를 그만뒀다. 그의 선택은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다. 성평등가족부 청소년정책리포트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학교 밖 청소년은 약 17만3800명으로 추정된다. 매년 5만 명 안팎의 청소년이 새롭게 학교를 떠난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고립·은둔 청소년까지 포함하면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성평등가족부의 ‘2023년 학교 밖 청소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학교를 그만둔 이유로는 ‘심리·정신적 어려움’(31.4%)과 ‘원하는 것을 배우고 싶어서’(27.1%)가 가장 많았다. 학교 밖 청소년은 흔히 ‘탈락자’로 묘사되지만, 조사 결과는 다르게 말한다. 이들 상당수는 목표가 없어서가 아니라, 기존 제도 안에서 자신의 선택지를 찾기 어려워 학교 밖을 선택했다. 조씨는 “공모전이나 대회에 지원할 때 ‘소속 학교’란에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 주최 측에 여러 번 전화를 걸어야 했다”며 “학교 재학생만 가능하다는 답을 들을 때마다, 세상은 여전히 청소년은 모두 학교에 다닌다고 전제하는 것 같아 답답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학교 밖 청소년이 겪는 어려움은 진로 탐색 이전 단계에서부터 시작된다. 같은 조사에서 이들은 학업 중단 이후 겪는 가장 큰 어려움으로 ‘선입견·편견·무시’(26.2%)를 꼽았다. ‘새로운 친구 만들기 어려움’(25.0%), ‘의욕 저하’(24.2%), ‘진로 찾기 어려움’(23.2%)도 뒤를 이었다. 현장 전문가들은 이

경로당에 들어온 AI, 노년 복지의 실험이 성공하려면

건강·행정·교육까지… 생활 공간으로 확장되는 ‘스마트 경로당’ AI 기술 보급이 목적 아닌, 필요에서 출발한 노년 복지 모델의 성공 조건 “어르신, 병원에 한 번 가보세요.” 경기도 부천시의 한 경로당. 태블릿 화면에서 흘러나온 인공지능(AI) 음성에 대화를 나누던 어르신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곧이어 차분한 안내 음성이 이어진다. 질문에 답하듯 말을 이어가자, 화면에는 말의 속도와 발음, 억양을 분석한 결과가 실시간으로 표시된다. 음성 인식을 통해 발화의 끊김과 흐름을 살펴 인지 변화 신호를 포착하고, 치매 가능성을 가늠하는 과정이다. 경로당 한쪽에서는 스마트 저울과 혈압계 앞에 어르신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측정 결과는 태블릿에 저장된 뒤 곧바로 보건소로 전달된다.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면 병원 방문을 권유하는 안내가 이어진다. 부천시 관계자는 “경로당에서 측정된 건강 데이터가 보건소와 실시간으로 공유되면서, 어르신 건강 상태를 선제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춰졌다”고 설명했다. 동네 진료소가 경로당 안으로 들어온 듯한 풍경이다. ◇ 디지털 격차, 경로당에서 답을 찾다 이제 경로당은 더 이상 바둑판과 담소에 머무는 공간이 아니다. 전국 곳곳에서 경로당은 AI를 통해 건강관리·교육·행정 기능을 아우르는 생활 복지의 거점으로 변모하고 있다. 변화의 중심에는 ‘스마트 경로당’이 있다. 스마트 경로당은 노년층이 주로 이용하는 기존 경로당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공간이다. 대형 스크린과 화상 장비, 태블릿 등을 활용해 운동·노래·건강관리 프로그램을 대면과 비대면 방식으로 동시에 운영한다. 2021년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스마트빌리지 확산 사업’의 하나로 추진됐으며, 중앙정부가 일괄 모델을 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설계·운영하는 포괄보조사업 형태다. 이 같은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 [임팩트 커리어 인터뷰]

임팩트 커리어 릴레이 인터뷰 <2> 오혜정 총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대신 말하는 역할에서, 더 정확히 드러내는 역할로” “기자로서 저는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신 전하는 사람이었다면, 지금은 연구를 통해 그 목소리가 왜 묻히는지를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공익 전문 기자, 기업 재단 실무자, 그리고 사회복지학자. 오혜정 총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의 커리어는 임팩트 생태계의 여러 지점을 가로지른다. 기업 사회공헌 컨설팅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그는 교육 관련 회사를 거쳐, 2010년 조선일보 공익섹션 <더나은미래> 창간과 함께 공익 전문 기자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기업 재단에서 약 10년간 실무를 경험한 뒤, 현재는 아동·이주배경 아동과 청소년, 다문화 가족을 연구하며 정책과 현장을 함께 들여다보고 있다. ◇ 긴장 속에서 배운 ‘현장’의 감각 오 교수는 기자 시절을 “항상 긴장 속에 있던 시간”으로 기억한다. 그는 “내가 쓴 글이 내부 문서가 아니라,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기사라는 점이 늘 부담이었다”며 “출고를 앞두고는 취재가 충분했는지, 놓친 맥락은 없는지 계속 점검하다가 악몽을 꾸기도 했다”고 말했다. 긴장과 부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만큼 현장과 가까이 설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기억에 남는 취재로 그는 ‘아동 학대 현장’을 꼽았다. 현장을 동행 취재한 뒤 기사가 나가자 “도와주고 싶다”는 연락이 여러 차례 이어졌고, 알려야 할 이야기를 대신 전하는 역할의 무게와 보람을 동시에 실감했다. 특히 2010년 창간 특집 ‘세계 Top 10 사회적 기업가를 찾아서’ 시리즈는 이후 그의 커리어를 바라보는 기준이 됐다. 직접

기록하던 기자, 설계하는 연구자가 된 이유는 [임팩트 커리어 인터뷰]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 사람들은 어떻게 이 생태계에 들어와, 어떤 방향으로 자신의 일을 확장해 왔을까요. 2026년 신년을 맞아 <더나은미래>는 사회혁신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선택과 이동을 따라가는 릴레이 인터뷰를 시작합니다. 이 시리즈는 개인의 이력을 넘어, 임팩트 생태계가 사람을 어떻게 길러내고 붙잡아 왔는지를 기록합니다. 첫 번째 주인공은 <더나은미래> 창립 멤버이자 사회혁신 R&D 기업 이노소셜랩을 이끌고 있는 고대권 대표입니다. /편집자 주 임팩트 커리어 릴레이 인터뷰 <1> 고대권 이노소셜랩 대표 “해결책을 찾는 만큼, 질문을 누가 던질지 고민해야 한다” “사회문제가 커지는 속도에 비해, 그것을 해결하는 속도는 늘 더디다고 느꼈습니다. 그 격차를 줄이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 R&D 기반 접근이었죠.” 사회혁신 R&D 기업 이노소셜랩을 이끌고 있는 고대권 대표의 말이다. 공익 전문 기자로 사회혁신 현장을 기록해 온 그는 2015년 이노소셜랩을 창업하며, 관찰과 취재의 자리에서 문제를 분석하고 구조적으로 다루는 연구·설계의 영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기록에서 현장으로…지식으로 사회문제에 접근하다 고 대표가 사회혁신 생태계와 처음 연결된 계기는 ‘영화’였다. 영화 평론을 하며 사회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고, 홈리스들과 함께 저자를 초대해 인문학 책을 보는 모임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 경험은 CJ그룹과 함께 지방 분교에서 사흘간 영화를 제작하고, 마을에서 상영하는 사회공헌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이 프로젝트를 계기로 그는 2010년 3월 조선일보 공익섹션 <더나은미래>에 합류해 창간호부터 2년간 공익 전문 기자로 활동했다. 그는 기자 시절을 돌아보며 지면 기획이 가장 기억에 남는 시도였다고 말했다. 고 대표는 “당시 8면으로 발행되던

사회혁신적인 대학이 사회혁신가를 키운다

전공과 진로를 넘어 ‘경험’으로 설계된 사회혁신 커리어의 출발점 한양대 사례로 본 사회혁신 이니셔티브의 조건과 한계 사회혁신은 특정 전공이나 직업군의 전유물이 아니다. 실내건축디자인, 경영학, 산업공학을 전공한 세 명의 청년은 각기 다른 출발점에서 사회혁신을 접했고, 이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재설계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대학에서 사회혁신을 개념이 아닌 경험으로 접했다는 점이다. 실내건축디자인을 전공한 이정인 씨는 수업을 통해 사회혁신을 처음 알게 됐다. 사회혁신은 전공과 무관한 영역이라고 생각했지만, 수업에서 수용자 자녀를 지원하는 단체를 인터뷰하며 돌봄의 사각지대를 접했고, 이후 전공 수업에서 수용자 부모와 자녀가 만나는 접견 공간을 설계 주제로 삼았다. 공간 디자인이 사회문제 해결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파이낸스경영학을 전공한 조수연 씨는 취업 준비 과정에서 사회혁신융합전공 수업을 선택했다. 사회혁신을 막연히 사회복지와 유사한 개념으로 이해하던 그는 수업과 인턴십을 통해 이 영역이 요구하는 전문성과 가치지향성을 체감했다. 졸업 후 대기업인 삼성전자에 입사했지만, 의미와 효능감을 느끼기 어려웠고 결국 회사를 떠나 사회혁신 조직 임팩트리서치랩에서 일을 하고 있다. 산업공학을 전공한 백경은 씨는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가 공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사회적기업 동아리 활동을 통해 캠퍼스 내 자원순환을 촉진하는 기부 모델을 개발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임팩트 지향 조직에서의 인턴십 경험을 거쳐 영리 기업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그녀는, 현재 현대자동차그룹에서 자신의 업무를 임팩트 관점에서 해석하며 일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한양대학교에서 사회혁신을 경험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한양대는 2018년 사회혁신융합전공을

성수동에서 시작된 실험, ‘사회혁신 커리어’의 길을 만들다

교육·채용·커뮤니티로 만든 사회혁신 인재 생태계 루트임팩트가 설계한 임팩트 커리어 경로 2014년 서울 성수동에는 막 창업을 시작한 창업가, 사회문제에 관심 많은 대학생, 갭이어를 선택한 직장인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공통 관심사는 ‘사회혁신’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성수동은 사회혁신을 위해 일하는 조직 500여 곳이 모인 소셜벤처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이 짧지 않은 변화의 이면에는 ‘사람이 모이고, 머물고,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다. 당시 국내 사회혁신 생태계는 공공 중심의 제도와 과제형 지원이 주를 이뤘다. 반면 성수동에서는 민간 주도로, 사람과 조직을 중심에 둔 비즈니스 기반의 독립적인 생태계가 자라기 시작했다. 사단법인 루트임팩트는 사회·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를 설계하고 움직일 ‘사람’이 핵심이라고 보았다. 특히 사회문제 해결을 일로 삼을 수 있는 인재가 생태계에 유입되지 않으면 지속가능성은 요원하다고 판단했다. “생태계 초기에 창업가들은 모일 때마다 채용이 쉽지 않다는 대화를 나눴어요. 아직 생태계 규모가 작기도 하고 우리가 하는 일을 설명하기도 어려웠거든요.” 루트임팩트 허재형 대표의 회상처럼 그 시기 사회혁신 조직들은 공통적으로 인재 유입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2010년대 중반, 사회혁신 분야는 청년들에게 하나의 ‘커리어 선택지’로 인식되지 않았다. 당시 주요 청년 고용 통계와 직업 조사에서도 사회혁신·소셜벤처·비영리 영역은 별도의 범주로 다뤄지지 않았다. 관심은 있었지만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보이지 않았고, 진입 경로 역시 비공식적이거나 암묵적이었다. 낮은 보상과 고용 불안정에 대한 인식은 사회혁신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데 가장 큰 장벽이었다. 루트임팩트는 이 문제를 사회혁신

‘좋은 일을 업(業)으로’…임팩트 커리어는 어떻게 진화했나

의미와 생존이 만난 커리어의 탄생 ‘임팩트 커리어’ 20년 변천사 한국 사회에서 ‘경제 성장’은 한때 거의 종교에 가까운 신념이었다. 절대적 가난과 결핍의 시기를 벗어나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압축 성장을 이뤘고, 성장 그 자체가 윤리로 작동했다. 성공은 ‘선’이었고, 효율은 ‘정의’였다.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는 그 신념의 붕괴를 상징했다. 한 세대가 쌓아올린 성장의 성채는 순식간에 무너졌고, 개인은 국가의 이름으로 구조조정됐다. 경제 호황기 베이비붐 세대의 커리어는 ‘서류만 내면 합격하던 시절’을 상징했다. 일자리가 부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다음 세대에게 일은 생존의 전장이었다. 성장률이 한 자릿수로 떨어지자 청년들의 장래희망 1위는 공무원과 교사가 됐다. ‘안정’은 곧 생존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러나 위기는 언제나 새로운 관점을 낳는다. 저성장과 경기침체, 금융위기의 여파 속에서 일부 청년들은 안정보다 의미를, 생존보다 방향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 글로벌 금융위기와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 이 흐름에 불을 붙인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월스트리트의 탐욕이 초래한 이 사건은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남겼다. 미국에서는 이를 계기로 ‘사회적 기업가정신’이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했다. ‘이윤을 내되 사회문제를 해결한다’는 발상은 낡은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이자 새로운 생태계에 대한 제안이었다. 한국에서도 외환위기의 상처와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가 교차하던 시점에 이 흐름은 빠르게 수용됐다. 청년 세대는 ‘좋은 일’이 경제의 언어로 작동할 수 있는지 묻기 시작했다. “사회에 좋은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없을까.” 2000년대 중반, 이 질문은 낯설고도 용감한 상상이었다. 사회문제는 비판의 대상이었지, 직업의 언어로 다뤄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