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마지막 남방큰돌고래 연내 방류
생존 위협받는 생물에 ‘생태법인’ 지정 논의
해외에선 이미 강, 빙하에 법인격 부여
국내 수족관에 남아있던 마지막 남방큰돌고래 ‘비봉이(수컷·23살 추정)’가 바다로 돌아간다. 2005년 4월 제주 비양도 인근 해역에서 혼획된 이후 수조에 갇혀 생활한 지 17년 만이다. 돌고래 해양방류는 지난 2013년 제돌이, 춘삼이, 삼팔이를 시작으로 2017년까지 총 7마리를 대상으로 이뤄진 바 있다. 비봉이는 4일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연안에 설치된 가두리 훈련장으로 옮겨졌다. 앞으로 이곳에서 야생적응 훈련을 거친 후 인근 해역에 방류될 예정이다.
남방큰돌고래는 2012년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된 이후에도 매년 개체 수가 감소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는 110~120마리 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서식지 보호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현재로서는 법률적, 행정적으로 대응할 방법이 없다.
남방큰돌고래의 ‘감금되지 않을 권리’ ‘서식지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를 재판에서 주장한다면 어떨까. 사람이 아닌 기업, 단체 등은 법인 자격을 부여받아 법정에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현행 법체계에서 자신의 의사를 나타낼 수 없는 자는 후견인이 법적 권리를 대신 행사하는데, 같은 원리를 적용한다면 원고인 자연물의 법적 권리를 후견인 또는 대변인이 대신 주장할 수 있다. 이처럼 자연물에 법인격을 부여해 서식환경이 악화하는 등 권리를 침해받을 때 법적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생태법인’이라 한다.
국내에서 생태법인 개념은 진희종 전 제주도감사위원이 2년 전 국내 철학학회지에 처음 소개했다. 지난해에는 생태법인 대상을 남방큰돌고래로 한 후속 논문을 발표했다. 진 전 위원은 “기후·생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생태주의적인 법체제가 마련돼야 한다”며 “생태법인은 자연보호에 유리한 제도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생태법인 개념이 주목받기 전에도 국내에서 동물을 원고로 소송을 청구한 사례가 있었다. 지난 2004년 천성산 터널 착공과 관련해 환경단체 등이 ‘도롱뇽’을 원고로 소송을 제기했고, 2019년엔 강원도 설악산에 오색케이블카 추가 설치를 반대하며 동물권리연구변호사 단체가 설악산에 사는 ‘산양’을 원고로 제소했다. 다만 두 사례 모두 재판부는 자연물을 원고로 인정할 수 없다며 각하했다.
생태법인에 대한 정부 차원의 논의는 물꼬를 튼 상태다. 지난 2월 국회에서는 국회의원, 동물단체, 전문가 등이 참여한 첫 ‘생태법인’ 입법정책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 참여했던 신주운 동물권행동카라 팀장은 “국내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이라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토론이 진행됐고, 5월엔 해양수산부 관계자와 전문가 간담회도 가졌다”면서 “생태법인 제도화를 위해 정부 입법이 필요한데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생태법인 제도화에 대한 다양한 접근법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헌법학회 부회장인 박규환 영산대 법학과 교수는 지난 3월 국회 토론회에서 제주특별법에 관련 조항을 추가하자고 제안했다. 일반법으로 제정하는 방안보다 더 현실적일 수 있고, 제주의 생태적 가치를 고려하면 적용을 늦출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진 전 위원도 “제주특별법으로 남방큰돌고래를 생태법인으로 지정하는 것도 가능성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태현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문가 위원회의 권고로 시작해서 조례 제정, 입법까지 나아가면 단계로 진행할 수 있다”면서 “앞으로 돌고래 외의 자연물에도 법인격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일부 지역에 국한되지 않은 ‘특별법’ 형태로 법적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생태법인 지정 대상에 대해서는 “자연물의 생태적 가치, 상징적 가치, 역사적 과정, 사회적 합의가 모두 고려돼야 한다”며 “여러 가치가 인정될수록 수용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태현 교수와 진희종 전 위원은 환경 관련 사건이 더 늘어날 것이라며 생태법인 재판 등을 특수하게 다룰 수 있는 ‘환경법원’의 설립 필요성도 제기했다.
전문가들은 생태법인 제도화에 가장 중요한 건 사회적 공감대라고 강조했다. 진 전 위원은 “비봉이를 비롯해 수족관 돌고래들이 방생된 건 우리나라의 생태적 국격을 높인 사건이라고 본다”며 “생태주의적 법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선 사회적 공론이 중요한데, 대중의 관심도나 행정적 논의 모두 선진적인 수준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 박태현 교수는 “자연을 존중하며 생태물이 물건이 아니라는 대중의 인식 제고가 가장 필요하다”며 “인식 제고가 이뤄지면 낮은 수준에서부터 생태법인 제도화를 추진해 볼 만 하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자연물에 생태법인 개념을 적용한 사례가 있다. 2017년 뉴질랜드 의회는 원주민 마우리족의 오랜 삶의 터전인 왕가누이 강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법률을 만들었다. 왕가누이 강은 1870년대부터 원주민들과 뉴질랜드 정부 간에 소유권 분쟁이 이어온 곳이다. 왕가누이강의 후견인 역할은 정부와 원주민이 각각 지정한 인사들이 맡았다. 같은 해 인도는 히말라야 산맥의 빙하에 법인격을 부여했다. 미국의 30여개 지역사회에서는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는 지방 조례를 냈다. 생태계 훼손 극복을 위한 법제화에 대한 공감대는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생태법인에 관한 논의는 오는 9월 14일부터 16일까지 열리는 제주포럼과 9월 23일 개최되는 제152회 한국환경법학회 정기학술대회 등에서 이어질 예정이다.
강나윤 더나은미래 인턴기자 nanasi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