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우정국(USPS)이 노후 우편차량의 90%를 전기차가 아닌 가솔린차로 교체한다고 최종 결정했다. 우정국은 그간 바이든 행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에 역주행하며 갈등을 빚어왔고, 결국 백악관 권고안을 거부한 것이다.<관련기사 “전기차 대신 가솔린차로 배달”… 美 우정국, 바이든의 ‘탄소중립’에 찬물>
워싱턴포스트(WP)·CNN 등 외신은 23일(현지 시각) 우정국이 최대 14만8000대의 가솔린차 구매계획을 확정했다고 보도했다. 전체 교체 차량의 10%는 전기차다. 이를 포함한 총 구매 비용은 약 113억 달러(약 13조5900억원)다.
우정국은 미 정부 기관 중 단일 기관으로는 최다인 23만대의 차량을 보유하고 있다. 우정국의 차량은 엿새 동안 1억6100만 가정에 우편을 배달한다. ‘클린 에너지’를 표방한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취임 직후 “약 65만대에 달하는 관공서 가솔린 차량을 오는 2035년까지 모두 전기차로 교체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우정국은 지난 2일 미국 환경청(EPA)과 백악관 환경위원회(CEQ)의 경고 서한에도 불구하고 가솔린차를 고집했다.
미국의 연방기관은 예산을 집행하기 전에 반드시 ‘환경 영향 연구’를 마쳐야 한다. 교통안전·소음, 환경적인 영향 등을 평가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하지만 우정국은 환경 연구를 시작하기에 앞서 지난해 2월에 이미 우편차량 구매에 대한 계획을 발표했다. 또 연구가 완료되기 전 오하이오주 소재 방산업체인 오시코시(Oshkosh)에 4억8200만 달러(약 5800억원)를 지불해 제조 시설을 건설했다. 이에 대해 바이든 행정부는 “우정국이 환경 영향 연구의 ‘타이밍’을 지키지 않았다”며 “그마저도 잘못된 데이터에 의존한 연구 결과였고 이를 정당화하는 방식에 불과했다”고 비난했다.
이날 우정국은 가솔린 신차 구매 비율이 높은 원인으로 ‘비싼 전기차 값’을 들었다. 전기차가 가솔린차보다 차량 당 3만 달러(약 3620만원)가량 더 비싸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료 가격을 계산하면 달라진다. 우정국은 휘발유 비용을 갤런당 2.19달러로 계산했다. 2040년의 휘발유 비용도 0.36달러 오른 2.55달러에 불과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미국 환경청은 “우정국이 연구를 진행할 당시 이미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2.80달러를 넘었다”며 “전기차의 배터리 가격은 점차 저렴해질 것인데 우정국은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우정국은 ‘전기차는 비효율적인 교통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전기차를 최대로 충전했을 때 한 번에 70마일만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포드(Ford) 전기차를 예로 들며 반박했다. 그들은 “포드 전기차의 경우 한 번의 충전으로 최대 126마일을 이동할 수 있다”며 “우정국의 이러한 주장은 5~10년 전에나 나왔을 법한 발상”이라고 했다.
신차의 연비가 너무 낮다는 문제도 있다. 신차의 주행거리는 갤런당 8.6마일(약 14km)로 기존 노후 차량보다 0.4마일 늘어났다. 자동차 업계 표준인 갤런당 12~14마일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치다. 환경청은 “우정국이 계약한 가솔린 신차는 앞으로 20년 동안 2000만t의 이산화탄소를 뿜어낼 것”이라며 “이는 매년 430만대의 승용차가 내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맞먹는다”고 지적했다.
김수연 더나은미래 기자 yeo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