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기부금 중간 점검
국내에 코로나19 첫 확진 환자가 발생한 지 석 달째다. 코로나19 국민 성금은 전국 확산의 기점인 ’31번 환자’가 등장한 2월 18일 이후 본격적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재난기부금은 전국재해구호협회,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한적십자사 등 세 곳으로 집중된다. 지난 8일 기준 세 기관의 코로나19 모금총액은 2386억5641만원이다. 기관별로는 재해구호협회 930억원, 공동모금회 840억원, 적십자사 616억원 등이다. 집행 완료한 금액은 1383억4623만원으로, 집행률은 절반을 넘긴 57.9%다. 본지가 지난달 18일 집계한 세 기관의 기부 현황 자료와 비교하면 3주 만에 371억원이 더 모였고, 686억원을 추가로 집행했다.
‘빅3’에 모인 기부금 2300억원, 정보공개는 제각각
재난 초기 기부금의 빠른 집행을 촉구하던 국민의 관심은 이제 기부금 집행 기준과 사용처 등 투명한 정보공개로 전환되고 있다. 국내 역대 사회·자연재난 가운데 전례 없는 최대 규모 기부금이 모이면서 모금 기관들도 각자 온라인을 통해 집행 내역을 공개하고 있다. 문제는 공개된 정보가 기관마다 제각각인데다, 기부내역에 대한 핵심 항목을 누락한 기관도 있다는 점이다.
전국재해구호협회는 A4 23장 분량의 ‘코로나19 현황 보고’를 매일 홈페이지에 업데이트하고 있다. 하지만 현황 보고 문건에는 모금액만 명시돼 있고 집행액은 찾아볼 수 없다. 재해구호협회는 기부금으로 필요한 물품을 직접 구매해 현장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지원일 ▲지원처 ▲지원 물품 등은 상세하게 공개하면서 여기에 사용된 금액만 쏙 빠져 있다. 이에 재해구호협회 관계자는 “집행액보다는 지원 물품 몇 점이 어디로 전달됐는지를 중점으로 공개하고 있다”며 “내부적으로는 집행액을 파악하고 있다”고 답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모금액, 집행액, 지원 분야별 금액 등 세 가지의 제한된 정보만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491억원이 넘는 기부금을 집행했지만, 어느 기관에 전달했는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다른 두 기관이 기부자 예우 차원에서 마련한 기부자 명단도 공개하고 있지 않다. 공동모금회 관계자는 “기관마다 특성에 따라 통계를 내는 분류 항목이 다를 수 있다”고 답했다. 이마저도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통해 일주일에 단 한 차례 업데이트되고 있다. 매일 정보를 갱신하는 나머지 두 기관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대한적십자사는 기부금 지원 내역을 국민에게 가장 상세하게 공개하고 있다. 이들은 ‘코로나19 재난성금모금 및 긴급대응활동 안내’라는 별도 페이지를 마련해 ▲모금·집행 현황 ▲지원 분야·물자별 내역 ▲본사·전국 16개 지사별 구호활동 내역 ▲기부자 명단 등을 공개했다.
선택적 정보공개에 ‘배분기준 모호’ 비판도
업계에서는 모금기관의 선택적 정보공개를 두고 ‘편의주의적 사고’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공동모금회가 기부금을 한국사회복지관협회, 한국노인복지중앙회 등으로 전달하면서 세부 내역은 비공개하는 점이 대표적이다. 공동모금회의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원 기관 명단을 공개하면 안 받은 곳에서 항의가 들어오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며 “지원 내역을 ‘한국사회복지관협회 등 12개 단체에 53억원 지원’식으로는 공개할 수 있다”고 답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비영리단체 활동가는 “대규모 금액을 집행하는 공동모금회가 지원 기관과 금액을 투명하게 밝히지 않는 것은 스스로 배분기준이 모호하다는 걸 자인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투명한 정보공개를 위해서는 명확한 기부금 집행 원칙 공개가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는 “모든 재난에는 시나리오가 있고, 기부금도 여기에 맞춰 단계별로 집행돼야 한다”며 “재난기부금 집행 원칙을 먼저 공개하고 이에 따라 절차를 밟아 나간다면 여론에 쫓길 일도 없고 공개하지 못할 정보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부 투명성에는 정보공개뿐 아니라 기부금이 목적에 맞게 쓰이는지 확인하는 장치도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상시적 협력하는 재난구호 연대체 필요”
현행 제도상 기부금 지원 현황 공개를 강제할 방법은 없다. 자연재해의 경우 재해구호법에 따라 의연금품을 전국재해구호협회에 모으고 행정안전부·지자체와 논의해 배분한다. 이와 달리 지난해 강원산불이나 이번 코로나19와 같은 사회재난 때에는 기부금품법을 적용받아 모든 권한이 모금기관에 전적으로 맡겨져 있다.
전문가들은 민간단체의 자율 권한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연대 조직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영국은 구호 기능을 갖춘 14개 단체가 연합체인 ‘재난구호위원회(Disasters Emergency Committee)’를 구성해 재난 상황에 공동 대응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주(州) 단위로 재난구호활동협의회(VOAD)가 조직돼 있고, 이들은 전국 단위의 전국재난구호활동협의회(NVOAD)로 연결돼 지역별 구호단체와 연대한다. VOAD 회원 단체는 기관 특성에 따라 재난현장에서의 역할을 나누고 있고, 평소 서로 견제·감독하는 게 특징이다.
국내에서도 이런 시도가 있었다. 2004년 12월 당시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는 재난 구호현장에서 활동 중복성과 기관 간 비연계성 등을 해소하기 위해 민관협력기구인 ‘한국재난안전네트워크(KDSN)’를 창립했다. 정회원으로 대한간호협회, 대한의사협회, 적십자사, 한국자원봉사센터협회, 안전보건공단 등 10여 개 기관이 참여했고, 공동모금회는 협력회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2015년 이후 활성화되지 않으면서 유야무야됐다. 전문가들은 “정부, 모금 전문가, 재난안전 전문가 등 다양한 주체가 공조해 긴급한 상황을 결정하는 민관협력 형태의 ‘재난구호 연대체’가 필요하다”면서 “예고 없이 찾아오는 재난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상시적인 교류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지원도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