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각자의 현장에서] 난민에겐 버거운 ‘잠시 멈춤’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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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로 전국이 떠들썩한 요즘, 난민 신청자의 시간은 한없이 느리게 흐른다. 지난 2017년 4월 인천국제공항에서 난민 신청을 하고, 어렵사리 한국 땅을 밟은 난민 A씨. 벌써 2년 10개월이 다 되도록 출입국에서 난민 심사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법무부에 전화와 온라인으로 꾸준히 질의를 보낸 끝에 받아낸 난민 심사 출석 요청일은 3월 첫 주였다. 그러나 A씨는 난민 면접일 이틀 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난민 면접을 취소한다’는 문자를 받았다. 난민 심사 면접이 언제 다시 잡힐지에 대해서는 기약이 없다.

난민 B씨는 2018년 늦가을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됐다. 그는 본국에서 정치적 활동으로 고문을 당하면서 고막이 손상돼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구금이 장기화하면서 B씨는 체력과 정신건강이 모두 악화해 가고 있었다. 피부 질환도 심해지고,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혼잣말하는 증상도 생겼다. B씨가 난민 소송을 제기한 지도 1년 3개월 가까이 시간이 흘렀고, 이제 3월 둘째 주 마지막 변론 기일만을 남겨둔 상황이다. 하루빨리 1심 법원의 판단을 받아서 구금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은 B씨의 간절한 바람이다. 그런데 얼마 전 법원에서 변론 기일이 4월 초로 연기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코로나19 확산 예방 차원이라고 했다. 고통을 호소하면서 변론 기일을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린 B씨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전달해야 좋을지 고민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난민 상담, 법률 조력을 포함한 많은 활동과 정책 운영이 잠정적으로 보류되거나 연기되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 물론 보호소 시설과 이주민 커뮤니티 내 감염 확산 방지 등을 위해 이뤄진 불가피한 조치라고 하지만, 이렇게 속상하고 안타까운 상황들이 발생하는 것도 사실이다. 제도권 밖에 놓인 많은 난민과 이주민들의 가장 기초적인 사회적 처우를 민간에서 지원해 오던 상황에 이번 코로나19의 여파는 제도적 공백을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중대한 사회적 재난 앞에 소수자 인권 옹호 활동이 잠시 주춤해도 될 것인가. 매우 고민이 되는 지점이다. 이로 인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는 또다시 고스란히 사회적 위험에 노출되고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을 공유하는 여러 단체와 소속 활동가들은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역할을 해 나가고 있다.

일부 이주민·난민 지원단체에서는 코로나19 확산 현황과 대응 지침에 관한 정보를 소수 언어로 번역해 이주민 커뮤니티에 배포하는 활동을 발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또 누군가는 코로나19로 인한 이주민 혐오와 차별이 확산하지 않도록 우려의 입장을 밝히고 언론 모니터링도 지속하고 있다. 일부 이주민 커뮤니티에서는 “한국의 사회적 재난 위기 극복에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자원 활동, 모금 등을 조직하고 있기도 하다. 사회적 위기 극복이라는 이름 아래 소수자의 인권이 후순위로 치부되지 않도록, 누군가의 삶이 소외되지 않도록, 또 다른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금 더 세심한 관찰과 노력이 필요한 때다.

[정리=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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