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각자의 현장에서]
①허영철 공감씨즈 공동대표
②김하종 안나의집 대표
③엄소희 키자미테이블 공동대표
④이인숙 영등포 쪼물왕국 지역아동센터장
⑤김연주 난민인권센터 변호사
“아이들 밥은 어떡하나.”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지역아동센터를 휴원하게 되면서 시작된 고민이다. 밥을 굶는 아이들은 없겠지만, 부모님이 일 나간 사이 편의점이나 집에서 라면 또는 간편식으로 대충 식사를 때우는 모습이 쉽게 상상됐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최고급으로는 못 해줘도 집밥처럼 좋은 것, 건강한 것을 먹이려고 노력해 왔기에 더 걱정됐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출석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조리사 선생님을 근무시킬 수도 없고 외부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요청하기도 어려웠다.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
서울 영등포 쪼물왕국 지역아동센터는 초·중학생 35명의 ‘아지트’다. 지역아동센터라는 말을 들으면 흔히 ‘저소득층 아이의 쉼터’를 떠올리지만, 쪼물왕국은 동네 아이들이 함께 자라나는 놀이터이자 배움터다. 센터 정원이 정해져 있어 초등학교 저학년 동생들의 돌봄을 위해 센터를 졸업시킨 고등학생들은 “호적 파였다”고 농담하면서도 제 집 드나들 듯하는 곳이다. 이젠 자식처럼 느껴지는 아이들을 위해 도시락을 만들고 배달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때부터 일과가 바빠졌다. 지난 3일에는 새벽 1시가 다 돼서야 집에 들어갔다. 도시락은 메인 반찬 하나와 밑반찬 최소 두 가지로 구성했는데, 점심과 저녁 도시락을 매일 준비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새벽까지 밑반찬을 만들어 놓고 퇴근하면서 쌀을 불려놓지 않으면 다음 날 점심때를 맞추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며칠 해보니 요령이 생기기 시작했다.
먼저 전날에 쪼물가족 카톡방에 ▲점심 ▲저녁 ▲점심+저녁 ▲밥 추가 목록을 만들어 투표 창을 띄운다. 마감은 다음 날 오전 10시. 점심 메뉴는 덮밥 메뉴로, 반찬은 김치 또는 깍두기 한 가지만 담는다. 저녁 메뉴는 3가지 반찬으로 만들어 점심때 함께 배달한다. 밥은 어머니들이 퇴근해 준비하거나 필요하면 밥 추가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대신 어머니들 퇴근 후 저녁식사가 늦어지면 아이들이 배고플 수 있을 것 같아 오후 4시에 간식 배달도 한다. 간식은 주로 찐 고구마, 떡볶이, 샌드위치, 과일 등으로 정한다.
식재료는 센터 근처 작은 마트에서 직접 장을 봐온다. 감염병에 대한 불안감이 큰 집에는 직접 배달하지 않고 직접 와서 가져갈 수 있는 곳에 도시락을 놓아두거나, 직접 배달 가더라도 꼭 마스크를 착용하고 적정 거리를 두고 아이들과 대화한다.
몸은 정말 힘들지만, 아이들과 학부모님 반응을 보면 힘이 난다. 아이들이 원장님 밥이 맛있었다고 인증샷을 보내거나, 학부모들이 조금이라도 수고를 덜어주려 늦게 출근하는 날엔 밥을 준비해놓고 나가기도 한다. “매번 정말 감사해요”라는 톡을 받을 때면 큰 보람을 느낀다.
또 이런 상황에서 저희 쪼물왕국 아이들을 함께 챙겨주시는 분들이 있다. 4일에는 방탄소년단 팬클럽 ‘아미’들이 쪼물이들에게 코로나 예방수칙을 담은 응원 메시지와 아이들 각 가정으로 보낼 간편식을 선물로 가득 챙겨왔다. 그리고 ‘아미’들이 모금한 2000만원 후원금을 저희보다 더 상황이 심각한 대구·경북 지역아동센터에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후원금은 아동권리보장원 지역아동센터지원 본부와 연결해 50여 센터에 긴급 구호비로 약 35만원씩 후원될 예정이다.
부디 코로나 19 사태가 빨리 종식되고 쪼물왕국이 다시 아이들의 쫑알거림과 시끌벅적 활기찬 에너지로 가득 차길 바란다. 아이들에게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마을이, 어른들이 너희를 돌볼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고 싶다.
[정리=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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