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일)

[코로나19, 각자의 현장에서] 우리가 만든 도시락, 노숙인의 유일한 식사

경기도 성남에 있는 ‘안나의집 무료급식소’는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 평균 550명의 사회적 약자에게 저녁 식사를 제공했다. 이 소박한 밥상은 어떤 사람들에게 하루에 한 번밖에 먹을 수 없는 끼니다. 사회적 약자인 노숙인과 독거노인이 대부분이다.

최근 코로나19 위기 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됨에 따라 서울·경기 무료 급식소가 일제히 운영을 잠정 중단했다. 안나의집 또한 고민이 깊어졌다. 급식소 운영에 따른 지역 주민들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지역사회 감염 전파에 대한 우려도 크지만, 28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가족 같은 노숙인들을 위한 한 끼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정부에서는 코로나 감염 예방을 위해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 같은 개인위생을 강조하지만, 건강한 식사를 통해 체내 면역력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발표했다. 급식소 운영을 중단한다면 안나의집 가족(노숙인·독거노인)들은 하루 한 끼도 못 먹게 되고, 결국 면역력이 떨어져 바이러스에 더 쉽게 노출된다.

안나의집은 제한된 공간에서 제공했던 무료 급식은 일시 중단하고 대체 식품과 도시락을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막상 도시락을 제공하기로 결정했지만 이에 따른 걱정과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루 550개 도시락과 간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봉사자는 물론 대체할 식료품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매년 부족한 예산에서도 급식소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쌀과 고기 등을 후원하는 외부 지원 덕분이다. 그런데 도시락으로 변경되면서 식료품과 일회용품을 추가 구입해야 하는 경제적 어려움이 현실로 다가왔다. 또한 음식을 만들고 포장까지 해야 하는 도시락은 무료 급식을 진행했을 때보다 더 많은 봉사자가 필요했다. 바이러스 감염 우려로 급식소 방문 자제를 요청한 상태라 봉사자 없이 도시락을 제공할 수 있을까 고뇌했다.

도시락을 제공하기로 한 첫날인 지난 24일, 안나의집에 기적이 일어났다. 감염 우려로 급식소 방문을 자제시켰던 봉사자들이 하나 둘 마스크를 끼고 도시락 만드는 일에 동참하겠다고 손을 모아줬다. 지난 3일에는 젊은 대학생 친구들이 찾아왔다. “신부님! 오늘 학교에서 코로나19로 수업이 중단돼서 이렇게 봉사하러 왔어요.” 이렇게 하루 30명이 넘는 봉사자가 함께해주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국적으로 비가 내리던 어느 날, 봉사자도 없어 도시락 제공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한 업체에서 노숙인들에게 ‘한 끼’라도 제공하고 싶다며 빵과 우유를 후원해줬다. 무속인인 한 후원자는 정성스럽게 드린 고사에 사용한 쌀, 고기, 과일이라며 작지만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늦은 저녁 경기 안산에서 한걸음에 달려온 후원자였다.

위기 속에 우리는 희망의 빛을 보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는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선함이 가득한 아름다운 분이 참 많다는 걸 느꼈다. 앞으로 언제까지 이 상황을 이어 나갈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바이러스 감염 위험을 감수하면서 함께 손을 모아주는 봉사자들과 다양한 방법으로 후원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 희망과 용기를 얻는다.

[정리=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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