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1일(목)

“오늘 입사해서 내일 퇴사합니다”…청년기자의 ‘하루인턴’ 실험

‘하루인턴 VLOG : 진저티에서 하루만 일해본다면?’ 캡쳐.

인턴의 처지는 서글프다. 취업 시장에 내던져진 청년들은 경력을 쌓기 위해 무급 인턴도 자처하지만, 발에 땀나게 일해도 경력으로 인정받거나 노동력으로 존중받는 경우는 드물다. 기업 입장에서는 인턴이 짐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인턴을 교육하고 관리하려면 시간과 비용, 인력이 들어가야 하는데, 대기업을 제외하곤 쉽지 않은 일이다. 인턴은 대학생과 직장인의 경계에 걸린 ‘이방인’같은 존재일까.

‘좋은 일자리’에 대한 고민이 사회 곳곳으로 확산하면서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열정페이’를 거절하고 ‘평생직장’을 거부하는 밀레니얼 세대가 기업의 조직 문화를 변화시키고 있다. 아이디어와 실력만 있으면 인턴도 조직에서 성과를 보이고 스스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기자는 인턴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실험하기 위해 직접 ‘하루인턴’에 도전했다. 유연한 환경에서 권한을 갖고 일한다면 단 하루 근무로도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그 출발점이었다. 건강한 조직문화를 연구하고 컨설팅하는 ‘진저티프로젝트’에 하루인턴 제안서를 냈고, 지난 4월 29일 출근했다.

하루인턴, 권한을 가진 만큼 책임을 얻다

“하루 가지고 뭘 해요?”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진저티프로젝트 사무실. 기자의 하루인턴 제안에 대해 들은 직원들의 첫 마디였다. 하루인턴 실험은 진저티프로젝트에게도 낯선 도전이었다. “하루인턴이라는 경험이 진저티에게 무얼 남길 수 있을까요?”, “왜 진저티를 선택했나요?”, “오늘 입사했는데, 내일 퇴사하시는 건가요?”. 질문이 끊이질 않았다.

진저티프로젝트의 구성원들은 모두 자신이 정한 직함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기자는 ‘Proposer’이라는 직함을 정했다. 근무하는 동안 조직을 위해 마음껏 제안해보자는 생각이었다. 기자는 하루 동안의 인턴 경험을 브이로그로 남겨 진저티프로젝트의 페이스북 공식계정에 업로드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진저티프로젝트라는 조직과 하루인턴 실험을 홍보하겠다는 의도였다.

기자는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열린 ‘임팩트 커리어 W’에 참여한 3기 펠로우의 소감 발표회 행사에 참여했다. 임팩트 커리어 W는 ‘경력보유여성’을 위한 교육과 채용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출산과 육아 등을 이유로 사회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이 이전의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다. 이 행사에서 참가자들의 소감을 영상에 담아보기로 했다. 현장에서 이야기를 들을수록 이들의 소감이 절실하게 다가왔고, 어떻게 하면 이들의 이야기를 더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됐다. 영상의 구성부터 촬영, 편집까지 전권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주도적으로 영상을 찍을 수 있었지만, 이에 따른 책임 역시 하루인턴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갔다. 퇴근 전, 진저티프로젝트 구성원들은 기자에게 하루인턴으로서의 시간을 ‘회고’해보라고 했다. 진저티프로젝트는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방향을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모든 직원이 일년에 하루는 스케줄을 비우고 성과나 숫자가 아닌 성장과 의미를 기준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고 말했다. 기자는 “‘내 일’을 주도하며 책임감을 느낀 뜻깊은 경험이었다”면서 “안다고 여겼던 것들도 겪어보지 않고 함부로 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밀레니얼의 힘, 인턴의 가능성을 믿을 때 조직도 성장

하루인턴의 홍보 효과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페이스북에 올린 영상의 조회 수나 구독자도 눈에 띄게 늘지 않았고 Proposer이라는 직함이 무색할 정도로 유의미한 제안을 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하루인턴 실험은 기자에게도, 진저티프로젝트에게도 큰 시사점을 남겼다. 조직이 구성원에게 권한을 주고 스스로 가치를 느끼도록 할 때 어떤 방식으로든 성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하루 동안의 인턴 경험으로 기자와 진저티프로젝트 모두 소정의 성과를 얻었다. 두세달에 걸쳐 진행되는 단기 인턴 역시 제대로 준비하면 충분히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뜻이다.

다행히 최근 기업들은 새로운 세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지난 4월 16일 대한상공회의소는 기업 인사 담당자 40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세대갈등, 우리는 왜 다를까’란 주제의 강의를 열었다. 신한은행은 역할극을 통해 서로의 처지를 바꿔보는 행사를 진행했고 전문가도 초청했다. 2015년 SBS가 만든 스브스뉴스는 인턴 기자가 주축이 되어 콘텐츠를 제작하는 팀이다. 밀레니얼 세대의 힘, 인턴의 가능성을 믿는 기업들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

고속 경제성장을 경험한 기성세대와 날 때부터 저성장 구조였던 밀레니얼 세대가 가진 현실 인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진저티프로젝트는 이들에게 독립된 프로젝트를 맡겨보라고 말한다. 결론을 열어두고 업무 결정권을 나누면 성과 또한 끌어낼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안전한 환경 속에서 자유와 권한을 줄 때 밀레니얼 세대의 역량이 발휘되며 이를 통해 조직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저티프로젝트는 하루인턴의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기자에게 전했다. 충분한 대화와 질문을 통해 ‘하루의 가치’를 함께 찾았고, 조직의 유연성에 대한 지평을 넓혔다는 소감을 전했다. 안지혜(31) 진저티프로젝트 팀장은 “‘하루 가지고 무얼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데에는 ‘하루’도 충분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서현선(42) 공동대표는 “새로운 이야기와 좋은 실험을 우리에게 선물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안세연 청년기자(청세담 10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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